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50483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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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여기는 안전한 듯 합니다. 위협적이지 않은 동네 불량배들밖에 없네요.”


“수고했어, 페로. 일단 그곳에서 대기해. 아무리 하교시간이 많이 남아있더라도, 일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까.”


리리스는 자신의 보호대상인 한빛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세계 5대 더스트 생산 및 수출기업의 회장직 아버지를 둔 한빛에게는 위험요소가 잔뜩 존재한다. 게다가 몇년 전 구한 경호원들은 허점투성이였고, 동네 불량배들에게까지 납치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그의 아버지는 수천억짜리 경호용 바이오로이드를 구매하였고, 현재까지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리리스 또한 이 점을 자랑스러워 했고,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전 만난 불청객은 그녀의 평생임무를 방해할려고 하고있다.


“...여기서 뭐해?”


“또 당신이군요, 에키드나.”


“여기서 뭐하고 있어, 기분 나쁘게 망원경으로 누굴 감시하는거야?”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눈에 띄지도 않는 이런 건물에서 저랑 마주치는거죠? 전 그저 제 주인님이 안전하고 안락한 학교생활을 유지해드리기 위해 임무를 수행중이라는건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뭐-”


“그리고 애초에 건물 아랫층에 제 동생들을 배치시켜놨고, 당신이 위험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여기까지 올라오게 둔겁니다. 제가 둔하다고 생각한 거라면 잘못 생각하신거에요.”


“쳇,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럼 볼일이 없으시면 가주시죠? 이 건물은 이미 저희 작전구역이니-”


“너희 작전구역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며칠 전부터 쓰던 건물인데, 이미 그쪽 왼편에도 우리집 식구가 있어서 말이야.”


“...?!”


리리스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이 건물 옥상에는 자신과 방금 올라온 에키드나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이곳에 한명, 아니 몇명이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인데, 에키드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리리스 옆에 바짝 붙여앉아 편하게 다리를 쭈욱 폈다.


“레이스, 쉬엄쉬엄해, 어짜피 몇분 뒤에 교대야.”


그녀가 입을 열자, 무엇인가가 반짝이더니, 그자리에는 하얀 머리의 저격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ㅇ, 언제부터 거기에-”


“대략 4시간 전쯤이지? 팬텀이랑 교대했을때.”


“그렇다.”


리리스는 허점 투성이로 생각했던 서현 일당에게 한번 당한 생각에 분하고 아쉬웠지만, 그들 또한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라는 것은 오늘 사건으로 그녀는 꽤나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에키드나와 레이스를 옥상에서 내쫓지 않고, 자신의 업무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한빛의 시간표를 체크 한후, 그녀가 있을 교실 창문으로 망원경을 가져다 놓는 리리스, 그녀는 궁금한 것이 있어 에키드나에게 물어봤다.


“...여기는 왜 온 겁니까? 무슨 작전을 하고 있는거죠?”


“네 주인만큼 우리 서현이도 꽤 중요한 사람이거든.”


“하긴, 저 고등학교에는 돈많은 가문들 천지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거 말고 다른 이유도 있지.”


“...?”


“다른 학교랑 다르게, 쉬는시간이나 수업시간이나 저어기 학교 뒤에 모여있는 애들 있지?”


리리스는 눈을 흘겨 그들을 바라봤다. 남녀가 서로 섞여 담배를 물고 빨고 있었다.


“보호대상 지키시는거면 보호대상에만 집중하시죠?”


“그건 레이스한테 맡기고… 음, 마치 저기 쓸만한 쓰레기가 하나 있네. 잘 보고 있어야된다?”


에키드나가 손짓을 하자, 그 패거리 근처의 자그마한 콜라캔이 두둥실 떠올랐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두르자, 콜라캔이 빠르게 날아가 정확히 담배를 물고 있던 한 학생의 머리에 적중했다.


“악!”


“푸웁!”


에키드나는 남자가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떨궈 히끅거릴 정도로 웃음이 터졌고, 리리스는 이 저질적인 장난에 흥미가 없는듯 다시 눈을 돌려 망원경에 가져다댔다.


“아… 진짜 너무 재밌다니까. 어쩜 쟤들은 한두번 당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맨날 당해주지?”


“...”


리리스는 그녀의 모습을 무시할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에키드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전에 한빛과 서현이 동시에 납치될 뻔했을때도 10초동안 봉고차에 가득 탄 조직원들을 박살냈었고, 서현을 데리고 폭탄거래를 했을때도 땅 속에서 거대한 뱀을 꺼내 빠르게 이동했었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수십미터 떨어진 거리의 알루미늄 덩어리를 조종해 정확히 대상의 머리에 맞추는 행위까지, 리리스는 에키드나의 정체가 초능력자인지, 마술사인지, 아니면 신 그 자체인지 몰라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당신은… 누구죠?”


“음?”


“당신은 도대체 정체가 뭐냐구요. 갑자기 나타나서 주인님 근처를 떠돌면서 이상한 행동들을 하지 않나, 땅 속에서 거대한 뱀을 꺼내질 않나, 심지어 방금 저 캔으로 다른 사람 머리를 맞추지 않나 그것도 손대지 않고.”


“...그냥…”


“그냥?”


“그냥 서현이 아는 누나지. 걔네 집에 얹혀사는 누나.”


“...그럼 이때까지 부린 기이한 일들은-”


“심심해서 부린 마술에 불과해.”



“...거짓말-”


“거짓말 맞는데?”


“어쩜 그리 당당하게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밝히죠?”


“이 이상으로 파고들게 된다면, 너 뿐만 아니라 지금 너가 지키고 있는 보호 대상도 위험에 빠질 수 있어.”


리리스는 그 말을 듣고는 축소된 동공으로 에키드나를 뚜렷하게 바라봤다. 양쪽 경고등 머리핀이 반짝일 정도로 그녀는 흥분해 있었지만 에키드나는 자신이 공격할 의지가 없다는 걸 두손을 머리 옆으로 올리고 항복표시를 하며 마저 입을 열었다.


“진정해, 난 너희들을 적으로 돌리려는게 아니니까.”


“...”


“내가 좀 위험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거든. 그래서 그냥 거짓말로 둘러치는거야. 너가 만약 나에 대해 더 알아갈려고 한다면, 나는 아니더라도, 우리쪽 사람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걸? 오해하지마, ‘내’가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을 말하는거야. 난 너네 보호대상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응?”


“...”


리리스는 동공을 풀고는, 다시 망원경으로 자신의 주인님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감돌았지만, 그렇기에 임무에 충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에키드나와 눈도 안마주치고 그녀는 입을 조곤조곤 열었다.


“임무에 방해되니까 앞으로 임무가 끝날 때까지 방해하지 마세요.”


“쳇… 자기가 먼저 나한테 물어봐 놓고는.”


“...”


“...레이스, 뭐 이상한 일은 없었어?”


이제 리리스가 자신과 대화를 해주지 않자, 이번에는 레이스로 타겟을 변경했다.


“전부 다 양호했다. 다만, 다른 반 여학들과 윤서현의 반 여학생들이 그의 방에서 싸움을 벌인 게 조금 눈에 밟히긴 한다.”


“여자들끼리 싸워? 뭐, 말로 주고받았겠지.”


“일방적으로 여학생 하나가 머리카락을 쥐어뜯겼다.”


“어머, 주먹다툼이였어? 완전 재밌었겠다!”


“...”


사실 리리스는 그 둘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스의 말과 달리, 그건 싸움이 아니라 따돌림, 왕따였고, 행위의 정확한 뜻을 모르는 그들에게 한수 가르치려 들려고 하였다.


“이봐요, 그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행이에요.”


““?””


“여자애 셋이 다른 여자애 하나를 줘 패는게 무슨 싸움이에요? 어휘를 똑바로 써주세요.”


레이스는 리리스의 말에 상처를 입었고, 자신이 틀렸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ㅈ, 저… 내가 잘못한건가…?”


“...그건 아니고-”


“ㅁ, 미안하다! 내가 잘못 말한게 맞는거 같다, 에키드나. 리리스가 말한 왕따가 맞는거 같다!”


“아, 아니 그정도로 잘못된건 아닌… 하아… 앞으로는 단어 선택좀 잘해 줘요.”


리리스는 오버된 레이스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한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임무에 집중하였다. 레이스와 에키드나도 잡담을 조금 하더니, 어느순간부터 조용히 서현이 공부하는 모습을 곰곰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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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교시가 지난 후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3분전, 여기저기서 다들 곡소리가 떠나가지 않고 있었다. 쾌락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반에서는 남은 과자를 먹어치우거나, 하던 게임을 빠르게 끝내고 있었다. 서현의 옆반은 다음시간이 체육이였기에, 옆반에서 울려퍼지는 옷 갈아입는 소리와 복도를 뛰어 다니는 소리에 이번 쉬는시간은 조금 더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짧은 3분 중 하나의 시간이 끝나고, 서현은 수업을 듣기 위해 자신이 앉을 자리를 찾아봤다. 아쉽게도 가장 뒷자리는 이미 누군가의 필통과 교과서로 전부 뺏겼고, 중간 자리 또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독차지해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자리는 공부에만 매진하는 애들이 앉는 맨 앞자리 뿐이였고, 그것도 방금 전 쉬는시간에 다른 여자 셋한테 맞았던 그 여자애가 앉은 바로 옆자리만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 몸이 조금 괜찮아졌는지 말없이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조심스러웠던 서현은 절대 그녀가 완전히 괜찮은 상태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곧장 그녀의 옆자리로 다가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기, 여기 혹시 자리 없어?”


“...”


그녀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서현은 천천히 자리에 교과서와 필통을 내려놓으며 멀뚱멀뚱 먼 산만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몸은 괜찮아?”


“...”


“사탕은 먹었나보네, 그래도.”


“...”


“...미안,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지…? 내가 그때 말렸어야 됬는데…”


“...아니야, 너가 말렸으면, 너도 힘들어졌을거야, 나도 이해해. 이젠 감정 추스러져서 괜찮아.”


“...다행이네, 근데 나도 힘들어지다니?”


“나야 뭐… 항상 이런거 당하는 것도 아니고, 시험기간만 버티면 그래도 괴롭히는 애들도 잠시동안 없어지고, 그리고 만약 그때 너가 날 도와줬다면, 너도 걔네들한테 찍혔겠지.”


“...”


“그리고, 더이상 나랑 이야기 하는것도 그만 두는게 좋을거야.”


“...?”


“...! 미, 미안… 다들 여기만 보는거 같아서… 너는 나랑 노는 애로 찍히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서… 나쁜 뜻으로 한건 아닌데…”


“됐어, 내 앞가림은 내가 할 수 있는데 뭐. 누가 유치하게 너랑 얘기한다고 뭐라하냐?”


“ㅈ, 정말?”


“대체 왜 너는 걔네들한테 당해도 말없이 당해주는거야?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수수한 편인데. 난 이해가 안간다 걔네들이… 막 공부한거 보여달라고 협박하는 그런거야?”


“...ㅁ,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어… 그냥… 아니야…”


‘덜컹!’


“다들 떠들지들 말어! 이것들이… 시험 치르는 애들도 있는데, 적어도 걔네들 방해는 하면 안되는거잖아!”


““예에~””


“...학습부장, 우리 진도 다 나갔지? 시험 얼마 안남았으니까 조용히 자습해라. 교탁 지키고 있을거니까 떠들 생각은 하지들 말어!”


한숨소리가 몇초동안 들렸고, 다시 교실은 연필소리로 가득차게 되었다. 서현은 엘리가 집어준 핵심 포인트들을 확인하고, 다시 복습을 하였고, 20분동안 조용히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학습을 하던 도중, 우연히 옆에 여학생의 필기노트를 바라보았는데, 빼곡히 적혀진 공식과 필기내용을 보니, 시라유리 말대로 전교 1등, 아니 이젠 전교 4등의 포스가 저절로 느껴졌다.


그는 왜이토록 그녀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녀의 남은 학교생활을 위해서라도 따돌림으로부터 떼어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애들의 속삭임 소리가 점점 커지던 때, 마침내 자습시간이 끝이 나고, 그것이 오늘 마지막 수업시간이였기에,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뛰쳐나갔고, 서현 또한 마찬가지로 옆자리 그녀에게 짧은 인사를 나눈 후, 곧장 자신의 가방에 필통과 교과서들을 집어넣고, 학교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친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한빛과 마중나온 리리스에게 내일 시험 잘보라는 인사와 함께. 교문 앞, 에키드나에게 달려간 서현은 해가 뉘엇뉘엇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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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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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교실에 남아, 천천히 가방을 싸던 박시은, 그러나 필통과 교과서는 가방에 집어넣었지만, 그녀가 아끼고 아꼈던 필기노트는 아직까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모든 가방을 싸고, 어깨에 맨 후, 그녀는 다시 의자에 앉아 시계만 보며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시간이 흘려 20분 정도 지난 후였다.


‘덜컹!’


반과 통로를 가로막던 문이 거세게 열리고,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사이좋게 반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아 씨발 그러니까, 존나 재수없어~ 맨날 형광바지 입으면서 개지랄 떤다니까, 오빠 집에 막 이상한 옷같은거 없지?”


“그럼~ 난 걔네랑은 다르다고?”


“하 진짜 존나 짜증나… 아, 저기 와있네. 박시은!”


“ㅇ, 응?”


여자는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은 필기노트를 자기 껏마냥 내용을 확인하고, 마음에 들었다는듯 자신의 가방에 자연스레 집어넣었다. 박시은 또한 이게 당연한듯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진작에 그때 주지 그랬냐, 학교 끝나고 여기 또 안오고, 얼마나 좋아. 병신 같은년, 공부머리밖에 없어서 시간 개념이 없어~”


“ㅁ, 미안…”


“어쭈, 표정 좆같이 짓네? 야, 내가 뭐 너보고 시켰냐? 너보고 시켰냐고~ 내가 필기노트 주면 돈 준다고 했잖아. 니가 수락한거 아냐? 뭐가 또 그렇게 좆같은건데?”


“아무것도 아냐…”


“...표정 풀어라. 가뜩이나 코노가는 시간 늦어져서 기분 좆같은데…”


“...”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 응? 가자 오빠.”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던 여자는 활짝 웃으며 다시 옆에 남자의 팔짱을 끼고, 반을 빠져나갔다.


그녀 홀로 있는 반은 매우 조용하고, 우울했다. 모든 불이 꺼져 있었고, 책상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난 걔네들이 왜 널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수수해서 놀림받을 얼굴은 아닌데?)


“...!”


(힘들면 선생님한테 말해. 아니면 나한테라도.)


서현이 했던 말이 자신의 귓속에 엥엥 울렸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 괴롭힘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사실 자신은 이 괴롭힘에 익숙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것은 생각이 아닌, 세뇌라는 것을 점점더 확고히 느껴질 수 있었다. 오늘 아침 당긴 머리카락, 엊그제 맞은 뺨, 저번주에는 거래랍시고 말도 안되는 가격에 필기노트를 팔라는 협박에 두들겨 맞아 겨우 거래하자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게 익숙해졌다는 것은 곧 언제든지 두들겨 맞아도 익숙해질 몸이라는 것이다.


“...!”


시은은 갑자기 자신의 목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그들의 괴롭힘에 익숙해져 며칠 후에 싸늘한 시신으로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서현의 말을 믿은 시은은 곧장 가방을 매고, 2학년 교무실로 뛰어들어갔다.


‘드르륵!’


“엄마야!”


그녀가 강하게 문을 열어 교무실에 큰 소리가 울려퍼졌고, 시은은 자신도 모르게 강하게 연 문 때문에 연거푸 다른 선생님들에게 사과를 한 후, 곧장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ㅈ, 저… 선생님…”


“...? 누구…”


“ㅈ, 저 시은이에요, 박시은…”


“...아~ 우리학교 공부 탑10 시은이~”


“ㄴ, 네…”


“그래, 무슨 일이니? 이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고. 동아리라도 있어?”


“ㄱ, 그건 아니고… 제가 학폭을 당하는거 같아서…”


“...뭐?”


“그, 제 필기노트를 돈주고 팔라고 하고, 제때 안주면 뭐라 하고 손찌검하고…”


“...어떤 개새끼가 전교에서 노는 애를 건드려, 어엉?! 어떤 새끼야, 이름좀 대봐라, 내가 아주그냥 작살을-”


“저… 그게… 김00… 김XX… 그리고, 송**이요…”


“그래? 알았으, 내가 그 씹새들-”


학생부장 선생님은 파일을 뒤적이며 학생들 정보를 보다, 곧장 얼음처럼 멈춰버렸고, 그대로 가만히 있더니, 몇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시은아…?”


“...네?”


“화내지 말고 들어봐… 혹시… 이번 일을 없던 걸로는 해줄수 없니?”


“...네?”


“그 있잖아… 얘네 아버지는 공장 하나를 운영하고 있고, 얘는 중견기업 회장 딸에, 얘는 프로 골퍼가 부모님이셔. 이거 학폭으로 일어나면, 학교에서 불미스런 일이 일어났다고 기사도 날테고, 그쪽 분들 죄없는 부모님들도 사건에 연루되서 힘들어지실 거야.”


“뭐라구요? ㅈ, 지금… 가해자들 부모가 피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피해자인 제가 참으라구요?”


“...그리고 그쪽 부모님들, 돈도 엄청 있을 거라, 너한테 민사소송을 걸 수도 있다고! 학폭이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도, 아니, 있어도 유능한 변호사들 총동원해서 너를 밀어버릴걸?”


“...”


“그리고 보니까, 걔네들 보니까 직전 시험 등수가 1,2,3등이네? 생각해보니까, 너는 1학년때 전체 1등이였는데, 지금 전교 10등 위아래로 내려왔지? 설마… 너 걔네들 담글려고-”


“그런게 아니라구요! 제 필기 노트를 말도 안되는 가격에 사서는 그걸로 시험공부 대충 해서 하니까 전교 123등이지, 그리고 걔네들 1학년 때는 100등에도 못든 애들이에요!”


“...그래, 알았다. 그러니까 ‘전교 100등에도 못 드는 것들이 내 자리 위협해서 짜증나니까 담가버려야겠다.’ 이런 속셈은 아니라는거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저 맞고 다녀요, 필기노트도 뺏기고, 걔네들 때문에 모든 걸 잃어버릴 것 같다구요!”


“ㄱ, 그래… 알겠으니까… 그래도 학폭위로 바로 가기에는 조금 그래. 뒤숭숭한 일도 있고 해서… 그러니까 일단은 걔네랑 상의해보는게 어떻겠니?”


“?!”


시은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가해자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 이제는 부모에게 그걸 알리겠다? 그렇다면 부모는 그 아이들을 탓할 것이고, 아이들은 다시 자신을 더더욱 매몰차게 괴롭힐 것이라는 걸 시은은 예상하고 있었다. 일이 잘못 꼬였다는걸 직감한 시은은 곧장 손사래를 치고, 이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ㅇ, 아니에요 선생님! 그, 그게… 생각해보니까 제가 잘못한 것도 있는거 같아요… ㅈ, 제가 내일 친구들이랑 이야기 해볼께요, 그러니까 아직 부모님들께는 알리지 말아주세요…”


“...알겠어. 너희들끼리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바란다, 응?”


“...네…”


“수고했어, 들어가봐.”


시은은 그렇게 얻은 것 하나 없이 교무실을 나왔고, 학생부장은 곧장 시은이 교문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학교 뒤편 쓰레기장으로 가, 담배를 입에 베어물었다. 그곳에서 그는 어디론가 바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ㅇ, 아! 네! 교장선생님! 저 2학년 학생부장입니다!”


“아, 이 늦은 저녁에 무슨 일이에요? 아직 퇴근 안하셨어요?”


“그게 아니라… 저희 학교 전교 1,2,3 등 있죠?”


“...아! 그 공부 열심히 해서 200등 언저리에서 1등 올라온 친구들?”


“저… 근데… 전에 전교 1등인 애가… 걔네들을 시기하는거 같아서요… 오늘 학폭이 또 터져서…”


“뭐요?!”


“그 교장선생님 진정하시구요! 일단 제가 잘 타일러서 집에 보냈어요, 자기들끼리 일단 해결해 보겠다고…”


“...클리스턴 국제 고등학교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선 절대 안돼요, 알고 계시죠?”


“그럼요! 이런 명문고에서 그런 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선생, 그러고보니, 그 전에 전교 1등했던 그 친구, 국가 지원으로 입학한 친구 아닌가요?”


“ㅇ, 에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럼 그냥 그 애를 묻어버리자구요. 어짜피 3대1이고, 게다가, 부모가 한명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국가지원 대상이니까, 쉽게 고소라던지, 신고라던지, 할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뭔가 다른 보호수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장은 아무말 없이 곰곰히 있더니,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 꽤 수수해보이고, 괜찮던데… 조만간, 제가 교장실로 불러 자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ㅇ, 아!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학생부장은 그렇게 교장에게 보이지도 않겠지만 고개를 연거푸 숙이며 통화를 마쳤고, 그 후 전화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담배를 마저 태워갔다.


“후우… 씨벌… 라인 잘 탄거 맞겠지…?”


학교 뒤 쓰레기장에서 피어나오는 회색 연기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계속해서 허공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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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는 대학축제로 한참 바빠 글쓰는 걸 미뤘기에, 이번주는 어느날 굴러들어온 그녀들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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