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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했던 요청.

하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건 알잖아.”

 

“알지. 그러니까 사령관에게 묻는 거야.

사령관이 할 수 없다면 나도 할 수 없을 테니까.”

 

 

 

... 그래. 어쩌면 해줄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일 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 가슴팍에 달린 훈장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 사령관 아니냐고,

당신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지휘하는 사람 아니냐고,

그녀의 서늘한 눈빛에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바다 바람이 조금 차갑게 느껴질 때쯤, 트리아이나가 말했다.

 

 

 

“... 알아. 이미 회의는 다 끝났다면서.

나보다 뛰어난 대원이란 것도 알고 있어.”

 

“... ... 그래. 오르카에서 가장 강한 아이니까 어떤 임무라도 완수하고 올 수 있을 거야.

물론... 트리아이나의 실력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 바보.”

 

 

 

그녀는 고개를 휙 돌리고 지평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밤.

바다.

달이 중천에 떠올라 있는 가운데, 바다에는 파랑에 일렁이는 달의 원형이 일그러져 빛났다.

어둠이 가득한 세상에, 바다는 하늘을 어설프게 모방한 그림이었다.

 

그녀는,

한 평생을 그런 그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내 실력을 폄하해도 내가 눈 하나 깜짝하겠어?

내가 누구야, 전설의 모험가, 트리아이나 님이시잖아.”

 

 

 

당당한 척 하기 위해 어깨를 쭉 펴고 나에게 억지 웃음을 보이는 트리아이나.

치켜든 왼쪽 눈썹이 가늘게 떨리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 미안해. 나도 어지간하면 같이 가게 해주려고 했는데...”

 

“안 되는 거지?”

 

“... ...”

 

 

 

그녀는 내 침묵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뭐...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그럼 이유라도 말해줄래? 적어도 그 잠수함은 내 거 잖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스대고 있지만, 나는 그녀가 조금 고개를 떨구고 있단 걸 보고 있었다.

기대를 한다면, 실망도 하는 법이다. 

그녀는 비 온 날의 진흙처럼 질척이는 자신의 실망감을 내게서 능숙하게 숨겨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녀가 그만큼 실망에 익숙하다는 것뿐이었다.

 

 

 

“... 우선 우주는 바다나 육지와 달리 너무 넓어.

그래서 육체적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하는데, 라비아타만큼 강한 대원은 없어.”

 

“맞아. 그렇겠지.”

 

“그리고 저 잠수정에 실을 수 있는 연료는 고작해야 1인분이야.

라비아타와 같이 보내는 것도 불가능 하단 얘기지.”

 

“알아. 내 잠수함인데 그럴 거란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그런데 그거 때문이 아니잖아, 사령관.”

 

 

 

마치 내 마음을 꿰뚫은 것처럼 청명한 파란색 눈동자.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 ...”

 

 

 

... ... 가슴 정중앙에 크게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그녀를 보내지 않은 진짜 이유.

한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무언가가 내 마음에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끄집어 내길 바란 것 같다.

 

내가 말했다.

 

 

 

“... 네가 성공할 수 있을 지 못 믿겠어.”

 

불신.

 

“아직 함께 얘기도 많이 나누지 못했고.”

 

집착.

 

“아직 이 땅에서도 가지 못해본 곳이 많잖아. 거기부터 같이 간다면 분명 즐거울 거야.”

 

애정.

 

배려, 우정, 동료애, 욕망, 헌신, 사랑, 반항, 연민, 동정, 그리움,

셀 수 없이 많은 이유들이, 아직 나와 밥 한 번 먹지 못한 그녀를 이 땅에 붙들고 있었다.

 

트리아이나는 말없이 다가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달의 휘광을 등 지고 있는 나를,

덕분에 내 눈엔 옅은 녹빛을 띄고 있는 그녀의 눈이 세상 어떤 바다보다 푸르게 빛났다.

 

보내고 싶지 않다.

저 눈을, 아직 세상에 떼묻지 않은 저 순수함을 가장 악독한 적 앞으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

아아, 그래.

내가 너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그거였구나.

 

 

 

“... ... 너를...”

 

“... ...”

 

“... 잃고 싶지 않아.”

 

 

 

두려움.

 

나의 트라우마가, 너를 날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사령관으로서 얼마든지 그녀를 첫 번째로 할 수 있었다. 

내가 조금만 완고해질 각오를 했었다면 그녀가 수십 년을 기다려온 꿈을 얼마든지 이뤄줄 수 있었단 말이다.

 

하지만... 두려웠다.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을까 봐.

곱게 땋은 저 머리에서 더치걸이 비춰 보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살릴 수 없었던 아이들.

그러니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나는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었다.

 

 

 

“... 사령관. 이거 받아 봐.”

 

 

 

내 뺨을 조용히 쓰다듬던 트리아이나가 자신의 가방에서 낡은 공책을 하나 꺼내주었다.

표지에 서투른 솜씨로 적혀 있는 <일기장>이란 단어.

갈라져 있는 가죽 덮개를 보고 나는 그것이 그녀가 골동품 더미 속에 모아 두었던 잡동사니 중 하나였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르카에 있는 요 며칠 동안, 어느 바이오로이드를 생각했어. 광산에서 일하던 바이오로이드 말이야.”

 

 

 

일기장을 넘겼다.

석탄 가루가 번져 있는 종이 위엔 어린 아이가 쓴 것 같은 글씨체로 한 글귀가 적혀 있었따.

 

[꽃이란 건 뭘까?]

 

그 옆에는, 어설픈 타원이 다섯 개가 꽃잎처럼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이 노트를 나에게 건넨 이유를 조용히 떠올려보았다.

그리고는, 상상했다.

 

 

 

“어떤 바이오로이드가 사람 말을 거부하겠어?

일이 힘들든 말든, 밥을 주든 말든, 명령을 따라야지. 단지 대가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던 거야.”

 

[꽃이란 게 뭔지 한 번만 보고 싶어.]

 

“드릴을 쑤셔 넣어. 단단한 바위 속으로 어떻게든 집이 넣어.

하지만 지주가 땅을 잘못 잡아서, 참 운이 없어서, 아무리 해도 석탄이 나오지 않아.

요구량을 채우지 못하면 며칠을 꼬박 일해야 할 텐데.”

 

[향기란 게 뭔지, 한 번만 맡아보고 싶어.]

 

 

 

천천히, 그녀가 말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애는, 아마 내 가슴에나 닿을 만큼 작았을 것이다.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 했을 것이고, 무릎은 상처투성이에 치료조차 받지 못해 늘 빨갛게 물들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서,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만이 진리라고 배워서,

그렇게 땅을 파는 그런 아이였을 것이다.

 

 

 

[... 어제 죽은 55번이 말해줬어. 꽃이란 건 분명 있는 거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상하는 것뿐이라서---“

 

[전에 여기로 끌려온 인간이 그런 말을 해줬으니까, 분명 존재하는 거라고.]

 

“그나마의 상상도, 어느 착한 인간이 상냥한 명령을 내려주는 것이라서---“

 

[인간의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억지로 행복을 꿈꾸는 거야.”

 

 

 

꼬마가, 쌕쌕 숨을 몰아 쉰다.

점점 비틀리는 글씨체, 이따금씩 한 번 강하게 엇나간 석탄 자국을 보니 기침을 했던 것이었으리라.

 

 

 

“자기가 일하던 광산이, 무너진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어.”

 

[먹을 물이 다 사라졌어.]

 

“자기를 버리고 떠나버린 광산 책임자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 말했어.”

 

[목이 말라.]

 

 

 

식수가 떨어졌어. 우물을 팔 수도 없다.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 드릴이지만 땅을 판다고 물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지금껏 수 개월 동안 팠지만 나오는 건 시커먼 석탄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따랐지. 명령이니까.”

 

 

 

전조등이 태양처럼 뜨겁다.

들이마시는 숨은 헤엄도 칠 수 있을 만큼 습하다.

 

어떤 아이는 이미 희망을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단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드릴을 쥐려고 하지만 그가 명령하길, 

 

‘기다리고 있어라.’

 

저급 바이오로이드로 만들어진 아이는 그 말을 우회할 능력마저 없었다.

땅을 파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구조대는커녕 인기척조차 느껴본 적 없지만, 이 바이오로이드는 아직 끈을 놓지 않았어.”

 

 

 

그러니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희망을 버린 아이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음이 도리이니,

 

[내일이면 사람들이 올 거야.]

 

일기장에는 아직 남아 있는 희망이 적혀 있었다.

 

 

 

“왜 아직도?”

 

“놓는다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아서.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누구든 결국 자기가 태어난 이유대로 살아야 하는데, 바이오로이드는 복종하기 위함이란 이유 밖에 없어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럼 기다리면 될 거야.]

 

 

 

땅이 마르고 마른다.

공기가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습해진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순종하기 위해 태어났다. 태어남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부족할 만한 삶이었으나, 그럼에도 아이들은 숨을 쉬었다.

 

돌아보니 죽은 아이들이 있었다.

죽은 아이들의 피를 빨아 먹고 연명하는, 산 아이들이 있었다.

다만 죽은 아이들보다 산 아이들의 얼굴이 피로 흥건해져 있었기에, 그들이 조금 더 죽음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숯검댕이 얼굴 위로 붉은 피가 칠해진다.

 

복종이란, 세상을 붉게 칠하는 것이었다.

 

 

 

“기다리라고 했어. 하지만 어떻게?

견디라고 했어. 하지만 뭐를 가지고?”

 

 

 

[... 먹고 싶다.]

 

썩어버린 살이라도.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잖아. 기다려야만 하잖아.”

 

 

 

[죽은 애의 살가죽일 뿐이잖아. 먹는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그리고 기어코,

콰직.

씹어 먹는다. 일기장의 한 켠이 검은 피로 흥건해져 있었다.

 

벌레조차 먹지 않는 살덩어리.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살덩이 한 줌을 손에 든다.

텁텁하고 찌릿한 냄새가, 습한 공기에 섞여 훅 풍긴다.

 

[맛있어.]

 

아직 일기를 쓸 이성이 남아 있음에도 아이는, 

콰직.

먹는다. 기다리란 명령을 지키기 위해.

 

[맛있어.]

 

글씨체는 전보다 조금 더, 뭉개졌다.

그리고 더, 붉어졌다.

 

[맛있어.]

 

그리고 더,

행복해 보였다.

트리아이나가 불현듯 말했다.

 

 

 

“추기경이란 사람이 했던 말, 기억해?

복종하는 것이 기쁜 일이라고, 상상은 자유지만 자유는 상상이 아니라고.

사령관이라면 몰라도 우리 중에 그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 ...”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래. 당신이 명령을 한다면 그걸 따라야 할 거야.

하지만 결코 강요된 행동이 아니야. 사령관처럼 착한 사람이 하는 부탁인데 기쁘게 따르겠지.

바이오로이드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바이오로이드가 만들어진 이래에 수많은 명령이 있었다.

 

그 때마다 인간이, 인간이, 인간이,

악마가, 천사가, 구원이, 멸망이, 수없이 있었다.

 

수많은 복종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바다를 등지고 섰다.

 

 

 

“이번에는 조금 덜 기쁜 일을 해보고 싶어.”

 

 

 

밤하늘을 담은 바다가, 파랑에 일렁인다.

 

 

 

“물론 그냥 뗑깡 피우는 건 아니야.

첫 번째, 우주 같이 위험한 곳에 가는데 어떤 사고가 어떻게 날 지 어떻게 알겠어? 누군가 선발대로 올라가서 확인을 해봐야지.

라비아타 통령처럼 대단한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까.

두 번째, 내 잠수정은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 재료만 있으면 금방 만들 수 있어.

난 펙스 출신 바이오로이드니까 서버에 설계도가 남아 있을 거야. 오르카 호에서 저 정도 잠수함 하나 못 만들진 않을 거 아냐.”

 

“... 그렇긴 하지만 저걸 우주선으로 개조하려면...”

 

“자.”

 

 

 

일기장을 꺼냈던 가장에서, 그녀는 돌돌 말린 종이 몇 장을 꺼내 들었다.

가장 바깥 쪽에 있는 종이는 누렇게 질려 있었고 안으로 갈 수록 점차 하얗게 되는 종이 묶음.

 

 

 

“내가 저걸 개조해온 기록들이야.”

 

 

 

그녀의 몇 십 년이 녹아 있는 소우 피쉬의 개조 도면이었다.

 

 

 

“여기에 나보다 머리 좋은 애들도 있지?

이거 보여주면 훨씬 안전한 우주선을 일주일 내로 만들 수 있을 거야. 라비아타 통령이 탄다면 그걸 타고 가는 게 좋지 않겠어?”

 

“... 그러면 네가...”

 

“맞아. 위험해지겠지. 내가 어줍잖게 손 본 잠수정이니까 그걸 타고 가다간 터져버릴 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린 지금 시간이 없잖아? 내가 먼저 올라 가서 터를 낚아 놓을 테니까 그 뒤로 따라 오라고.”

 

 

 

이 설계 도면. 이것만 있으면 지휘관들을 다시 설득시킬 수 있다.

진짜 로켓에 비하면 몇 십 분의 일 수준의 잠수정. 어림 잡아도 삼 일 내에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이걸 제작 시점부터 우주선으로 만든다면 개조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일 것이다.

라비아타나, 설령 이 임무를 맡을 다른 대원들이나, 전술적으로 잃을 수 없는 에이스들인 건 명약관화한 사실.

두 번째 선택지가 생긴 마당에 지금의 것을 태우고 보낼 이유는 전혀 없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사령관.”

 

“... ...”

 

“내가 가고 싶어.”

 

 

 

한 평생을 모험에 목숨을 바친 아가씨만이 그러리라.

 

나는 당당하게 서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오르카 호에 오른 이후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당당함을 보았으나, 이런 종류는 아니었다.

마치 고치를 뚫고 나오려는 나비처럼,

그녀의 등 뒤에는 위풍당당한 날개가 서려 있었다.

 

일기장 속에 그려져 있던 꽃잎.

그 위에는 한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나비가 있었다.

 

 

 

“고치 안에서 꿈틀대는 생물은.”

 

 

 

그녀가 말했다.

 

 

 

“고치 안의 존재는 거기가 제일 마음에 들을 거야.

거기서 가지지 못한 건 날개뿐이잖아.

고치 안은 따뜻하고 안락한데.

굳이 왜 그곳을 벗어나야 할까, 왜 몸부림 쳐야 할까?”

 

“... ...”

 

“바깥은, 고작해야 안쪽보다 조금 더 커다란 미지일 뿐이니까.

고작 날개를 위해 과거의 자신을 배반해야 할까,

아마 아니겠지.

고치를 벗어나는 생물이란 건, 그 자체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 거라 생각해.

안락하게 죽어갈 기회를 걷어차는 것만큼 바보 같은 건 없으니까.”

 

 

 

그녀가 눈을 들었다.

 

 

 

“하지만.”

 

 

 

나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내 뒤의 바다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오르카 호를.

 

 

 

“당신이 만든 세상에서는, 많은 수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어.”

 

 

 

그리고 다시 하늘을.

 

 

 

“너무 많은 나비가.”

 

“... ...”

 

“그래서 그런데,

나도 날아보고 싶어.”

 

 

 

마치 자신이 뚫고 가야 할 고치인 듯이.

 

 

 

“훨훨 날아보고 싶어.

바다를 유영하며 기분만 내는 게 아니라 진짜 날아가는 비행 말이야.

공기가 바람을 타고 잠수정의 유리창을 강하게 치겠지.

그러다가 점점 화염이 뒤덮는 거야. 덜컹거리는 볼트 소리가 당장이라도 빠질 듯이 울려 퍼져.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알게 될 거야.”

 

 

 

하늘의 별들을 가리켰다.

 

 

 

“어느 순간 온 하늘이 검게 칠해졌다는 걸.”

 

 

 

꿈.

심해 탐사용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의, 우주를 향하는 꿈

그녀의 눈에서 검게 그을린 애닳음이 느껴졌다.

명령이라는 고치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 속에서 그을리고 그을려져 한 줌 재가 되어버린 꿈이 있었다.

 

 

 

“... 그래.”

 

 

 

그러니 내가 할 것은,

그 재를 다시 손으로 쓸어 모으는 것이다.

 

 

 

“가자.”

 

 

 

모으고, 모아, 내 손을 검게 칠하는 것이다.

검어진 손으로 아이들을 무릎을 칠해주는 것이다.

 

복종이란, 세상을 붉게 만드는 것.

그녀를 보니 나는 나의 세상이 한없이 붉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검게 칠하자.

붉디 붉은 세상을 덮을 수 있는 색은 오로지 흑(黑)뿐이니, 칠해버리자.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다시 하얗게 변할 세상을 꿈꾸며,

너희의 망가진 꿈을 이뤄주자.

 

 

 

“... ... 돌아가자.”

 

 

 

나는 그녀를 데리고 오르카 호로 돌아갔다.

하늘을 닮은 밤바다의 수평선은 신기할 정도로 흐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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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이미 결정된 사실을 뒤집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오르카 호에선 이례가 없는 경우다.

게다가 라비아타를 대신해서 간다는 사람이 이제 막 합류한 근본 모를 초짜라는 사실에 지휘관들은 죄다 한 소리씩 남기고 떠났다.

트리아이나가 잠수정의 주인이라는 것과, 그녀의 모험 경력을 열심히 피력한 덕분에 겨우 넘어갈 수 있었지.


그럼에도 준비는 끝마쳤다.

시간도 최소한으로 썼고, 필요한 짐들도 전부 실었다.

이젠 그녀를 믿을 수 밖에.

 

 

 

“후회하지 않아?”

 

 

 

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우주 항공 시설.

관제탑 위에서 발사대를 보고 있던 레오나가 물었다.

 

 

 

“지금이라도 바꾸려면 바꿔.

저 애가 그 동안 집중 훈련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통령 수준은 반의 반도 못 따라갔을 거야.”

 

“어차피 라비아타는 후발대로 올라가기로 결정했잖아.”

 

“그렇다고 선발대의 중요성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동의해.”

 

 

 

단지,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레오나가 손을 탁탁 털며 관제탑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녀의 망토가 휘날리는 걸 멍하니 보며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언제까지 세야 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셌다.

쉼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좀 진정시키려고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그저 기분을 내고 싶었던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치지직!

우주선의 차폐장 소자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기다란 로켓 발사대는 아니었지만, 그 못지 않은 수의 소자들이 분리되었다.

CCTV로 보이는 조종실과 연료 계기판.

커다란 화면과 그 옆에 붙어 있는 수십 개의 보조 화면에서는 알 수 없는 수치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대원들은 분주히 무전기를 들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한 순간 방 안이 고요해졌다.

 

 

 

“추진체 충전 완료.

탑재 시스템 점검, 운용 수행.”

 

 

 

기다란 촉수 꼬리를 흔들거리며 닥터가 등장한 것이다.

그녀 주변의 수십 개의 드론들이 홀로그램 창으로 갖갖이 수치들을 띄우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초소형 개인 우주 발사체의 운행 시험이야.

그러니까 언니들?”

 

 

 

성장약을 먹고 한동안 다크서클이 가실 일 없었던 닥터의 눈이 반짝였다.

 

 

 

“정신 차리자고.”

 



그건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연료 주입 완료. 페어링 부착 시행됨.

카운트 다운 들어갑니다!”

 

 

 

쾅!

어린아이들처럼 기대에 어깨를 떨던 기술팀의 대원들이 마침내 고이 봉인되어 있던 빨간 버튼을 눌렀다.

삐리릭. 가장 커다란 화면 위로 큼지막한 숫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좌우에서 숨을 죽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5.

추진체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불꽃.

 

4.

점점 커지는 진동.

 

3.

우주선을 고정하던 차폐 구조물이 분리되었고,

 

2.

상기된 트리아이나의 얼굴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1.

 

 

 

“갑니다. 오르카.”

 

 

 

그녀가 헬멧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좌우에 있는 카메라로 그녀가 보고 있을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콧핏을 통해 보이는 멀어지는 땅.

한때 태산 같았던 폐허가 점점 작아지고, 자줏빛으로 빛나는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자 구름의 바다가 찬란함을 잃지 않은 동그란 태양을 담아냈다.

바다 위에 바다. 그녀가 보고 있는 풍경은 그리도 장엄했다.

그녀가 작게 탄식했다.

 

 

 

“아...”

 

 

 

드높은 하늘을 날고 있다는 두려움마저도 잊고 멍하니 바라볼 만한 장관.

하지만 그녀의 탄식이 무색하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노을에 빛나는 붉은 구름 바다는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빛을 받고 있음에도 어두워지다니.

한 평생 바다 속에서 살아온 그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치였다.

 

그녀는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화염의 휩싸인 유리창 너머에서 점점 작아지는 바다는, 이내 한 손으로 가리워질 만큼 작게 줄어들었다.

어둠과 하늘의 경계가 천천히 굽어진다.

얕은 바다에서 더 깊은 심해로 들어가듯이, 그녀는 어둠을 향해 항해했다.

 

멈출 법도 하지만, 여전히 올라가고 있다.

 

위로.

더 위로.

 

트리아이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모험의 무대가 되었던 행성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고요히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고치처럼 동그란 행성.

성층권을 지나 중간권을 넘어, 위성의 잔해들이 산재한 전리층을 지나쳤고, 마침내 열권에 다다랐을 때,

어둠과, 하늘의, 경계가 완연한 곡선을 이루었을 때.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아.”

 

 

 

그것은 광대한 구였다.

 

비록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고치 속의 애벌레들만 살아 남은,

부모와 자식, 강자와 약자, 부자와 가난한 자, 위인과 악인, 성인과 악마들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구.

 

그녀는 여전히 올라가고 있었다.

 

위로. 더. 더 위로.

 

그것이 위로 가는 것인지, 앞으로 가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을 때 즈음,

그녀는 마침내 자신이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 ...”

 

 

 

그것은 또 다른 바다였다.

 

밤하늘의 별들을 한데 모아, 빛을 거부하는 어둠 속에 촘촘히 박아 넣은 별들의 바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자신의 잠수정은 위로 올라갔다.

흔들리던 진동도, 부숴질 듯한 굉음도, 전부 어둠에 살라 먹힌 듯 잠잠해졌다.

그녀에게 한없이 익숙한 감각. 깊디 깊은 심해를 탐험할 때마 느낄 수 있는 고요함.

 

모험.

그 단어를 한 점으로 응축시켜 놓은 듯한 적막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녀의 뇌리에 벼락이 꽂혔다.

바다를 묘사할 땐 파란색보다 검은색이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할 만큼 쉼 없이 모험을 했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모험이 하나의 점으로 수렴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자칭 최고의 모험가를 논하던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무대가 거대한 세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조각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이 깊은 심해에 비하면 겨자씨만한 티끌일 뿐이었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을 때,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내셨다.


.

.

.

심장이 뛴다.

인간처럼 살아있고,

인간처럼 숨을 쉼에도, 복종을 미덕으로 배우던 세대.


그럼에도 불복종으로 다다른 이 바다 속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며 위로 올라갔다.

 

인류가 만든 심해 탐사용 바이오로이드.

트리아이나는 우주宇宙를 보았다.

 

 

 

고치에서 태어나,

 

작은 이빨로 고치의 실을 뜯어내려 안간힘을 쓰던 지구의 아이가,

 

마침내 유년기의 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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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쓰고 싶었던 장면을 썼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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