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무슨 바람이 든걸까, 당신은 포츈과 닥터에게 근처에 철충이 있는지 확인지시를 내리고는 잠수정을 부상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포츈은 갑자기 무슨 일이냐며 당신에게 되물었지만 당신은 뭔가 그럴 기분이 들었다며 부탁한다고 했다.



당신의 부탁대로, 바다 위로 부상한 오르카호의 갑판 위는 곧 해가 지는 바다의 모습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바닥으로 스며드는 잠드는 노을 빛들을 보고는, 곧 자리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저 아무도 없었기에, 서서히 수많은 생각들이 당신의 머릿 속 뉴런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잠깐 옆에 앉아도 돼?"


소리가 난 쪽을 보니, 갑판 위에 또 한명의 소녀가 당신을 향해 소리를 치고 있었다.


"왜 궁상맞게 혼자 앉아서 멀뚱히 바다만 보고 있는거야. 이 바보야. 적어도 나는 데려갈줄 알았다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미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으로 서스럼없이 다가와 주었다.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바닷바람을 통해 들려온다. 당연히 괜찮다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호가 옆으로 올 수 있게 엉덩이를 당기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고마워, 사령관."


미호는 눈웃음을 치며 당신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나저나 있지, 오늘 하루 정말 힘들었어...반나절동안 정찰근무 서고 돌아와서는 드라코 봐주느라 고생하고...엄마는 엄마대로 미호가 싹싹하니까 애들 잘 챙겨주라고 따로 이야기하고...바쁘다, 바빠..."

"잠깐 기대도 될까...샤워는 했으니까...조금 피곤해서...헤헤..."


그간 쌓인 것들을 풀어내는건지 미호는 당신에게 투정을 부리며 조금씩 옆으로 고개를 팔 쪽으로 뉘였다. 당신은 그런 미호의 몸을 살짝 끌어당겨주며 편하게 기댈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와-"


"노을...예쁘다..."


당신의 팔에 고개를 뉘이다 자세를 조금 고쳐 잡던, 미호의 분홍빛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물감들이 캔버스에 녹아들어갈만큼 져 있는, 장관이 펼쳐져있는 저녁 노을의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나가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이런거 처음 봐...하긴, 오르카호에서 이렇게 짬날때 갑판 위로 올라온적도 거의 없었으니까..."

"응? 사령관도 처음이야? 이렇게 예쁜 풍경 보는거? 헤헤...그러면 우리 둘이서만 보는 풍경이 되겠네?"


부끄러워하면서도 당신에게 꼭 달라붙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호가, 저 먼 풍경을 넋이 나간듯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갑판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던 미호가 고개를 돌려 당신을 향해 말을 꺼냈다.


"저기, 사령관은 요즘 힘든거 없었어?"


당신은 딱히 힘든건 없었다고, 늘상 하는 일이니까 당연한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미호는 별로 만족할만한 대답이 아니라 생각한건지, 당신의 등을 한번 때리고는 살짝 뾰루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 바보야. 그건 당연히 나도 알고 있는거라고. 늘상 하던 일을 하지 않으면 오르카호가 어떻게 돌아가겠어?"


그러면서 키득키득 웃는 미호가 기지개를 펴더니 당신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물론 난 사령관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해. 우리들 하나하나 사랑해주고 있지, 열심히 고충도 들어주고 있지, 어려운 일 있으면 고민하고 해결하느라 진땀 빼고 있지-"


그런 미호의 분홍빛 눈동자가 조금은 진지해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간혹 보면...이 바보 사령관이 혼자 있을때 좀 표정이 어두워보이더라고. 마치 우리한테는 털어놓을 수 없을거같은 이야기들 같은거 말이야. 우리 이야기는 잘 들어주면서, 사령관은 어째서인지 자기 이야기는 잘 안하고..."


왠지 말을 끝낸 미호의 목소리에 슬픔이 담겨있다면 착각일까, 아니면 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서일까...

미호는 당신의 팔을 조금 더 자기쪽으로 끌어당기어 얼굴을 묻다싶이 하고선 곧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쩌면 우리한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나 힘든 일 같은거도 있겠지. 없다고는 할 수 없을거 아냐. 그게 있을 수 없는 일이든, 여기에 있었던 일이든..."

"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아도 돼. 말할 수 없는 무언가도 있을테니까...그땐 그냥 잠시 내 옆에 이렇게 기대어줘. 그럼 내가 사령관이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고 이렇게 위로해줄게. 약속이야."

"...난, 난 그래도 사령관이 힘내고 있다고 생각해. 우릴 위해서도지만 사령관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야."


미호가 고개를 들어 활짝 미소를 지어보인다. 눈가에 걱정어린 눈물 한방울이 살짝 맺혀 노을빛에 반짝이는건 미호 본인은 모를것이다.


"사령관."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힘든 일 잘 이겨냈고."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그러면서 미호가 당신의 턱을 살며시 잡고 그 입을 천천히 끌어당기어 주었다.


살짝 바닷내음이 풍기면서도 달콤하고 쌉싸름한, 길지도 짦지도 않은 두 사람만의 입맞춤.


곧 그 입술을 떼고 당신을 바라보는 미호의 눈가가 어느새 젖어 있었다. 당신은 그런 미호를 천천히 끌어안아주며 밤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 하루도,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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