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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는 복도 한복판에 방치되어 있었다. 전기톱에 난자당한 몸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백토는 시체 옆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빨간 고기 조각이 손과 얼굴에 엉망으로 묻어 있었다. 백토는 발견된 직후 구속되어 끌려갔으나, 흔한 발버둥 하나 없었다.

 

  백토가 구속된 방은 밝았다. 테이블을 가운데 둔 채 백토는 우측에 수갑을 찬 채 앉아있었다. 백토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령관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불쑥 말했다.

 

  “제가 그녀를 죽인 이유를 아시나요?”

 

  사령관은 의자에 앉다 말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백토의 담담한 표정과 직선적인 물음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사령관이었다.

 

  “뽀끄루가 죽는 장면의 각본이 유출된 거겠지. 사라진 줄만 알았는데…….”

 

  사령관은 전에 읽었던 각본과 백토의 행실을 상기하며 자신 없는 대로 말해보았다. 백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각본이라뇨? 저는 본 적도 없어요.”

 

  “그럼 왜 죽였지?”

 

  “그녀가 공연을 그만두길 원했기 때문이에요.”

 

  “공연? 그 8월의 야상곡의?”

 

  백토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을 들으니 오히려 혼란하기만 했다. 그녀는 곧이어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일주일 전의 일이에요. 작전을 마치고 너덜너덜해진 그녀가 제 앞에 불쑥 나타나더니 말했죠. 두렵고 혼란스럽다는 거였어요. 얼굴 위로 덧댄 웃음, 가식적으로 지어낸 이야기들ㅡ 그런 연기에 지쳤다는 거죠. 저를 속이는 것,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신물이 난다는 거였죠.”

 

  백토의 말은 작았으나 이상하게도 상대방을 위압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사령관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얘기를 이어나가기만 기다렸다.

 

  “또 말하길, 이미 공연은 끝났다고. 관중 없는 공연은 없다고. 그러고는 손을 내밀며 말했죠. 우리는 여태 거룩한 소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공연을 계속했지만 실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에 얽혀 발버둥 쳤을 뿐이라고. 우리가 어김없이 운명이라 믿었던 것은 기껏해야 종이 쪼가리에 적힌 글자 몇 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런 다음 D-엔터테인먼트의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오르카 호의 일원으로 남겠다고 말했어요.”

 

  “…….”

 

  “그러나 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을 수 없었어요. 그녀가 태어난 이유는 공연이 아니었으니 쉽게 포기할 수 있었으나, 제 모든 이유는 그 공연이었으니 제 힘으로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또 연기에 있어서도 그녀는 언제나 현실과 작품 입새에서 머뭇거렸으니 돌아가기 쉬웠으나 저의 현실은 이미 작품이 되어 돌아갈 길이 없었죠. 저는 그녀의 말을 믿기 보다는 그녀를 붙들어 보았어요. 눈물로 애원하고, 폭력으로 협박했죠.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

 

  “그 밤 저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죠. 뜬눈을 밤을 지새우다 새벽에 이르러 저는 문득 깨달았어요. 제가 공연을 그만둘 방법은 공연을 끝마치는 것 하나뿐이었어요. 그것이 바로 그녀였죠. 그녀를 죽임으로써 제 공연은 막을 내리고, 제 인생은 의미를 가죠. 처참한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저는 그래도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애썼어요. 그녀를 죽이지 않고 공연을 끝낼 방법도 생각해봤죠. 저는 정말로 뽀끄루를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연을 끝낼 방법은 하나 뿐이었죠. 제가 용서할 수 없는, 뽀끄루 마왕을 죽이는 것. 그런 그녀를 두고서는 공연을 끝낼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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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매지컬 백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