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관동 어딘가에 있는 미연 기지.


정적은 한 줄기 섬광과 그에 이은 폭발로 깨졌다.


굳게 닫혀 있던 게이트가 광학병기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기지는 즉시 임전 태세에 들어가지만,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잔혹한 죽음이었다.


남녀 구분 없이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무수한 핏방울이 흩날린다.


게이트 파괴로부터 불과 몇 분만에, 수많은 참살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온몸이 토막나고, 어떤 사람은 신체의 극히 일부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널브러진 인체 부품의 수는 맞지 않고, 몇 명 분의 시체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야말로 시체가 겹겹이 쌓인 지옥도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병사들을 죽이고 있는 여자가, 누구 하나 살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키이치 아즈사 "후후......"


여자의 이름은 키이치 아즈사.


신간지 카에데를 살해당한 원한을 풀기 위해, 자의로 브레인플레이어의 기계생명체가 되어, 사람의 몸과,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버린 복수귀다.


병사 "제, 제발......살려줘......"

아즈사 "안 돼."


목숨을 구걸하는 병사의 얼굴이 두동강 났다.


병사 "부탁이야......딸이 있어......"

아즈사 "그래. 그렇다면──."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한 병사는 딸이 아버지라고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레이저에 태워졌다.


아즈사 "크크크......"


평범한 인간이었던 시절과 외모만은 닮은, 차가운 기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는 살육을 즐기고 있었다.


단지 기지에 침입하기 위해서만이라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죽일 필요는 없다.


이 기지에 있는 병사는 한 명도 남지 않고, 그것도 가능한 한 무참히 죽이고 싶다.


기계생명체가 되어버린 지금, 아즈사의 뒤틀린 욕망이 엿보인다.



엘자 스완슨 "거기까지다!"


거기에 힘찬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쾌하게 나타난 그녀는 엘자 스완슨.


머리에는 고양이귀 형태의 센서를 달고, 메카닉한 손발 외에는 피부의 노출이 많아, 이 살육 현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얼핏 맨몸으로 보이는 부분도 골격이나 근육, 내장까지 기계화를 한 사이보그 전사다.


엘자 "네가 소문의 하얀 사신이구나! 더 이상──."

아즈사 "죽어."


엘자의 말을 무시하고 아즈사는 아무렇게나 칼을 휘둘렀다.


엘자 "우왓! 리, 리플렉스 부스트!!"


엘자는 과장스레 놀라면서 손발의 반응 속도를 높인 초가속으로, 아즈사의 검을 피했다.


아즈사 "미연에도 조금은 싸울 수 있는 병사가 있는 모양이네."


그제서야 비로소 아즈사는 제대로 엘자를 바라본다.


학살을 시작한 이래, 공격을 피한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엘자 "나는 엘자! 네가 소문의 하얀 사신이구나! 더 이상 제멋대로 굴지 못할 거야!"


엘자는 끊긴 대사를 끝까지 외쳤다.


하얀 사신이란 미연 기지를 계속 파괴하고 있는 아즈사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아즈사는 엘자를 관찰한다.


아즈사 "전신 사이보그에 가깝나? 아니, 조금이지만 마성이 느껴져. 미연의 기분 나쁜 강화병인가."

엘자 "나는 시작 생체 기갑 병장!"

엘자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멋진 MANGA 히어로가 되기 위해 스스로 이 모습이 된 거야!"


가슴을 내미는 엘자에게 아즈사의 입꼬리가 초조한듯 일그러진다.


아즈사 "......그렇구나. 나는 너희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이 모습이 됐어."

엘자 "복수? 그런 걸 어디서 읽었더라."

엘자 "그게, 그러니까......아, 맞다. 『그런 짓은 그만둬!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않아』."


언젠가 만화에서 읽은 대사를 해봤지만, 아즈사에게 통할 리 없다.


아즈사 "아니. 복수는 나에게 기쁨을 줘. 이런 식으로 말이야."


아즈사는 그렇게 말하며 엘자의 얼굴에 레이저를 쏘았다.


엘자 "!"


엘자는 고개를 틀며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그 정도는 처음부터 예견했다.


병사 "갸악!"


그녀의 후방에서 접근하려던 얼빠진 병사의 얼굴에 큰 구멍이 생겼다.


아즈사 "후하하하하하!!"


아즈사는 크게 웃으면서, 아직 살아있는 다른 병사나 기지의 건물을 향해 레이저를 연사한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건물이 차례차례로 불타올라, 피해가 확대되어 간다.


엘자 "그만둬──!!"


엘자는 아즈사를 막기 위해 최대 출력으로 레이저 라이플을 쏘지만, 아즈사는 코웃음 치고, 촉수 레이저로 그 공격을 간단히 상쇄, 이어지는 공격으로 레이저 라이플 또한 파괴해버린다.


엘자 "그렇다면!"


엘자는 망가진 라이플을 내던지고, 다시 리플렉스 부스트의 초가속으로 과감하게 빔 샤벨을 휘두른다.


아즈사 "후후후."


아즈사의 비웃음은 여전하다. 반대로 한층 커져간다.


그리고 빔의 궤적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 격렬한 참격을 칼날 한 번 맞대지 않고 피하면서, 필사적인 엘자의 자랑스러운 몸을 조금씩 깎아내기 시작했다.


엘자 "윽......큭......아직 멀었어......!"

아즈사 "후후후, 더 분발해보렴."


아즈사는 공격을 피하면서, 아직 남아 있는 병사들을 레이저로 쏘아 쓰러뜨린다.


엘자를 바로 죽이지 않는 것은, 가능한 한 괴롭히기 위해서다.


아즈사 "왜 그래? 만화 속 히어로처럼 멋있게 모두를 지키려는 거 아니었나?"

엘자 "제, 젠장!"


완전 기계화한 손발에 잔뜩 손상을 입고, 맨몸의 육체에도 상처가 생겨, 엘자의 움직임이 둔해져 간다.


무엇보다 동료를 지키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그녀를 괴롭힌다.


그런 엘자에게 들려오는 외침.


대장 "엘자, 잘 버텨다!"

엘자 "대장!"


원군으로 달려온 것은 엘자가 소속된 부대였다.


대장 뿐만 아니라, 강화 외골격인 '본' 부대에, 이들을 지원하는 미연 특수병대도 마찬가지다.


대장 "여기는 우리에게 맡겨라!! 넌 이미 한계야, 물러나!"

엘자 "그럴 수 없어! 나 혼자만 도망치라니!"

아즈사 "맞는 말이야. 히어로가 도망쳐선 안 되지."


너덜너덜해진 엘자의 배를 아즈사는 아무렇게나 걷어찼다.


엘자 "크흣!"


이미 회피 행동도 여의치 않은 엘자는 제대로 얻어맞고 게이트 끝까지 굴러간다.


아즈사 "거기서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있으렴. 그 다음은 너야."


아즈사는 히죽 웃었다.


차가운 기계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숨을 삼킬 정도로 흉흉했다.


엘자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조금이라도 등을 보이면 일도양단 당한다.


아니, 심한 꼴을 볼 것이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인간도 아니고, 사신 정도도 아닌, 더 끔찍한 무언가다.


엘자는 겁에 질렸다.


***


아즈사 "와라. 차원의 틈새에서 꿈틀거리는 자들이여."


아즈사는 즐겁게 말하며, 기계생명체의 힘으로 차원의 틈새에 발호하는 마물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모두 본래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들이다.


하지만 지원 부대는 그러한 괴물 상대로 한 전투 경험도 풍부했다.


아군 중 누구 하나 피해를 입지 않고, 몬스터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엘자 "역시!"


겁에 질려있던 엘자의 눈동자에 희망이 깃들기 시작했지만,


엘자 "그 녀석은!?"


깜짝 놀랐을 때에는, 아즈사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대장 "크학!"


부대를 지휘하던 대장이 머리부터 두동강이 나, 좌우로 갈라져 쓰러졌다.


엘자 "대장!!"

아즈사 "후후후......"


아즈사는 일부러 돌아서서, 엘자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휘관을 잃고 동요하는 부대를 아까와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죽여 간다.


아즈사의 움직임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엘자의 눈에는 간신히 잡히지만, 조금 전의 데미지 탓에, 보고 있는 게 고작이다.


엘자 "모두......도망쳐......"


하지만 엘자의 소원도 헛되이, 그녀가 느낀 것과 같은 공포가 부대 전원에게 퍼져 나갔고, 끝내 귀신에게 겁먹은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마물들에게 몰살당했다.


아즈사 "방해꾼은 사라졌네."


아즈사가 탁 하고 손가락을 울리자, 병사들을 참살한 마물들이 사라진다.


이제 구원은 오지 않는다.


기지에는 아무도 없다.


엘자 외에는 모두 죽어버렸다.


아즈사 "네가 지키고 싶은 모두가 사라져 버렸네. 자, 어떻게 할래?"

엘자 "너, 절대로......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엘자는 너덜너덜한 몸으로 일어섰다.


온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지만, 분노가 그것을 능가하고 있었다.


아즈사 "그래. 그게 내가 계속 품고 있던 마음. 원망이야."

엘자 "리미터 해제! 리플렉스 풀 부스트!"


엘자는 바디의 리미터를 해제하고, 한계 이상의 반응 속도로 빔 샤벨을 휘둘렀다.


아즈사는 반응할 수 없는 듯 우뚝 서 있다.


그녀가 동경했던 히어로들처럼 엘자의 칼날이 아즈사를 베어갈랐다.


──라고 보이는 순간, 그 모습이 무너져 간다.


아즈사 "아깝네. 그건 내 식신이야."


그 목소리는 엘자의 뒤에서 들렸다.


엘자는 뒤돌아보려 했지만, 이미 몸이 한계를 넘고 말았다.


두 무릎이 파손되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린다.


그런 엘자를 아즈사가 지탱했다.


엘자 "어? 왜?"

아즈사 "너의 안쪽을 보려고."


아즈사의 손이 등에서 엘자의 몸에 파고들었다.


아니, 다르다.


아즈사의 손이 엘자의 몸에 녹아들듯 동화되어 있는 것이다.


엘자 "당신......나에게......무엇을......?"

아즈사 "너는 여기서 가장 고도의 사이보그 같더라. 정보를 얻으려면 이 몸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뭔가 역겨운 것이 엘자의 안쪽을 주므르고 있다.


아즈사는 엘자를 해킹하고 있는 것이다.


엘자 "안......돼......싫어....내 안쪽......보지 마......"


아무리 신체를 기계화해도, 남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직접 만지고 있는 것 같은 혐오감.


엘자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즈사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엘자를 통해 이 기지의 메인 시스템에 침입해, 특무기관 'G'의 데이터를 입수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자 더는 관심 없다는 듯 엘자의 몸을 휙 던졌다.


엘자 "으으......윽......"

아즈사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아즈사는 사악한 미소를 띄우며,


아즈사 "네게는 감사의 의미로, 한 방에 죽여줄게."


엘자를 죽이려는 그 순간, 갑자기 아즈사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아즈사 "방해꾼이 왔나."


무엇인가를 감지한 듯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엘자를 죽이지 않고 떠나갔다.


엘자 "왜......?"


엘자가 의아해하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자, 아즈사가 아까 올려다 본 허공에 전송마술의 게이트가 출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적 없는 종족의 검사와 전신갑주 차림의 기사가 나왔다.



스즈카 "한 발 늦었나."

아론다이트 "이쪽의 접근을 감지한 모양이다."

스즈카 "저 몸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군. 기분 나쁜 녀석."


엘자 "다......당신들은......"


엘자는 묻지만, 두 사람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뭔가 주문 같은 것을 외우고, 다시 전송 게이트를 출현시키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엘자 "도대체......누구......?"


엘자는 그 너머를 생각해 보려 했지만, 끝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