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8년.

후우마 마을 근처의 벌판.


어둠 속에서, 처참한 살육을 계속하는 닌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대마인들

"겁내지 마! 놈은 곧 죽을 테니까, 포위해서 뭉개버려!"

"예!!!"


남자 "......죽는다고? 크크, 확실히 그 말대로지만, 여기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당당하게 웃은 남자가 칼을 휘두르고, 순간, 어두운 밤의 벌판에 엄청난 피가 뿌려진다.


사방에서 도망칠 곳 없이 다가오는 닌자들의 칼날, 남자는 그것을 아주 근소한 움직임으로 몸을 틀어, 가죽 한 장 차이로 회피하며 공수역전, 흐르는 듯한 검기로 차례차례 닌자들을 베고 넘긴다.


습격해 온 닌자들은 모두 베테랑들. 그들을 전혀 흔들림 없이 쓰러뜨려 가는 남자의 강함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그런 무서운 힘을 보여주는 남자 역시, 만신창이였다.


남자 "큿......나참, 답답하군. 이렇게까지 내 검이 무뎌질 줄이야......꼭 남의 몸 같아."


적과 아군, 쌍방의 시체가 흩어진 벌판에서, 남자는 입가에 선혈을 흘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남자의 이름은 후우마 "단조" 코타로.


대마인 명문 후우마 일문을 이끄는 두령이다.


후우마의 당주는 "코타로"라는 이름을 계승하는 게 관습이지만, 스스로 괴짜라고 말하는 이 남자는 평생 "단조"라고 자칭했다.


──때는 2068년.

역사의 그늘에 살아가던 대마인 조직에 큰 변혁이 일어난 해였다.


당시의 정부와 결탁해 대마인 조직에의 지배를 강화하는 이가와 장로중과, "닌자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품은 단조와의 사이에 항쟁이 발발──.


그것은 이윽고 두 마을이 말려 들어가는 장렬한 죽음으로 발전했다.


후우마의 닌자는 일기당천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로도 과감히 항거하지만......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은 장로들은 풍부한 자금, 무장, 그리고 조직력을 지니고 있어, 단조과 후우마 일문의 닌자는 조금씩 열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장로들이 총력을 기울여 후우마 마을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패하면 후우마는 멸망한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다시 튕겨낼 수 있다면 전황은 크게 바뀔 것이다.


그래서 단조은 이곳을 고비라 판단하고, 배수의 진으로 장로중과의 결전에 도전했는데......



단조 "......크크, 덧없는 꿈이었구나. 놈들이 한 수 위였나."


그렇게 단조가 자조한다.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한 싸움은, 후우마의 패배로 끝났다.


후우마의 닌자들은 분전하여, 다수인 장로중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


하지만 저항도 거기까지였다.


장로중의 압도적인 전력차를 앞에 두고, 후우마의 정예들은 하나둘씩 쓰러져, 마침내 뿔뿔이 흩어져 패주할 때까지 철저하게 두들겨 맞았던 것이다.



카라스노 료마 "그 말대로입니다, 단조 공. 좋은 말로 할 때 우리를 따랐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을."

료마 "어느 세상에서도, 시류를 읽을 수 없는 바보의 말로는 비참한 것이죠──."

단조 "이런이런. 저주쟁이 카라스노인가."


거기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이가와 장로중을 섬기는 상닌, 사령술사 카라스노 료마.


이능계 인법 "사령무(死霊舞)"의 술사.


사령을 조종해, 사람의 생명 에너지를 빼앗는 위험한 인술의 술사로, 이 남자에게 수많은 후우마 닌자들이 목숨을 빼앗겼다.


료마는 등 뒤에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다.


선발대를 앞세워, 단조를 한계까지 피로를 누적시킨 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타난 것 같다.


단조 "여전히 질리는 전법이구나, 카라스노. 나 하나를 위해서 몇 명의 닌자를 버린 거지? 정말 어이가 없어."

료마 "후후, 이것 참. 일문의 두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냥한 말이로군요. 닌자의 목숨이란 1회용 도구──."

료마 "그를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것이 닌자라는 존재이니까요. 이 녀석들도 제게 사용당하는 게 숙원입니다."

단조 "흥, 견해의 차이로구만. 나는 노예처럼 누군가에게 길러져 사는 것을 "생生"이라고 부르지 않아."

단조 "사람은, 비록 닌자일지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기지개를 켜고 사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료마 "하하하하하!! 바보같은 놈, 죽을 때가 다 되어서 큰 소리 치긴!! ──죽여라! 원(怨)!!"


료마의 주언(呪言)과 동시에 벌판에 흩어져 있는 시체에서 사령이 솟아나고, 또 부하 닌자들도 그에 호응해 덤벼든다.


단조는 정예만 갖춘 후우마 일문 내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걸물이다.


장로중의 자객 다수가 상대라고 해도, 밀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단조가 "본래의 힘"을 낼 수 있으면의 이야기.


단조 "......!"


덤벼드는 적을 앞두고 단조의 얼굴이 약간 괴로움으로 일그러진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아니, 단지 손끝을 움직이기만 해도 강렬한 통증이 전신을 덮친다.


그 원인은 "독"이다.


몇 달 전, 단조는 일문의 닌자를 감싸다가 중독되었다.


이가와 장로중의 간부인 이가와 센쥬로부터 중독된 독.


이것은 "오도살五道殺"이라 불리는 강력한 독으로, 해독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독의 진행을 멈출 수도 없다.


이 영혼까지 갉아먹는다는 독으로 단조의 몸은 병들고 쇠약해져, 전성기의 힘 대부분을 잃었다.


그저 숨만 쉬어도 서 있기 힘들 정도의 격렬한 통증이 엄습한다.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단조는 정신력만으로 일문의 닌자를 지휘하고 계속 칼을 휘둘러 왔다.


단조 "크크......하지만, 이 목, 간단하게 내어줄 정도로 가볍지는 않아. 하아아아아앗!!"


순간 단조의 눈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역사상의 패자覇者의 영혼을 소환, 구현화해 스스로의 힘으로 삼는 "패자의 사안".


그 최대의 오의인 "제육천마왕".


"오도살"의 독으로 병들어 쇠약해진 몸이다.


사안의 힘도 전성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적을 일소하기에는 충분했다.


패자의 영혼을 품은 칼날이 불꽃을 불러, 단조를 덮쳐오는 사령과 닌자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린다.


그때였다.


촤악!!!


단조 "뭣!!?"


어둠 속에서 선혈이 흩날렸다.


단조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무릎을 꿇는다.


그 어깻죽지가 크게 찢어져 있었고, 질퍽질퍽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가와 가게오미 "크크. 방심은 금물이야, 아저씨. 어둠 속은 내 정원이라고."

단조 "......"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남자가 히죽거렸다.


이가와 카게오미.


이가와 장로중의 상닌.


이능계 인법 "그림자 바느질의 술"의 술사로, 그 술의 특성을 이용한, 어둠을 틈탄 암살을 특기로 한다.


이번에도 카게오미는, 단조가 사령들을 일소한 틈을 타 접근, 통렬한 일격을 가한 것이다.


단조 "이가와 카게오미......분명, '그림자를 본체로 삼는' 술의 술사였던가."


카게오미의 "그림자 바느질의 술"은 그림자를 공격해 본체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단조는 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감지해 치명상은 피했지만, 그래도 상처는 깊다.


료마 "잘했다, 카게오미. 놈은 이제 다 죽어가는 몸, 저래서야 저항도 못하겠지."

카게오미 "오우. 포상을 놓치지 않도록 댁도 보고해 두라고. 저 할머님은 구두쇠니까. 그럼......"


그렇게 카게오미가 웃으며, 무릎을 꿇은 단조에게 칼을 겨눈다.


카게오미 "심플하게 생각해, 아저씨. 확실히 댁은 더럽게 강해. 하지만, 이렇게 되면 끝이야."

카게오미 "죽어라──."


카게오미가 도약하고, 동시에 료마가 날린 사령과 닌자들이 일제히 단조를 덮친다.


단조 "큿!? 하지만......"


단조는 최후의 저항을 하려고 칼을 쥔다.


독과 출혈로 이제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외도 놈들 중 한 명이라도 길동무로 삼아──


쿠우우우우웅!!!


료마&카게오미 "!!?"


폭풍 같은 일격과 함께 료마의 부하들이 날아갔다.


그리고 거기에 나타난 건.



??? "그 꼴은 또 뭐냐, 단조. 이런 잔챙이들 상대로 말야."

단조 "......크크,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쇼겐. 이래 보여도 나름 분발한 거야."


갑주 차림의 거한을 보고 단조가 웃는다.


남자의 이름은 쿠로타니 쇼겐.


"후우마 팔중" 쿠로타니 家의 당주.


후우마 단조의 절친이자 라이벌.


젊은 날부터 단조와 경쟁한, 후우마 일문 최강의 일각이다.


***


독과 부상으로 빈사가 된 단조를 지키듯 나타난, 갑옷 차림의 거한.


그 모습을 보고 장로중의 닌자들이 동요의 소리를 지른다.


대마인들

"쿠로타니 쇼겐!!

"쿠로타니 家의 당주......'단조의 방패'인가!?"


후우마 일문 최강의 일각, 쿠로타니 쇼겐의 무명武名은 이가와 닌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세밀한 기술이나 인술에 의존하지 않고, 단지 파워만으로 적을 압도하는 걸 좋아하는 전투광.


세련된 검기와 인술을 자랑하는 "단조의 검" 신간지 겐안과 나란히, "단조의 방패"라 불리며 적의 두려움을 사는, 후우마 팔장의 쌍벽.


그런 괴물이 느긋하게 검을 뽑아들고, 장로중과 대치한다.


쇼겐 "자, 덤벼봐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잔챙이들이 날뛰다니."

쇼겐 "이가와의 꼬맹이들 정도로는 크게 재미 볼 것 없지만, 상대해주마."

카게오미&료마 "......"


두 사람의 이마에 차가운 땀방울이 맺혔다.


지금까지는 우위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뒤집혔다.


단조를 몰아넣기 위해 많은 닌자를 소모해, 이제 이쪽의 수세는 적다.


그런 상황에서, 가공할 강자, 쿠로타니 쇼겐이 단조를 가세하기 위해 나타났다......


료마 "......물러나자, 카게오미. 놈을 끝장낼 것도 없어. 우리의 임무는 완료됐다."

카게오미 "뭐, 뭐어, 그래. 나도 아무런 이득도 없이 저런 괴물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센쥬의 독, 그리고 지금까지의 싸움에서 입은 부상으로 단조는 이제 곧 죽을 목숨.


내버려둬도 곧 죽는다──그렇게 판단한 료마와 카게오미이 부하 닌자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쇼겐 "......흥, 약삭빠른 쥐새끼들이로군."


지루하다는 듯이 말하고, 쇼겐이 대검을 거둔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벌판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쇼겐 "......단조, 젊은 녀석들은 후퇴시켰다. 네가 내린 명령대로 말야."

단조 "크크, 그런가......수고했다, 쇼겐."


단조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최후미에 서겠다, 젊은 녀석들은 전장에서 벗어나게 도와다오.』


단조는 쇼겐에게 그리 명하여, 스스로 미끼가 되어 장로중의 추격자들과 상대했다.


패배가 결정된 이상, 젊은 생명을 허무하게 날릴 필요는 없다──그것이 단조의 마음.


쇼겐은 그 명령에 따라 일문의 닌자들을 지키며 전투권 밖까지 도망친 뒤, 이 벌판으로 돌아왔다.


쇼겐 "......넌 참 괴상한 두령이야, 단조."

쇼겐 "이가와의 바보들의처럼 말하기는 싫지만, 아랫 것들은 1회용으로 쓰는 게 닌자의 삶이야."

쇼겐 "그런데도 너는, 그렇게 놈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피를 흘렸지."

단조 "......아니, 오늘 일어난 일을 따지는 거라면,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단조 "어차피 나는 독으로 죽어. 게다가 이건 내가 시작한 싸움이지."

단조 "마지막은, 내 손으로 뒤처리 하는 게 옳은 것 아니겠어?"

쇼겐 "흥, 알까보냐. 그렇다고 정말 죽으면 그냥 바보잖아."

단조 "크크......뭐, 그것도 그렇지만."


단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눈 앞에는 달에 비친 벌판이 펼쳐져 있다.


도처에 시체가 널려, 이제 움직이는 것은 없다.


그것을 바라보는 단조도, 앞으로 몇 시간 후에 그들의 반열에 들 것이다.


단조 자신, 그리고 옆에 선 쇼겐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단조 "......나는, 내가 해온 일에 후회는 없다."

단조 "전쟁에서는 졌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았어. 뒤에 남는 건 분명 있을 테지."

단조 "단지......크크, 쇼겐, 너와 결착을 내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쇼겐 "......"


입가에서 걸쭉하게 피를 쏟으며 단조가 웃는다.


단조와 쇼겐은 젊었을 때부터 몇 번이나 싸우며, 실력을 겨뤄 온 사이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눈 앞의 벌판은 그런 두 사람이 여러 번 결투를 벌였던 곳.


쇼겐 "......흥, 아무래도 좋아. 저런 하찮은 잔챙이들에게 당하는 지금의 네게는 관심 없다."

단조 "하하, 엄하구만. 참 너다워, 쇼겐......"


단조가 유쾌하게 웃는다.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다.

이제 남은 시간은 거의 없다.


단조 "그래서......말인데, 쇼겐. 그런 네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단조 "이 나의, 마지막 어리광이다......들어주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