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다.


번들거리는 붉은 눈, 찌부러져 위로 향한 코, 크게 찢어진 입, 거기서 삐져 나온 송곳니.


직립한 돼지 같은 그 모습.


잘 알고 있다.


라노베나 만화, 게임에서 낯설지 않은, 당하는 역할의 잡어들이다.


그러나 이건 현실.


현실에 나타난 오크는, 진짜 오크는 틀림없이 괴물이었다.


그 괴물이 다가온다.


오크 "귀찮게 해줬구나, 애새끼."

나 "아, 아아아......"


나 (안돼, 살해당한다!)


알고 있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


날 죽이러 오는 오크들을 보고만 있을 뿐.


오크 "뭐, 아픈 것은 한순간이다. 제대로 맛보고 죽어라."


한 오크가 도끼를 치켜들더니 내 머리 위로 내리찍었다.


그게 이상하게도 천천히 보였던 그때.



??? "하아아앗!"


어둠을 가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옆에서 한 줄기 섬광이 오크들 사이로 날아든다.


나 "에......?"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나와 오크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오크

"뭣!? 여자!?"

"그 꼬락서니는! 대마인!?"


오크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이제 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하다.


나 "대마......인?"


그 이름은 알고 있다.


魔와 싸운다는 닌자.


이 세상에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 초상의 힘을 가지고,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저 오크 같은 마물들과 싸우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먼 세계의 이야기.

오크와 마찬가지로, 나에겐 픽션과 다름없는 존재.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대마인 여성 "일어나!"


현실에 나타난 대마인이 나에게 말했다.


대마인 여성 "그 애를 데리고 도망쳐, 빨리!"

다크 엘프 "......"



이 사람을 데리고 도망쳐라?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픽션이라면 분명 배경캐인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거지?


이 사람을 만나버린 탓일까?


어째서 이런 일이──.


***



이 마을은 도쿄의 베드타운으로서 만들어진, 인구 2만명 정도의, 별 거 아닌 마을이다.


건물의 대부분이 주택가이며, 편의점이나 슈퍼를 제외하고 대규모 상업 시설도 적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적으니까, 치안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대신, 특별히 놀랄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오늘까지 아주 평범하게 살아왔다.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지만, 진짜 범죄에 휘말려들거나, 하물며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뻔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날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


어제 밤샘 때문에 늦잠을 자, 아침에는 학교로 빠르게 달리는 처지가 되어,


아슬아슬하게 예령에 맞춰, 지각하지 않고, 좋아하는 수업은 그럭저럭 성실하게, 그렇지 않은 것은 적당히 흘리고, 방과 후에는 문예부라는 만화&라노베 읽기부에서 오타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집필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오리지널 소설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마지막 하교시간에는 바깥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친구 "잘 가."

나 "내일 보자,"

친구 "원고 제대로 끝내라."

나 "알고 있어."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간다.


아무 일 없는 하루.


나 "배고프다. 편의점이라도 들를까?

나 (......그래. 그때 편의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만날 일도 없었겠지.)


학교에서 편의점까지는 어린이 공원을 통과하는 것이 빠르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도 없다.


사람이 없는 공원은 어쩐지 으스스하다.


나 "......"


잰걸음으로 빠져나가려고 하자, 돔형의 놀이기구의 안쪽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 "......!?"


누구지.


이 시간에?


어쩌면 숨바꼭질을 하다가 남겨진 아이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이 있다.


아무도 찾지 못해,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해지고, 무서워져 돌아갈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야.


나는 조심조심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 "......"

나 "우왁!"


그곳에 있던 것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성인 여성이다.


그것도 푸른 눈동자에, 갈색피부에, 흰머리에, 그리고 긴 귀를 한──에??


나 "다, 다크 엘프? 진짜? 아니 설마. 코, 코스프레인가?"


그녀는 라노베와 만화에서 튀어나온 다크 엘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쿄 킹덤이나 요미하라, 거짓말 같지만 마계와 연결된 곳에는 진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간 적 없고, 지인 중에도 가본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그녀가 진짜인지 아닌지도 몰랐지만, 그 모습은 지금까지 어떤 픽션에서 봤던 다크 엘프보다 예뻤다.


다크 엘프 "......?"


그녀는 갑자기 나타나서 소리를 지른 나에게 놀란 것이 아닌, 어른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은 돔 안에서 어딘가 멍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근처의 공원에 있는 다크 엘프.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다.


나 "뭐, 뭐하고 있어요?"

다크 엘프 "물......"

나 "네?"

다크 엘프 "깨끗한 물......마시고 싶어......"


꿈 속에 속삭이듯 말했다.

심금을 울릴 듯 섬세한 목소리였다.


나 "목이 마른 건가요?"

다크 엘프 "......"


고개를 젓는다. 아닌가 보다.


나 "깨끗한 물을 원하시는 거죠?"

다크 엘프 "......"


고개를 끄덕였다.


나 "물 마시는 곳이라면 저기에요."


내가 그렇게 재촉하자, 그녀는 돔에서 나와 일어섰다.


나 "우와......"


나보다 키가 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팔다리가 길다.

얼굴도 되게 작고, 몸매는 모델 같다.


부츠와 긴 장갑, 거기에 비키니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을 뿐, 거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그런데 묘하게 싫다는 느낌은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느껴서는 안 될 신비감이 있다.


밤의 등불에 아련하게 비추어지는 모습이 마치 요정 같다.


나 (이런 예쁜 사람, 본 적 없어. 역시 진짜 다크 엘프? 근데 왜 이런 마을의 공원에?)


다크 엘프 "깨끗한 물......어디야?"

나 "네, 넷. 이쪽입니다."


넋을 잃고 보던 나는 그녀를 공원의 물 마시는 곳으로 안내했다.


다크 엘프 "......??"


하지만 사용법을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나는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어주었지만,


다크 엘프 "이 물이......아니야......"

나 "아니야? 뭐가요?"

다크 엘프 "......"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단지 슬픈 듯이 나를 바라볼 뿐이다.


이런 예쁜 사람이 그런 얼굴을 하면 왠지 내버려 둘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이 물로는 안 되는 걸까?

아, 그렇구나, 수돗물에는 염소(塩素)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가.


확실히 수돗물 따위는 예쁜 다크 엘프 씨에게 어울리지 않아.


나 "그럼 생수 같은 건가? 이 근처의 자판기에서......자판기는 알아요?"

다크 엘프 "......?"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모르는 것 같다.


나 "자, 따라오세요"

다크 엘프 "......"


다크 엘프 씨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아가 된 아이처럼 나를 따라왔다.


공원에서 거리로 나온다.


가다 보면 자판기가 보인다.


다크 엘프 "......"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마치 몸무게가 없는 것처럼, 사뿐사뿐 거닐고 있다.


그 환상적인 모습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동네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만이 딴 세상에 사는 사람 같다.


나 "자판기는 여기에요. 생수는......여기 있다. 제가 살게요."

다크 엘프 "생수......"


앵무새처럼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생수를 사, 뚜껑을 열어주었지만,


다크 엘프 "이 물이......아니야......"


대답은 똑같았다.


입을 떼려고도 하지 않는다.


슬픈 표정을 지을 뿐이다.


나 "뭐가 어떻게 다른 건가요?"

나 "어떤 물이 필요한지, 그래서 뭘 하고 싶은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다크 엘프 "......"


나는 물었지만, 그녀는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 뿐이다.


내 말이 통하지 않는다던가, 자기자신도 설명할 수 없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수줍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것을 입에 담지 못하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하는 것 같다.


난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방금 만난 그녀를 위해 어떻게든 깨끗한 물을 찾아주고 싶었다.


픽션에서, 나의 평범한 세계로 온 듯한 다크 엘프 씨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강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나 "깨끗한 물, 깨끗한 물......아, 그렇구나! 자연의 물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요? 다크 엘프잖아요!"

나 "이 근처의 신사에 명수백선 중 하나로 선정된 약수터가 있어요. 거기로 가죠!"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크 엘프 "......?"


다크 엘프 씨는 내가 뻗은 손을 신기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


무심코 우쭐해져버린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나 "죄, 죄송합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딱히 내가 손을 잡지 않아도──으악!

다크 엘프 "......"


내가 거두려던 손을 다크 엘프 씨가 잡았다.


작고 부드러운 손.


꿈도 환상도 아닌 현실에, 내 눈 앞에 있는 다크 엘프 씨의 손.


나 "에......저......그......혹시, 이름, 물어볼 수 있을까요?"

다크 엘프 "이름......?"


다크 엘프 씨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이름을 잊어버린 듯한 표정이다.


필시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나 "그럼 다크 엘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만약 싫지 않으시다면......"

다크 엘프 "......"


다크 엘프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진한 눈동자로 날 바라봐 온다.


가슴 속이 찡했다.


나 "가, 가죠. 다크 엘프 씨!"


그리고 명수가 솟아난다는 신사까지 가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다크 엘프 씨와 같이 있는 것이, 손을 잡고 걷는 것이 기뻐서, 마치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꿈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학교에서의 일이라든가 쓰다가 만 소설에 대해서, 종잡을 수 없이 지껄였던 것 같다.


다크 엘프 씨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나 "다크 엘프 씨, 여기에요."

나 "명수백선에 뽑혔다던가 해서, 이 마을의 몇 안 되는 명소라고 하면 명소입니다만. 그냥 마시는 물이죠."



이 작은 신사는 숲 속에 있고, 바로 옆에 약수터가 있어, 시냇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옛날, 어떤 훌륭한 스님이 여기서 손을 씻었다는 유래가 있어, 현지에서는 손 씻는 여우(洗手稲荷)라 불리고 있다.


간혹 물을 뜨러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런 기회라도 있어야 온다.


다크 엘프 "......"


다크 엘프 씨는 시냇물에 다가가, 그 속에 양손을 담갔다.


지금까지와는 반응이 다르다.

이거면 될 줄 알았는데,


다크 엘프 "이건......좋은 물. 하지만......부족해......"


아쉬운 듯이 말한다.


나 "부족해? 뭐가요?"

다크 엘프 "부족해......"


잘은 모르겠지만 부족한 것 같다.


나 "이 물로도 안 되는 건가요......"


수돗물도 안 돼.

생수도 안 돼.

자연의 명수여도 안 돼.


다크 엘프 씨가 원하는 깨끗한 물이란 무엇일까?


나 "역시 그건가? 물의 요정의 힘이 넘친다는 둥 그런 얘긴가. 과연 그건 모르겠군."


다크 엘프 씨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꼬르륵.


갑자기 내 배가 울렸다.


다크 엘프 "???"


다크 엘프 씨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먹을 것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다.


나 "죄송합니다, 다크 엘프 씨. 잠깐 편의점에 다녀와도 될까요? 저, 배가 고파서......"

다크 엘프 "편의점......"


다크 엘프 씨는 시냇물에 담그던 손을 쓱 들어올렸다.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다크 엘프 씨를 역 앞 편의점에 데리고 갔다.


물론 그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점원과 다른 손님들이 놀라고 있었다.


나도 보통이라면 놀라는 쪽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내가 다크 엘프 씨를 데리고 온 거다.

왠지 기분이 좋다.


나 "다크 엘프 씨, 팥만두로 괜찮을까요?"

다크 엘프 "팥만두......"


다크 엘프 씨는 그렇게 따라했을 뿐이지만, OK라고 생각했다.


나 "그럼 팥만두 두 개. 제가 살게요.

다크 엘프 "......"

나 "다크 엘프 씨, 거기 앉아서 먹어요."


나는 가게 밖으로 나와, 편의점 불빛 아래 연석에 앉았다.


다크 엘프 "......"


다크 엘프 씨도 나를 따라서, 내 옆에 오도카니 앉는다.


나 "네, 여기 있습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다크 엘프 "......!"


내가 팥만두를 건네주면 다크 엘프 씨는 그 뜨거움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요정 같은 다크 엘프 씨가 인간처럼 긴 손가락으로 팥만두를 들고 있는 게 신기하다.


나 "잘 먹겠습니다, 아음."

다크 엘프 " ......아음."


다크 엘프 씨는 나를 따라하듯 팥만두에 입을 댔다.


다크 엘프 "......!!"


팥이 뜨거웠는지 또 움찔했지만, 이내 얼굴이 느슨해졌다.


달달하고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의 얼굴

우리들 인간과 똑같다.


다크 엘프 "우물우물......냠냠......"


깨끗한 물은 차치하고, 의외로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다크 엘프 씨는 행복한 듯이 팥만두를 입에 가득 물고 있다.


왠지 나도 즐거워진다.


나 "아핫. 다크 엘프 씨도 배고프셨군요♪"

다크 엘프 "우물우물......우물우물......"


하굣길에 여자애와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을 하다니, 처음이다.


하지만 그런 들뜬 기분은 한순간에 깨졌다.


다크 엘프 "......!"


갑자기 다크 엘프 씨가 일어서며 겁에 질린 듯 뒤로 물러섰다.


먹다 만 팥만두가 손에서 떨어져 땅으로 추락한다.


나 "왜 그래요, 다크 엘프 씨?"


???

"이런 데 있었나."

"수고롭게 하긴."


탁하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읏!?"


거기에 오크들이 서 있었다.


번들거리는 붉은 눈, 찌부러져 위로 향한 코, 크게 찢어진 입, 거기서 삐져 나온 송곳니.


직립한 돼지 같은 그 모습.


잘 알고 있다.


라노베나 만화, 게임에서 낯설지 않은, 당하는 역할의 잡어들이다.


그러나 이건 현실.


현실에 나타난 오크는, 진짜 오크는 틀림없이 괴물이었다.


인간 따위는 가볍게 비틀 것 같은 거구.

흉포하기 짝이 없는 그 얼굴, 그 눈빛


무서운 괴물이 거기 서 있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이런 마을에 오크들이 있는 거야!?


오크 "어이 애송이, 네놈이 그 여자를 데리고 다녔냐?"


새빨간 눈이 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나 "히익!"


그것만으로 몸이 얼어붙는다.


무서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무섭다.


당장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


그렇지만 몸은 굳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애송이라니, 날 말하는 건가?


오크들이 나한테 말을 걸었어? 왜?


데리고 다녔다는 건, 다크 엘프 씨를 말하는 건가?


저 무서운 얼굴.

설마 나한테 화난거야?!


오크 "웃기고 앉았어. 어디의 녀석이지? 아니 아마추어인가? 뭐 됐어. 답례는 해주지."

오크 "거리 밖에서 사람을 죽이면 나중이 귀찮아지지 않아?"

오크 "적당히 처리하면 상관없어."

오크 "그것도 그렇군. 빨리 끝내라."

오크 "오우."


도끼를 든 오크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지금 대화는 들렸지만, 머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이해하고 있었는데 감정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죽인다? 처치한다?

날 죽일 생각이야?


어째서!?


나한테 왜 그래?


내가 왜, 죽기 싫어!


오크 "귀찮게 해줬구나, 애새끼."

나 "아, 아아아......"


진짜 죽일 생각이야. 저 도끼로 죽일 생각이야.

싫어, 죽기 싫어.

그만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죽기 싫어, 그만해, 무서워, 거짓말이야, 오크라니, 진짜야 이거?


왜 내가? 싫어,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


오크 "뭐, 아픈 것은 한순간이다. 제대로 맛보고 죽어라."


한 오크가 도끼를 치켜들더니 내 머리 위로 내리찍었다.


그게 이상하게도 천천히 보였던 그때.


??? "하아아앗!"


어둠을 가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옆에서 한 줄기 섬광이 오크들 사이로 날아든다.


나 "에......?"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나와 오크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오크

"뭣!? 여자!?"

"그 꼬락서니는! 대마인!?"


오크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이제 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하다.


나 "대마......인?"

대마인 여성 "일어서!"


그 사람이 말했다.


대마인 여성 "그 애를 데리고 도망쳐, 빨리!"


베일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허둥지둥 다크 엘프 씨를 올려다보았다.


다크 엘프 "......"


겁에 질려 있다.


하지만 혼자서는 도망갈 수 없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있다.

구원을 청하는 듯한 눈빛으로.


아무 힘도 없는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나 "다크 엘프 씨!!"


정신을 차려보니 일어서서 다크 엘프 씨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친다.


오크 

"기다려, 거기 애새끼!"

"놓치지 않는다!!"


대마인 여성 "너희의 상대는 나야!"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무서운 싸움이 시작되는 소리도.


나 "하아아아아악!"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다.


아까부터 자꾸 넘어지려 한다.


하지만 무서워서 걸음을 멈출 수 없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다.


다크 엘프 "헉, 헉, 헉, 헉."


다크 엘프 씨도 많이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그녀를 챙길 여유도 없이, 머릿 속은 뱅뱅 돌고 있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 나는?

이런 짓을 해서 어쩌려고!?


저 오크들은 진짜다.

진짜 괴물이다.


날 죽이려고 했어.


다크 엘프 씨를 찾고 있어.

어쩌면 나도.


그리고 그 사람.

갑자기 나타나서 도와줬다.

저 사람은 뭐지!?


대마인이라고? 진짜 대마인?

진짜 그런 게 있었어?


하지만 진짜라고 해도, 애니메이션처럼 정의의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느닷없이 데리고 도망치라는데, 말을 안 들으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다크 엘프 씨를 지킬 수 있을 리 없어.

도망갈 수 있을 리 없어.


필시 붙잡히고 만다.

이번에야말로 살해당하고 만다.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다크 엘프 "헉, 헉, 헉, 헉."


그런데 이 손을 놓을 수 없어.


빌어먹을? 어떻게 하지?


이제 한계다, 못 뛰어. 안 되겠어.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해야 하지?


나 "하아아아아아아악......앗!!"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설 공사현장이 눈에 띄었다.


나 "다크 엘프 씨, 이쪽이에요"

다크 엘프 "......!!"

나 "하아......하아......하아......"


어두운 공사 현장의 그늘에 숨어서 필사적으로 숨을 죽이다.


다크 엘프 "하아......하아......하아하아......"


다크 엘프 씨가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나 "아, 아까 그 사람이 분명 다시 도우러 와줄 거에요. 그때까지 여기에 숨어 있죠."


그런,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여자가 정의의 대마인으로, 녀석들을 해치워 주길 바라는 수 밖에.


다크 엘프 씨도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고.


하지만 그런 편리한 소원은 다음 순간, 간단하게 부서졌다.


마견 "크르르, 크르르릉."

나 "히잇!"


공사현장에 괴물 같은 개가 들어왔다.


도베르만을 닮은, 그러나 그 몸은 12배 가까이 커, 입에서 섬뜩한 연기까지 내뿜고 있다.


딱 봐도 그냥 개가 아닌, 마견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 복면을 하고 총이나 칼을 손에 든, 한눈에 그 패거리임을 알 수 있는 남자들도.


야쿠자 

"오구오구. 잘 찾아냈다."

"이런 곳에 숨어 있었나"


저들과 한통속이다.

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필시 살인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다.


나 "아, 아아아......"


몸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하다.

안돼. 도망갈 수 없어.


이제 끝이다.

여기서 살해당해.


야쿠자 "꽤나 얕보인 모양인데, 이 애새끼가."


한 사람이 내 멱살을 잡더니 갑자기 배를 때렸다.


나 "크윽!!"


숨을 쉴 수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아파, 괴로워. 무서워.


나 "크으으으으으으으......"


안돼.


역시 살해당한다.


싫어, 죽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야쿠자 "그쯤 해둬. 거리 밖에서 애새끼를 죽이면 나중엔 귀찮아."

야쿠자 "할까 보냐. 바보 같은 오크들도 아니고."

나 "에......?


하지 않아? 죽이지 않는다고?


나, 안 죽여? 진짜?


그럼 살아날 수 있는 거야?


이대로 봐주는 건가?


죽지 않아도 되는 건가?


다행이다, 다행이다아아......


내 가슴에 기쁨이 가득 찼지만


나 "헉!"


그럼, 다크 엘프 씨는!?


흠칫하고 위를 본다.


다크 엘프 "......"


다크 엘프 씨는 지금까지 중 가장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럴 힘도 없고, 용기도 없다.


나 "다크 엘프 씨, 저......아무런 힘도 없어서......죄송해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여기까지 끌고 온 주제에, 살해당할 것 같으면 바로 다크 엘프 씨를 잊고, 살아났다고 생각한 순간, 안도한 자신이 한심해서.


야옹자 "뭐야 이 애새끼, 질질 짜고 있잖이."

야옹자 "내버려 둬."

야옹자 "어이 꼬마, 이 여자는 도쿄 킹덤의 창관에서 도망친 거야."

야옹자 "우린 그걸 잡으러 온 거고. 이 여자가 마음에 들면 가게로 와. 할인 정도는 해주지. 하하하하."

나 "으......으......"


나는 야쿠자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앞으로 창관에 끌려갈 다크 엘프 씨를 생각하며,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울기만 했다.


그때였다.


다크 엘프 "깨끗한 물......찾았다......"

나 "에......?"


무의식중에 고개를 들었다.


나의 눈물이 두둥실 떠올라, 양손을 벌린 다크 엘프 씨의 가슴에 빨려 들어가.


그 몸이 눈부신 빛에 휩싸여, 그리고──.


엘레오놀 "나는 엘레오놀. 당신의 눈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나 "나의......눈물?"


엘레오놀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딘가 멍한 듯한 옅은 미소와는 다르다.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하는, 상냥하고 따뜻한 미소


엘레오놀 "조금 기다려 주세요."


엘레오놀 씨는 나에게 그리 말하고, 야쿠자들을 응시했다.


엘레오놀 "당신들, 용서하지 않겠어요."

야쿠자

"이, 이 계집! 힘을!"

"어쩔 수 없지, 조용히 시켜!"


엘레오놀 "눈물의 물방울이여, 나의 뜻을 따르라."


엘레오놀 씨가 눈을 깜빡였다.


푸른 눈동자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그것이 다섯 개의 커다란 물방울이 되어 부유하기 시작한다.


야쿠자 "칫!"


탕탕탕탕!


야쿠자 중 한 명이 발포했다.


생전 처음 듣는 총소리에 놀랄 새도 없이, 물방울이 잽싸게 움직였다.


엘레오놀 "소용 없어요."


엘레오놀 씨가 조용히 고한다.

총을 맞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물방울로 총알을 막은 것 같다.


마견 "크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마견이 달려들었지만, 엘레오놀 씨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세 개의 물방울이 재빨리 허공을 날아, 마견을 공중에서 보글보글 삼킨다.


마견 "갸우웅!!"


마견은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평범한 강아지처럼 몸을 떨기 시작한다.


야쿠자

"크으으으으으......"

"으걱......수, 숨이......크룩......"


신음 소리에 퍼뜩 야쿠자들을 돌아보니, 얼굴에 물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야쿠자들은 얼굴이 빨개져서, 그 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손가락만 휘저을 뿐이다.


멍하니 보고 있는 내 앞에서 야쿠자들은 입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내더니 흰자위를 드러낸다.


엘레오놀 "목숨을 앗아가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엘레오놀 씨는 서글픈 듯 말했다.


야쿠자들을 죽이지 않았다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기 위해 물의 힘을 쓴 것을 슬퍼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 "엘레오놀 씨, 굉장해......"

엘레오놀 "고마워요. 하지만, 정말로 나를 도와준 것은 당신이에요. 아무리 감사해도──."


미소를 짓던 엘레오놀 씨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엘레오놀 "읏!!"


야쿠자들 쪽을 응시해, 물방울을 방패처럼 부유시켜 자세를 취한다.



흑기사 퍼시벌 "쓸모없는 놈들. 내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지도 못하는데다가, 다크 엘프의 힘까지 되살릴 줄이야."

엘레오놀 "흑기사 퍼시벌......"


엘레오놀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흑기사,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온몸을 뒤덮은 시커먼 갑옷.

오른손에 브로드 소드, 왼손에 나이트 실드


판타지 세계에서 빠져나온 듯한, 흉악하기 짝이 없는 흑기사가 거기 있었다.


야쿠자 "퍼, 퍼시벌 님......"


의식을 되찾은 야쿠자가 흑기사에게 기어가고 있었지만,


흑기사 퍼시벌 "방해다."


흑기사는 거침없이 야쿠자의 목을 날려버렸다.

기절해 있던 또 다른 야쿠자, 겁에 질려 있던 마견까지 죽인다.


칼에 살이 찢어지는 소리, 솟구치는 피분수, 코를 찌르는 냄새, 이제 한계였다.


나 "우웨에에에에에......"


흑기사를 본 순간부터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입에 손을 넣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토하고 말았다.


흑기사 퍼시벌 "애송이, 거기 가만히 있거라. 넌 나중에 갈기갈기 찢어 주겠다."


붉은 피로 물든 검은 투구 안쪽에서, 흑기사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엘레오놀 "빨리! 도망치세요!"


엘레오놀 씨가 나에게 외친다


나 "아, 아아......아아......"


그런데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어.


무서워!


저 흑기사가 무서워.


오크보다도, 야쿠자보다도.


그런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어.


뱀 앞에 선 개구리다.


엘레오놀 "저 사람을 죽이게 하지 않겠어요!"


도망치지도 못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엘레오놀 씨가 흑기사를 가로막았다.



END


들뜬 학생이 자랑하듯 엘프와 함께 편의점에 들러

거기서 사람들이 몰래 사진 찍어 SNS에 올리고

그걸 보고 오크, 야쿠자들이 찾아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