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와이트 "우후후. 실체가 없는 그는 나처럼 무기나 골렘은 사용하지 않아."

와이트 "저 향로를 촉매로 마술을 부릴 뿐. 조금은 제대로 싸울 수 있어. 열심히 해봐."

세르비아 "닥치세요!"

레이스 "──."


수다스러운 여자에게 호통을 치고, 이쪽은 오로지 침묵하는 향로 유령으로만 대했을 뿐,


와이트 "읏!!"


구경하려고 했던 와이트가 갑자기 안색을 바꾸고 그 자리를 떴다.


직후──.


촤아악!!


무시무시한 참격이 그곳을 관통했다.



오보로 "흥, 피했나."

세르비아 "오보로 님!?"


그녀의 궁지에 나타난 것은 애견 제로도, 혹시 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리나도 아닌, 원래 이곳에서 만날 예정이었던 오보로였다.


오보로 "......"


오보로는 구해준 세르비아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와이트만을 노려보고 있다.


와이트 "네 녀석, 무슨 생각이지?!"


그리고 와이트는 노마드의 대간부의 출현에 어째서인지 세르비아 이상으로 놀라고 있다.


오보로 "뭘 잘난 듯이 지껄이고 있어? 여긴 내 영역이야."

오보로 "사령경의 개가 나에게 예고도 없이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와이트 "네 년!"


와이트가 언성을 높인 다음 순간, 오보로의 몸이 문득 흔들렸다.


──라고 세르비아가 인식했을 때에는,


콰직, 콰직!!


순식간에 와이트에게 접근한 오보로가 그 갈고리 발톱으로 말벌 골렘을 분쇄하고 있었다.


와이트 "큭!"


세르비아처럼 와이트는 오보로 움직임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갑자기 목 앞에 들이밀어진 갈고리 발톱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오보로 "내 영역에서 뭘하고 있는 거냐 묻잖아."

오보로 "귀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뚫어 더 잘 들리게 해 줄까?"


자신이 위협을 받는 거솓 아닌데, 세르비아조차도 아는 것을 모두 말해 버릴 것 같은 무서운 목소리로 오보로가 말했다.


와이트 "큭......"


눈 깜짝할 사이에 골렘도 간단히 파괴당한 와이트는 분한 듯이 이를 갈지만,


와이트 "이런 짓을 벌이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마! 나는 가겠다! 그 여자를 처치해라!"


상투적인 말을 내뱉더니 휙 몸을 돌려 달아났다.


오보로가 그것을 내버려 둔 것은 이상하지만, 그런 것보다 지금은 레이스다.


이쪽은 남아서 계속 싸울 생각인 듯 하다.


세르비아 "와라!"


세르비아는 다시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오보로 "그 여자를 처치해라? 흥, 바보 같긴."


그런 말이 들리더니 다시 오보로의 모습이 문득 흔들렸고, 다음 순간에는 레이스의 등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레이스 "!!!!"


레이스는 놀라면서도 향로를 흔들며 뭔가 마술을 부리려 했던 것 같았지만,


오보로 "꺼져."


이번에는 으름장도 없이 딱 한 마디.

뒤에서 레이스를 베어가른다.


레이스 "키야아아아아아악!!"


그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레이스는 마지막에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오보로 "유체幽体를 망가뜨린 정도로 죽어버리는 게 망자를 조종하는 레이스라니. 웃음 밖에 안 나오네."


오보로의 힘에 세르비아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세르비아 (격이 달라. 역시 노마드의 대간부......)


'근접전에서의 암살이라면 오보로 님의 독무대'.


존경하는 잉그리드와 동격의 대간부를 리나는 그렇게 평가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싸움이었다.


세르비아 "오보로 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오보로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내 영역을 지켰을 뿐이야."


감사를 전하는 세르비아에게 오보로는 귀찮은 듯이 코를 울리지만,


세르비아 "리나가 말했던 대로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분이군요."


세르비아가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불편한 표정이 되었다.


오보로 "누, 누가 수줍음을 많이 탄다는 거야? 리나의 말은 믿을 게 못돼."

세르비아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악명높은──굳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세르비아 "악명 높은 오보로 님이 이 슬럼의 아이들 보호에 열심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어요."

세르비아 "이번에도 많은 기부, 정말 감사했습니다."

세르비아 "앞으로 오보로 님처럼 요미하라의 가난한 아이들을 구하는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세르비아 "허락해 주실 수 있을런지요?"

오보로 "흥, 마음대로 해."


오보로는 그렇게 내뱉고 떠나갔다.

쑥스러워 하는 것이 분명하다.


세르비아는 그런 오보로의 뒷모습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세르비아와 헤어지고 아지트로 돌아가는 길──.


오보로 "큿......"


오보로 가슴을 억눌렀다.


오보로 "크으......윽......크......"


그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투쟁에서는 어떤 아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노마드의 대간부가 말이다.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아픔. 공허함이 가져오는 아픔


이 아픔은──!


오보로 "으그윽......빨랑빨랑......나오시지 그래!"

와이트 "아까 그거, 무슨 생각이야?"


오보로의 등 뒤에서 와이트가 나타났다.


그 손에 보라색 불꽃이 들려 있다.


일찍이 사령경에게 빼앗긴 오보로의 영혼이다.


놈은 그걸로 오보로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을 와이트에게 빌려준 것 같다.


와이트가 저 영혼의 불꽃을 짓뭉개면 오보로는 죽는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오보로 모멸의 표정을 보여주었다.


오보로 "나, 나를 당해낼 수 없다고 주인님께 울며 매달린 거야?"

와이트 "내 질문에 대답해."


와이트는 영혼의 불꽃을 조금 강하게 쥐었다.


오보로 "으그으으읏!!"


오보로는 그 자리에서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것을, 울면서 용서를 구걸하고 싶어지는 것을, 혼을 빼앗긴 몸에도 아직 남아있는 긍지로 필사적으로 참는다.


오보로 "나, 나는 내 영역을 지켰을 뿐이야! 단순히 지나치면......내, 내가 잉그리드한테 의심받는다구!!"

와이트 "그럴듯한 대답이야. 일단은 믿어줄게."

와이트 "하지만 나를 사령경의 개라고 부른 건 용서할 수 없어. 내가 너의 모습이 변하는 건 간단해. 그건 모르나 봐?"


기릿, 기릿기릿──.


오보로 "크으윽......큿......! 사, 사령경께도 그런 식으로 말한 건가! 제법이잖아, 와이트!"

와이트 "큭. 잘도 그딴 식으로 지껄이는──."


이 여자가 사적인 분노를 우선할지, 사령경의 개로서의 역할을 지킬지, 반반이라고 보았는데, 그 균형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목소리에 의해 선뜻 깨지고 있었다.


리나 "앗, 찾았다. 오보로 님──!"


리나다.


저쪽에서 다가온다..


와이트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것 같지만,


와이트 "저, 저건!? 레이스 로드께서 말씀하셨던 기묘한 마계기사?"

오보로 "크크크크, 저 녀석은 너 따위가 당해낼 수 없다구."


오보로는 영혼의 아픔에 시달리면서도, 더욱 와이트를 조소했다.


와이트 "칫!"


주인님께 리나는 상대하지 말라고 들었을 것이다.


와이트는 혀를 차고 다시금 꺼림칙하게 사라졌다.


결국은 사령경의 추종자 중 하나, 쫄따구 레이스다.


오보로 "큭!"


하지만 오보로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리나 "오보로 님!!"


리나가 황급히 달려와 오보로의 몸을 안아 일으킨다.


리나 "괜찮으신가요, 오보로 님! 무슨 일이에요? 정신 차리세요!"

오보로 "아무것도 아니야. 좀 과음했을 뿐. 혼자 일어설 수 있어. 놔!"


바로 부축을 하려는 리나를 오보로가 밀어냈다.


와이트가 영혼에 대한 공격을 멈춘 듯 조금 전까지의 고통도 사라지고 있었다.


리나 "그런가요? 단순히 과음일 뿐인가요? 아아 다행이다. 자객한테 당한 줄 알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목소리.


직속 부하도 아니면서, 오보로와 잉그리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참으로 성가시다.


그러나 그런 리나가 절묘한 타이밍에 찾아온 덕에 살아난 것도 분명하다.


오보로 "왜 나를 찾았지?"


오보로가 무뚝뚝하게 묻자 리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말했다


리나 "세르비아 아가씨를 도와주셨다는 말을 듣고 감사를 표하러 왔습니다."

오보로 "내 영역을 지켰을 뿐이야. 일일이 감사니 뭐니 성가셔."

리나 "하지만 오보로 님은 아가씨의 생명의 은인이에요."

오보로 "아직 이벤트는 계속되고 있는 거겠지. 얼른 돌아가. 슬럼에 썩을 꼬마 따윈 차고 넘치니까."

리나 "네,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리나는 아까 도와줬던 세르비아처럼 깊이 고개를 숙인다.


오보로 "흥......피차일반이야."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리나 "네? 뭐가요?"

오보로 "됐으니가 빨리 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오보로는 리나를 쉿쉿하고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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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기사라 해봐야 골렘을 통해 장기를 토해내거나 시체들 일으키는 게 고작이라.


레이스족은 사령경 원맨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그러니 사령경도 짭보로, 에우리알레 등 외부인력의 약점 잡고 이용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