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장』


『오늘 12시, 홍천루에서 아스트라이오스를 기다린다. 안네로제 바쥬라』


안네로제가 공개한 결투장은 하루아침에 아미다하라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 장소로 지정한 홍천루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 아이슈와리야 레이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환락가, 투기장, 창관 등 이 마을에 모인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시설이 여럿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붉은 여왕 아이슈의 개인적인 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사람들은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안네로제는 그 홍천루에 아스트라이오스를 불러낸 것이다.




결투 1시간 전.


안네로제는 아이슈의 방을 찾았다.


투기장에 모인 사람들의 환성이 땅울림과 같이 너울거리며 전해져 온다.



아이슈 "안네, 너도 느끼고 있겠지. 홍천루가 수많은 이들의 욕망으로 떨고 있어. 이런 건 오랜만이야."

안네로제 "잘 됐네.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아이슈."

아이슈 "나야말로. 소문의 초능력자와의 결투 무대로 내 홍천루를 선택해 기뻐."

아이슈 "아미다하라에 퍼진 네 결투장을 보면 오싹해져."

안네로제 "뭐, 기왕 하는 거 돈이라도 잔뜩 땡겨야지."

아이슈 "돈보다는 네가 아스트라이오스 상대로 아름답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기대해도 될까?"

안네로제 "어떨까나."

아이슈 "그리고 약속은 잊지마. 여기를 쓰게 해주는 대신, 패배할 경우 너는 나의......후후."


아이슈는 이미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표정으로 요염하게 몸부림쳤다.


안네로제 "마음대로 해."


그 취미에는 어울릴 수 없어, 손을 흔들며 적당히 대한다.


아이슈 "정말 안네로제도 참. 난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아이슈는 애달픈 표정을 지었다.


이게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라 곤란하다.


안네로제 "네이네이. 그럼 이만 갈게"

아이슈 "힘내, 응~츄우♪"


손키스에 맥을 못 추면서 안네로제는 아이슈의 방을 나왔다.


이제 곧 12시.


안네로제는 투기장까지 이어지는 복도를 걷는다.


안네로제 "......"

미치코 "그 녀석이 올 것 같아?"


안네로제 옆을 걷는 미치코가 물었다.


안네로제 "아마도. 오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

미치코 "그럼 어떻게 해? 찾으러 다닌다는 말은 안 할 거지?"

안네로제 "설마. 녀석이 어디서 쓰러져 죽든, 인격이 사라지든 상관없어."

미치코 "다행이다. 혹시나 안네로제가 그 녀석을 좋아하게 된 거 아닌가 싶었어."


엉뚱한 말에 안네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안네로제 "내가? 그런 일은 절대 없어.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안네로제 "다만 뭐, 아미다하라의 주민으로서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 싶달까."

미치코 "흐응, 그렇구나."


미치코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로 투기장 쪽으로 나아가니 대마인 키리하라 준코가 서 있었다.


쥰코 "......"


준코는 이미 칼을 빼들고 있었다.


그리고 안네로제의 앞을 가로막듯 그 칼을 옆으로 기울였다.


안네로제 "온건하게 얘기하고 싶은 표정이 아닌 것 같은데."


안네로제도 검을 뽑는다.


미치코 "잠깐, 안네로제."

안네로제 "괜찮아."


걱정하는 미치코에게 말하고 안네로제는 준코와 마주 섰다.


쥰코 "......"


올곧은 눈동자가 안네로제를 응시하고 있다.


준코 "타앗!!"


준코는 미끄러지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망설임 없는 일격을 가해 왔다.


안네로제 "핫!!"


안네로제는 굳이 그것을 정면에서 받아낸다.


채애애앵!!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듯 격렬한 불꽃이 튀었다.


그렇게 몇 번 칼을 맞댄 후, 두 사람은 거리를 벌리고,


안네로제 "하아아앗!!"

준코 "야아아앗!!"


새된 기합성을 올리며 동시에 깊고 날카롭게 쳐들어갔다.


미치코 "앗!"


보고 있던 미치코가 숨을 삼킨다.


몸에 닿기 직전, 서로의 칼날이 딱 멈췄다.


준코 "실례했습니다."


준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칼을 집어넣었다.


안네로제 "이해하는 거야?"


상쾌한 기분으로 준코에게 묻는다.


준코 "네. 여기는 아미다하라. 그 방식을 따르겠습니다."


준코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안네로제 "고마워."


안네로제는 금강야차를 칼집에 넣고 그대로 투기장에 향한다.


미치코 "어떻게 진심이 아닌 줄 알았어?"


종종걸음으로 쫓아온 미치코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네로제 "눈을 보면 알아."

안네로제 "거기다 대마인들은 저렇게 호들갑 떠는 걸 좋아하거든. 나도 싫지는 않지만."


마음도, 검도 산들바람 같은 여자다.


이윽고 안네로제는 투기장 입구까지 당도했다.


안네로제 "그럼 다녀올게."

미치코 "잘 다녀와, 안네로제."




안네로제 "......"


12시.

약속 시간이다.


안네로제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이 들끓었다.


들려오는 성원과 욕설을 모두 무시하고 기다리다 보면, 과연 아스트라이오스가 텔레포트해 왔다.


아스트라이오스 "우......으으......우."


어제와 마찬가지로 괴로운 표정.


아스트라이오스 "부탁이야...... 나를...... 죽여줘......"


그리고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안네로제 "그럼, 그렇게 해줄게"


안네로제는 칼을 뽑아 그의 목에 망설임 없이 내리쳤다.


까아아아앙!!


하지만 칼날이 닿기 직전, 초능력의 장벽이 그것을 막고 있었다.


안네로제 "역시."

아스트라이오스 "어째서......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아스트라이오스에게 안네로제는 설명해 주었다.


안네로제 "그게 네 본질이기 때문이야. 너는 나와 같은 악, 이쪽 사람이지."

아스트라이오스 "내가......악......"


깜짝 놀란 듯 그녀를 올려다본다.


안네로제 "너는 분명 죽기를 바랬어."

안네로제 "하지만 그건 점점 커지는 힘에 자아가 잃을까 봐 그런 게 아니야."

안네로제 "마음 깊은 곳에서 그 힘을 갈구하던 자신의 본성이 두려웠던 거지."

안네로제 "자신이 미연에게 개조당한 불쌍한 인간이 아니라, 단지 악의 파괴자라는 걸."

안네로제 "자아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죽여달라는 둥 번지르르한 말을 했고."


아스트라이오스 "......"

안네로제 "뭐, 그런 세세한 건 몰라도 이 마을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 네 본질이 악이라는 걸."

아스트라이오스 "후, 후후, 후후후후후......"


아스트라이오스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충격을 받아서?

아니, 진심으로 즐거워서.


아스트라이오스 "하하하하!! 그렇구나, 그게 나였구나. 잠에서 깬 기분이야."

아스트라이오스 "이제야 알았어! 내가 왜 이런 힘을 가졌는지. 이 힘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아스트라이오스는 고개를 들었다.


귀신이 떨어져나간 표정이다.


자기 본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해, 악.


안네로제 "그 힘으로 뭘 하고 싶어? 들려줄래?"

아스트라이오스 "일단 너를 죽일 거다! 안네로제!!"


예상했던대로의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블레이드가 출현하여 그의 손에 쥐어졌다.


안네로제 "정직한 악으로 각성했나 보네. 드디어 나와 싸울 자격이 생겼어. 덤벼라, 아스트라이오스."


안네로제는 금강야차를 고쳐 쥐었다.


악을 먹는 마도를.


***

 

아스트라이오스 "하아아아앗!!"


아스트라이오스가 블레이드를 내리친다.


예리한 칼이다.


안네로제 "핫!!"


안네로제가 그것을 되받아 치자,


아스트라이오스 "죽어어어어!!"


간격을 두지 않고 옆에서 화구들이 날아온다.


안네로제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서걱!!


안네로제는 가볍게 몸을 돌려 금강야차로 전부 베었다.


아스트라이오스 "치잇!!"


쿠우우우웅!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전후좌우에서 안네로제를 덮쳤다.


예지능력을 병용하고 있는지, 보통이라면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타이밍이다.


안네로제 "어머 제법이네."


안네로제는 피하려고도, 막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금강야차에 조금만 마력을 싣는다.


촤라라라락!!


검은 띠가 칼자루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그녀 주위를 뒤덮고, 덮쳐온 충격파를 막는 것이 아닌 집어삼킨다.


안네로제 "우후후후......각성한 너의 초능력, 비교적 맛있다는 것 같아."

아스트라이오스 "뭐, 라고......?!"


악에 눈을 뜬 아스트라이오스의 힘은 지금까지와 비교 할 수 없다.


굉장한 능력이다.


그러나 안네로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미다하라의 주민으로서, 악의 선봉으로서 여유롭게 받아들인다.


안네로제 "아스트라이오스. 너는 이제 겨우 막 악에 눈을 떴을 뿐이야."

안네로제 "이쪽은 더 깊어. 아미다하라의 마녀검객으로서 그 편린을 보여줄게."


안네로제는 금강야차를 휘둘렀다.


촤아악!!


그녀의 주위를 춤추던 검은 띠가 걷히고, 금강야차가 진면목을 드러낸다.


아스트라이오스 "그......그 힘은......!"


아스트라이오스가 물러났다.


최강의 초능력자로 각성한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금강야차를 휘두르는 마녀 안네로제의 너무나도 거대한 악을.


안네로제 "제대로 보도록 해. 하아아아아앗!!"


안네로제는 금강야차를 휘두른다.


아스트라이오스 "크하아아악!!


아스트라이오스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저 마도에 얻어맞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는 않았다.


아스트라이오스 "크......크으윽......칼등치기......라니......."

안네로제 "너의 악은 아직 먹지 않아. 그 정도로는 금강야차의 성에 차지 않아. 더 큰 악으로 자라렴."


아스트라이오스 "이......이게 너의 힘이냐......나는......아직 너에게 미치지 못해......"

아스트라이오스 "그렇지만......언젠가......널 죽여버릴거야......"

아스트라이오스 "더욱 더......강한 악이 되어......널 죽이겠어......반드시!"


안네로제 "기대할게, 아스트라이오스."

아스트라이오스 "기다리고 있어라, 안네로제! 넌 내 거니까!!"


아스트라이오스는 사라졌다.


행선지는 분명 이 거리의 어딘가일 것이다.


머지않아 더 무서운 적이 되겠지만, 그것은 안네로제에게 있어서의 일상이자, 마녀검객으로서의 기쁨이기도 했다.


안네로제 "인기 있는 여자는 괴롭다나까. 그래도 뭐, 이걸로 나름의 결말은 지어졌겠지."


안네로제는 금강야차를 칼집에 넣었다.


그녀의 압도적인 승리에 투기장이 들끓다.


준코 "그가 자신이 있을 곳을 찾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야마다 "스스로 자신을 정의한다. 네가 부러워, 아스트라이오스."


아수라 "나로서는 이후가 기대되는 결과가 되었군."


아이슈 "역시 나의 아넨. 그리고 그 아가도 재밌어, 우후후."


안네로제와 인연이 닿은 자들이 제각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안네로제 "ZZZ......ZZ......"


탕.....탕탕......쾅!


어디선가 총성이 울리고 있다.


오늘은 폭발도 들려오고.


또 아침부터 화려하게 하고 있겠지.


그게 이 마을의 일상이다.


후~~~~웅.


안네로제 "후아아아......좋은 냄새."


안네로제는 좋은 냄새에 눈을 떴다.


안네로제 "안녕 미치코"

미치코 "안녕! 아침 만들었어! 평범하게! 말했던 대로"


테이블 위에는 베이컨 에그, 토마토, 토스트, 밀크라는 실로 정직한 아침식사가 놓여 있었다.


안네로제 "고마워.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미치코 "모처럼 내가 만드나 했는데 계란도, 베이컨도, 빵도 그냥 구웠을 뿐이야. 토마토는 잘랐을 뿐이고."

미치코 "재미도 뭣도 없어!"

안네로제 "그래서 좋은 거야. 잘먹겠습니다......음, 평범하게 맛있어. 이거면 충분해."

미치코 "흥!"


미치코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미치코 "아, 맞다. 그거 알아? 홍천루가 새로운 사람을 고용했대."

안네로제 "헤에, 아이슈의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었나 보네."

미치코 "어떤 녀석일까?"

안네로제 "글쎄. 어떤 녀석이든 이 아미다하라에 어울리는 누군가겠지."


안네로제는 개의치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자아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초능력자는 이제 없다.


그리고 마을의 주민이 한 명 늘어났다.


아미다하라는 무법ㅇ 번창하는 마을.


그녀는 그 마을의 탐정이자 마녀검객.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강철의 마녀 안네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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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찍 싸버린 것 같은 스토리.

아니나 다를까 또 소노다 마사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