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계단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걸어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지, 눈이 쌓인 그곳에는 발자국 하나 없다.


하지만 이것을 다 오르면 그 끝에, 린코가 있는 산 속의 절에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추웠다.


원래 해발 고도가 높은 산인데다 진행될수록 쌓인 눈이 두꺼워지고 있다.


휘이잉 산바람도 불기 시작해 이미 체감상 한겨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키카제 "점점 추워지네. 계단도 길고."


끝없이 이어지는 눈계단에 지긋지긋해 하면서 유키카제는 말했다.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새하얗다.


헤비코 "이렇게 춥다고는 듣지 못했어!"

유키카제 "아......또 모습이 바뀌었다."


목소리가 아까와 다른 것 같아 돌아보니, 헤비코는 옛날 모습이 되어 있었다.


헤비코 "왜 이렇게 추운 거야."


헤비코는 마술사 같은 로브 앞섬을 여미고 부르르 떨며 대답한다.


유키카제 "왜 옷까지 변한 거야?"

헤비코 "그런 거니까!"


의미를 모르겠다.


분명 마술인가 뭔가겠지.


유키카제 "문어는 추운 바다에서도 괜찮지?"

헤비코 "이무기니까 약해!"

유키카제 "거기만 뱀인가......"

헤비코 "무슨 말 했어!?"


헤비코가 빤히 노려본다.


옛날과 같은 모습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먹을 뿜어낼 것 같다.


유키카제 "아, 아무 말도 안 했어! 자, 힘차게 올라가자."

헤비코 "정말──. 린코 선배,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엣취!!"


헤비코가 크게 재채기를 했다.


긴 계단을 다 올라간 끝에 있는 것은, 듣던 대로 낡아빠진 절이었다.


여기에 정말 린코가 있을까.


유키카제 "......"

헤비코 "......"


긴장하며 산문을 지나자 본당에서 한 여성이 나타났다.


린코 "......"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아마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유키카제 "린코......선배?"


도복 차림의 그 사람은 틀림없이 린코였다.


하지만 유키카제의 말은, 질문 같았다.


그 어두운 모습은 그녀가 아는 린코와 달랐기 때문이다.


린코 "유키카제, 오랜만이군."


매우 그립지만 역시 우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유키카제 "정말 린코 선배였네요. 살아있었군요, 린코 선배."


유키카제의 목소리가 떨렸다.


린코 "그래, 아직도 살아서 창피를 당하고 있지."

유키카제 "린코 선배......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다행이야......정말 다행이야......"

린코 "유키카제......"

유키카제 "린코 선배......"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헤비코 "유키카제짱, 잘됐네. 이런 추운 곳까지 온 보람이 있었구나. 린코 선배 만나서 반가워요."


헤비코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린코 "헤비코인가......? 조금 쪼그라든 것 같지만 건강해 보이는군."

헤비코 "ㄴ, 네, 좀 추워서. 저기, 모닥불이라도 피우면 안 될까요? 저, 추위에 약해서 이제 한계인지라."




헤비코 "하~~~ 드디어 따뜻해졌다."


붉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쬐며, 헤비코가 비로소 안심된 듯 말했다.


몸이 따뜻해졌기 때문에, 그 모습은 현재의 헤비코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옷도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린코 "......과연.확실히 어른이 되었구나. 묘하군."

유키카제 "린코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좀 이상하거든요, 헤비코."

헤비코 "체질이라 어쩔 수 없어. 다음에 또 이상하다고 하면 먹물 토할 거야."

유키카제 "그만둬. 린코 선배도 있는데."

헤비코 "유키카제짱에게만 뿌리니까 괜찮아. 헤비코, 옛날보다 컨트롤이 좋아졌어."

유키카제 "하는 일은 옛날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헤비코 "아─, 너무해."


린코 "후후, 옛날과 다르지 않구나, 너희들은."


린코가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놀란 듯 중얼거린다.


린코 "......나는 아직도, 이렇게 웃을 수 있었구나."

유키카제 "린코 선배......"

헤비코 "......"


두 사람은 머뭇거린다.


도대체 린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 아니 여기 온 첫 번째 목적의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계속한다.


유키카제 "......그래서요, 린코 선배, 저나 아스카가 있는 레지스탕스나 헤비코와 마리의 Bandit."

유키카제 "그 중 하나에 가담해 주었으면 해서, 린코 선배를 찾아왔어요."

린코 "......"


이번에 침묵한 것은 린코 쪽이었다.


그 검은 눈동자에 붉은 불꽃이 비치고 있다.


불꽃을 바라보는 그 표정은 어디까지나 어둡다.


유키카제 "린코 선배......"


또 무슨 말을 하려는 유키카제를 가로막듯 린코가 입을 뗐다.


린코 "너희의 활약은 알고 있다. 최근 눈부실 정도의 반전 공세도 말이야."

린코 "대마인의 힘이 되살아난 것도 너희들 덕분이라고 들었다. 훌륭하다."

린코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희들에게 힘이 될 수 없다."


린코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고 물끄러미 불꽃을 바라본 채 말했다.


유키카제 "그 왼팔 때문인가요?"


재회했을 때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던 붕대로 감긴 왼팔을 보고 말한다.


린코 "그렇다."


린코가 대답한 순간, 어깨에서 축 처진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왼팔이 갑자기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린코 "크으으!!"


린코는 날뛰는 왼팔을 손으로 억누르지만, 왼팔은 린코에 맞서듯 격렬하게 몸부림친다.


유키카제 "린코 선배! 그 팔......!?"

헤비코 "멋대로 움직인다? 아니, 안에 뭐가 있어? 린코 선배?"


왼팔에서 발해지는 흉악한 요기, 아니 살기를 느끼며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


린코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너희들에게 반응하여 날뛰기 시작한 것 같다."

유키카제 "브레인 플레이어에게 무슨 짓을 당한 거군요!"

린코 "눈치가 빠르군. 맞아. 이 왼팔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살의의 덩어리지......크윽!!"


살의의 덩어리라는 왼팔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려는 린코에게 유키카제는 연달아 말했다.


유키카제 "저희 아지트로 오세요! 분명 아스카라면!"

유키카제 "아스카는 굉장해요. 과거로도 갈 수 있었어요!

유키카제 "아스카라면 분명 린코 선배를 고칠 수 있어요!"

헤비코 "헤비코도 그렇게 생각해요! 린코 선배, 혼자 무리하지 마세요!"


그러나 린코는 괴로운 표정인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린코 "고맙다, 유키카제, 헤비코. 하지만 이건 내 싸움이야."

린코 "나는 이 왼팔을, 내가 만들어낸 살의를 이겨내야 한다."

린코 "아니면 사람으로서, 대마인으로서, 그리고 검사로서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린코는 단호하게 말한다.


유키카제가 잘 아는 곧은 눈으로.


유키카제 "린코 선배......"

린코 "이 시련을 이겨내고, 나는 반드시 너희들의 싸움에 참여할 거다."

린코 "조금만 더 나를 기다려줘. 부탁하마, 유키카제, 헤비코."

유키카제 "알겠습니다, 린코 선배.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헤비코 "유키카제짱!?"


헤비코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유키카제를 보았다.


유키카제 "린코 선배의 싸움을 방해해서는 안돼. 괜찮아, 린코 선배는 최강의 대마인 검사니까. 반드시 이겨서, 우리에게 와줄 거야."

헤비코 "......으, 응. 유키카제짱이 그렇게 말한다면......"

린코 "감사하마. 그리고 미안하지만 빨리 가줘. 너희의 강함에 왼팔이 튕겨날아갈 것 같다."


왼팔의 떨림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저 왼팔은 정말로 유키카제와 헤비코에게 반응하고 있다.


린코 "크으윽!!"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린코를 괴롭힐 뿐이다.


유키카제 "린코 선배, 그럼 나중에 또!"

헤비코 "린코 선배, 힘내세요!!"


두 사람은 떠났다.


린코 "린코 선배인가......그렇다면 선배다운 면모를 보여줘야지."


린코는 거칠게 날뛰는 왼팔을, 곧 자신의 적을 응시한다.


그날부터 시작된 살의와의 싸움.


그리고 오늘에야말로 결착을 낸다.


그날, 대마인 검사로서의 린코는 한 번 죽은 것이다.


왼팔의 살의에 굴복했을 때.


무고한 사람의 생명으로 칼날을 피로 물들였을 때.


하지만 린코는 살아남고 말았다.


그리고 자포자기하여, 정처없이 황야를 방황해, 수없이 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자신을 벌주기 위한 싸움 끝에 이번에야말로 정말 죽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몸이 너덜너덜한 상태로 모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린코 "......나는 또 죽지 못했나."

기가스 "아쉽게도 아직 이승이다. 그리고 여기는 내 방이지."


이형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린코 "당신은?"

기가스 "기가스. 바로네스 시티의 시장 같은 거다."

린코 "도움을 받아 미안하다. 나는 이제 괜찮다."


린코는 일어섰지만,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발이 엉켜 바닥에 쓰러져 버린다.


기가스 "무리하게 움직이면 죽는다. 레이더들에게 잔뜩 시달렸겠지."

린코 "충고는 감사하지만, 나를 숨기면 불행해진다. 부디 지나가게 해다오."


린코는 온몸의 극심한 통증을 참고 기어가듯 다시 걷기 시작한다.


기가스 "그 왼팔, '살의'가 폭주할까 두려운가?"


린코는 벼락을 맞은 듯 기가스를 돌아보았다.


린코 "아는 건가!?"

기가스 "다곤 놈한테 잔뜩 시달린 모양이군. 왼팔이 괴물처럼 변하고 있다. 아주 위험한 금술이야."

린코 "그래. 난 이제 살인귀다."

기가스 "나한텐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 그런 짓을 했나?"

린코 "읏!"


린코는 이를 악물다.

입안을 깨물어 쓴 쇠맛이 퍼졌다.


기가스 "나는 참살 시체의 산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너를 구했다."

기가스 "그 빚을 갚으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도는 말해줘도 될 것 같은데."

린코 "......그걸 한 건 나다."

기가스 "호오."

린코 "나는 다곤에게 사로잡혀, 당신 말대로 몸과 머리를 희롱당했으나, 마지막 힘을 짜내 탈출했다."

린코 "그리고 며칠 동안 황야를 헤매고 죽어 가던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그 마을 사람들이다."

기가스 "그 은인들을 죽였다고?"

린코 "그래! 내가 죽였다! 내가 이 손으로 죽인 거야!"


린코는 왼팔을 내려다보며 피를 토하듯 말했다.


린코 "어느 날 밤의 일이다. 갑자기, 이 왼팔에서 살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린코 "나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고, 아니, 그렇지 않아──그 살의에 삼켜져,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린코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나를 괴물 보는 듯한 눈으로 응시하는 사람들과 피로 물든 칼 뿐이다."

린코 "나는 왼팔의 살의에 지배당해, 생명의 은인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린코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황야를 방황하며 차례로 나타나는 적을 마냥 베었던 것 같다."

기가스 "황야에 나타나는 귀신의 소문은 들어본 적이 있다. 과연, 너였나."

린코 "귀신......인가. 예전에는 그 이름을 자랑했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것을 자칭할 자격이 없어."

린코 "도와준 것은 감사한다. 그렇기에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다. 이제 나한테 신경쓰지 말아줘."


린코는 언제 다시 폭주할지 모르는 왼팔을 누르면서 다리를 절며 그곳을 떠나려 했다.


기가스 "그 살의, 제어하고 싶지는 않나?"

린코 "뭐!?"


린코는 튕긴 듯이 돌아본다.


기가스 "그 왼팔, 나도 관심이 생겨, 정신을 잃은 동안 조사를 해봤지."

기가스 "다곤의 금술을 치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어하는 것은 가능하다."

린코한 "ㅈ, 정말인가!? 정말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매달리듯 린코는 묻는다.


기가스 "시도해 볼 텐가?"

린코 "그리하여 이것을 제어할 수 있다면."

기가스 "좋지. 다만, 미리 말해두마. 넌 지옥을 보게 될 거야."

기가스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난으로 가득하다. 여러 번 죽음을 겪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기가스 "솔직히, 인간의 정신으로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데도?"


린코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린코 "나는 은인들을 죽인 이후, 그저 죽음만을 바래왔다."

린코 "만약 내가 그 죗값을 치른다면, 그 지옥을 극복하는 것 밖에 없어."

기가스 "벌인가? 뭐, 동기는 어쨌든 간에 좋은 각오로군. 다만 조건이 있다."

린코 "말해다오."

기가스 "이 내가 주는 일을 맡는 거야."

린코 "알았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린코에게, 기가스는 과연 의외라는 듯이,


기가스 "일의 내용은 듣지 않나?"

린코 "당신은 나를 아는 것 같더군. 그렇다면 일의 내용도 가리겠지."


기가스는 크게 웃는다.


기가스 "하하하! 재밌군. 하지만 정답이야. 장사의 기본은 적재적소라서 말이야."

기가스 "그럼 치료의 설명이다. 나는 이제부터 너에게 마술을 걸 거야. 너는 밤마다 스스로의 살의와 싸우게 된다."

기가스 "패배는 물론 잔혹한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은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가스 "살의에 승리할 때까지, 여러 차례 죽음이 엄습할 테지."

린코 "내 살의와 싸우는가. 바라던 바다."

기가스 "마지막 충고다. 승리는 하나의 방법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기가스 "그걸 잘 생각해두는 게 좋아. 준비는 됐나?"

린코 "얼마든지."


기가스는 영창을 시작한다.


린코 주위에 수많은 마법진이 떠오른다.


그에 반응하듯 왼팔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날 밤부터 시작된 것이다.


자신의 살의와의, 살육의 검귀와의 싸움이.




린코 "크으읏......이 노옴!"


왼팔이 떠난 유키카제와 헤비코를 쫓으려 하고 있다.


거기서 쏟아지는 살의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강자인 두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린코 "네놈들......!"


그 흉악한 살의에 호응하여 밤이 되어야 나오는 이매망량이 벌써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린코 "유키카제와 헤비코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해주마!"


린코의 모습 또한 변해간다.


살의에 홀린 모습으로.


귀신 린코──그렇게 부를 만한 모습으로.


***


이매망량

「グガアアアアアアアアアッ!!」

「ぎゃああああああああああっ!!」

「アギィイイイイイイイイッ!!」


이매망량가 덮쳐온다.


린코가 죽인 자들의 원한이 그 억울함을, 증오를 부딪쳐 온다.


자신들을 이런 꼴로 만든 린코를 지옥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린코 "지금은 너희들에게 죽어줄 수는 없다! 원망이라면 지옥에서 듣겠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


린코는 오른손의 이시키리카네미츠를 일섬했다.


서거어어어어억!


문자 그대로 두 번 살해당한 듯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이매망량이 흩어진다.


린코 "젠장!! 어떻게 된 거냐, 난!"


하지만 린코의 입에서 나온 것은 자신에 대한 매도였다.


유키카제, 헤비코와 재회해, 후배 2명에게 격려를 받아, 스스로가 봐도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한 일격.


하지만 실제로 움직임은 부족하고, 칼날은 흐트러져 있다.


마치 린코를 비웃기라도 하듯 왼팔의 폭주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네 본성이다ㅡ라 말하고 싶은 듯 흉악한 살의를 퍼뜨리고 있다.


린코 "누가 네놈 따위에게 굴복할까 보냐!! 이 살의, 반드시 굴복시켜주겠다!! 데야아아아아아아아아!!"


린코는 날뛰는 왼팔을 억누르고 점점 흐트러져가는 검을 비틀어, 악령을 마구 베었다.


린코 "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자아 오너라, 살육의 검귀!"


거친 호흡을 반복하는 그녀 앞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살육의 검귀가 나타났다.


살육의 검귀 "......"


아니, 평소와 다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번의 싸움에서 인형처럼 무표정했던 적이 웃고 있다.


린코 "뭘 웃고 있는 거지? 뭐가 이상하단 거냐?"

살육의 검귀 "......"


젊었을 적의 그녀와 꼭 닮은 녀석은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듯, 더욱 입술 끝을 일그러뜨리며 히죽 웃었다.


린코 "그 둘을 죽이겠다는 건가!"

린코 "그렇게는 안 놔둔다!"

살육의 검귀 "......"


그렇다면 덤비라고, 살육의 검귀는 피로 물든 이시키리카네미츠를 쥔다.


린코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린코는 혼신의 힘으로 검을 내리쳤다.


살육의 검귀 "......"


살육의 검귀가 칼을 맞댄다.


키이이이이이이잉!!


두 개의 이시키리카네미츠가 격렬하게 부딪친다.


처음은 호각의 일격.


아니, 적이 자세가 무너진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린코 "공둔의 술!!"


린코는 적의 배후로 도약해,


린코 "일도류, 호접난무!"


방어불능의 공간도약의 거품을 두른 이시키리카네미츠를 일섬.


하지만──.


살육의 검귀 "......."


필살의 공둔의 칼날은 붉은 이시키리카네미츠로 받아내진다.


린코 "그런......!?"


촤아아아아아악!


린코 "크하아아아앗!!"


살육의 검귀의 칼날이 린코를 몸통을 베고 있었다.


하체를 남겨둔 채, 린코의 상반신이 땅에 무너져 내렸다.


린코 "아직......안 되나......"


의식이 급속히 희미해져 가다.


곧 수백 번째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두 사람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아직 먼 것 같다.


살육의 검귀 "......"


죽음을 기다리는 린코를 내려다보며 살육의 검귀는 히죽 웃더니, 두 사람이 떠난 계단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린코 "뭐......라고......"


나를 죽였는데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로 두 사람을 죽이러 갈 작정인가!?


아니면 이건 죽음 직전의 환각인가!?


이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린코 "......놔둘까 보냐!!!"


단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린코 "절대 죽이게 놔두지 않는다......!"

린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순간 기가스가 하던 말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기가스 『마지막 충고다. 승리는 하나의 방법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린코 "핫!!!"


린코는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많은 목숨을 앗아간 왼팔을.


린코를 계속해서 괴롭혀 온 왼팔을.


그리고 지금도 살의가 넘쳐흐르는 왼팔을.


린코 "이길 수 없다면 진다. 한 몸이 되어, 귀신에게 지고 이긴다."

린코 "오늘부터 나는 귀신이다! 귀신 린코다!!"


왼팔에서 붉은 장기(瘴気)가 뿜어져 나왔다.


귀신의 살의를 받아들인 린코에게 환희의 포효를 내지르는 듯하다.


어느새 절단됐어야 할 몸이 제자리로 돌아가 있다.


그마저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린코는 일어섰다.


귀신의 왼팔로 이시키리카네미츠를 손에 들고.


살육의 검귀 "───!!"


살육의 검귀가 린코를 돌아보고 붉은 이시키리카네미츠로 다시 베어왔다.


린코 "......"


붉은 살의가 보이다.


린코를 죽이려는 적의 의사가.


마치 거울에 비춰지듯.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저것은 린코가 만들어낸 살의의 그림자다.


계속 거부해 온 린코한 마음의 일부이다.


린코 "귀신일도류·무참검."


무참(無惨).


본래 그것은 죄를 지으면서도 스스로를 반성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린코는 그 마음으로, 세련된 살의로 왼팔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살육의 검귀의 붉은 살의를 피해, 선명하게 떠오른 급소를 양단했다.


그것은 참으로 무참한 참격이다.


살육의 검귀 "──."


살육의 검귀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붉은 입자가 되어 흩어진다.


그리고 돌아갈 곳을 찾은 듯, 모두 왼팔로 흡수되어 갔다.


린코 "......"


날이 밝았다.


아침 햇살 속에 눈이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린코는 귀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직도 희미하게 맥박치고 있다.


무찌르는 것도, 굴복시키는 것도 아닌, 스스로의 일부로 받아들인 살의가.


린코 "유키카제, 기다려다오."


린코는 눈 내리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한 걸음이다.


이 살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


아니, 아무리 수행을 거듭해도 완전히 공생하는 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피투성이의 싸움 끝에, 언젠가는 오니가 되어 죽을 운명.


오늘부터 수라


이 앞에 기다리는 것은 지옥.


하지만 상관없겠지.


그것이 귀신 린코가 선택한 새로운 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