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단한 게 나왔네요."

마야 "저건 육군에서 정식 채용한 '더마'에요. 설마 저런 것까지 준비해 왔을 줄이야."


더마라는 이름처럼 둥글둥글한 파워드 슈트.

전체 길이는 3미터 정도. 자객을 살해한 것은 오른팔의 기총일 것이다.

왼쪽 팔에는 칼날이 돋아났고 등에는 런처까지 달려 있다.


역시 SF세계답게 현실의 미연 파워드 슈트보다 세련된 디자인이다.


놈은 숨어있는 우리를 바로 찾으려 하지 않고 쓰러진 자객이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분명 처음부터 그 자객들과 함께 우리를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 "이걸로 지원을 부탁해요. 저는 어떻게든 시간을 좀 벌어보겠습니다."


나는 앨리시아에게 받은 비상용 통신기를 건넸다.


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요. 아무리 당신이라해도 살아있는 몸이라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잖아요."

나 "그렇지도 않아요. 저런 걸 상대하는 건 처음도 아니고요."

마야 "설마 정말로?"

나 "그런 게 대마인입니다. 그 망토랑 레이저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마야 "어떻게 하려고요? 이 망토로는 더마의 기총은 막을 수 없고 레이저건도 통하지 않아요."


그러면서ㄷ 마야는 재빨리 망토를 떼어 레이저건과 함께 내게 건네주었다.


나 "어떤 도구든 써먹기 나름."

나 "적이 이곳으로 저희를 끌어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려줄게요."

나 "여기 숨어 계세요. 제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오지 마시길."

마야 "후마......"


마야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마치 가지 말라는 것 같았다.


더마 "──."


자객들의 사망 확인이 끝났을 것이다.

더마가 머리를 이쪽으로 돌려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나 "무차별적으로 쏴제끼면 귀찮아지니, 갈게요."


나는 마야의 손을 조용히 놓았다.


마야 "......부탁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야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후, 적 앞에 섰다.


나 "이쪽이다!"

더마 "──."


더마의 눈이 번쩍 빛났다.


더마가 나에게 휙 몸을 돌렸다.

우선 나를 처치하기로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 크기나 아까 기총의 위력으로 볼때, 대인용 파워드 슈트일 것이다.

유키카제나 린코 선배라면 파워드 슈트든 뭐든 인법으로 일격이겠지만 나에게 그런 힘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장소에서라면 방법이 있다.


나 "자, 이쪽이라고!!"


나는 마야에게 빌린 망토를 일부러 요란하게 펄럭이며 달렸다.

공주님의 소지품답게 보라색으로, 불빛이 떨어진 지금도 잘 보이는 망토다.


더마 "──."


더마가 기총을 이쪽으로 돌렸다.

온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휙 망토를 뒤집어, 그때까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크게 뛰었다.

안감은 짙은 갈색. 어둠 속에서는 판별하기 어렵다.


적은 틀림없이 눈에 띄는 망토를 표적으로 나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면──.


카가가가가가가!!

기총이 발사되었지만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나 "인법으로 정말 사라진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데."


이런 SF세계에 와서도 인법을 쓸 줄 모르는 자신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불규칙한 스텝으로 움직여, 망토를 밖으로 드러내거나 뒤로 젖혀 적의 탄 낭비를 유도한다.


더마 "──."


카가가가가가가!!


상대가 AI 제어의 로봇이라면 이렇게도 잘 되지 않는다.

안에 살아있는 인간이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마야 "굉장해......저걸 위해 망토를......"


물론, 그런 눈속임만으로 언제까지나 총격을 계속 피할 수는 없다.

제대로 다음 장치도 준비하고 있다.


나 "슬슬 가볼까."


삐걱......삐거덕......


더마 "!?"


부산하게 움직이는 나를 쫓던 더마의 움직임이 갑자기 둔해졌다.


마야 "와이어!?"


어둠 속에서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숨어 있으라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군.

아니, 잠자코 있으라 하지는 않았나?


아무튼 그래, 와이어다.


여기는 공사 현장.

와이어는 얼마든지 굴러다닌다.


모처럼 적이 주위를 어둡게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도망다니면서 주운 그것을 적에게 얽어놓았던 것이다.


더마 "!!!!"


안쪽의 조종사는 초조해진 탓인지 와이어를 칼로 억지로 끊으려 한다.

그대로 놔둘까 보냐!


나 "이걸로 끝이다!"


피융피융피융!!


나는 마야에게 빌린 레이저건을 마구 쏘았다.

목적은 더마가 아닌, 공사현장에 쌓여있는 자재들.

놈을 향해 떨어지도록 철골이든 뭐든 레이저로 파괴한다.


더마 "!!!!"


적도 내 의도를 눈치챈 것 같지만 늦었다.

자재 더미가 요란하게 무너져 내려와 더마는 생매장되었다.


나 "......"


묻힌 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해치웠나?


아니!


마야 "후마! 굉장해!! 당신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믿을 수 없어요!"

나 "마야, 안돼! 나오지 마!!"

마야 "엣!?"

더마 "!!!!"


더마가 철골을 튕겨냈다.


삐걱...삐그덕...삐걱...


더마의 움직임이 몹시 어색하다.

장갑 곳곳이 찌그러졌고 관절부에서는 오일이 새어 나오고 있다.


상당한 데미지는 입힌 것 같지만, 완전하게 쓰러뜨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안에 있는 놈은 살아있다.


나 "빌어먹을!"

더마 "──."


더마는 삐걱거리는 동작으로 기총을 내게 겨누었다.

이렇게 되면 접근해서 찌그러진 장갑 틈새로라도 레이저나 칼을 비틀어 넣는 수 밖에 없다.


마야 "그만하세요!!"


늠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야다.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스스로 나왔다.

그녀의 누이, 앨리시아가 만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만큼이나 당당한 몸짓으로.


마야 "당신은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거겠죠. 그러면 하세요. 그 자를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나 "그만둬, 마야!!"

마야 "......"


마야는 듣지 않았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로 군주로서의 위엄을 지키며 적을 똑바로 노려본다.


마야 "더마를 타고 있는 당신. 얼굴을 보여주세요."

마야 "마야 코델리아를 쓰러뜨릴 자가 누군지 알아두고 싶어요."

마야 "얼굴을 보여줄 용기도 없다면 상관없지만."

마야 "누가 시켰는지 모르겠으나, 얼굴 없는 자객으로서, 하나의 도구처럼 그 역할을 다하시길."

더마 "──."


공주의 표본과 같은 고상한 말에 더마의 페이스 가드가 삐걱거리며 열린다.

나는 마야 곁으로 달려갔다.


나 "마야! 어째서 이런 짓을!?"

마야 "물론 상대방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죠."

나 "네?"

마야 "당신이 나한테 한 말이에요. 상대편 의도대로 움직이라고."


마야는 히죽 웃었다.


마야 "왔어요."


카앙!!


나 "왓!!"


새된 소리.

무언가가 상공에서 다가온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쿠과앙!!



묵직한 소리를 울리며 우리와 더마 사이에 거인이 내려왔다.

더마보다 더 크고 날렵해 보이는 기체.


우주에서 코델리아의 지위를 단번에 끌어올린 병기.


나 "장갑기......"

더마 "젠장!!!"


카가가가가가가가!!

캉캉캉캉!!


더마의 조종사가 기총을 허겁지겁 쏘지만 장갑기의 우라노스 합금장갑에 시원하게 튕겨나간다.


나 "이건?"

마야 "지원입니다."

나 "이런 걸 불렀어요!?"

마야 "안 되나요? 자, 타요. 후마!"

나 "네, 넷."


마야는 조종석으로 나를 부르며 앉는다.


더마 "빌어먹을!!"


더마의 조종사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판단하고 도망치려 하고 있다.


마야 "설마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요?"


마야가 말했다.

등골이 얼어붙는 듯한 무서운 미소를 짓고 있다.


마야 "......"


마야는 냉정하게 조준해 라이플을 한 방 날렸다.


투콰──앙!!


우주전함의 주포에 필적하는 레이저포를 맞고 더마는 순식간에 침묵했다.



나 "가차없네요."

마야 "시시한 미학에 매달리다간 소중한 부하가 죽게 되는걸요. 그렇죠?"

마야 "게다가 죽이지 않았어요. 출력은 최소로 했습니다. 주모자를 제대로 실토하게 해야죠."

나 "그렇군요."


삐삐삐♪


마야 "어머, 누굴까?"


통신기가 울리고 있다. 마야는 스위치를 켰다.


앨리시아 『마야! 무사하니! 대답해, 마야!!』

남자의 목소리 『공주님!!! 지금, 저희가 갑니다!!』

남자의 목소리 『공주니임!!』

나 "뭔가 굉장한 부대가 온 것 같은데요"


앨리시아를 필두로 대량의 장갑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레이더에 잡혔다.


마야 "언니에 네오스 장군까지. 도대체 무엇과 싸울 생각인 거람?"


마야는 어이없다는 듯 통신을 끊었다.


나 "괜찮아요?"

마야 "뭐, 상관없지?"


마야는 새침하게 말하며 다시금 나를 돌아봤어.


마야 "그런 것보다 후마, 당신 아까 저한테 반말했죠? 그것도 세 번이나."

나 "아, 그건 순간적인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마야 "안 돼요.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마야 "나를 지키기 위해 싸워준 것에 대해 감사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

마야 "당신에겐 벌을 주겠어요. 눈을 감아요."

나 "에......?"

마야 "눈 감으라니까요. 주인인 제가 하는 말이에요. 빨리요!"


마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세히 보면 볼도 붉어져 있다.


나 "네, 네......"


이건 혹시 상으로 주는 키스인가!?

나는 두근두근 하면서 눈을 감는다.


마야 "고마워, 나의 기사(나이트)."


쪼옥.

공주님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는 것을 느끼는 순간──.





유키카제 "후우마! 잠깐 후마!"


나는 몸이 흔들흔들 하고 있었다.


나 "으으으......"


눈을 뜨니 유키카제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유키카제 "앗! 눈 떴다. 아사기 선생님! 후마가 일어났어요! 너, 괜찮아?"

나 "뭐, 뭐가......?"

유키카제 "뭐가가 아니야!"

유키카제 "이 멍청한 시뮬레이터는 작동도 안 하고, 넌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고, 걱정했다구."

나 "......"


나는 현실세계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시뮬레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니!?


아사기 "후마, 미안하구나."

나 "아사기 선생님......도대체 뭐가......?"

아사기 "사실 원인불명의 에러가 일어나서 시뮬레이터는 작동하지 않았어."

나 "에......!?"


유키카제 "정말로 움직이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후마는 의식을 잃었고, 지금까지 잠에서 깨지도 않고."

유키카제 "정말 이 시트를 때려 부술까도 생각했어."

아사기 "그건 내가 말렸는데. 후마군, 몸에 이상은 없니?"

나 "네, 괜찮아요. 제가 얼마나 잤나요?"

아사기 "한 시간 정도야."

나 "단 한 시간......"

아사기 "뇌파의 데이터를 보니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한 게 있으면 말하렴."

나 "알겠습니다."


나는 시트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 "아사기 선생님, 준비된 시뮬레이터 프로그램은 어떤 거였어요?"

아사기 "옛날에 내가 맡았던 임무야. 왜 그래?"

나 "아뇨, 신경 쓰여서요."

유키카제 "으음, 이제 이 음울한 코드 좀 떼 버려. 봐봐, 도와줄게."

나 "아, 땡큐......"


그럼 아까까지의 체험은 뭐였지?


머나먼 미래, 코델리아의 세계.

마야와 앨리시아, 두 명의 공주.

여러가지 사건


그건 전부 꿈이었나!?

도저히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밖에 안 잤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쪽 세계에서 며칠을 지낸 감이 있다.

그것도 꿈처럼 모호한 데가 없는 사실적인 체험이었다.


무엇보다 입술에는 키스 받을 때의 감촉이 뚜렷이 남아 있다.


유키카제 "후마, 입술 만지는데, 뭔가 있어?"

나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좋은 장면이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그 뒤가 어떻게 되었는지, 조금만 더 알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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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조금 허무.


재회했을 때 마야는 보건에게 따먹힌 뒤일 것인가, 그 전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