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사 (그날은 지금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아즈사 (내 세상이 조금이지만 열린 날.)


카에데 "호흡을 가다듬고 자아의 경계를 느껴보렴."

카에데 "온몸의 기운의 흐름을 파악하면......그래, 자아의 경계 밖으로 풀어내는 거야."

카에데 "그리고 다시 집중. 이마에 눈이 있는 게 느껴지지? 자, 눈꺼풀을 뜨는 이미지로."


아즈사 (나는 이마에 그리던 눈꺼풀을 떴다.)

아즈사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다.)

아즈사 (어둠만의 세계에서 느낀 최초의 빛.)

아즈사 (작디 작은 빛.)



아즈사 "보여요! 카에데 님의 모습이!!!"


아즈사 (하지만 그건 일순간.)

아즈사 (희미한 빛은 곧 사라지고 내 세계는 다시 어둠으로 뒤덮였다.)

아즈사 (아련하고 옅은, 그래도 따뜻한 그 사람의 모습을 뇌리에 확실히 남기고.)


카에데 "심안을 떴구나. 단련을 거듭하면 더 길고 또렷하게 보일 거야."

카에데 "극에 이르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거고. 자, 훈련을 계속하자."

아즈사 "네!"


아즈사 (만약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아즈사 (희망이 넘쳐 흐르던 그날로.)

아즈사 (그 사람을 처음 본 그날로.)

아즈사 (하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아.)

아즈사 (신도 악마도 그 누구도 나를 그날로 돌려보낼 수 없어.)

아즈사 (그러니 이건 꿈.)

아즈사 (인간이기를 포기한 나에게 남아있는 희미한 행복의 기억.)

아즈사 (그래 이건 꿈이야)

아즈사 (어디까지나 행복하고 슬픈 꿈)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 푸른 바다가.


아즈사의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다.


여기는 작은 어선 위다.


선잠을 잔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떠, 눈꺼풀 또한 열렸다.


마치 평범한 사람 같다.


바깥 경치도 또렷하게 잘 보인다.


하지만 그 잘 보이는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 사람의 꿈을 꾸었는데.


이렇게나 슬픈데.


당연한 일이다.


눈구멍에 딱 맞는 이것은 기계의 눈이다.


기계생명체의 차가운 눈이다.


그 사람이 뜨게 한 심안


그걸로 보던 그 밝은 세상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부터 줄곧, 아즈사의 세계는 그 빛을 잃고 있었다.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싫을 정도로 선명하게.


아즈사는 기계의 눈을 감았다.


선장 "댁, 일어났나? 이제 곧 섬에 도착할 거야."


아즈사를 여기까지 실어준 어선의 선장이 그렇게 말을 걸었다.


아즈사 "......"


아즈사는 섬에 내렸다.


유조선을 습격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어선을 전세내 여기까지 온 것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섬이다.


관광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군사적 거점인 것도 아니다.


예로부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지루하지만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섬이다.


섬에 남은 전설로는, 이곳은 고사기에도 등장하는 신성한 섬 중 하나로, 이시코리도메노 미코토(石凝姥命)가 강림했다고 한다.


이시코리도메노 미코토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가 아마노이와토에 숨었을 때 거울을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신이지만, 그런 전설이 있는 섬은 드물지도 않고 전승의 근거로 여겨졌던 고문서도 이곳을 방문한 역사학자들에 의해 후세의 위서라고 판정되었다.


하지만 섬의 노인도, 그 역사학자도 모르는 또 다른 사실이 있었다.


전설보다 더 오래된 시대, 태고의 옛 기록인 신대사(神代史)에는 섬의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음을.


즉 마루자나노 미코토(丸蛇奈命)가 강림한 섬이라고.


아즈사 "......"


아즈사는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 앞에 이시코리도메노 미코토의 신사가 있다.


즉, 마루자나노 미코토, 브레인플레이어의 전 여왕 모르지아나를 섬기는 장소다.


섬 주민들이 찾아오지도 않는지 산길은 꽤 거칠었다.


오르기 시작한 지 몇 시간, 아직 누구와도 엇갈리지 않았다.


산의 공기는 맑았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새소리 등도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을 기분 좋게 느끼는 마음은 신기할 정도로 솟아오르지 않는다.


아즈사 "머리로는 이것이 기분 좋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것도 이런 몸이 된 영향인가."


브레인플레이어의 오래된 유적에 의해 스스로 기계생명체가 된 몸이다.


그리고 예전과 달라져 버린 자신을 슬프게 생각할 일도 이제 없었다.


아즈사 "......"


산길의 경사가 완만해진 부근에서 아즈사는 멈칫했다.


풍요로운 자연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싸움이 시작되려는 고양감이다.


쓰러뜨려야 할 적이 가까이 있다.


아즈사 "후후......"


너희들은 알고 있어.


그런 의미를 담아 아즈사는 발도했다.


적은 그래도 나오지 않는다.


먼저 나서도 오지 않는다.


아즈사 "......!"


하는 수 없이 아즈사는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찔렀다.


적병 "헉!!"


광학위장으로 숨어있던 적을 꿰뚫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면서 무너져 내린다.


아즈사 "이 나에게 광학위장 따위는 무의미해."


아즈사의 정체 따위는 모르겠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알겠지.


아즈사 "그렇게 자취를 감춘 채로는 너희들끼리의 연계가 더 어렵겠지?"


그렇게까지 말하면 과연 단념했는지 적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 찔린 것과 똑같은 G 솔저. 유조선 호위에도 있던 사이보그.


역시 특무기관 G의 병사들이다.


아즈사 "그걸로 됐어. 제대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후에 죽어라."


아즈사는 웃었다.


기계생명체답지 않은 인간적 복수심을 드러낸 미소였다.



***



센자키에서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의 싸움도 일방적인 것이었다.


상대는 열심히 총을 쏘지만, 그 총알이 아즈사에 맞는 일은 결코 없다.


산의 고요를 헛되이 휘젓을 뿐이다.


아즈사 "후후......"


적병

"크악!!"

"가악!!"


아즈사 "후후후후......"


상대도 안 되는 적.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이다.


죽일 수 있는 상대다.


적병

"크윽!!"

"흐느적흐느적 거리는 게!!"

"총알이 안 맞아!!"


아즈사 "특무기관 G의 병사는 질이 낮네. 고작 이 정도로 대마인이나 노마드를 상대하려 생각했나."

아즈사 "더 분발해 주지 않으면 나도 보람이 없어."


아즈사는 적을 찔러 죽이면서 저도 모르게 그런 감상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적병

"뭐라고!?"

"네년! ㄷ, 대체 누구냐!"


아즈사 "너희를 몰살시키기 위해 인간이기를 그만둔 여자야."


아즈사는 그렇게 가르쳐 주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적이 죽어 있었다.


아즈사 "이 녀석들은 그저 유적을 호위하고 있었을 뿐인가. 여기서 나를 만난 것이, 아니 특무기관 G에 소속된 것이 나빴던 거야."


순식간에 모두를 죽이고, 아즈사는 허전한 기분으로 앞섰다.


이윽고 산길은 낡고 작은 신사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아까 쓰러뜨린 특무기관 G의 병사들이 야영하던 천막이 경내에 있었다.


그들도 이곳을 거점으로, 이 섬 어딘가에 있는 브레인플레이어의 유적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즈사 "아무것도 아닌 신사지만......"


아즈사는 기계생명체의 눈을 떴다.


무기질 눈동자가 금방 그것을 발견한다.


아즈사 "역시 있었군. 놈들의 차폐장치가."


차원침략자 브레인플레이어의 장기인 공간을 왜곡해 존재를 숨기는 차폐 장치이다.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초기술의 산물로, 기존의 모든 센서를 사용해도 그것을 해제하기는 커녕 차폐장치를 찾을 수조차 없다.


물론 남겨진 놈들의 기술로 기계생명체가 된 아즈사는 별개다.


해제하려는 순간, 그녀의 몸에 갖춰된 기능이 저절로 해제 코드를 말하고 있었다.


아즈사 「×@■@★*%△」


──부웅.


눈 앞의 공간이 흔들리더니 숨겨져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로 만들어진, 제법 큰 유적이다.


그것이 주변의 숲에 묻혀 있다.


특무기관 G의 탐사장치를 아무리 구사해도 이를 찾지 못한 것은 예상대로 브레인플레이어의 차폐장치 때문이었다.


아즈사 "꽤 오래되었네. 수천 년은 족히 지났겠어."


아즈사는 기계의 눈을 뜬 채 중얼거리고 발견한 유적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브레인플레이어는 어째선지 지하를 좋아한다. 어딘가에 지하로의 입구가 있을 테지.


지하 신전으로 통하는 아치.


그렇게 칭하기에 적합한, 척 봐도 알기 쉬운 입구를 아즈사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즈사 "틀림없어. 여기가 마루자나노 미코토, 브레인플레이어의 전 여왕의 유적이야."


아즈사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