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


그곳은 인간계와 인접한, "마계의 문"이라는 게이트로 연결된 이세계이다.


그곳에서 오크와 수인, 흡혈귀 등 다양한 마족이 살고 있다.


그런 마계는 현재 '9귀족'이라 불리는 상급 마족들이 은밀히 세력을 다투는 군웅할거 상태다.


홍혈경, 환몽경, 현명경, 재상경, 암살경......


이들은 모두 막강한 힘을 지녔으며, "마왕"의 부재로 혼란스러운 마계를 과두제로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런 9귀족들의 위태로운 균형이 크게 변동되려 하고 있었다.


빙설이 휘몰아치는 북쪽 땅에 휘몰아치는 마물들의 포효가 요란했다.


마물들 "크아아아악!!!"

은랑수인 "큿!? 겁먹지 마, 밀어붙여!"


마물의 군세를 상대하고 있는 것은, 이 땅을 세력권으로 하고 있는 은랑수인銀狼獣人의 일족.


마계 북부 변방은 거의 1년 내내 모든 것이 빙설에 갇혀 있는 가혹한 환경이다.


하지만 은랑수인은 두꺼운 모피와 굴강한 육체를 지녀 이 가혹한 땅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서리의 오니신" 일족과 함께 마계 북부 변경 일대를 자기들의 땅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군을 끌고 온 자가 있었던 것이다.


은랑수인 "이클린가스의 쓰레기 자식!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자였는가!"


방어전을 거듭하면서 한 수인이 이를 갈며 신음한다.



이클린가스 변경백.


그것이 은랑수인들의 영토를 침공해 온 자의 이름이다.


이클린가스 변경백은 사령경 테우타테스를 섬기는 노장老将이다.


사령경의 본토에서 조금 먼 북방 영토의 영주


일찍이 마계 북방을 다스리는 "염무경炎武卿" 헬리오가발스・가프를 섬겼으나, 그 가프가 암살로 목숨을 잃고, 방랑기사 테우타테스의 거병으로 가프 가문이 멸망하자, 가프 가문의 고관이엇던 이클린가스 변경백은 테우타테스에게 복종, 그것을 계기로 수많은 북방 제후들이 테우타테스를 따랐다.


온갖 장갑을 녹여 관통하는 불의 활의 명수이자, 북방의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수많은 무공을 거둔 역전의 명장이다.


그런 이클린가스가 갑자기 다수의 마물을 이끌고 은랑수인의 땅을 침공해 온 것이다.


은랑수인1 "큭!? 이 괴물들, 수가 너무 많아!"

은랑수인2 "하지만, 어차피 사령경의 개, 두려워 할 상대는 아니다! 오오오옷!!"


포효를 내지르는 은랑수인들이 마물들을 상대로 분투한다.


그들이 이클린가스의 대군세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터 그의 움직임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은랑수인 일족은 예로부터 마계 북부 변방에서 독립을 관철하는 세력이다.


흡혈귀의 왕인 마계 북부의 대영주, 홍혈경과는 타협이 되지 않아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클린가스와 가까운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이클린가스와 동맹관계를 맺기도 했으나, 현재 사령경의 신하가 된 이후의 그를 특히 경계하고 있었다.


사령경은 홍혈경의 신병과 영토를 노려, 북부 변경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을 경계해 왔기에 은랑수인들은 몇 배에 달하는 이클린가스의 대군세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그럼에도 역시 마물들의 수와 기세는 압도적이다.


역전의 명장인 이클린가스의 지휘도 정확해 빈틈이 없다.


은랑수인들은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열세에 몰린다.


하지만, 그때, 눈의 전장에 한 줄기 빛이 흩날렸다.


거대한 마물들이 피를 뿜으며 차례차례 쓰러져 간다.


은랑수인 "오오옷!? 크로셀 님!!"

크로셀 "......모두, 미안하다. 도우러 오는 게 늦었어."



환호성을 지르는 은랑수인들


거기에 조용히 응하는 것은 덧없는 느낌의 기모노 차림의 미녀.


그녀는 수인검사 크로셀.


마계 북방 변경을 세력권으로 하는 은랑족의 왕


불의 힘을 품은 마검을 다루는 신격의 수인이다.


은랑수인1 "아뇨, 이렇게 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은랑수인2 "그런데 왜 이렇게 늦으신 겁니까? 진지에서 계책이라도 짜고 계셔서?"

크로셀 "으응. 늦잠을 좀 자서......"

은랑수인들 "네?"


은랑수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크로셀 "점심의 군량이었던 육포가 맛있어서, 그만 배불리 먹어버렸어. 그 탓에......"

은랑수인1 "아아. 그래서 꾸벅꾸벅 졸았다고, 가끔 있죠, 그런 것......"


은랑수인들이 미묘한 표정을 짓다.


크로셀은 신격의 수인검사로 탁월한 검기와 엄청난 마력을 자랑하나, 조금 느긋한 성격에 자는 걸 좋아한다.


어디서든 새근새근 잠들어 버리기에, 때때로 주위에서 보필하느라 고생한다──는 일도 여럿 있다.


크로셀 "걱정 마. 늦잠을 잔 보충은 하니까."


크로셀이 검을 휘두르자 마물들의 선혈이 튀었다.


성격은 느긋한 편이지만, 그 검술은 초일급.


순식간에 다수의 마물들을 베고, 밀리던 은랑수인 진영을 다시 세운다.


이대로 그녀가 선두에 서면, 형세역전도 가능하다──.


그때, 귀에 거슬리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크로셀 주위의 광경이 일변한다.


빙설이 휘몰아치는 백은의 대지에서, 시커먼 장기瘴気가 감도는 회색 세계로.


크로셀 (이것은......누군가의 결계인가!?)


그렇게 짐작하고 자세를 잡은 크로셀에게 누군가 공격해 온다.


목에 들이 닥치는 예리한 갈고리 발톱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되받아 친다.


기습을 감행한 것은 칠흑 같은 육체와 수면인신獣面人身의 기괴한 전사였다.



크로셀 "......그렇구나. 이 묘한 결계는 네 짓이야?"

아누비스 "그렇소. 사령기사 아누비스라 하오."

아누비스 "은랑수인의 왕 크로셀 공, 그대가 자유롭게 움직이면 이쪽이 좀 불편해지기에."

아누비스 "정말 미안하지만, 나의 결계에서 시체가 되어줘야겠소."


사령경 테우타테스의 휘하, 사령기사<레버넌트> 아누비스.


강력한 결계술사이자 미라 제조용 붕대를 무기로 쓰는 독자적인 암살술의 술사이기도 하다.


크로셀 "......너, 추울 것 같은데. 그렇게 얇게 입어도 괜찮아?"


조용히 그렇게 답하며 크로셀은 검을 잡았다.


***


아누비스의 결계로 은랑수인 왕 크로셀은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아누비스 "이 자리에서는 그대에게 승산 없으니. 각오하시길, 크로셀 공."


아누비스의 공격을 크로셀이 아슬아슬하게 회피한다.


숨도 쉬지 않는 듯한 연속 공격


그로 인해 수인검사 크로셀은 방어전 일변도로 몰리고 있었다.


크로셀 (이건......이 결계에, 뭔가 "장치"가 있는 것인가?)


결계에 갇힌 순간부터 크로셀의 몸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검이 무겁고, 물속에 있는 것처럼 손발에 공기가 감겨 따라온다.


이래서는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아누비스 "결계비술 파라오의 수면"


아누비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아누비스는 소규모 결계에 장기를 가득 채워 상대의 능력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이로써 크로셀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봉한 것이다.


크로셀 "그렇네. 확실히,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겠어."

크로셀 "......그렇다면 이 결계 째 베는 수 밖에."

아누비스 "뭐......?"


의아해하는 아누비스 앞에서 크로셀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높아진다.


크로셀 "간다, 대염마大閻魔──사령경의 개에게 네 힘을 보여줘."


그런 속삭임과 함께 크로셀이 쥔 칼이 눈부신 빛을 발한다.


크로셀이 사용하는 칼은 마계에서도 열 손가락으로 꼽히는 영도霊刀 '대염마'.


사용자의 마력을 불꽃의 참격으로 변환해, 적의 모든 것을 찢어 발기고 불태운다.


아누비스 "설마, 이건......!?"


아누비스가 안색을 바꾸며 물러선다.


다음 순간, 시커먼 장기로 가득한 결계 내에 선명한 불꽃이 터져 나왔다.


크로셀을 주위로부터 분리하던 결계에 균열이 가며 산산조각이 난다.


영도 '대염라'의 일격이 견고한 아누비스의 결계를 찢은 것이다.


아누비스 "이거 놀랍군요. 제 결계를 이렇게 간단히 깨뜨는 자는, '환영의 마녀' 이후 처음입니다."

크로셀 "그럼 내가 마지막이 되겠네, 여기서 넌 죽을 테니──아니, 이건!?"


아누비스를 끝장내려 발을 디딘 크로셀의 발이 멈추었다.


전방 눈 속에, 막강한 힘을 가진 "뭔가"가 있었다.



소녀 "어라? 멍멍아, 저 언니한테 진 거야? 조금 실망이네."

소녀 "여기 추우니까, 페리, 이제 돌아가고 싶은데. "

와이트 "그렇다. 너도 의외로 별 것 아니구나, 아누비스."

아누비스 "죄송합니다 공주님. 못난 꼴을 보였군요."

아누비스 "그리고 와이트. 네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크로셀 (사령기사 와이트, 게다가, 누구지 저 소녀는......?)


아누비스와 함께 이클린가스 침공에 가세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 나타난 소녀를 보고 크로셀은 등골이 얼어붙었다.


척 보기에도 사랑스럽고 가련한 소녀다.


그러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지금 싸운 아누비스, 그리고 함께 나타난 와이트라는 두 사령기사보다 막강하다.


그야말로 상급 마족의 필두인 9귀족에게도 필적할 정도로......


소녀 "으─, 추워. 페리 추운 거 싫어하니까, 싹 죽여버리자."

소녀 "미안해, 언니, 언니가 있으면 아버지 일에 방해가 된대."


크로셀은 식은땀을 흘린다.


사령기사가 둘, 이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저 소녀의 기색은 너무 위험하다......


은랑수인 "폐하! 큰일입니다, 이쪽에 이클린가스 본대가!"


은랑수인이 외치고 있었다.


이클린가스는 노회하고 빈틈이 없다.


사령기사들의 움직임과 호응해 총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다.


쿠로셀 "......어쩔 수 없네. 일단 철수하자."


크로셀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승기가 없다.


그렇다면 여기는 일단 물러나 역전의 기회를 엿보는 것이 상책이다.


은랑수인1 "폐하!? 하지만, 철수라고 해도 어디로!?"

크로셀 "......아까 낮잠 잤을 때, 꿈 속에서 문득 생각났어"

크로셀 "사령경은 우리의 영토 뿐만 아니라, 홍혈경의 영토도 노리고 있어. 즉 '공통의 위협'이지."

크로셀 "그렇다면 홍혈경과 손잡을 수 있어."


크로셀의 말에 술렁이는 은랑수인들.


예로부터 수인들과 흡혈귀인 홍혈경은 사이가 나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다른 길이 없다.


크로셀 "홍혈경은 저래 보여도 성격이 좋아. 우리의 상황을 무시하지는 않을 거야."

크로셀 "흡혈귀와 손을 잡는 게 본의는 아니겠지만......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


크로셀의 말에 은랑수인들도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셀 "응. 그럼 철퇴하자. 후미는 내가 맡는다. 모두, 어떻게든 살아남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