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피분수가 튀었다.


누군가의 목이 날아간 것이다.


여기저기서 일제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범한 일상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마족이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와줘!!


그렇게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둘 다 순식간에 베여 피와 내장을 흩뿌려 갔다.


눈 앞에서 불합리한 죽음이 휘몰아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칠 수도, 소리칠 수도.


물론 싸울 수도.


경찰인 아빠처럼 친근한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포에 사로잡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죽음이 다가왔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그때, 갑자기 생각났다.


아빠도, 엄마도 아닌.


유치원에 다닌 시절, 친구의 인형을 빼앗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엄청 갖고 싶었으니까.


갖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뺐었다. 빼앗았다.


우격다짐으로.


생일날 받은 어떤 선물보다 기뻤다.


그러면 안 된다고, 아빠와 엄마가 내 "바램"의 형태를 바꿔줬는데.


역시 원하는 건 뺏으면 돼!




대마인의 총본산, 오차마을.


오차학원.


그곳에서는 대마인의 일족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그 재능을 발견한 자들이 절차탁마하고 있다.


쇼죠 하츠미도 그 중 하나다.



츠시마 유키코 "그럼 이 두 문제는 누가 풀어볼까요?"


학생들로부터는 상냥하고 열성적인 지도로 유명한 츠시마 유키코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썼다.


미즈키 유키카제 "네!"

마야 코델리아 "네."


미즈키 유키카제와 마야 코델리아,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유키카제는 누구나 아는 우등생, 실기든 이론이든 톱클래스의 에이스.


마야는 아득한 미래세계의 공주이면서도, 성실하고 예습 복습을 빠뜨리지 않는다.


유키코 "다른 사람은 없나요?"

쇼죠 하츠미 "그, 그럼......네"



얼마 전 오차학원에 입학한 쇼죠는 우물쭈물 손을 들었다.


유키코 "적극적이어서 좋네요. 그럼, 쇼죠 씨와......어머, 드물게 후우마 군이 손을 들고 있네요."

나 "네?"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까부터 졸음과 싸우던 내 손도 어째선지 올라와 있었다.


내리려고 해도 내릴 수 없다.


당했다.


타인의 의식을 유도하고 조종하는 유키코 선생님의 『유아도誘我刀』의 힘이다.


유키카제 "뭐하는 거야 바보야."

마야 "또 후우마네."


수업에 적극적인 두 사람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키코 "후우마 군, 일어나셔야죠."

나 "네."


나는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에 덜 깬 눈을 비비며 앞으로 나선다.


칠판에 적혀 있는 것은 대마인 부대의 전개를 위한 물자 보급에 대한 계산 문제이다.


다행이다.


이 정도면 독립 유격대 대장으로 늘 하고 있다.


하츠미 "그러니까......여기는 이대로......???"


곧장 답을 쓴 내 옆에서, 하츠미가 끙끙거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복잡한 계산을 갑자기 시작해, 도중부터 잘 모르게 된 것 같다.


물자 보급의 기본은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필요한 양을" "필요한 장소로" 보내는 것.


그렇다고는 해도 처음부터 막 세세하게 생각하려 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우선 대충 생각하고 나서 세부사항을 정해나가는 것이 좋다.


나는 「도와줘도 될까요?」라고 유키코 선생님을 보았다.


유키코 선생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 "쇼죠, 거기는......"


쓰기 시작한 계산식을 보면 꽤 공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츠미 "아,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후우마 선배."


내가 조금만 조언해도 하츠미는 확 얼굴을 빛내며 답을 잘 써냈다.


유키코 "잘했어요. 둘 다 자리로 돌아가세요."


나와 하츠미는 자리로 돌아왔다.


아니, 나는 어째선지 내 자리를 지나 교실 뒤까지 걸어가고 있다.


나 "뭐야?"


또 몸이 조종당하고 있었다.


유키코 "후우마 군은 선생님의 수업이 지루하신 것 같으니 거기서 잠시 서 계세요."


유키코 선생님은 미안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오전은 그런 식으로 지나가, 즐거운 점심시간.


나는 헤비코, 시카노스케, 유키카제, 마야, 래티클, 사키와 같은 평소의 동료들과 급식을 먹으러 왔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우리가 왁자지껄 떠들고 있으면,


하츠미 "후우마 선배, 옆에 앉아도 괜찮을까요?"


하츠미가 쟁반을 들고 왔다.


나 "그래."

하츠미 "감사합니다."


옆자리를 비워주면서 그 쟁반 위를 보니 점보 햄버그, 새우볶음밥 곱빼기, 걸쭉한 스프, 무제한 샐러드에 더해 거대한 파르페가 진좌해 있었다.


유키카제 "그렇게나 먹는다고?"


모두가 생각한 걸 유키카제가 말했다.


하츠미 "1인분의 대마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몸부터 만들라고 배웠어요."

하츠미 "그러려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겠죠. 잘 먹겠습니다!


하츠미는 제대로 합장하고 인사를 하더니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 옆에서 방과 후 일정에 대해서 얘기한다.


유키카제 "오늘은 일도류의 모두가 모여서 마야님에게 코델리아식 검술 강의를 들을 거야."

마야 "일도류의 여러분에게, 특히 린코 선배에게 제가 가르치는 것은 이상합니다만......"

나 "그렇지 않을 거에요. 오히려 린코 선배가 제일 적극적일걸요?"

유키카제 "그렇겠지. 검의 귀신 같은 거고."


사키 "저는 화둔중 모임에 불렸어요. 마이카 씨가 얼굴 비춰보지 않겠냐고 권유해서. 호무라 언니도 오는 것 같고요."

래티클 "벌써 미래의 여동생이라고 얘기했나?"

사키 "아직은. 이렇다 할 계기가 없어서."

유키카제 "뭐 아무런 복선도 없이 갑자기 아이엠 유어 시스터는 이상하지."

나 "호무라가 그런 걸 눈치챈 듯한 기색은?"

사키 "전혀요. 호무라 언니는 그럴 것 같았지만. 아......하지만 마이 씨는 눈치챘어요."

나 "마이가? 어떻게?"

사키 "좋아하는 소설을 물어오길래, 무심코 미래에만 있는 책을 답했더니 엄청난 기세로 추궁당했거든요."

헤비코 "아, 그건 들킬 수 밖에."


시카노스케 "나와 헤비코는 지하 훈련 시설에 들렀다 갈 거야."

나 "요즘 둘 다 열심이구나."

헤비코 "응. 시카노스케짱이랑 여러가지 시험을 해보고 있어."

래티클 "나도 거기에 참여해도 될까?"

헤비코 "올래? 얼마든지."


유키카제 "후우마는 또 도서실?"

나 "음─, 어떻게 할까."


혼자만 예정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내가 고민하고 있으면, 옆에서 그 음식을 다 먹어치운 하츠미가 활기차게 일어섰다.


하츠미 "점심시간에 사쿠라 선생님과 무라사키 선생님께 인법을 봐달라고 약속해서요. 빨리 가야하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하츠미는 힘차게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식당을 나갔다.


헤비코 "하츠미짱 열심인걸~."

유키카제 "후우마보다 훨씬 낫네."

나 "냅둬."

마야 "최근까지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대마인의 능력에 각성한다든가. 그런 일이 자주 있나요?"

나 "드물게......려나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요."

사키 "기숙사 방에 엄청 예쁜 글씨로 『대마인』이라고 써붙여 놨어요. 결의를 가시화可視化하는 게 버릇이래요."

래티쿨 "그게 그런 의미였나. 무슨 의식인 줄 알았는데."

시카노스케 "근성도 좋아."

유키카제 "마음은 알겠지만. 대마인의 능력에 각성해도, 꽤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아."




실제로 하츠미는 고생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법은 심물합신(心物合神). 손에 든 무기와 일체화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검과 일체화되어 온몸을 칼날처럼 날카롭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일체화된 검에 사람의 성질을 부여해, 손발처럼 자유자재로 굽힐 수도 있다.


지극히 특이한 인법이라, 숙달은 어렵다. 오차학원에서도 그 인법의 술사는 그녀 뿐이다.


지금은 가장 동화가 쉬운 쇳덩어리를 쥐고, 그것과 일체화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지만,



야츠 무라사키 "어떻게 된 쇼죠. 아까부터 끙끙거리고만 있는데."

이가와 사쿠라 "하츠밍! 좀 더 집중 집중!"


점심시간, 지도를 부탁받은 교사 두 명이 하츠미를 격려한다.


하츠미 "집중......집중......집중......이것은 나의 일부, 이것은 나의 신체, 나는 철, 나는 무기, 나는......"


하츠미는 주문처럼 반복하면서 필사적으로 손 안에 있는 쇳덩이에 인법을 사용하려 한다.


이윽고 쇳덩이에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꽃이 휘감고, 미끈하게 동화가 시작되는 순간,


하츠미 "!!"


자신에게 이물질이 들어오는 감각에 겁먹은 듯 하츠미는 집중이 풀렸다.


동화되려던 쇳덩이가 손에서 떨어지다.


하츠미 "아아~~~ 안 돼~~~."


하츠미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불발로 끝났다고는 하지만, 인법을 쓰려면 체력도 정신력도 필요하다.


무라사키 "아아, 정말 글렀군."

사쿠라 "자자, 뭇짱, 하츠밍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는걸."

무라사키 "민달팽이보다 느리다."

하츠미 "나, 민달팽이......그럴수가~~~"


두 교사를 앞에 두고, 하츠미가 한심한 소리를 낸다.


무라사키 "좌절할 때냐. 너는 일단 몸 만들기부터 해야 한다. 교정 열 바퀴! 뛰어라!"

하츠미 "네, 무라사키 선생님!! 우선 몸 만들기부터 시작할게요! 정신 차릴게요!!"

사쿠라 "힘내──."


하츠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배웅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인다.


무라사키 "어떻게 생각하지?"

사쿠라 "으──음. 좀 어려울지도."

무라사키 "힘에 각성한 계기가 계기다 보니까. 심물합신의 인법의 어려움으로 미루어 볼 때, 자기 힘에 휩쓸릴 위험이 더 크다."

사쿠라 "그렇지. 하지만 뿌리의 이유야 어떻든 대마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거짓말이 아닌 것 같고."

사쿠라 "딱히 모든 대마인이 나 같은 사랑과 정의의 사자가 아니어도 괜찮다 생각하는데?"

무라사키 "너의 어디가 사랑과 정의의 사자냐. 그런 말이 어울리는 건 아사기 님 뿐이다."

사쿠라 "나하하. 뭇짱은 여전하구나."

사쿠라 "어쨌든 엄청난 능력이니까 제대로 제어는 할 수 있어야지~"


하츠미가 능력에 각성한 계기.


그것은 마족이 일으킨 사건에 우연히 휘말린 것이었다.


생명의 위기에 직면해, 그 몸에 잠들어 있던 대마인의 피가 각성한다.


어둠과는 무관했던 인간의 각성으로서 그것은 엄청 흔한 예시였지만, 하츠미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을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방과 후──.


나는 결국 홀로 도서실에 왔다.


마계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 전, 실제로 마계에 간 야나기 무츠호로부터 현재 마계의 세력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대마인은 물론, 요미하라의 노마드 등을 포함한 지상에 있어서의 공통의 적──.


즉 사령경 테우타테스는 봉인된 음마 에레시키갈과 손잡고 서리의 오니신이나 인랑과 적대하고 있다.


서리의 오니신은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있었으나 여왕 라그나로크에 의해 비로소 통일되어, 사령경과 대치하고 있다.


그 라그나로크는 사실 키라라 선배의 어머니로, 그녀 또한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키라라 선배를 마계에 붙잡아 두려고 부모와 자식이 싸우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딸의 자립을 허락해 준 것 같다.


한편 인랑도 사령경에 대항하기 위해 앙숙이었던 홍혈경紅血卿과 손을 잡은 듯하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마계의 역사, 지리, 민속 등의 문헌을 뒤적이며 나는 그 홍혈경에게 흥미를 느꼈다.


마계를 지배하는 9귀족 중 하나, 흡혈귀의 여왕, 카라 크롬웰.


나 "흡혈귀라......"


대마인에게 흡혈귀라고 하면 우선 노마드의 에드윈 블랙을 말한다.


그 블랙에 대해서는 린코 선배와 함께 미연에 간 유키카제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 선배의 혼둔의 술로, 노마드의 고위 간부이자 블랙의 절친한 친구인 신간지 사쿄의 과거를 추체험했다고.


그래서 블랙 본인이 말한 바에 의하면, 그는 인간계, 마계의 변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믿기 어렵지만 불사의 힘으로 여러 차례 세계를 재구축 해왔다.


그 반복 중에, 블랙은 불사의 힘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 지금 있는 이 세계에서는 빛에도 어둠에도, 선에도 악에도 물들지 않는, 기존의 시스템에서 떨어진 자들의 모임을 목표로 노마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취지나 필요성은 이해할 수 있다.


노마드가 있는 요미하라는 그런 마을이고, 마족이 지상에까지 무질서하게 나오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래서 대마인과 노마드의 동맹도 성사됐다.


하지만 블랙의 힘으로 다시 세계를 재구축(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지만)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블랙의 존재에는 나, 정확히는 재구축되어 이 세계가 되기 전의 나, 즉 전생의 내가 크게 관여하고 있다.


유키카제는 블랙이 불사의 힘을 잃은 것은, 나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아마 그 말대로겠지.


지금의 나는, 블랙으로부터 빼앗았다는 마성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전생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 사안을 잃었다.


블랙이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


이전, 쿠로토라는 소년의 모습으로 습격해 온 적도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빼앗은 나를 방치해 둘 수 없다고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나 (생각할 것이 너무 많네......)


마계의 책을 여러 권 펼친 채, 내가 혼자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아마미야 시스이 "당주 군......"


역시 전생부터 나와 인연이 있는 소녀가 걱정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 "시스이라......"


아마미야 시스이.

내 안에 남은 전생의 물방울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 도서실에서 나와 깊이 연결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코로 선배를 제외하면, 나 밖에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시스이 "무서운 얼굴, 왜 그래?"

나 "사령경에 대해서라든지 블랙에 대해서라든지 여러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아서 말이야."

시스이 "그래......"


그것만으로도 시스이에게는 전해졌다.


시스이는 나에게 바싹 다가서서 말했다.


시스이 "당주 군, 잊지 마. 나는 당주 군과 운명을 함께하는 사람. 언제나 당주 군 곁에 있어."

나 "그래."


나는 문득 생각했다.


블랙이 세계를 재구축하는 탓에, 시스이는 이 세계에서 환상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시스이가 도서실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그녀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블랙이 다시 세상을 재구성한다면 내 동료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일은 용서할 수 없다.


나 "시스이,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시스이 "응, 뭐야?"

나 "전생에 나와 시스이는 어떤 관계였어?"

시스이 "어?"


전생에 깊은 연결고리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구체적인 것을 묻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 잘못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어서, 시스이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시스이는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찬찬히 나를 보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시스이 "말 안 해도 알잖아? 가장 사랑하는 연인♪"


응석부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은 기쁘지만,


나 "그건 거짓말이지?"

시스이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시스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 "눈치 못 챘나 본데. 시스이는 거짓말을 할 때 이렇게 입술의 왼쪽 끝이 살짝 올라와."

시스이 "어? 진짜!?"


시스이는 황급히 입술을 확인했고,


시스이 "아......"


나한테 속아 넘어간 걸 깨달았다.


나 "거봐. 거짓말이잖아."

시스이 "아──너무해. 당주 군은 바보."


툭툭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입술을 삐죽거리고 토라진 듯이 말한다.


시스이 "정말 심술궂다니까. 나와 당주 군의 관계는 다른 여자애들과 똑같았어."

나 "똑같다는 건 무슨 의미야?"

시스이 "몰라. 안 가르쳐 줄 거야."


휙 고개를 돌린다.


나 "뭐야 그게."

시스이 "메ㅡ롱이다"


이번에는 혀를 내민다.


아마 나름대로 격려해 주는 거겠지.


그건 기쁘다.


──그때였다.


하츠미 "후우마 선배, 코로 선배~~ 할말이 있는데요~~"


하츠미가 종종걸음으로 찾아왔다.


그 모습은 도서관에서도 비교적 눈에 띈다.


이전까지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능력에 각성해, 수업이나 자율학습을 하는 한편 도서관에서 대마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선배로서 몇 번인가 조언을 한 적도 있다.


하츠미는 내 근처까지 다가오더니,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츠미 "어? 코로 선배와 함께인 거 아니었어요?"

나 "코로 선배랑? 왜?"

하츠미 "그야 후우마 선배가 완전 러브러브한 분위기로 누군가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서."

하츠미 "그런데 상대방 목소리는 전혀 안 들려서 코로 선배인 줄 알았거든요."

나 "설마. 나랑 코로 선배가 그럴 리 없잖아."

시스이 "둔감."


시스이가 툭 말했다.


하츠미에게는 보이지 않고, 지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묘한 프렛셔를 느끼며, 하츠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잠깐 딴 사람이랑 통화했어"

하츠미 "도서실에서요? 안 된다요, 후우마 선배.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구예요?"

나 "비밀."

하츠미 "쳇──."


하츠미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내가 펼쳐 놓은 책으로 눈을 옮겼다.


하츠미 "와──, 뭔가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 잔뜩 있네요. 무엇을 조사하고 계셨어요?"

나 "잠깐 마계에 대해서 말이야."


호기심 많은 하츠미는 반짝 얼굴을 빛낸다.


하츠미 "마계! 요미하라와 연결된 다른 세계였죠. 후우마 선배는 가보셨나요?

나 "몇 번 정도?"

하츠미 "우와! 저도 제대로 인법을 쓸 수 있게 되면 마계에 갈 수 있을까요?"

나 "막상 찾아도 즐거운 곳은 아니지만......그래서, 이야기할 게 뭐야?"

하츠미 "아, 그렇죠. 저, 여기서 계속 대마인의 역사를 공부했잖아요?"

하츠미 "그래서 우연히 재미있는 책을 찾았거든요."


하츠미는 가져온 책을 보여주었다.


수백 년 전, 한 대마닌의 활동을 기록한 고문서다.


하츠미 "여기를 보세요. 심......물......합......신......분명 저와 같은 인법이지요."

하츠미 "게다가 이 사람......나츠(ナツ) 씨라고 생각되는데요."

하츠미 "아무래도, 오차마을 근처에서 고대룡을 퇴치한 것 같은 이야기가 쓰여 있어요."

나 "잠깐 보여줘."

하츠미 "네, 여기요."


고문서를 곧장 읽을 수 없는 하츠미는 핸드폰의 해독 앱을 사용하고 있어, 군데군데 비어 있다.


내가 재차 그걸 읽자, 농민에서 대마인이 된 나츠라는 여성의 활동기록으로, 하츠미와 같은 심물합신의 술자로 보이는 기술이 쓰여 있다.


그리고 오차 근처에 있는 우에무라(上村)에서 고대룡을 퇴치했다고도 적혀 있었다.


나 "헤에, 흥미로운데."

하츠미 "그렇죠. 저도 뭔가 친근하게 느껴져서요.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하츠미 "그래서 후우마 선배에게 부탁드리는 건데, 지금부터 이 고대룡을 퇴치했다는 우에무라에 가 보지 않을래요?"

나 "지금부터? 나랑?"

하츠미 "네, 후우마 선배랑."


하츠미는 꺼림칙함 없는 얼굴로 말한다.


시스이 "방과 후의 데이트 신청이라. 이 애, 적극적이네."


시스이가 조용히 말했다. 물론 들린 건 나 뿐이다.


고대룡이 오차 근처에 있었다는 것은 나의 모험에 대한 낭만을 자극했다.


장소도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하츠미와 둘이서만 간다는 것은 OK하기 어렵다.


나 "조, 좋아. 헤비코와 시카노스케도 데리고 가자."

하츠미 "두 선배도요?"

나 "이런 모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저 둘이 함께인 편이 좋겠어."


시스이에 대한 변명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하츠미 "즉 독립유격대 출동인 거네요. 후우마 선배, 저도 가세할게요!"


하츠미는 과장스럽게 경례했다.


방과 후 데이트를 방해받아 실망한 내색은 일절 없다.


시스이의 생각이 지나친 거겠지.


나 (그래서 어때?)


나는 "가장 사랑하는 연인"의 눈치를 보듯 시스이 쪽을 힐끗 보았다.


시스이 "므───."


시스이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이윽고 체념한 듯,


시스이 "잘 다녀와, 당주 군. 그래도 몸 조심해."


그렇게 허락해 준 것이었다.


***


지하 훈련 시설에 도착하자 마자, 헤비코와 시카노스케가 아이언 고스트를 격파했다.


나 "둘 다 굉장한걸. 전에 나와 쿠로네코 선생님과 간 아미다하라 전투의 시뮬레이션이야?"

헤비코 "앗, 후우마짱! 그래그래, 보고 있었어?"

헤비코 "처음에는 래티클짱에게 방어를 부탁했었는데."

헤비코 "드디어 헤비코와 시카노스케짱 둘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게 된 거야."

시카노스케 "게다가 노 데미지로."

나 "굉장한데."

래티클 "대마인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알사르나 마우자가 두려워할 거야."


래티클도 감탄하고 있었고, 하츠미는 엄청 감격하고 있었다.


하츠미 "굉장해요!! 헤비코 선배도 시카노스케 선배도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어요."

하츠미 "그야말로 슈퍼 대마인이네요!"


두 사람을 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스트레이트한 동경의 시선이다.


시카노스케 "그렇지?"

헤비코 "아직 슈퍼 정도는 아니지만."


시카노스케는 오차학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후배에게 자랑하고, 헤비코도 겸손해 하지만 기뻐 보인다.


나 "둘 다 할 얘기가 좀 있어. 일단 샤워하고 와."

시카노스케 "오우."

헤비코 "응, 기다려 줘."


두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샤워실로 향하고, 돌아와서 내게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어두워졌다.


시카노스케 "불길한 예감 밖에 안 들어."

헤비코 "그렇지. 후우마짱이니까."


싫다는 기색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 "너희들 텐션이 너무 낮잖냐. 방과 후의 모험이라고 모험."

하츠미 "맞아요. 모험이에요! 헤비코 선배, 시카노스케 선배!"


하츠미가 아까와 같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두 사람을 꾀어보지만,


헤비코 "하츠미짱이 그렇게 말해도."

시카노스케 "우리는 지금까지 그 패턴 탓에 곤욕을 치렀어. 분명 이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 거야."

헤비코 "그렇겠지."

하츠미 "무슨 일이 있었군요! 점점 더 기대되요!"


하츠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카노스케 "이건 안 되겠네."

헤비코 "모르는 게 약이지. 하지만 후우마짱과 하츠미짱 둘만 보낼 수도 없고."

시카노스케 "하~~~~. 나는 성격이 너무 좋다니까."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동행을 승낙했다.


래티클 "나도 동행하지. 그 고대룡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래티클도 모험 참가를 표명한다.


나 "오, 역시 래티클."

하츠미 "결정됐네요. 독립유격대+2 렛츠 고!"


하츠미가 기세 좋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