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로크 "넌 이제 내 곁에서 살 거야. 그래서 데리러 온 거야."


떠나려는 키라라 선배에게, 라그나로크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키라라 "가,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도......나 계속 인간계에서 자랐고, 학교도 친구도 모두 인간계에 있는걸."

키라라 "그리고 마마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계에 두고 간 거 아니야?"

라그나로크 "상황이 달라졌어. 새로운 적......사령경이 네 존재를 알아차렸지."

키라라 "사령경이......"


확실히 습격해 온 모리건과 사령들은 키라라 선배를 프레이야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 (무츠호 선배가 말한대로라는 건가. 하긴, 라그나로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대간부들에게 당했을지도 모르지.)


라그나로크 "사령경은 숙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막강한 적이야. 인간계에......아니, 어디에 있어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라그나로크 "그러니까 내 곁에 있어. 이번에야말로 너를 지키고 싶어."


라그나로크의 말에는 유무를 가리지 않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자기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거짓말을 하고 떠나 슬프게 만든 후회일까.


키라라 "마마......"

키라라 "마마, 나라면 괜찮아. 곧 학교도 졸업해, 1인분의 대마인이 될 거야. 내 몸은 내가 지킬게."

키라라 "게다가 나 혼자가 아니야. 학교의 친구들과 선생님들, 후우마도 내 편인걸."


키라라 선배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다.


나 "라그나로크, 저도 부탁할게요. 키라라 선배는 저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료에요."

라그나로크 "아무래도 거절할 생각인가 보네. 그럼 힘으로 데려갈 수 밖에."


공기가 사르르 차가워졌다.

라그나로크의 검이 파란 빛을 띤다.


키라라 "아무리 마마라도 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모두가......후우마가 있는 인간계에 남을 거야!"


라그나로크는 나와 선배를 번갈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라그나로크 "그 후우마라는 인간이 족쇄가 되어 있구나."

라그나로크 "그럼 그 인간을 배제하는 수 밖에. 설령 네게 원망을 받더라도!"


라그나로크의 검이 후우마를 노리지만, 그 검끝은 키라라의 박빙(薄氷)에 막힌다.


라그나로크 "......과연. 대단한 냉기야."


라그나로크는 기쁜 듯이 미소짓는다.


그 미소는 딸의 성장을 기뻐한다기보다는, 호적수를 상대하는 전사의 그것이었다.


라그나로크 "하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어"


라그나로크도 검에 냉기가 흘러 넘친다. 시릴 정도의 추위가 주위를 뒤덮었다.



키라라 "나도 마찬가지야! 후우마를 없앤다니 절대로 허락 못 해!!"


몸이 반쯤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후우마를 두고 싸우는 두 모녀.


내한기능을 지닌 슈트를 입지 않았다면, 후우마는 진작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키라라 "후우마, 작전이 있는데 들어봐."

나 "뭔가요?"

키라라 "예를 들어 눈보라 속에 빙상을 잔뜩 세워, 그 안에 뒤섞여 위치를 속이는 거야."

키라라 "물론 단번에 알아차리겠지만, 그 순간이라면 한 방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키라라 "그래서 마마가, 나의 힘을 알아준다면......"


라그나로크에게 키라라 선배는 과거에 헤어진 어린아이 그대로.


그 환상을 깨기 위해, 키라라 선배의 지금 힘을 때려 넣는 것이 최고인 셈이다.


나 "좋은 작전이에요. 그럼 거기에 더해......"


나는 머리에 떠오른 작전을 키라라 선배에게 속삭였다.


키라라 "좋은 작전이지만......후우마는 괜찮아? 지금도 안색이 창백한데."

나 "버텨볼게요. 키라라 선배가 오차에 남고 싶다고 말한다면, 전력을 다해 돕고 싶고."

나 "저도 키라라 선배가 마계로 떠나는 것은 싫으니까요."

키라라 "후우마......"

키라라 "고마워! 그럼 해볼게!!"


키라라 선배가 차가운 폭풍을 일으키다. 눈과 얼음이 날아올라 순식간에 시야는 하얗게 변했다.


라그나로크 "무슨 생각이지......?"


화이트아웃에 눈이 익숙해지자, 희미하게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키라라 선배가 만든 빙상이다.


라그나로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라그나로크 "빙상에 몸을 숨기겠다는 거야? 유감스럽게도 나는 눈보라 속에서도 눈이 좋아."

라그나로크 "무엇보다......딸의 모습을 몰라볼 리 없잖니."


즉시 작전을 간파하고 키라라 선배 본인이 있는 곳을 눈치챘다.


라그나로크 "거기다!!"


라그나로크가 하나의 빙상에 고드름을 던지자, 역시 그 빙상이 흔들리고, 키라라 선배가 눈보라에서 튀어나온다.


키라라 "역시 대단해."

라그나로크 "작전을 떠올린 건 칭찬해줄게. 하지만 이제 포기해!"


라그나로크는 레바테인에게 특대의 냉기를 두르며 키라라 선배의 모습을 향해 크게 치켜들었다.


라그나로크 "냉렬──"


그 순간.


라그나로크의 등뒤에서 나──후우마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라그나로크 "뭣!?"


놀라 뒤돌아 본 라그나로크의 자세가 무너진다.


후우마 "빈틈 발견!! 간다! '동분정주'!!!!"

라그나로크 "──으윽!!!"


치켜든 레바테인은 튕겨나가, 얼어붙은 땅을 미끄러져 간다.


후우마 "──해냈어!!"

키라라 "성공이네요."


우리는 달려가서 하이파이브를 한다.

동시에 『전신의 술』을 풀고 서로의 본래 몸으로 돌아왔다.


그래, 우리의 작전은 눈보라 속에 빙상을 만들어 눈을 속이는 것이라 가장하고, 빙상에 섞여 있던 키라라 선배는 『전신의 술』로 나와 바뀐 가짜.


주의가 가짜를 향한 때, 내 모습을 한 진짜 키라라 선배가 동분정주를 때려박는 것이다.


가장 큰 걱정은 내가 추위를 견뎌낼 수 있을지였다.


바뀌는 것은 모습과 목소리 뿐으로, 능력은 그대로.


상처는 재생되지만 저체온으로 인한 피해를 계속 받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키라라 선배는 "후우마가 목숨까지 거는 의미가 있어?"라고 주저했지만, 나도 키라라 선배를 위해 싸우고 싶었던 것이다.


라그나로크 "전신의 술......그 사람의 인법......"


우리가 뒤바뀐 것을 알아차린 라그나로크는 검을 줍지도 않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키라라 "마마......이제 알겠어? 나의 힘을."

라그나로크 "그래, 프레이야."

라그나로크 "많은 빙상을 만드는 냉기, 그리고 전신의 술. 역시 내 딸, 그리고 그 사람의 딸이구나."

키라라 "마마의 냉기와 파파의 인술, 그리고 후우마의 작전. 모두 나에게 소중한 힘이야."

라그나로크 "그래......너는 혼자가 아니구나."


라그나로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와 키라라 선배를 번갈아 보았다.


그 눈동자에 이제 적의는 없다.

자상한 어머니의 그것이었다.


라그나로크 "알았어, 가렴. 네가 살고 싶은 곳으로."

키라라 "고마워요, 마마. 또 만나러 올게......!"

라그나로크 "아아, 그래. 거기의 청년......후우마라고 했던가."

나 "뭐, 뭔가요?"

라그나로크 "키라라를 잘 부탁해......그리고, 후후. 몸을 따뜻하게 하렴."

나 "ㄴ, 네."


두 남녀는 게이트 시티로, 인간계로의 귀로에 오른다.


그 뒷모습을 배웅하며 라그나로크=신모라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라그나로크 "......"


눈보라 속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던, 그 어린 아이는 이제 없다.


라그나로크 (그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구나.)


지금의 키라라에게는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있고, 소중한 거처가 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있다.


라그나로크 (......그건 그렇고, 저 후우마라는 남자.)

라그나로크 (눈범벅이 되어 덜덜 떠는 그 모습이란......후후.)


그 모습에, 과거의 싸움에서 스스로 얼어 붙었던 하지메의 모습이 겹쳐졌다.


라그나로크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버렸구나)


그때 나무 그늘에서 인기척이 났고 네이스와 몇몇 서리의 오니신이 나왔다.


복병으로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라그나로크가 신호를 보내면 그들이 뛰어나와 힘으로 프레이야를 데려갈 것이었다.


그러나 끝내 신호는 나오지 않았다.


네이스 "라그나로크 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프레이야 님은......"

라그나로크 "......"


라그나로크는 눈 녹은 진창에 눈을 떨어뜨리고, 약간의 눈살을 찌푸렸으나 곧 족장의 얼굴로 돌아간다.


라그나로크 "이 땅의 도적들은 대충 정리했다. 현명경에게 보고해라, 계획은 예정대로라고."

네이스 "네......"


네이스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시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마계의 아침해가, 산골짜기를 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