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비어슬리
https://arca.live/b/textgame/30544460

불행은 항상 느닷없이 나타나지.

개인적인 생각이다만, 겪은 불행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는건 더욱 불행한 일이며 불행을 겪을만한 짓을 했다면 그건 인과응보 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내 개인적인 생각을 내 상황에 대입해보면 불행한 인과응보라는 명칭을 달아줄수 있겠네.
깨어나고 나서야 케이네가 박치기로 악명높다는 사실과 내가 그 악명높은 박치기를 제대로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

물론 자세한 전말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무언가 제제를 당하거나 하진 않았어. 오히려 도움을 받았지.


내가 깨어난곳은 마을의 한 여인숙이였어.
상황을 파악하는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 여인숙까지 온 기억도 없으니 누군가가 대려다 놓았다는건 금방 알 수 있었지.

그 누군가가 누구인진 뻔했어. 작년 겨울에 날 좀 고생시켰던 암묵의 규칙이 하나 있는데, 왠만한 숙박업소는 외래인을 안받거든. 하지만 누가 보증을 서면 말이 조금 다르지. 지금 상황에 그럴만한 사람은 케이네밖에 없어.


게다가 혼자 깨어난것도 아니였는데, 내가 눈을 떴을땐 붉은 머리칼과 삼청색 리본이 꽤나 인상적인 누군가가 뭘 하고 있었거든.

서로 통성명을 하진 않았어. 나는 비몽사몽간에 그럴 정신이 아니였고, 저쪽은 그럴 필요성이 없다고 느꼈는지 굉장히 사무적으로 나왔거든.

그냥 케이네의 지인이다 정도의 소개, 내 상황에 대한 설명만 한 뒤에 일어났으면 출발하자고 하더니 날 휠체어에 앉히더라. 뭐라 해보기도 전에 밖으로 끌려나온 나는 시간이 막 해가 뜨는 새벽녘이라는걸 알 수 있었지.

박치기 맞고 기절한게 점심쯤이였으니 열몇시간정도 기절해 있었던것같아.


... 음, 그런 관찰과 사고 이외엔 잠자코 있는것밖에 할 수 없었어. 일이 재미있게 굴러갈것 같았기도 했으니 그냥 지켜보기로 했지. 케이네의 지인은 날 어디로 대려가려는걸까?

정답은 마을 바깥이였어. 대화나 말 한마디도 없이 곧바로 출구를 향해 직행하더니 이쯤이면 되겠다는 말을 하는거 아니겠어?

그때 나는 생각했지. 케이네의 지인이란 말만으로 첫곧이든건 아닐까?
뭐, 사실 케이네의 지인이 요괴일 확률은 꽤 있었지. 요괴 반 인간 반 이면 지인이 요괴일 확률도 반 아니겠어?

그리고 나는 곧 걱정의 방향성이 틀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어. 일단 그녀가 요괴라는걸 확인하긴 했지. 날 들고 날아올랐으니까. 미리 얘기가 됐는지 목적지를 묻지도 않더라. 

그래, 최소한 비명은 안지르게 됐으니 나도 환상향식 빠른이동에 많이 적응한걸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도착한곳은 결국 신사였지.

꽤나 이른 시간이였지만 늘 일찍 일어나던 아운이 하필 오늘만 늦잠을 잔다던지 하는 악운은 없었고, 그런 덕에 별 탈 없이 돌아올수 있었지.


그 이후론 별 일 없었어. 케이네 지인도 별 말 없이 휙 돌아가 버렸고, 신사 구성원들도 '어, 왔어?' 이상의 반응을 하지는 않았거든.



그렇게 시간은 흘렀지. 두번의 일몰과 일출이 지나가고 세번째 일출이 시작된지 몇시간 뒤, 그러니까 정오즈음의 일이였어. 흔하다면 흔하고, 아니라면 아닌 일.

다시금 폭우가 쏟아졌지. 저번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정도로, 빗줄기 때문에 앞도 잘 안보일 정도로.

사실, 폭우보단 폭풍우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정도였어. 천둥번개가 꽝꽝 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이변해결모드 레이무를 봤었어. 눈빛부터가 확 달라지더라. 공기가 가라앉는다는게 무슨 뜻인지, 그때의 레이무가 아주 잘 보여주었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딱 굳어버렸지. 스이카 까지도!
난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그랬지만 다른 애들은 레이무가 그런 모습을 보일때가 어떤 때 인지 알기 때문에 굳었다는 인상이였지.


뭐, 그러곤 잠깐 나갔다 온다며 뛰쳐나갔어. 불제봉에 부적에 바늘에 하여튼 요괴들이 싫어할만한건 죄다 들고.

비가 저렇게 내리는데 우비도 없이 나가다니.
분명 말려야 했겠지만 저런 레이무를 어떻게 말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말릴 생각도 없었어. 가장 큰 이유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이무라서 걱정도 안됐거든.

하긴, 이정도면 이변수준 아닐까 생각은 했었지. 저런 반응을 보니 확실해졌구만.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약 네명. 스이카, 아운이, 신묘마루, 그리고 나.
늘 같은 구성원이지.

하지만 분위기는 평소와 완전 달랐는데, 정오가 막 지났음에도 먹구름이 해를 가려 전혀 볕이 들지 않았어. 비 들어올까봐 문도 죄다 닫아놨으니 신사 전체가 검푸른 색채로 어둑어둑해졌지. 거기에 빗소리라고 하면 아무도 안믿을것같은 맹렬한 빗소리가 첨가되니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라.

뭘 하는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끔 기지개 펴는 소리나 재채기하는 소리 외엔 거의 묵음.
그렇게 삼십분쯤 있었더니 조금 큰 부시럭 소리와 함께 스이카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심심한데 할만한거 없냐는 목소리가.

그 말만 기다렸다는듯 코마이누와 소인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돌아왔지. 누가 대신 말해주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기다렸다는 느낌이였어.

그럼 이제 두번째 문제가 나타나겠지.
뭐할까? 할만한게 있나?

그리고 다시 침묵.

이런 상황 대부분은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하는데, 할만한게 있었으면 진작 했을거란거야.

하지만 인간은 늘 방법을 찾아왔고, 이번에도 그랬어. 인간은 늘 없는건 만들어왔지.
... 그 자리에 인간은 나밖에 없었지만.

나는 개입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어둑한 와중에 나한테 시선이 쏠리는게 느껴졌어. 왠지 기시감이 드네. 이런적이 한두번이 아니라 그런가?

무엇보다 지금과 거의 흡사한 상황이 한번 있었던거 같은데. 그때는 개미 이야기를 했었으니 이번에도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는게 좋겠지.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린 뒤 입을 열었어.







그래, 그래. 이렇게 될거 같더라.

사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 개미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안할수가 없지.


그때 누누이 강조했듯, 개미의 최대 강점은 사회성이야. 몇천마리가 하나의 생명처럼 활동하며 군체를 유지시키는 힘이 개미가 성공할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사회성을 형성한것이 개미뿐만은 아니야. 많은 생물들이 무리를 형성하지. 그중 하나는 개미만큼 유명하고 개미와 자주 비교되곤 해.

그게 뭘거같아? 노란색에 검은 줄무니를 가지고 날아다니는 따끔한놈. 


... 그렇지. 벌이야.

벌의 세계는 개미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심도깊은 세계를 구성했어. 선택적 진화와 전략적 퇴화를 거듭하고 환경적 적응에 따라 많은 종으로 분화되었지.

벌의 사회를 보기 전에 벌이 생태계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조금 짚고 넘어가고 싶네. 준비 됐지?



벌은 인간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어. 당장 식탁을 한번 떠올려 볼까? 그 위에 꽤 다양한것들이 올라와 있을거야. 고기도 있고, 채소도 있고, 흰 쌀밥도 있겠고, 이런저런것들이 있겠지?

만약 꿀벌이 없다면 이 식탁에서 없어지는것들이 얼마나 될까?
정답은, 시간 경과에 따라 거의 다 없어져. 식탁에 앉을 사람도.


인간이 먹는 음식중 식물 기반의 식자재는 꿀벌이 있어야만 생산될수 있어. 이게 무슨 뜻 이냐면, 꿀벌이 없어지는 순간 인류는 식량의 1/3을 잃는다는거지.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많이 잃을것이고.

그 이유는 꿀벌이 꽃가루를 옮기는 수분을 하기 때문이야. 꽃이 꿀을 생산해 꿀벌을 부르고, 벌이 꿀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꽃가루를 잔뜩 묻히거든. 그러면서 날아다니다 보면 흩뿌려진 꽃가루가 암술에 닿으면서 수정이 일어나는거지.

이것도 일종의 공생관계인데, 식물은 원활한 번식이 가능하고 벌은 먹이를 더 쉽게 얻을수 있으니 윈윈인 셈이지. 그래서 같은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과 벌들끼리는 수분 효율이 더욱 높아.


어쨌든 이런 수분방식을 가진 꽃을 충매화 라고 하는데, 많은 식물들이 이런 방식으로 꿀벌에게 의존하고 있어. 꿀벌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멸종한다면 어마어마한 종의 식물이 죽어갈것이고, 그중엔 우리가 먹을것도 많이 포함되어있지.

그게 어느정도냐면 인간이 주로 소비하는 작물들 과반수가 꿀벌 없이는 자라기 어려워. 인공수분이라는게 있긴 하지만 꿀벌의 수분에 비해 효율이 극도로 떨어져서 수요를 따라잡기엔 턱없이 모자라. 인건비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또한 뒤따르고.

그래서 인공적으로 키운 벌을 통해 수분을 유도하기도 해. 이것도 대체 수단이라서 야생벌만큼의 효율은 기대하기 힘들지. 다양한 벌들이 수분을 해주어야 높은 효율의 수분이 이루어 지지만, 인공적으로 조성한 환경에선 야생같이 다양한 종류의 벌들을 한번에 기르다간 결국 손해를 부르거든.



게다가, 장기적으로 보면 식물 뿐만 아니라 유제품과 육류의 생산에도 알게 모르게 큰 기여를 하고있어.

환상향에선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바깥에선 소와 돼지들에게 사료를 먹여서 키워. 이 사료의 재료 또한 꿀벌이 없으면 공급이 어렵지. 옛날 방식대로 키우려면 할수는 있겠는데 효율성이 극도로 낮아질거야. 동시에 옛날 방식의 단점인 사람 먹일 곡물을 먹여 키워야 한다는 부담이 그대로 되돌아오지.

같은 이유로 소에게 의존하는 유제품 또한 생산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것이고.


이정도만 해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 된다는것을 알 수 있을텐데, 확 와닿게 한번 더 짚어줄게.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인류가 10억 이상의 인구를 가지게 된건 겨우 1800년대야. 200년동안 70억까지 늘어났다는건 정말 어마어마한 속도로 인구가 늘었다는거지.

그 이유는 농업의 발전에 있어.
멜서스 트랩 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인류가 가진 자원과 인프라로는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충분히 제공할수 없는 사태를 의미하지.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부각되는건 역시 식량이야. 멜서스 트랩은 1700년대 중후반에 주장되었는데, 당시엔 사시사철 원하는 작물을 재배할수 있게 해주는 비닐하우스 기술과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비료가 개발되기 전이였지. 지금 집중할곳은 비료 쪽이야.

가난한 나라들은 멜서스 트랩이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될 수 있지만 충분히 돈을 투자할수 있는 나라는 비료의 위업에 힘입어 식량의 문제에서 벗어날수 있었지. 전에 비해 생산량이 월등히 높아졌고,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수 있었거든.


그렇다면, 갑자기 비료의 생산이 뚝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생산효율이 급격히 떨어질테고, 늘어난 인구를 다 먹이지 못해서 유래없는 대기근이 찾아오겠지? 인간뿐만 아니라 가축들의 먹이도 부족해져서 식량은 더욱 모자라지지.

가히 멸망이라 불러도 될 정도의 식량난은 인류 문명의 수준을 비료의 개발 전까지 떨어트릴거야.
단순히 생각해 보면 60억의 사람들이 기아로 인해 목숨을 잃을것이라는 뜻이지. 그로 인해 현대 사회를 유지하기엔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지고, 인프라를 유지할수 없게 되므로 기술 수준도 300년 전으로 되돌아 갈거야. 말 그대로 재앙같은 일이지.



이런 재앙이 꿀벌의 멸종을 통해서도 일어날수 있어. 비료의 경우 생산법이 사라진것이지만 꿀벌이 사라진다면 생산의 근간 자체가 박살나버릴테니 비료의 소멸에 비해 피해는 적더라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수도 있어.

물론 생태계는 진화와 분화를 거쳐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겠지. 하지만 인류의 생존은 보장할수 없어. 오히려 쇠락할 가능성이 훨씬, 훠얼씬 높지.


요약하자면 꿀벌이 멸종하면 우리 식탁에 올라올 것들 대부분이 사라질거야. 나머지로 연명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70억의 인구를 받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환상향도 꿀벌의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멸종했을때의 파급력은 손 쓰기 힘들거야.

그나마 위안삼을 점은 꿀벌이 없더라도 쌀의 생산은 가능하다는거지. 쌀은 자가수분 방식을 통해 번식하거든.


... 조금만 쉴까?
입이 아프네.




휴식을 제안한 나는 눈을 굴려서 어느세 내 주위로 모여든 세 요괴들을 바라보았어. 어두워서 똑바로 보이진 않았지만 집중하고 있었다는건 잘 알수 있었지.

어쨌든 난 쉬려고 했지. 하지만 그때 촛불이 탁 켜지더라. 스이카가 켠것이였는데, 진짜 쉴거야? 후회 안해? 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이였어.

환해진 김에 아운과 신묘마루의 표정또한 확인했는데 별반 다를건 없었지. 요괴의 두려움이란 이런걸까?

뭐 어쩌겠어. 솔직히 나도 심심한건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다시금 입을 열어 휴식을 번복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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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편의 프롤로그격 되는 편 이에오

꿀벌뿐만 아니라 말벌도 다룰 예정이지오

개미 이야기를 쓰고 나니 벌 이야기도 욕심이 나더라구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뚝딱 써낸 감이 있어서 재미와 정보량이 좀 적을지도 몰라오

그래서 오류가 생겼을수도 있지오


하루 한편 연재로 돌아오려 했더니 12시 지나서 날짜가 바뀌어버렸네오 흑흑



이야기꾼 시리즈 모음
https://arca.live/b/textgame/26977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