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지독한 악몽이었다.


아니, 지금도 악몽의 한가운데다.


우리들의 땅이 통째로 미지의 땅에 내던져지다니, 세상에 그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것만 해도 이미 충분한 악몽이건만, 이 미친 세상은 참으로 무심했다.


그분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특히 직접 아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기사장' 드라코니스 나인 레온하르트는 그 사실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아샤께서 우리를 버리셨는가?'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드라코니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다.


달이 뜬 밤, 차가운 연무장의 돌바닥에 쓰러지듯 앉아있는 드라코니스는 미친 사람처럼 연거푸 고게를 흔들었다.


수백, 수천만의 목숨을 제물로 강림한 악신과 맞서 최전방에서 싸웠을 때가 차라리 나았나...


아샤는 그들의 어머니였고, 그들의 스승이였고, 그들의 제일의 은인이었다. 그런 아샤께서 어째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 수 없는 일?


드라코니스는 곧 생각하기를 멈추고 옆에 내려놓았던 자신의 글레이브를 들며 일어섰다.


자세를 취하고, 횡으로 한번 휘두른다.


콰아아아아!


고작해야 사람이 휘두른 무기인데, 부채도 아닌 것이 일으킨 바람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돌풍이 휘몰아친다.


'신성 마법은 그대로인가.'


이제 하나를 '알았다'.


아샤께서 버리셨다기엔 신성 마법이 남아 있고, 버린 것이 아니라기에는...


아니, 그만두자.


모르는 것에 자꾸 이름을 붙이려 들면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렇게 생긴 오해는 제 스스로 몸집을 키우며 사람을 망친다.


이게 아샤께 버림받은 것이건, 아샤께서 내리신 시련이건, 아샤께서도 어쩌지 못하는 초월적인 누군가의 소행이건, 모두 모르는 일이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굳이 이것에 이름을 붙이고 생각해서 오해를 키우기보단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


드라코니스는 당장 연무장에서 나가 의회를 소집했다.



'영원의 성벽'의 중심, 의회.


늦은 세벽에 불려왔음에도, 스무 명의 추기경과 '곳간지기' 중 그 누구도 불만을 내뱉지 않은 체 조용히 드라코니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어째서 일어난 일인지 모르네. '곳간지기'또한 그렇듯이 나도 이제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드라코니스조차 그분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말에, 잠시 의회에 깊은 침음이 깔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그것을 알아보려고 하네."


몇몇 추기경들이 그를 처다보았다.


"우리들이 여기서 그분의 뜻을 해아리려고 해 본들,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니 아무짝에 쓸모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답을 찾아야지."


이 말에 어떤 추기경은 작게나마 고게를 끄덕이고, 어떤 추기경은 고게를 숙인 체 가만히 있었다.


"우리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이 다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고, 혹은 우리가 원래 있던 그곳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이것조차도 모르는 일이라면 모르는 일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정적이 깊은 그때, 누군가가 정적을 깨뜨렸다.


"모르는 것을 보았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셋이 있지요."


'곳간지기'였다.


"하나는 그저 생각하지 않는 것, 하나는 두려워하고, 제대로 되지도 않은 이름과 이유를 붙여가며 감정만을 부풀리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기사장께서 말씀하신 직접 알아보는 것... 이렇게 셋 중에."


드라코니스로서는 예상했던 말이 들려왔다.


"일단 지금은, '생각하지 않는 것'을 택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유는, 당장 혼란스러운 마당에 군을 모아 바깥을 탐사하려 들거나 솔직히 말해 이웃들보다는 뒤떨여졌던 우리의 대학당에 지금 당장에 수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지나치게 부담스럽게 들릴 거라는 것이겠지?"


그 말에 잠시 '서가지기'가 움찔했지만,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네. 신민들이 들고 일어날 테지요. 그러니 그런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문제는 일단 잊고, 우선은 신민들을 진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음... 나는 우선 동의하는 바이네. 전쟁에서 이기려거든 가장 중요한 것이 꽉꽉 들어찬 식량창고와 병기고 아니겠는가."


'기사장님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요...'


라는 말을 삼키고서, 대신 '곳간지기'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우선 저희는 신민들을 진정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을 현재의 제1 목표로, 이전에 우리가 있던 세계와 연락하거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 또는 아샤님과 다시 연락하는 것을 제2 목표로 하겠습니다. 다들 의견은 있으신지요?"


이견은 없었고, 그대로 국책이 하나 정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제 1 목표인 민생 안정을 위해 의논을 시작하지."


의논은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야밤에 소집된 의회에서 내려온 공문의 내용은,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아샤께서 우리들을 버리신 것인지, 이것이 시련인 것인지, 아샤께서도 어쩌지 못하시는 누군가의 소행인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걸 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신민에 대한 부탁이니, 부디 그저 두려워하지 말라. 아샤께서 버리신 것이라면 두려워함은 오히려 원수를 즐겁게 하는 것이고, 시련이라면 그분을 실망시키는 것이며, 아샤께서도 어쩌지 못하신 것이라면 그분께 달려가는 것이 늦을 뿐이니 어떻게 하더라도 최악일 뿐이다.]


나머지는 신민들에게 달려있었다.


그리고 추기경들과 두 명의 교황은, 신민들을 믿고 있었다.

강인한 신민들을. 






@Promotion 판정좀. 근데 이거 이렇게 하는게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