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훈의 사신이 희롱당하고 돌아왔다는 카간의 분노에 백광국에서 잡힌 포로들은 모조리 참살당하였다. 카간의 정복욕과 평탄화 작업은 계속되어, 결국 그의 군세는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거용관까지 돌파한 뒤 백광국을 초토화시키며 진군하였다.


 불길이 끊이지 않는 날이 없었고, 잿더미가 휘날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매캐한 연무를 뚫고 내달리는 훈족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백광국의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였다. 그러나 수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던 백광국은 궁지에 몰리자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토성을 쌓고 각지에서 저항하거나, 최후까지 싸우며 아예 화약을 몸에 싸매고 자폭을 시키는 등 발악을 하였고, 그 많은 인구수가 허상이 아니라는 듯 훈의 진군을 2년간이나 묶어두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 한계인듯 하다. 최남단까지 천도하여 농성하던 황실과 전선에 나가있던 분조가 전부 잡히거나 몰살당하였고, 군사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으며 온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불바다와 폐허가 되어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비참한 최후에 울부짖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결연히 무릎을 꿇고 앉아 훈족마저 감탄시킨 의인 또한 여럿 존재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나라로 망명하기 위해서 수레를 타고 가던 백광국의 황제가 케식 다섯에게 잡혀 몸부림칠 동안 그는 케식들에게 물었다.


"그래, 그 카간이라는 자를 좀 만나보자꾸나! 그자는 어디 있는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쉬어버린 노인의 목소리에 케식 한 명이 별 감흥이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 세상 반대편에."


백광국의 황제는 그 말을 들은 뒤 검은 피 한 되를 토하며 절명했다. 황제였던 자신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는 데에 대한 알량한 울분이였을까, 아니면 패전의 책임에 대해 자신을 책망하며 최후를 맞은 것일까. 다만 후대의 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리라.


백광국 37대 황제 영제靈帝, 졸卒.

백광국, 망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