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던 그리스의 신들은 신도들에게 등을 찔렸지.


 그들의 신도들은 자신들의 신 대신 사막 땅에서 온 성자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신앙을 잃은 그들은 신이라고조차 할 수 없는 문화적 상징이 되어 연명 중이야.


 이제 아폴론은 없고, 신성한 월계수 잎은 시들었으며 신탁의 샘물은 영영 말라버렸어.




북쪽 땅의 신들은 또 어떻고. 그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야. 


기나긴 겨울과 기근이 휩쓸고 지나간 후, 복수에 불타는 장난꾸러기 신이 제 자식들을 이끌고 쳐들어오며 최후의 전쟁이 시작됐어. 


지혜로운 오딘은 늑대 밥이 되고, 토르의 굳센 근육이 세계 뱀의 맹독에 딱딱하게 굳은 후 수르트가 불타는 검으로 대지를 가르며 바이킹 전사들의 시대는 끝이 났지.




그리스와 바이킹의 신들은 저 서역 중동의 토착신들에 비하면 그나마 행복한 최후를 맞이한 거야.


 신들의 왕, 이집트부터 일본까지 자신의 신앙을 퍼트린 위대한 바알 신은 유대 민족의 유일신에게 패배해 갈기갈기 찢겼고, 그 조각들은 흉측한 파리와 혐오스러운 거미, 그 외의 온갖 추물들이 되어 마계에 처박히고 말았어.


인간에게 지혜와 농업을 선물한 다곤 신의 운명도 마찬가지였어. 인간들의 손에 심해로 내던져진 후 한 소설가에 의해 다시 땅으로 올라온 그는 인간과 물고기가 섞인 흉측한 거인이 되어 있었지.




저 먼 아메리카 대륙, 태양의 땅의 신들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어. 


위대한 재규어와 깃털 달린 뱀은 대지가 된 거대한 악어를 진정시키고 태양을 움직이기 위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들의 피를 마시고 심장을 먹으며 뼈로 탑을 쌓았지만, 커다란 배를 타고 온 이방인들이 신도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며 결국 사라지고 말았지. 피를 요구하는 잔혹한 태양과 함께 말이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곳은 여기 뿐이야. 다른 곳은 없어. 


바깥 세계에 계속 있다가는 결국 사라질 운명이지. 운이 좋아 봐야 신이 아니게 될 뿐이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바깥 세계에서 한때 신도였던 아이들을 지켜보며 사라지는 운명을 택할래? 아니면 우리와 함께 신이 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세계로 가고 싶어?


네 대답은 잘 알겠어. 그럼...


잊혀진 자들의 낙원에 온 것을 환영해.






신과함께 이승편 보고 갑자기 생각나서 써봤음


한국 전통신앙의 다 잊혀져가는 가택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 옛날에는 집집마다 가택신을 믿어서 강했지만 그게 사라진 지금은 용역 깡패한테도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약해졌다는게 동방이랑도 와닿는 느낌이더라고


앞으로도 나올 일은 없겠지만, 잊혀진 한국의 가택신들도 환상향에 가 있을까, 그곳에서 동병상련인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