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다. 방금 떨어졌어.”

 

린노스케가 마리사를 무릎에 앉혀놓고 생각하기로, 이 자그마한 아가씨는 도저히 유성우를 즐길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보고 싶다며 조르던 건 언제쯤이었을까. 하늘이 노을빛이 되고, 굳은 호박색 눈동자가 슬프게 밤하늘을 훑도록 내버려 둘 작정이었으면 망원경도 내버려 뒀을 텐데.

 

도구의 이름과 용도를 아는 정도의 능력.’

 

이런 일에 써먹기엔 참 형편이 좋지, 린노스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밤하늘을 손바닥처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마리사는 필요하지 않은 걸까. 늦게 깨어있을수록, 여명이 다가올수록 늘어지는 어린아이 특유의 감정선을 잘 고려해야만 했다. 워낙에 별을 좋아하는 아이라 조금은 안심했건만... 정작 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애도하기 바쁘다니.

 

물론 그 이유라고 말하는 것도 지극히 어수선했다. 아이라서 용인되는 뻔뻔함이 대화하는 와중에도 부실한 논리에 끊임없이 살을 덧대었기 때문에. 하지만 누구나 그렇다, 어른은 단지 그 과정이 느리고 더 완고할 뿐이라고 린노스케는 믿었다.

 

이 속도라면 별이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말해놓고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에 푹 빠진 마리사야 둘째치고, 린노스케는 천문학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다. 그러므로 마리사가 한 말이 비록 공상처럼 느껴질지언정 진짜로 들어맞을지도 모른다. ‘도구’- 그래, 기껏 준비해온 망원경이 있었지. 린노스케는 초점이 엇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맨눈과 번갈아 가며 한참을 바라본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별은 유성뿐이었다.

 

마리사가 뒤에서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나도 보게 해줘.”

 

나사 건드리면 안 된다.”

 

맡겨버린 시점에서 이미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뒤로 무엇이 일어난다고 해도 노심초사할 생각은 없었다. 수집품으로 따지자면 더 괜찮은 물건은 창고 안에 자그마한 손이 닿지 않는 자리를 찾아 깊게 잠들어 있으므로. 마리사가 조금 더 크면, 더욱 높거나 은밀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지붕이나 다락방에 얹는다면 어쩔까?

 

아하하하하하!!!

 

하나도 안 보이잖아. 코우린, 도로 옮겨줘.”

 

아니지, 언젠간 사다리를 들고 올지도 모르니까. 마리사는 누가 뭐라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언젠가 혼자서 지붕에 닿을 수 있다면, 눈도 더 높아져서 훨씬 좋은 망원경으로만 만족하리라. 싸구려 망원경과 유성우를 잊어버릴 만큼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되겠지.

 

잊지 않고 취미로나마 간직한다면 감개무량하겠지만.

 

숲을 보고 있었니?”

 

떨어진 별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런, 또 이 이야기인가.

 

하나라도 찾아내면 대박이라구. 다시 하늘에 올리면...”

 

별이 되살아난다 이거지.”

 

지금의 마리사를 보면 지금의 추측이 기우는 아닌듯 싶었다

 

나쁘지 않아.”

 

진짜?!? 같이 찾아주는 거야?”

 

이렇게나 순진한 기대를 보고 차마 시간이 나면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리사는 이미 깨닫고 있다. 직접 나서서 불길한 추측에 쐐기를 박아주지 않아도, 이미 주변의 숱한 우려와 다른 곳을 향한 기대로부터 자연스럽게 터득해버렸다.

 

그래도 내일까지만이야.”

 

“...”

 

모레부터는,”

 

다 알아.”

 

답지 않은 표정을 지은 마리사 뒤로 별들이 소리 없이 쏟아져 내렸다. 조용하게,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목소리로, 작은 개미가 굴로 기어가듯이.

 

이제 여기로 오지 말래. 아빠가.”

 

차라리 흐느껴 울도록 물결치는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었다. 마침내 소금기 짙은 눈물이 떨어지지만 흘러내리지 않았다. 몇 방울 떨어지다가 눈가를 붓게 만들고 옷자락에 맺히는 지독한 서러움이었다. 구슬이 옷자락을 구르다가 우거진 풀숲에 떨어질 때,

 

모레는 코우린도 만나지 말라고 할 거야.”

 

마리사는 침착하게 울음을 그쳤다.

 

추측이잖아.”

 

밤중에 깨서 들었어.”

 

“...”

 

아빠는 항상 그랬으니까. 다 누리게 해 준다면서 전부 뺏어가.”

 

그녀의 아버지는...

 

마리사가 듣지 못하는 이야기만 해도 얼마나 많은 기대를 품고 있을까. 마을에서 제일가는 호상(豪商)의 딸이 머리도 영특하다는 것이며, 말괄량이지만 갖은 노력과 날로 막중해지는 씀씀이에 부응해 제법 아가씨답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괜찮다는 말조차 실례인 집안과 인연이 닿았다

 

“...시집가기 싫어.”

 

달리 말하면, 그에게 마리사를 맡긴 것도 이런 흐름에서였다. 린노스케를 신뢰했기 때문에 무엇이 일어난다고 해도 노심초사할 생각은 없겠지. 별을 좋아하는 눈빛이 그녀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더라도, 공부를 빼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해 주는 것도, 심지어 아버지 대신 마리사의 응석을 받아주더라도 작은 아량으로 덮어줄 수 있는 일이었다.

 

도망가고 싶어.”

 

“...”

 

도와줘, 코우린...”

 

“...”

 

이 모든 엇갈림은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그저 딸에게 조금 더 좋은 미래를 주고 싶어 했을 뿐이다.

 

마리사.”

 

“...?”

 

그렇다면 린노스케도, 마리사에게 조금 더 좋은 미래를 주고 싶어 했을 뿐이겠지.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창창한 앞길을 걸어갈 저 아이의 날들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성우가 그치고 있으니까 일단은 돌아가자.

 

그리고 내일이 되면 별을 찾으러 나설게

 

너는 집에서, 튼튼한 빗자루랑 어머니의 공책을 찾아.

 

거기엔 대단한 마녀의 유언이 적혀 있어.

 

하루 동안 어떻게든 해석해 봐. 안 된다면 새로운 길을 찾도록 해.

 

만약 성공한다면... 이틀 뒤 다시 이곳에 오게 되겠지.”

 

“!”

 

마리사가, 거상의 딸이, 그리고 마녀의 딸이 유성우를 바라보며 마을로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하늘엔 총총, 눈물지으며 쏟아지는 별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말을 맞이하건 내일부터 다시 태어날 소녀의 앞길을 무리 지어 칭송하고 있었다.

 

 

But when they drop and die

No star is lost at all

From all that star-sown sky.


그러나 별들이 떨어져 죽어도

별이 총총히 박힌 저 하늘에서는

잃어버리는 별 하나 없네.’

 

-A.E 하우스먼, ‘일곱 번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