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34년 11월. 환상향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날이었다.


이상하리만큼 평화롭고, 이상하리만큼 지루한 요즘날들.


홍백의 무녀와 평범한 마법사의 나이는 이제 불혹을 넘긴지가 꽤 되었다.

아래의 아이는 새로 태어나 이제 9살이 되었으며, 환상향의 모습은 10년 전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꼭 그럴때 사건이 터진다.


들려오지 않는가? 고통의 몸부림이?

저 환상향의 구석에서 요괴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환상향의 외각, 그것도 하쿠레이 신사의 반대편 끝 부분에서 동물 요괴들이 대량 학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극히만도 평화로웠던 나날이 무색하게도 그 죽어가는 숫자가 날로 갈수록 계속 늘어나는 것이, 모두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누구의 짓인가? 환상향에는 이런 반동을 꾀할 자가 많이 없었다.


아마노자쿠의 소행인가? 아니, 이런일을 할 만한 배짱이 있었으면 이미 처형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겠지.

그렇다면 달의 소행인가?

그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 하겠지.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유카리는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인간 마을은 난리가 나고 있었고. 늙은 하쿠레이 무녀가 상황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인간 마을은 안전합니다!"


마법에 숲에 가보니 그곳에는 텐구 요괴들, 캇파들, 츠쿠모가미들을 비롯한 잡다한 요괴들이 마리사의 집에 피난을 와 있었다.


영원정에 가보니 토끼 요괴 둘이 없더라. 안에서는 월인 두명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


텐구들의 본거지는 이미 작살이 나 있었고 누가 봐도 인구수가 줄어든 게 보였다.


서둘러 문제의 현장으로 가 보니, 그곳에는 아무리 봐도 생명의 기운이 없더라. 

누가 봐도 달의 소행이었다.


하지만 달의 소행이라기엔 무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강하지 않은가? 아무리 달의 도시가 강하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들어나는 일을 벌이는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혹시나 살아있는 자가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살아있는 자는 없었다.


모두가 익히 들어왔던 자들, 지난 수차례의 이변에서 함께 이변을 해결했던 자들, 이변을 일으켰던 자들, 함께 동고동락 했던 자들, 거의 대부분이 싸늘한 시체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을 벌인 자를 엄벌하고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었다.


그때, 누가 틈새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열어 재끼더니 공중에서 현현하였다.


"누구야? 이런 짓을 벌인 놈은?"


유카리는 달의 도시에서 본 녀석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딱 보아도 달의 공주나 월인이 나타나겠지. 그들은 마음씨가 좁으니까 말이야. 확실히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아니면 누가 달리 있겠는가?

하지만 등장한 자는 모두의 예상을 깨부시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등장한 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츠쿠모가미인가? 그것은 또 아닌 것이, 요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순수하게 물건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기괴하고 비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꿈과 같나니, 호접지몽이 아닌가?"


"이런 짓을 저질러 놓고선, 무슨 말을 하는거야?"


저 망나니가 하는 말을 듣자하니, 속이 터져 유카리는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배짱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이 자가 죽인 생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태평 좋은 말만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우리가 이곳을 파괴할 수록, 이곳은 늘어만 가는게 아니겠소? 사실 이건 누군가의 꿈이오. 꿈을 꾸고 있는 자가 달리 있겠냐마는."


"그건 무슨소리야?"


유카리는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때는 1885년 하쿠레이 대결계가 만들어질 때였지."


저 기계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당신네들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결계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치명적이었소."


"환상은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축이오. 3차원 세계 위에 존재하는 하나의 축에 불과하단 말이오."


"더 말해보시지. 죽기 전에 마지막 유언으로 알아둘게."


"우주가 4차원 세계중 하나의 3차원 세계에 대응한다면, 환상향도 하나의 3차원 세계에 대응해야겠지. 그 4차원 공간 안에 있는 8개의 3차원 세계중에."


"우주는 무한이 넓은데, 환상향은 매우 조그마한것이 아니오? 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환상향이 분기하기 시작했소이다."


"뭐라고?"


유카리는 지금까지 자기가 들은 것을 믿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거한 환상향의 수가 10만개, 지옥의 수가 200여개, 명계의 수가 100만개, 마계의 수가 100개, 달의 도시의 수가 250개요."


"아니..? 그 많은 환상향이 어디서 나오는데?"


"내가 말했잖소, 당신들에게서 분기했다고."


"허.. 참."


유카리는 믿지 못했다. 환상향은 하나가 아닌가? 그것은 자신이 익히 믿고 있던 사실이 아닌가?

저 어이없는 주장을 하는 놈은 자신이 그 많은 이계들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해괴망측한 주장이 아닌가.


"환상향은 사람 수많큼 있다. 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아니, 전혀"


이를 들은 물건은 매우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해학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비꼬는 투로 물어보았다.


"여기 세계는 도대체가 무얼 듣고 살아온 것이오? 아는게 도대체가 하나도 없구만."


"동작금지. 한 마디만 더 해도 죽여버릴거야."


유카리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틈새로 그 주위에 살인적 탄막을 배치하고 수틀리면 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할 가치도 없소이다. 그냥 자기 소개나 하고 빨리 죽여주겠소."


날아온다. 일반적인 대요괴 쯤은 끔살당할 만한 수준의 탄막이. 그녀의 진심을 다한 공격 한번 맞으면 살아 돌아갈 자가 없었다.


"해치웠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 대사를 입 밖으로 내 놓으면 좋지 못한 일이 일이 일어난다는걸 잊어먹었다.


탄막이 생성한 연기가 가라앉을 즈음. 그 결과는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란!"


우리 식신 란이 두 팔을 활짝 핀채 배애 구멍이 뚤려 피가 철철 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번... 다시.... 우리.. 주인님을.. 커헉."


분명 저럴리가 없는데, 온몸이 산산조각나도 끄떡 없던 란이 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있었다.

안돼. 구하러 가야해. 그렇지만 저 공격을 내가 맞으면? 내가 저 꼴이 되는거 아닌가. 근데 구하러 가야돼.

저 공격을 여러번 쓸 수 있진 않을거 아냐.


"란! 란! 정신차려!"


"유카리님... 고마웠습니다...."


유카리의 품에 앉긴 란이 조용하게 눈을 감는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주변이 다 오그라들때까지.


"안돼... 안돼..!"


이 현실을 믿을 수 없는 유카리가 머리를 쥐어짜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유카리에게 거의 반쪼가리가 아니었던가. 뭐? 죽은 요괴는 살릴 수 없어? 웃기지마. 분명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야.


"안돼... 분명 살수 있어... 그지?"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너무도 적막한 현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것이다.. 

아아, 이 현실은 너무나도 비참하도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 모든 원인에는 저 자식이 있었다.


 "왜.... 왜.. 이런일을.. 하는거야..?"




"소개하지. 나는 3차대전의 폐허에서 태어난 망령. 유키토라고 하네. 

나는 그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오.

안녕히 계시길."


그와 동시에 그녀를 포함한 모든 환상향의 생명들이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유카리와 3현자들이 이룬 거의 모든 업적.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땅. 요괴와 신의 낙원. 무엇을 위해 이렇게 긴 시간을 매달렸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비참하게 쓰러져야 했는가?


그렇게 많은 환상향의 자신들이 왜, 저 생명만도 못한 놈에게 바스라져야 했던 것인가? 유카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를 하기 전에. 그녀의 육체는 쪼개졌으니까.




.....




"부히힛!! 돌아왔어? 어때 임무는."


5평의 작은 집에서 혼자가 아니면 움직이지조차도 못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육중한 사람이 바로 그의 주인이다.


"예. <<환상향개량계획>>은 한 절반정도 성공 한 것 같습니다."


"부히힛!!!"


실로 역겨운 웃음이 온 천지에 다다랐다. 아마. 그에게 죽은 수십만의 유카리도 역겹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인간은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실상 불구의 신세였다. 아니, 불구의 인생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건, AI에게 의존하기, 이런 무지몽매한 사람이, 한번의 명령으로 수억을 죽인 살인자다.

그렇다면 이 자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좋아!! 이렇게 온 세계가 나를 좋아하는 유카리짱으로 채워지는 거야!!"


이날, 이 우주에는 인간의 탈을 쓴 돼지 한 마리밖에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