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흔히 역사란 완벽한 객관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으나, 그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바르지도 않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그 축적에 참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즉, 그 행위를 연구하는 당사자들만 하더라도 진공 속에서 행위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사회의 문맥 속에서, 또 그것에 충동을 받으면서 행위하고 있었던 것 이···.
 
..............
........
..

'···과연, 흥미롭군. 이게 [바깥 세계]의 역사라는 건가?'

차륵~.

남자는 조용히 읽고 있던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꽤나 흥미로웠다.

저자의 역사의 주관적인 견해가 많이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이곳에선 알 수 없는 [바깥 세계]에 관한 역사가 상당히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기에 책을 읽는 것을 쉬이 멈출 수가 없을 노릇이었다.

모르는 세계(世界). 모르는 역사(歷史). 모르는 종교(宗敎).

수많은 모르는 지식들이 하나의 "책"이란 형태를 하여 지식을 전해주고 있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곳은 환상향(幻想郷).]

상식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계라고 불리는 곳.

시간은 흘러 세상은 미지(未知)를 잊고, 과학을 찬미(科學)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세계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도 분명 남아있었다.

바로 [신]과 [요괴], 수많은 개념과 도구들이 바로 그 대상이었으니.

그들은 인류라는 한 세계로부터 부정당하고, 해석 당하고, 경멸당했지만··· 결국엔 최후에 도달해 남은 힘을 끌어모아 환상향이란 "인외"의 낙원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인간이 주가 아닌 신과 요괴들이 지배하는 세상. 그것은 분명 구조상으로도 평등한 세상이 될 순 없을 터.

"······."

차르륵~ 차륵···.

그리고 그러한 세계에서 인간(人間)도 인외(人外)도 되지 못한 어중간한 [하프]란 존재로서 성립하며, 자그마한 가게를 연체 어디선가 주운 세계사 책을 주구장창 읽고 있는 이 또한 있었다.

이름은 모리치카 린노스케(森近 霖之助).

가게의 이름은 향림당(香霖堂)으로, 환상향이 아닌 [바깥 세계]에서 가끔 흘러들어오는 잡다한 잡동사니들을 파는 상점이었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조용한 숲속에서 향림당을 차린 뒤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 관한 평화로운 이야기···.

콰앙-!!!

"여어~! 내가 왔다제! 코우린!!!"

"후우···."

···를 희망하고 썻던 일기장였었다.

아무래도 인외의 낙원에서 평화로움은, 기대하기 힘든 개념인 모양이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말이다.

"마리사···,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아도 다 들리니 조용히 해라. 그것보다 문을 발로 차서 여는 행위는 그만 좀 지양해줬으면 좋겠군."

"오! 기억해두겠다고~!?"

"저번 주에도 그렇게 똑같이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만···."

한 소녀가 기운차게 향림당의 앞문을 발로 차 열어버리며 가게 주인의 애칭을 큰 소리로 부르자, 린노스케는 인상을 찌푸리며 멋대로 가게에 침입한 소녀를 귀찮다는 눈빛으로 쳐다봐 본다.

금발(金髮)과 금안(金眼)을 가진 앳된 외모에다가, 마치 자신의 집에 찾아왔기라도 한 것 마냥 의기양양한 태도.

상당히 왜소한 소녀의 체형과 더불어, 복장 역시 할로윈을 떠오르게 하는 검은색 마녀 모자와 프릴 가득한 치마를 입고 있어··· 만약 환상향 밖의 사람들이 본다면 사탕을 얻으러 온 소녀라고 생각할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세계 환상향.

소녀는 "마녀" 변장 따위가 아니라, "마녀" 그 자체로서 활동하며 마법을 이용해 이변을 해결하는 인간, 평범한 마법사 "키리사메 마리사(霧雨 魔理沙)"였던 것이다.

'···아마, 나머지 페이지는 오늘 다 못 읽겠지.'

덥석-.

조금 전까지 계산대에 위치한 의자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남성은 폭군 같은 등장에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읽고 있던 책을 거꾸로 뒤엎어버리고 만다.

딱히 소녀가 문을 발로 차 집중력이 깨져버렸다던가,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에 읽던 책을 뒤덮어버렸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수년간 축적된 경험을 통해 눈치채버린 것뿐이다.

이 말괄량이 소녀가 가게에 들어온 이상, 한동안은 자신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리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은 무슨 볼일이지? 또 [미니 팔괘로] 의 수리라도 부탁하려고 찾아왔나?"

그리고 그러한 추측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 불변의 법칙.

"그냥, 심심해져서 찾아왔다제!"

"······."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 한창 장사 중인 가게에 막 들어오지 말았으면 하는데.

린노스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마리사에게 대꾸하려던 것을 애써 목구멍 안으로 넘겨버린다.

마리사는 그런 남자의 태도에 익숙하다는 듯, 가까이 다가가며 또다시 주저리 수다를 걸어냈고 말이다.

이러한 관계였다. 옛날부터 마리사와 자신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마리사가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다는 듯 항상 내가 받아주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 마을에서 가장 크게 도구 점을 운영하던 곳에서 수행하던 와중 만난 아이가, 이런 형식으로 여태까지 인연이 이어 나가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거기다 후에 그 아이가 환상향에서 이변(異変)을 해결하는 마법사로 활동하고 다닐 줄은? 분명 키리사메 마리사라는 소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준다면 놀라서 까무러칠 것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누구의 말마따나, 정말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 힘든 무언가이리라.

마치 어느 날 내린 가랑비(小雨)가 땅에 스며들어 식물의 싹을 피우게 할지, 어딘가에 흘러 내려가 커다란 하나의 호수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뭐, 어찌 됐든.

"여기서 심심하다고 말해도 말이지··· 뭣하면 가게 청소라도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에에··· 그건 싫은데, 또 내가 없는 사이 주운 잡동사니라도 있을 거 아니야? 그냥 새로 주운 신기한 물건이나 보여달라제!"

"어이,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엄연히 영업 중인 가게다. 정 그렇게 궁금하면 물건을 사면 되는 문제가 아닌지?"

"어차피 나 아니면 이런 숲속에 있는 가게는 아무도 안 오니 상관없지 않아?"

"······."

그걸 장사하는 본인 앞에서 말해도 되는 거냐···?

마리사의 본질을 꿰뚫는 단순명료한 말에, 린노스케는 입을 다물고선 침묵을 유지하기로 마음먹고야 만다.

그야, 손님이 없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으니까.

이곳은 인외의 낙원 환상향. 평범한 인간이 함부로 숲과도 같은 밖을 돌아다니면 요괴 같은 것들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나마 안전지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 마을]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사람들이 고작 신기한 잡동사니를 구매하러 이런 숲속에 있는 가게에 직접 찾아올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 일 수밖에?

결계로 이루어진 환상향에 어쩌다 흘러들어온 [바깥 세계]의 물건을 수집하기 위해 인간 마을 밖에 가게를 지은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곤 하나, 이래선 주운 물건을 장사하는 처지에선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모아둔 돈은 많아, 돈이 궁하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장사가 잘 안된다는 것을 타인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가슴이 꽤 아파져 왔다고 할까···.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때론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을 아프게도 만드는 법이었다.

"···하나, 어쩔 수 없지. 알았어. 대신 저번 주처럼 마음대로 물건을 훔쳐 가 버리지는 말아라."

그리고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린노스케의 쪽.

정확히는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마리사가 피곤하게 굴 것을 알았기에 달래주는 쪽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어느 날엔 향림당에서 자고 가겠다느니 뭐라느니··· 여러모로 곤란하게 만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미리 달래주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물론! 애초에 나는 물건을 훔쳐 간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빌려 간 것 뿐이다제!'

"마리사. 물건 주인의 허락 없이 멋대로 가져가는 건 "훔치는"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이미 약속했으니 억지 부리지 마라."

뒤적뒤적.

린노스케는 마리사의 말 같지도 않은 변명에 혹여나 그녀가 몰래 물건을 훔치지 않을지 예의주시하며, 그녀가 흥미 있어 할 만한 구석에 쌓아둔 물건들을 대충 뒤적거려본다.

물론 린노스케가 예의주시하든지 말든, 마리사는 그 물건을 찾는 잠깐의 시간을 기다리기 심심했는지, 가게 내부를 느긋이 걸어 다니며 먼지가 쌓인 물건들을 천천히 관찰하였고 말이다.

향림당에 마지막으로 들린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 못 보던 물건들이 꽤 늘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으음, 이번에는 뭔가 커다란 것들 위주로 가져왔구만?'

스으윽~.

향림당에 새로 들어온 물건들을 손바닥으로 이용해 쓰다듬는 것으로 촉감을 느끼며, 속으로나마 그렇게 생각해보는 마리사.

오른쪽 위에 [세제를 넣으시오]가 적힌 가운데 동그란 원이 뚫린 네모난 상자, 마찬가지로 두꺼운 유리와 기다란 더듬이가 달린 상자와, 둥근 철망 사이 커다란 날개가 잔뜩 달린 괴상한 기계 등등··· 인간 마을에선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외형의 물건들이 향림당엔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린노스케의 말론 [전기]가 있어서 사용할 수 있다던데··· 인간 마을에서도 극소수의 부유한 집만이 밤에 아주 잠깐 전등을 쓴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여기에 있는 대부분은 써먹기 힘든 고철 더미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가끔 바깥 세계와 관련된 책이나 커피와 같이 그럴듯한 기호품을 구해내는 걸 보면, 아예 쓸데없는 짓만 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대부분 행위는 쓸데없는 짓만 한다 생각해도 무방하였다.

그렇지만.

'뭐, 내가 보기엔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또 있는데 말이지···.'

과거를 곱씹듯 이런 잡다한 물건들이 적었던, 어릴 적의 향림당의 내부를 떠올리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미소를 짓고야 만다.

나쁘지 않았다. 이런 잡동사니가 가득한 가게도. 무뚝뚝해 보이지만 늘 다정한 린노스케도.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녀의 마음에 콕 들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그 누구도 하지 않는 행동을 묵묵히 계속해내고 있는 것이, 환상향에서 마녀를 지향하고 있는 자기 자신과 묘하게 겹쳐 보여 그런 걸지도 몰라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니면 린노스케란 인간 자체에 호감을 느끼고 있던 걸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마도구인 [미니 팔괘로]를 만들어 준 것도 다름 아닌 그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호의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거다.

그래, 절대로 린노스케를 이성적으로 본다던가, 그를 친구 이상으로 상상한 적은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친구]의 관계이니까.

···아마도.

"아, 찾았다. 어제 주운 이거라면 꽤나 신기할지도 모르겠군."

바로 그때, 상자에서 무언가 찾은 듯 천천히 꺼내는 린노스케.

"읏?! 으윽, 크흠! 뭔가 재밌는 거라도 이번에 주운 거야?"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물건은 맞을 테지.'

탑-.

구석에서 꺼낸 물건을 들고 린노스케는 담담하게 마리사 쪽에서 잘 보이도록 카운터 앞에 물건을 올려다 놓고선 손을 떼버린다.

""······.""

이내 미리 짜맞추기라도 한 듯, 일어나는 서로의 무거운 침묵.

난생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그것은 덜자란 수박처럼 동그란 핀이 달린 자그마한 초록색 쇠공으로서··· 뭔가 앞서 가게에 전시되어 있던 커다란 물건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근본적으로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혹시, 뚜껑을 열면 안에 커피 같은 거라도 들어있는 걸까? 뭔가 장식품 같은 것 같지는 않고···.

"어음, 역시 뭔지 모르겠다제. 코우린···."

수 분 동안 린노스케가 꺼낸 물건에 대해 추리했지만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한 마리사는, 자신이 졌다는 듯 답을 알려주라며 그에게 물었으니.

"당연하지. 이건 나도 어제 처음 주워본 물건이니까. 능력을 사용해서 확인한 결과 이건 [수류탄]이라는 물건인데 상대방을 제압할 때 쓴다는 모양이다."

"제압? 바깥 세계의 탄막 도구라도 되는 거야? 겨우 이 자그마한 도구로 어떻게 사람을 제압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든데···."

"글쎄, 밖에서 스펠 카드룰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으니, 단순한 장난감일지도 모르겠지. 무게도 적게 나가는 것을 보아 그다지 값어치 있어 보이는 물건 같지는 않다만."

톡- 톡-.

린노스케는 별거 아니라는 듯, 탁자에 올려진 [수류탄]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그렇게 답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간단했다. 도구의 이름과 용도를 아는 정도의 능력. 말 그대로 도구의 이름과 용도를 알아낼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 쓰기 편한 간단하기 그지없는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름]까지는 괜찮지만, [용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은 애매하게 설명해줘 오히려 본래 용도를 헷갈리게 한다는 점.

예를 들어 악기와도 같은 물건은 [음파를 이용해 사람들을 자극하는 용도]와 같이 뭔가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도록 풀이 된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수류탄]이라는 물건 또한 상대방을 제압하는 용도로 설명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쓰는 장난감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연막탄과도 같은 용도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참에 한 번쯤은 실험 삼아 써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어제 주운 [상자]에 있던 것 중 하나를 꺼내 봤다."

"오오, 나쁘지 않네. 근데 이거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는 아는 거야?"

"나도 모른다. 대신 아마 이 동그란 핀을 잡아당기면 작동하는 원리 같은ㄷ···."

"자, 잠깐!?! 스톱!!!"

""···?!""

지이이--- 슈욱-!!

갑작스레 허공에서 틈새가 갈라짐과 동시에, 갈라진 틈에서 뻗어지는 다급한 누군가의 손.

그 손은 이윽고 린노스케가 핀을 뽑은 수류탄을 잽싸게 낚아챈 뒤, 내부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틈새 속으로 던져버리는데···.

콰아아아앙-!!!!!

"당신? 제정신이야? 수류탄을 코앞에서 사용하는 미친 짓을 벌이고?"

틈새 너머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를 끝으로, 갈라진 허공의 틈새 사이로 화려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금발 머리의 여성이 소리치며 나타나 버린다.

상식적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명백한 이상 현상.
 
하지만 린노스케는 눈동자를 조금 크게 뜨며 눈을 깜빡거릴 뿐, 이렇다 할 강렬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야 린노스케는 이 여성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압도적인 힘을 가진 대요괴이자, 요괴의 현자라고 불리며, 환상향의 창시자 중 한 명 등등, 온갖 그럴듯한 명칭이랑 명칭은 다 붙은 강력한 요괴.

[야쿠모 유카리(八雲紫).]

그 외의 사항으론 가끔 향림당에 방문해 내가 주운 스토브를 인질로 연료를 강제로 물물교환한다는 특이점이 있으나, 불길하게도 늘 어디선가 만연히 웃는 표정을 지은 채 나타나 말을 걸기에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 존재였다.
 
놀라지 않은 것도 그녀가 이미 여러번 허공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 밥을 먹다가 옆에서 나타난다던가, 책을 읽는데 다음 페이지에서 손이 나온다던가, 잠자리를 들기 위해 불을 끄자 뒤에서 튀어나온다던가··· 나이에 맞지 않는 그녀의 장난 덕분에 평소 담력이 높아지지 않으려야 않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갑작스러운 그녀의 방문은 더더욱 불편했지만··· 옆에 있는 마리사 역시 같은 상황이었기에 그녀에게만 뭐라 할 수 없어, 그냥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리기로 한다.
 
속 마음을 까놓고 말하자면, 그냥 둘 다 가게에서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말이다.

"···유카리? 갑자기 무슨 일이지? 겨울에 사용할 스토브의 연료는 아직 안 필요하다만?"

"아니, 그걸 말이라고···! 내가 인사차 여기에 들리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자네가 멋대로 물건을 가져가 버렸으니, 이쪽이 결과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으으윽! 이래서 비문명인들이란!"

성숙한 외모와 달리 린노스케의 말에 가슴이 답답하기라도 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팔을 붕붕 휘두르며 인상을 찌푸리는 유카리.

그녀는 이래 봬도 수백 년을 살아간 대요괴이기에, 수류탄이라는 개념을 바깥 세계의 인물만큼 잘 이해하고 있어 린노스케의 무지한 행동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해 위험해 보이는 물건을 "물물 교환"이라는 형식으로 빼돌렸던 것인데, 하필 방문하지 않은 요 며칠 사이 저런 걸 주워서 실험하고 있으니 짜증이 나지 않으려야 짜증이 나지 않을 수밖에.
 
"그래서? 우리가 핀을 뽑은 수류탄은 어떻게 된 건데? 뭔가 엄청난 게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제!"

"아, 그전에 방금 자네가 멋대로 가져간 물건은 나중에 제대로 값을 치러졌으면 좋겠는데. 유카리."

"으으으으윽!!!"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유카리의 입장.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이들은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서 실험하고 있던 흥미로운 도구가 뺏긴 상황일 뿐이었기에, 배부른 소리를 내뱉기만 하며 유카리의 열을 올리기만 하였다.

인간인 마리사 또한 괴이한 온갖 이상 현상들을 해결하며 유카리를 몇 번이고 만났기에, 갑작스러운 유카리의 등장 자체에 놀라는 듯한 깜짝 낌새는 일절 없었다.
 
오히려 날파리가 끼어들어 귀찮다는 태도에 가까웠으니.
 
'···그냥 저 두 사람 다 상공 10km에 한번 던져버리고 올까?'

유카리는 목숨의 은혜도 몰라봐 주고 저런 말을 내뱉는 것들을 어떻게 해줄까도 싶었지만, 이내 현재 자신이 지닌 지위를 생각해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살의를 어떻게든 꾸역꾸역 집어삼켜 평정심을 유지해내고야 만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너무 함부로 힘을 휘두르고 다니면 품위가 떨어지는 법.
 
진정한 강자라면 이럴 때일수록 감정에 휘둘러지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하여간, 이래서 방심할 수 없다니까. 일단 거기 상자에 있는 건 몽땅 압수야."

"뭣이!? 자, 잠깐 그게 무슨 소리···!'

파앗-! 지이이잉---- 슈웅!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것으로 [수류탄]을 꺼낸 상자의 바닥에 블랙홀과도 같은 틈새를 열어 통째로 상자를 집어삼키게 만드는 유카리.

린노스케는 그런 일방적인 그녀의 횡포에 한마디를 하려 했지만, 어딘가 왠지 무섭게 미소 짓고 있는 유카리의 표정을 발견하고선 즉시 입을 다물어버린다.

갑과 을이라는 것은 원래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하프]란 존재로서 환상향을 오랫동안 살아온 린노스케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어쩌겠는가? 아니꼬우면 대요괴가 되어 불만을 말하면 된다. 문제는 린노스케는 대요괴가 아닌 평범한 인간과 요괴의 하프라는 사실 뿐.

평등이라는 것은 원래 힘이 있어야 성립되는 개념이었다.

"후우, 아무튼··· 일단 위험한 물건들은 압수했으니 이번은 그냥 넘어갈게. 영 좋지 않은 게 환상향에 흘러들어와 버렸는걸."

"끄으응··· 나름으로 열심히 가져온 물건들인데 말이지."

"뭐야, 압수당하는 이야기로 흐름이 바뀐 건가? 그게 그렇게 엄청난 뭔가라도 되는 거였어?"

옆에서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한두 개 정도 챙길걸. 그랬다제~." 라며 안타까운 듯 중얼거리는 마리사.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당하게 대가를 주고 물건을 구매하려는 쪽은 없던 모양이었다.

···어째선지 속이 좀 쓰려지는 기분이다.

유카리는 이어서 말했다.
 
"뭐~ 흥미로워 보인다고,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진 말도록 해. [바깥 세계]라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큼 재밌고, 아름다운 것이 가득한 세상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의 객관적인 생각이 아닌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공유하지 않고선 갇히게 될 뿐이라네."

"글쎄···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지."

혹은 더욱 잔혹한 진실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린노스케의 말에 조금 전까지 허당끼가 있던 모습과 다르게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뱉는 그녀.

그 웃음 속엔 어째선지 묘한 씁쓸함이 담겨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는 것 같아 말을 이어가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야 유카리는 알고 있던 것이다. 바깥 세계는 더러움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수많은 다툼이 있었다. 수많은 위선이 오갔다.

정의를 논하며, 선악을 구별 짓고, 비탄을 내뱉지만··· 정작 그러한 일을 만드는 것이 "인간" 스스로라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같은 일을 반복할 뿐.

결국 그런 것이다.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은.

요괴는 인간의 어두운 뒷면. 인간은 언제든지 요괴가 될 수 있다. 인간이 요괴를 봉인 할 수 있게 된 아래로 확실한 특정한 개념으로 인식이 굳혀졌기에 현재는 거의 없어졌지만 인간은 요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즉 요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진 바깥 세계의 이들은 요괴가 되지 못한 채, 추잡한 마음을 지닌 인간으로서 남겨져 버린 이들이 너무나도 많아져 버렸다.

웃기지 않은가? 괴물을 잊어버린 나머지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렸다는 게?

다만.

"혹은··· 인간도 요괴도 아닌 당신이라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후훗,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해 둬~."
 
눈 깜빡하는 사이 어디선가 꺼내든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별거 아니라는 듯 익숙한 웃음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유카리.
 
린노스케는 그런 유카리의 행동에 대요괴도 사실 노망이 드는 것은 아니였을까? 라며 혼자서 진지하게 고민해 버리고 만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유카리가 알았다면 당장 상공 10km 스카이다이빙을 시킬 것이 뻔했으니, 입 밖으로 말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인 부분이었을 거다.
 
'열심히 주운 물건들도 뺏기고, 오늘 운수가 좋진 않군···.'
 
"어이, 코우린. 뺏긴 건 어쩔 수 없으니, 다른 거라도 보여줄 건 없는 거야~?"
 
"아아~ 맞다. 당신. 그래서 저번에 못 한 말이 있는데···."
 
그리고 각각 양쪽에서 린노스케를 향해 말하며 발생하는 시끄러운 소리.
 
평범하게 라면 남자들의 꿈인 미인들에게 잔뜩 관심받는다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부러운 입장이었을 터지만, 안타깝게도 린노스케는 그러한 인기엔 관심이 없는 부류였으니.
 
린노스케는 평범하게 책을 읽거나 도구를 감정하며 사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이러한 상황이 영 달갑게 느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영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어.
 
[때론 이러한 시끄러움도 삶의 미가 될 수 있는 게 아닌 걸까?] 라고.
 
인간도 요괴도 아닌 하프의 존재. 모리치카 린노스케(森近 霖之助)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야 만다.

이곳은 향림당(香霖堂).
 
환상향의 중심쯤에 있는 이곳은 분명히 고요함보단 시끌벅적함이 어울리는 장소이리라.
 
 



...............................................

......................

...





[후기]


연재하던 개인작이 슬럼프로 안써져서 제가 처음 글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줬던 동방 패러디로 손가락을 재활 운동을 할 겸 단편으로 빠르게 써봤습니다.


원래는 레이무랑, 책 읽는 요괴?도 소설에 포함시켜서 쓴 뒤 시끌벅적하게 마무리할려고 했지만, 이미 분량이 1만자를 넘겨버린 관계로 그냥 급하게 마무리 지었군요.


심장을 꿰뚫어서 전격 마법을 쓴다느니, 신성력이나 마기라던지 쓰는 전투씬만 쓰다가 오랜만에 동방도 쓰니까 기분이 좀 낫네요.


...생각해보니 이것도 단편이라서 그렇지, 지금은 습작시켜버린 동방 패러디마냥 100화 가까이 쓰면 똑같이 안써졌을지도?


아무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