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료 상태 동향 조사를 네르에게 부탁받은 나는
이른 아침부터 수인 마을로 향해 가고 있었다.
워낙 아침 일찍 출발한 지라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짝 투덜대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갔다 와서 에르핀 몰래 초코 케이크 먹어 버려야지.
항상 곁에 있으면 내 몫이 남아나질 않는다니까.’

 

어느덧 디아나의 집이 눈에 보이던 그때,

 

바스락바스락.

 

왼편 가까이에서 수풀이 움직이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게 아니겠는가?
다른 소동물이겠거니 싶어 무시하고 가려던 찰나였다.

 

“왁-!”

 

“으앗! 깜짝이야!”

 

“꺄르륵. 좋은 아침이에요, 교주님!”

 

내 앞에 불쑥 튀어나온 버터가 장난에 성공했다는 듯 꺄르르 웃으며 인사했다.

 

“버터였구나… 놀래라. 여기서 뭐하고 있었니?”

 

“길 가고 있었는데 교주님 냄새가 나서 숨어있었어요! 헤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한편 배시시 웃는 버터가 귀여워서
마음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에헤헤.”

 

좋아하는 버터를 보며 나는 네르의 심부름을 마저 하러 가기 위해
버터에게 말을 하려고 했다.

 

“아, 맞다! 교주님 이것 보세요!”

 

버터의 말이 살짝 더 빨랐다. 그러면서 버터가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냈다.

 

‘응?’

 

“이게 있으면 상대방에게 최면을 걸어서 제 말을 듣게 할 수 있대요!”

 

이거 그거다. 옛날 만화 같은 데 보면 실에 동전 하나 매달아서 최면시키는 거.

 

“그거 혹시… 시스트한테서 샀니?”

 

“녜! 어떻게 아셨어요? 머리카락 10가닥에 바꿔준다고 해서 바꿨어요!”

 

또 그 녀석인가… 다른 사도들이라면 안 샀겠지만
티 하나 없이 순수한 버터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시스트를 한번 만나서 언질을 줘야지 다짐한 나였다.

 

“이거 써보고 싶은데 교주님한테 써봐도 돼요?”

 

진짜 최면 도구라면 내키지 않았을 것이기도 하고,
어차피 최면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네르의 심부름을 농땡이 칠 수 있는 일탈의 기회였기에
나는 버터의 장단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음… 그래! 최면 당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거든.”

 

“좋아요! 교주님, 그럼 이 동전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해주세요.”

 

버터가 내 얼굴 앞에 왔다갔다하는 동전을 들이밀고 이상한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버터의 말을 듣게 된다… 버터의 뜻에 복종한다…”
 

한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나를 최면시키려는 버터를 보고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코미와더블윾두자위뷰빔야스배틀에로트랩던전촉수요괴거근오니문어에게패배한고블린암컷장발숏스택그린스킨호드귀배꼽혀입술피어싱훈도시니삭스갸루최면세뇌인식개변야외노출감도500배미약절임…”

 

…? 버터가 방금 무슨 말을…? 장난은 이 정도로 하고 버터에게 말을 하려고 했다.

 

“됐다!! 어떠세요, 교주님?”

 

이번에도 버터가 빨랐다. 그나저나… 버터 이 녀석, 매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윽… 이건 반칙이잖아!’

 

버터가 너무너무 귀여웠기에, 나는 좀 더 버터와 어울려 주자고 나 자신을 꼬드겼다.

 

“우웅?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나는 진짜 최면에 걸린 양 일부러 아무 말도 없이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정말로 최면이 됐나 봐!”

 

‘크…크흡…’

 

기쁘게 방방 뛰는 버터를 보며
얼굴이 웃음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간신히 고비를 넘기니, 버터가 내게 말했다.

 

“교주님! 쓰다듬어 주세요!”

 

‘그럼 그렇지. 우리 버터가 얼마나 착한데 말이야.’

 

상대방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고작 쓰다듬어 달라는 버터의 소박한 꿈에 마음속으로 안도, 그리고 피식 코웃음이 났다.

 

“헤헤.”

 

머리에 손을 올려 버터를 쓰다듬었다.
평소의 부들부들한 버터의 머리털이 느껴진다.
쓰다듬으면서도 내가 힐링이 되는 느낌.

.

한 1분 정도 지났을까? 이 정도면 됐겠지 싶어
버터의 머리맡에서 손을 떼려던 그때,

 

“에엣? 왜 그만하세요? 더 쓰다듬어 주세요!”

 

‘엑.’

 

버터에겐 부족했나 보다. 더 쓰다듬어주자.

 

“히히히.”
 

가식 없이 해맑은 버터를 보니
교단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가 전부 풀리는 느낌이다.


“교주님, 앉으세요!”

 

뜬금없이 버터가 내게 앉으라 지시했다.
버터의 말에 약간 의아해 하면서도 난 수풀에 털썩 주저 앉았다.

 

철푸덕.

 

양반다리로 앉은 내 하반신에 버터도 팍삭 넘어지듯 앉았다.
 

“교주님! 쓰다듬어주세요! 빨리요!”


이젠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자신의 등을 내 배에

딱 붙이고 아예 자리 잡고 앉았다.

 

‘버터 녀석, 평소에도 이러길 원했던 건가?’

 

버터와 앞으로 더 많이 놀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버터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니 버터의 꼬리가 세차게 흔들린다.
워낙 나와 딱 붙어 앉았기에 흔들릴 때마다 내 배를 툭툭 친다. 살짝 아프다.

 

“와아-! 교주님 팔은 길쭉하지만 두껍네요! 신기해요!”

 

버터가 놀고 있는 내 나머지 팔을 끌고 오더니

여기저기 만지고, 쭈욱쭉 당기기도 하고, 또…

 

‘아야.’

 

앙 깨물어 보기도 했다.

 

“교주님은 왜 손가락이 5개예요?”

 

녀석, 거친 일만 해온 내 팔이 뭐가 그리 신기한지…
한편 내가 이따금씩 쓰다듬던 손의 움직임을 살짝 멈추면,

 

“아앗! 교주님! 계속 해주세요!”

 

득달같이 알아채고 내게 종용했다. 이때까진 괜찮았다. 
아직 시간이 남기도 했고 아무래도 버터는 귀여우니까.

.

.

.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버터가 갑자기 훽 등을 돌려 앉아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주욱-

 

내 볼을 텁 잡고 치즈 늘리듯 잡아당기며 놀기 시작했다.

 

“꺄하핫-! 교주님 얼굴이 이상해요! 이히히.”
‘요정 여왕님이랑 코미한테도 당겨보게 해볼까?’

 

찰흙 마냥 자유자재로 그리고 이상하게 변형되는 내 얼굴을 보며
버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곤 속마음으로 저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오 안돼, 에르핀에게 내 볼을 당길 기회를 준다면
내 볼이 남아나질 않을 거야.’

 

아마 평소에 내가 에르핀이나 다른 사도들 볼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고 따라한 게 아닐까 싶다.


‘…근데 좀 아프네. 앞으로 사도들 볼 당기는 건 좀 줄여야겠어.’

.

.

.

.

.

‘슬슬 힘들다.’

 

내가 버터를 만난 지 한 시간 정도 흘렀다. 
쉬지 않고 계속 쓰다듬으니 왼팔에 쥐가 나는 것 같았고
버터의 순수하지만 잔악한 손놀림에 오른팔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버터에게 깔린 다리도 살짝 아프고 볼도 상당히 화끈거린다.

 

“교주님, 일어나세요!”

 

그런 내 마음에 응답하듯 버터가 팔짝 일어나고 내게 명령했다.

 

‘드디어 끝인가.’

 

이런 내 심정까진 몰랐는지 버터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교주님! 연회장으로 가요!”

 

슬슬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까지 와서 갑자기 최면에 안 걸렸던 척을 한다면
버터도 나도 서로 어색한 사이가 될 게 뻔했기에
나의 뇌는 당장 그만해야 한다고 발광하고 있었지만
이미 내 몸은 수인 마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까지도 난 몰랐다.


버터가 전번에 연회장에 찾아와 코미가 자신에게 굉장히 어려운 숙제를 내주며
다 할 때까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울먹이며 내게 하소연했던 적이 있었다.
난 그때 코미가 단순히 귀찮아서 그랬던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코미가 현명했던 것이다. 버터의 희맑지만 심연처럼 깊은 욕망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코미가 했던 것처럼 물리적으로 떼어 놓는 방식임을…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몰랐던 것이다.

.

.

.

오전 8시 43분.

버터와 연회장에 도착했다.
도중에 도움을 요청할 요정들을 찾아보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연회장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간간이 마주치는 요정들도 아무 생각없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오전 9시 27분.

캬라멜 팝콘만 7봉지째 튀기고 있다.
에르핀이 먹는 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버터도 상당한 대식가라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저렇게 먹어서 힘이 쌩쌩한 건가?
그나저나 왜 오늘 유난히 아무도 연회장에 오지 않는 거지?
도움이 필요한데…


오전 10시 14분.

버터의 배가 볼록해졌다.
힘들긴 하지만 원래보다 훨씬 기뻐하는 버터를 보니
조금은 힘이 났다.
그런데 이번엔 버터가 정령 호수로 산책을 가자고 조른다.
제발 누가 나 좀 살려줘-!

 

오전 11시 37분.

요정 마을 외곽에서 에르핀을 만났다.
에르핀은 날 보더니 특유의 들뜸 반 장난기 반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나도 얼굴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에르핀이 날 구해줄 수도 있었기에 대단히 반가웠다.
그러고선 자신과 에슈르네 빵집에 놀러 가자고 내 팔을 덥썩 잡았는데
버터가 “으르릉…” 거리며 나를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고 에르핀을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버터의 표정을 본 에르핀은 멜트다운 버터 시절이 생각난 듯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아직 네르의 숙제가 끝나지 않았다며 줄행랑 치고 말았다.

…큰일이다. 내 마지막 동아줄이 끊어졌다.


그건 그렇고 버터, 요 녀석 에르핀을 볼 땐 정말 잡아먹을 듯
섬찟한 몸짓과 동작을 내뿜었으면서 에르핀이 도망가고 나니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방긋거리면서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후 2시 35분.

정령 호수에 도착해 호수의 기슭을 따라 버터와 함께 돈 지 2시간은 넘은 것 같다.
몇 바퀴째 돌았는지 세다가 잊어먹었다. 숨이 차고 너무 힘들다.
고통에 겨운 나는 안 보이고 그저 교주가 자신과 함께한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버터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달릴 뿐이었다.


중간에 나비가 나풀나풀 나는 모습을 보고 버터가 나를 두고 따라갔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분명 정령의 호수인데 나이아가 보이질 않았다.
숨을 고르고 주변의 하급 물정령에게 나이아는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다.
고위 정령 회의에 갔댄다. 제길…! 왜 오늘따라 되는 일이 없냐고…!


지금이라도 최면에서 풀린 척하고 도망갈까?
내가 이 생각한 것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귀신같이 버터가 돌아왔다.
“죄송해요, 교주님! 헤헤!” 방실거리며 돌아온 버터는 내 곁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신물이 느껴진다.

 

오후 3시 50분.

정령 호수를 뱅글뱅글 돌고, 정령산 열매를 따먹고, 물놀이에 어울리며
버터가 조금은 지쳤는지 잠시 누워서 낮잠을 자자고 한다. 물론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다.
정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절대로 탈출할 수 없겠다 생각한 나는 지쳐서 먼저 눕고
버터가 잠들면 뒤도 보지 않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버터가 내 곁에 찰싹 붙어 팔과 다리로 나를 감싸더니
이내 쌕쌕 숨소리를 내면서 눈을 감았다.
…내가 먼저 누운 게 크나큰 실수였다.


오후 4시 3분.

버터의 배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호흡도 점차 안정적으로 변했다.
이때다 싶어 몸을 움직여 내 옷을 붙잡은 버터의 팔을 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손아귀의 힘이 어찌나 좋던지 아무리 용을 써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편 내가 이렇게 기를 쓰고 버터를 떼려 하니, 버터가 “으음…” 거리며 더욱 세게
내 옷을 쥐고 다리를 감싸버렸다. 그 행동에 압박붕대처럼 약간의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침부터 한끼도 먹지 못하고, 먹은 것이라곤 정령산의 열매 두어개 뿐이오,
불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요리하고, 연병장이 아니라 정령 호수 뺑뺑이 돌고 물놀이까지 하니

뱃속에서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고, 온몸은 힘들다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탈출할 방도가 없으니 절망적이고 허탈하지만, 
지친 심신을 달랠 겸 잠에 들기로 했다.

 

오후 6시 14분.

버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니 어느새 땅거미가 어슴푸레 지기 시작했다.
괴성을 지르는 내 몸을 억지로 일으킨 버터는 이제 집에 갈 시간이라며
자신의 집에 가자고 나를 앞세웠다.
이젠 어떻게 되든지 반쯤 포기하고 쉬고 싶었다.


오후 6시 38분.

도중에 버터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딴 길로 새려고 하자
버터를 업어준다는 것을 핑계로 빠른 걸음으로 수인 부락까지 도달했다.

 

오후 6시 47분.

버터의 집에 도착해서 버터와 함께 캔 사료를 먹었다.
비록 사료지만 오늘 제대로 된 첫 끼일뿐더러 굉장히 고단한 하루였기에
움직이는 손을 멈출 새 없이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터는 하루 종일 교주님과 함께한 것이 행복한지
자신의 볼에 사료를 빵빵하게 채우고 먹으며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오후 7시 11분.

버터가 루포에게서 받아온 재미있는 보드게임들이라며 같이 하자고 했다.
적어도 몸이 힘들진 않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며 여러 가지 게임들을 했다.
중간중간 버터는 자신이 질 것 같은 지 내 옆쪽으로 와 내 패를 염탐하고 돌아가는 등
반칙을 일삼았다. 너무나도 하찮은 반칙에 고된 상태임에도 웃음을 지어버렸다.

 

오후 9시 정각.

이제 잘 시간이라며 버터가 내게 침대에 누워라 지시했다.
먼저 들어가니 버터가 따라서 쏙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봤던 미소 그대로 지은 버터는 “내일도 또 놀아요! 교주님, 헤헤.”
웃음꽃을 만개하며 나를 곰인형마냥 껴안고 잠들어버렸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

.

.

버터가 교주와 함께 잠든 지 약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누군가 집문을 거세게 두드린다.

 

쿵쿵- “교주님! 여기 계시죠? 여기 계신 거 다 아니까 당장 나오세요!”

“사제장님…!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주세요… 다른 수인들 전부 깨겠습니다…!”

 

밖의 소란에 내가 먼저 눈을 떴다. 옆을 보니 버터는 아까 정령산에서
낮잠을 잘 때처럼 곤히 잠자고 있다. 그나저나 목소리를 들어보니 네르와 디아나인 것 같다.
그 목소리들이 마치 구원자의 음성 같았지만, 한편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두뇌 회로를 풀가동시켰다.

 

네르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교주가 사도들 돌봄을 핑계로
교단 업무를 농땡이 치고 다닌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아예 허락도 없이 외박을 한 적은
요정생 있어서 처음인 것이다. 달이 뜰 때까지 교단에 오지 않는 교주를 잡아내기 위해
네르는 초저녁부터 이곳저곳 수색하여 버터의 집으로 교주가 들어갔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그 결과로, 버터의 집문은 마요 때처럼 박살나기 직전이었다.

 

쾅쾅쾅- “당장 나오라구요, 교주님!!!”
“사제장님…! 진정하세요…! 교주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으면 이러시겠어요…!”

 

어떡하지. 네르가 6학년이 된 것 같다. 
곧 있으면 도끼로 문을 부수며 Here’s Johnny를
외칠 것 같은 이 느낌…! 빨리 생각해내야 한다…! 
살기 위해서 뭐라도 생각해야…!

 

“우움… 무슨 일이에요 교주님?

 

설상가상으로 버터도 일어나 버렸다.
뇌가 회로를 돌리다 못해 과부화가 일어났다.

 

“버터 게 안에 있느냐?”

 

“앗 촌장님이 이 밤중에 웬일이세요?”

 

“버터야, 잠시 문을 열어줄 수 있겠니? 교주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말을 들었단다.”

 

“녜! 맞아요! 잠시만요! 열어드릴게요!”

 

‘이젠 끝이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끼익-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버터를 밀치고 네르가 불쑥 쳐들어왔다.
그동안 즐거웠다. 세계수님, 한 놈 또 올라갑니다. 2대 교주가 올라갑니다...!

 

교주님!! 지금 제정신이세요?! 이번엔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런 행동을 벌이신 건가요?! 이번 건은 절대로 용납 못하니 단단히 각오하세요!!!”

 

네르가 누워있는 나의 멱살을 잡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보시란 말이에요!! 왜 이딴 짓을 하신 겁니까?! 예!?”

 

마치 악귀처럼 매서운 눈씨로 나를 부라리는 네르가 너무나도 무서워서
내가 눈에 초점도 없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있어서 네르가 소리질렀다.
그 와중에,

 

“얘, 버터야. 교주님께서 왜 여기 계신지 알려줄 수 있겠니?”

 

디아나는 침착하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버터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네르에게 밀려나 잠시 시무룩했지만 버터는 이내 다시 웃으며 답했다.

 

“제가 교주님을 조종하고 있었어요! 히히.”

 

순간 디아나와 네르가 동시에 버터를 쳐다보았다.

 

“버터야, 그게 무슨 소리니? 찬찬히 얘기를 해보렴.”

 

디아나는 수많은 궁금증이 일었지만 다시 차분히 버터에게 물었다.

 

“녜! 제가 오늘 아침에-“

.

.

버터가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디아나와 네르는 벙쪄 있는 얼굴로 나와 버터를 번갈아 보았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또 교주님께서 장난치신 것 아닌가요?”

 

네르가 반색하며 반문했다. 그리고 나는…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들키지 마라’

 

혼신을 다해서 최면에 걸린 척 멍하니 천장을 보는 연기를 했다.

 

“교주님? 정신 차려보세요. 정말로 최면에 걸리신 겁니까?”

 

네르가 나를 거칠게 흔들어도, 내 정신을 깨우기 위해 뺨을 세차게 후려 갈겨도
나는 필사적으로 아무 느낌 없는 척했다.

 

“그…그쯤 하세요…! 교주님 주말 농장 가시겠어요.”

“맞아요! 최면을 풀려면 걸 때와 같은 방법을 써야한다고 그랬어요!”

 

디아나와 버터의 나이스 세이브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후… 좋아요. 그럼 버터? 교주님의 최면을 풀어 주시겠어요?”

 

“녜!”

 

버터가 최면을 풀기 위해 아까처럼 내 앞에 동전을 흔들며 주문을 외웠다.

.

.

“으음…”

나는 태평하게 갑자기 깨어난 연기를 했다.

 

“교주님, 정신이 드세요? 최면에 걸린 게 정말이었군요.”

 

“어, 네르? 여기가 어디야? 내가 최면에 걸렸다니?”

 

이미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지만, 살기 위해 네르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히이익… 진짜로? 그럼 버터는 어디에 있어?”

 

“교주님이 깨어나실 때부터 저기서 디아나 님께 혼나고 있어요.”

 

네르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버터! 아무리 교주님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교주님을 데리고 있으면 교주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곤란해 하잖니!”

 

“끼잉… 하지만 전 그냥 교주님이 좋아서…”

 

“예끼, 이 녀석! 그럼 반대로 티그나 다른 고약한 녀석들이 너를 조종한다고 생각해봐! 
너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잘못했어요…! 흐아앙…!”

 

분명 잘못한 건 나 같은데 버터가 엄하게 혼나고 있다.

버터의 꼬리가 축 쳐진 게 눈에 보인다.

 

“맞아요! 아무리 버터가 착하다지만, 이런 위험한 물건에 손대는 건 잘못된 거예요!”

‘내가 이 물건을 교주님이나 여왕님에게 사용하는 건 어떨까?’

 

“잘못했어, 안 했어? 어서 교주님께 사과드려야지!”

‘티그 녀석에게 써서 차기 촌장으로 만들 때 유용하지 않을까?’

 

“잘못…,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교주님…! 끼이잉…”

 

울음을 터뜨린 버터가 내게 용서를 빈다. 죄악감이 등을 타고 오르는 것 같다.

그나저나 네르든 디아나든 누가 광기의 사도 아니랄까봐 저런 광기어린 생각하는 것 좀 보게.

우선 얘네들부터 진정시켜야겠다. 

 

“얘들아. 그만들 해.”

 

““교주님?””

 

두 광기의 사도가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 버터도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버터가 얼마나 놀고 싶었으면 나한테 이랬겠어. 평소에 많이 못 놀아준 내 잘못이지.”

 

“아무리 그래도…!”

 

“스읍-. 그만. 버터, 너도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야. 다음부터 남을 조종하는 이런 위험한 행동은 
절대로 하지마. 알았지? 디아나 말대로 다른 위험한 녀석이 이걸 쓴다면 어떻겠어. 그렇지?”

 

“네에… 훌쩍…”

 

‘휴우… 어떻게든 잘 넘어간 것 같다.’

 

난 세 사도들을 진정시키고 크게 안도하며 사건을 일단락시키려 했다.

 

“앞으론 얘기를 하렴. 쓰다듬어주고 놀아주고 산책도 가고, 알았지?”

 

“네에-!”

 

버터가 울음을 멈추고 다시 방긋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런 위험한 물건은 내가 불태워 없애 버릴게. 너희들도 동의하지?”

 

““네… 뭐…””

 

디아나와 네르가 아쉬운 듯 바라본다. 절대 안 되지. 이 녀석들.

.

.

.

버터에게 조종 아닌 조종을 당한 지 며칠이 지났다.
나는 행여나 네르나 디아나가 시스트로부터 그 물건을 살 지 두려워
미리 시스트에게 입막음료를 세게 지불하면서 그 물건은 더 없다고 함구하기를 부탁했다.
만일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연기였다는 것을 들킨다면 그땐…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해보면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씩 버터랑 하루종일 놀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이루어졌으니까. 물론, 놀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물건은 다시 보고 싶지도 않고, 보이면 안 되는 물건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빨리 태워 버려야…

 

“어…? 어?? 이게 어디 갔지?”

 

분명히 오늘 아침에 선반에 올려 놨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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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버터 녀석. 꽤 재밌는 물건을 가지고 놀았잖아?”

 

스릉- 돌과 날카로운 낫이 부딪혀 을씨년스러운 소리를 자아낸다.

 

“정령 호수 쪽에서부터 엄청 재밌어 보여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킥킥.”

 

허리까지 내려오는 회색 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유령은 차원 공간을 이용해 교주의 방에서
위험한 물건(?)을 슬쩍 해오는 데 성공했다.

 

“이것만 있다면 엘리아스를 내 마음대로 주무르는 게 가능하단 거지? 후후후… 아하하하하!!”

 

광기 섞인 웃음소리를 내뱉은 그녀는 이윽고,

 

“흐음… 그럼~ 우선 교주에게 한번 써보러 갈까♡”

 

군침을 삼키며 차원을 찢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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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머리 긁어주니까 이런 반응하더라
회로 돌아서 급발진했더니 10000자나 써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