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일기] – 출병 전 날.

어제 게시판을 보니까 개척단을 모집한다고 했다.

시급이 쎄서 딱 10년만 일하면 집을 두 개는 살 수 있다.

그러면 내 집도 생기고 내 몽롱이한테도 집을 사줄 수 있다.

내일 아침 9시에 다들 광장에 모이라고 했는데

다 모이면 모두 함께 옆 옆 옆 은하에 있는 어떤 행성으로 간다고 했다.

 

 

[누군가의 일기] – 출병하는 날.

오늘은 엄마가 소세지 도시락을 싸줬다.

10년 일한다고 하니까 엄마가 시간은 금방 간다고 했다.

엄마는 100년 동안 군대 복무했다고 했는데 10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큰 배에 타니까 한 박사님이 시원한 침대에 들어가라고 했다.

들어가기 전에 엄마 도시락을 먹었다.

자기 전에 그림 그리다가 혼났다.

빨리 자야겠다.

 

 

[누군가의 일기] – 좌초.

일어나니까 머리가 아팠다.

다들 큰 목소리로 뭐라 뭐라 외쳐대고 있었다.

배 밖으로 나가보니 대장님이 배가 추락했다고 했다.

풀이 듬성 듬성 나있는 모래투성이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일기 그리는데 대장님이 뭐라고 했다.

나는 더-

 

 

[누군가의 일기] – 좌초 후, 8일.

귀가 작고 둥근 놈드리 내 일기짱 장치를 압쑤햇따.

일기가 너무 쓰고 싶어서 우니까 종이를 줘따.

그러케 나쁜 놈드른 아닌거 갇따.

오타 정정 기능이 업서서 너무 불편하다.

우리는 지구라는 곳에 잇따.

내 엽자리 친구는 조금만 기다리면 고향에서 구하러 온다고 햇따.

우리 엄마가 구하러 오면 지구를 터뜨릴 거다.

 

 

[누군가의 일기] – 좌초 후, 23일.

지구놈드리 나보고 납땜을 하라고 햇따.

고향에서 자주하던 알바다.

우리를 30명씩 회색방에 몰아넣고 납떔만 하라고 햇따.

엽자리 친구는 이런 일을 잘하는 거 갇따.

나보다 많이 낳은거 갇따.

 

 

[누군가의 일기] – 좌초 후, 60일

아무도 우릴 구하러 오지 안는다.

지구놈드른 우릴 하루에 18시간 동안 부려먹는다.

똑또칸 엘프를 찾는다고 햇따.

어느 날엔 내 일기짱이랑 비슷하게 생긴 걸 들고와서 그걸 더 좋게 만들라고 한다.

성공하면 더 좋은 방이랑 음식을 준다고 햇따.

납땜에 지친 엽자리 친구와 다른 엘프 하나가 손을 들엇다.

친구는 아직 돌아오지 안앗따.

 

 

[누군가의 일기] – 좌초 후, 121일

납땜 실타 싫다.

너무 눈부셔. 피곤해.

지구놈 지구인 들 중 하나가 내 일기를 뺏어보며 비우섰다. 비웃었다.

그 놈은 마춤뻡 맞춤법 지적을 하기 시작햇따. 시작했다.

맞춤뻡을 맞춤법을 고쳐준다고 햇따. 했다.

틀리면 틀린 거마다 딱밤을 한 대 때렸다.

사악한 놈들.

 

 

[누군가의 일기] – 좌초 후, 179일

내가 맞춤법을 제대로 쓰기 시작하자 지구놈이 흥미를 잃었는지 더 신경 쓰지 않는다.

예전에 끌려갔던 옆 자리 친구가 밤에 몰래 수용소로 들어왔다.

다들 그 친구가 배신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구인들의 컴퓨터 부품을 봐주는 척하면서 탈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지구인들이 주는 자원으로 몰래 광속 차원 분할기 칩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거만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차원문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빨리 엄마랑 몽롱이가 보고 싶다.

 

 

[누군가의 일기] – 좌초 후, 193일

밤을 틈 타 옆 자리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지구의 한 부품회사의 정보를 빼돌려 차원문 칩을 극적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지구인들이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탈출이 진행될 예정이니 아침에 수용소에 반란을 일으키라고 했다.

혼란을 틈타 차원문이 있는 곳까지 달려오라며 약도를 그려줬다.

 

 

[누군가의 일기] – 탈출

탈출은 50% 정도 성공했다.

차원문까지 달려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탈출 계획을 세웠던 옆 자리 친구가 목숨보다 중요한 거라며 짐부터 밀어 넣으라고 했다.

처음엔 이해 못했는데, 지금 차원문 밖을 보니 이해가 갔다.

지구의 자원으로 만든 차원문이 불안정했던 건지 고향이 아닌 다른 행성으로 오게 된 것이다. 

친구가 밀어 넣으라고 했던 짐들은 테라포밍 장치들이었다.

내 옆 자리 친구는 자신을 엘레나라고 소개했다.

일단 지구 공돌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도 했다.

그 전까지는 자신이 엘프들을 이끌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일기] – 탈출 후, 3일

마지막 일기를 쓴다.

엘레나 시장은 일하지 않는 자에겐 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지구놈들은 그래도 노는 날에도 밥은 줬는데…

임시 시청에서 적성검사를 했더니 나에게 맞는 일자리가 하나 있다고 했다.

여러가지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일이라고 했는데

왜인지는 몰라도 거기서는 일기를 쓰면 안 된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게 이상했지만 당장 먹고 살려면 그거라도 해야한다.

 

 

[로네의 일기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