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폴빠, Aka, Loar

삽화: 팀디얍, 투플

기획 책임편집: Loar


“세계수를 믿으세요! 믿으면 복이 옵니다!”

“이 세계수 그림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머리가 좋아지고! 머리도 납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잘못한 건 맞는 거 같다.

내 본체 주변을 빙빙 도는 요정이 많아졌다. 단순히 찬양만 하는 게 아니라 날 믿으라고 선전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니 왜? 내가 분명히 자기들 일에 충실하고 난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얘기했잖아? 물론 날 찬양하는 거야 자기들 마음대로 하라고는 했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해놓고 말리기도 그런데. 뭐 아무 반응 안 해주면 적당히 하다 지쳐서 관두겠지.


그래서 한동안 본체에 의식을 두지 않고 아셀린과 같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아셀린은 이해력이 조금 부족하긴 했어도 설명은 잘하는 아이였다.


“여기는 예술지구인데 특히 미술을 하는 요정들이 많이 살아요. 음, 3일인가 4일 전에 갔던 시끄러운 동네 기억하시죠? 거기도 예술지구에서 음악 중심 지구였어요.”


조잘조잘 떠드는 아셀린의 말을 들으며 거리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알록달록한 색상이 많이 칠해진 거리였다. 요정이 만들어낸 문화와 사회는 꽤 신기했다. 요정들 스스로 이 정도까지 발전했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분명 그러한데…… 솔직히 조금 실망이다.


새롭지 않았다. 어디선가 듣고 본 느낌이다. 어디선가, 라고 말할 게 달리 뭐가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이라고 해 보았자, 나 스스로 경험한 것 외에는 모두 에린이 해준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 뿐이다. 결국 이 요정들은 내가 무의식중에 에린을 꿈꾸며 에린에게 들었던 것을 재현한 것에 그친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궁금해졌다. 만약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졌을까?


“내가 너무 일찍 깼나 봐.”

“예, 옛?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엘드르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냥 혼잣말이야.”


갸우뚱하는 아셀린을 외면했다. 이 아이에게 내 생각을 들려줄 정도로 눈치 없진 않았다. 요정이 그려 놓은 벽화를 감상하는 척하며 생각했다. 나는 요정들이 에린의 빈자리를 채워주길 바라는 걸까? 그러면 완전히 에린 같아진 요정을 원할까? 아니면 에린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던져주길 원하는 걸까? 나도 내가 뭘 바라는지 모르겠다. 다만 조금 더 잠을 자다가 깨어난다면 요정들이 그 답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잠깐. 그럼 그냥 더 자면 되잖아? 생각해보니 지금 굳이 깨어 있을 이유가 없어. 맞아. 더 자고 일어나면 되는 거야!


“아셀린.”

“예?”

“이걸로 요정 마을 소개는 끝이지?”

“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저희가 만들어 놓은 건 다 보여드렸어요!”

“그럼 이제 작별할 시간이네.”


내 말에 아셀린은 들고 있던 안내판을 툭 떨어트릴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는 허둥대면서 나에게 딱 달라붙어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너희가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았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만큼이나 성장했지. 괜찮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나는 다시 잠들 생각이야.”

“어…… 정말요? 엘드르님이 원하신다면 저야 상관없긴 하지만…….”


대놓고 아쉬운 기색의 아셀린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풀죽은 새끼늑대 같아서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고민하던 순간에 갑자기 요정 하나가 쏜살같이 뛰어왔다.


“여왕님! 여왕니이임!!!”


마법으로 달리는 속도를 무리하게 높인 모양인지 뛰어온 요정은 많이 지쳐있었다. 헥헥대며 잠깐 숨을 고른 요정이 다급하게 말했다.


“크, 큰일이에요! 기념식……세계수님 주변에……!”


내 본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웬 요정 무리들이 모여서 난리를 피우고 있어요! 빨리 여왕님이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세, 세계수님도요!”


마침 마을을 다 둘러보았고 다시 잠들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본체로 돌아가야 했는데 잘 됐다고 생각하며 아셀린과 함께 헥헥대는 요정을 따라갔다. 본체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적당히 주의만 주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는 도착한 순간 바로 깨달았다.


“도끼를 처형해라!”


눈을 뜬 이후로 그렇게 많은 도끼는 처음 봤다. 도끼는 내 밑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도끼의 산 위에 나에게 ‘전언’을 받았다는 요정이 보였다. 도끼 산 주변으로 그 요정을 따르는 다수의 요정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다른 요정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몸싸움을 벌여댔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 가지치기용 도끼를 왜 처형해?”

“도끼는 존재 그 자체가 죄다!”


전언을 받은 수수한 옷차림의 요정, 메이르는 처음 만났을 때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도끼를 둘러싼 요정들을 메이르가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찾아온 요정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줬다. 메이르를 따르는 요정들이 우격다짐으로 다른 요정들의 도끼를 강탈했고 한다. 


도대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나는 도끼를 없애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 근처에만 들고 오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 요정은 도끼를 아예 없애려고 든다.

어쨌건 내 말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자기 멋대로 이해하긴 해도 메이르가 내 말은 들어주니 내가 나서야 한다.


“메이르. 이상한 짓은 그만둬라.”

“엘드르시여! 당신의 충실한 종이 전언을 이행했나이다! 이제 당신께서 내리신 첫 과업을 성공하기 직전이니 부디 종복의 충실한 마음을 지켜봐 주시옵소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메이르에겐 눈앞의 내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만든 내가 보이는 모양이다. 메이르는 자신의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도끼 산에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바로 그 자신이 도끼 산 위에 올라타 있었음에도.

화륵!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메이르의 과감한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대로 불에 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멀찍이 떨어진 메이르에게 손을 뻗어 그대로 잡아챘다.


부웅!


보이지 않는 권능이 불타는 도끼산 속에서 메이르를 튕겨냈다. 메이르는 힘없이 딸려와 나무의 밑동에 부딪히더니 풀썩하고 쓰러져버렸다. 메이르를 구하자마자 아셀린이 다른 요정들을 이끌고 불을 껐다. 자연적인 불이 아니라 마법으로 일으킨 불은 도끼날의 쇠도 녹일 기세로 타올랐다. 주변에 모인 요정들 모두 물 마법을 사용해도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나는 쓰러진 메이르에게 다가갔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메이르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모르겠어요! 당신이야말로 왜 저에게 이러시는 거예요, 엘드르시여!”


울컥해서 따지는 목소리가 마치 피를 토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창조해낸 요정이지만, 나는 그 요정의 목소리가 무섭게 느껴졌다.


“나야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메이르. 애초에 내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인 건 너잖아?”

“전 그냥 시키신 대로 했을 뿐이잖아요!”

“내가 남의 도끼를 뺏으라고 했어? 도끼를 불태우라고 했어?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하라고 했어? 도대체 내가 너에게 뭘 시켰다는 거야?”

“도끼를 없애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하! 너 정말 이상하구나, 메이르.”


내 말에 메이르는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떨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했다. 몇 번을 중얼거리며 스스로 확신을 가진 듯 이내 나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키웠다.


“신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제가 이상한 게 맞을 거예요…….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실제로 이상한 요정 취급을 받았고 그게 당연했어요! 저도 저 자신이 가끔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저한테는 그렇게 사는 게 보람찼으니까! 그게 내 삶의 이유였으니까!”


마지막 말을 내뱉을 즈음에는 이미 고개가 들려있었다. 절망에 원망이 섞인 눈이 날 향했다. 나는 도무지 저 눈빛에 마주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미친 것 같은 이 요정이 무서웠다.


“…….”

“하지만 이제 신이 있다는 게 증명됐잖아요! 이 세상을 만드신 신께서 강림하셨잖아요! 그럼 신의 뜻을 따르는 게 당연하고 그걸 따르지 않는 요정이 이상한 세상이 된 거라고요! 아니에요? 그게 맞잖아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 곧 법이 되고 세상의 규칙인 거잖아요!”


머리가 복잡했다. 창조주 대접은 살짝 부담스러운 일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거다. 결코 좋기만 한 일이 아니고, 절대로 쉬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이들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과도 같았다. 자연의 이치가 되고 섭리처럼 여겨졌다.


“제가 한 짓이 잘못된 것이라면 애초에 왜 그렇게 시키신 건가요? 저를 시험하려고 하신 건가요?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신 건가요? 제발 저에게 답을 알려주세요, 엘드르시여! 우리의 세계수시여! 이 세계의 창조주시여!”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목소리에 분이 서려 있었다. 그 물음에 내가 무엇을 대답할 수 있을까.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하며 나는 깨달았다.


메이르의 믿음은 의존의 다른 뜻이다.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스스로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구별했지만, 내가 나타나면서 그 벽이 깨어졌다. 스스로 사고하기를 멈추고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 본인의 행동이 어떻게 비치든 나의 말에 따르는 것이 무조건 옳았으니까. 남의 도끼를 불태우는 것이 나쁜가? 나쁜 일이다. 하지만 신이 도끼를 불태우라고 했다면? 옳은 일이다.


어떤 요정에게는 나의 존재가 그런 의미가 되었다. 훌쩍이는 메이르를 말없이 내려보면서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들에게 미지의 존재로 남아야 한다.


“메이르는 추방이야!”


아셀린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다른 요정들과 함께 몰려왔다. 겨우겨우 불을 껐는지 다들 군데군데 그을리거나 얼굴에 숯검정 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불을 끄는 걸 내가 도와줬어야 했을까. 아니다. 내가 나서선 안 된다.


“메이르는 마을에 같이 살 자격 없어! 메이르, 너무 이상해!”

“하지만, 하지만 나는……!”


메이르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눈을 부릅떴다. 내가 어떤 눈으로 메이르를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내가 메이르를 달래서 마을과 중재시켜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아셀린과 다른 요정들은 마음속에 계속 메이르가 저지른 일을 담고 살아갈 것이고, 메이르는 방금 전처럼 자신의 잘못까지 또 나에게 의지하려 들 것이다.


“오늘 저녁까지 너랑 널 따르는 애들도 모두 마을에서 나가줘. 더는 같이 못 살겠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너희들이 이상한 거야! 나는 틀리지 않았어, 틀리지 않았다고!”


시끄러웠다.

귀로 들리는 소음만큼이나 머릿속의 고민과 마음속의 갈등이 시끄러웠다. 머릿속은 몰라도 귀로 들리는 소음은 잠재울 방법이 있다.


[쉿.]


요정들이 잠들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 감정을 부딪히며 싸우던 이들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로 쓰러졌다. 내 앞에서 싸우던 요정들만이 아니다. 이 숲, 나의 숲에 있는 모든 요정이 한순간에 잠들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잠든 요정들을 저마다의 집에 눕혀줬다. 이제 이들은 영원히 잠을 자는 상태로 남을 것이기에 편하게 재우고 싶었다. 실패작이지만 내가 만든 애들이다.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다. 다시는 내 아이들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존재를 알고 있는 아이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자.

시간을 앞으로 돌리면 좋겠지만 그건 내 힘으로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잠들려는 이유도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서였다.


요정들을 모두 제자리에 안치시켰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뿌리내린 이 숲을 떠나보기로 했다. 에린과 추억이 깃든 장소를 뒤로하는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새로이 요정들을 만들어낸다. 새로 태어난 요정들이 영면에 든 요정을 보고 놀라거나 깨우게 해선 안 된다. 아예 존재를 모르게 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고향을 떠났다.

내 기준으로도 머나먼 땅에 뿌리를 새로 내리고 숲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새 아이들이 새 땅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트릭컬 재산 순위] 


안녕하세요. 오늘은 심심풀이 흥미용 에피소드로, 트릭컬에서 누가 제일 부자인가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채울 수 없는 거대한 야망 때문에 마음만은 부자인 제과점 주인 같은 자도 있기 마련이지만, 최대한 단순한 의미의 재산만을 봤습니다.


그럼 이제 엘리아스 내에서 특기할 만한 일곱 명의 부자 캐릭터들을 소개하겠습니다.


7위: 네르

네르는 요정 왕국이 그나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최후의 재정 보루입니다. 요정 왕국의 재정은 이미 수백 년간 적자를 유지하고 있는데, 네르를 위시한 세계수 교단의 재산으로 그 구멍을 메꾸고 있죠.


네르가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왕인 에르핀을 보좌하면서 점점 바닥나는 국고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세계수 교단 관리 하의 땅을 팔거나 문 규격, 벽 높이, 지붕 타일의 수 등에 세금을 매기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많은 재산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냉철한 건물주이자 땅주인이지만, 요정 왕국 재정에는 따듯한 요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6위: 포셔


포셔는 교과서적인 장사꾼입니다. 정직하게 약이나 포션을 팔고 그 이득을 취합니다. 물론 장사에서는 교과서적이라는 거고, 포셔가 파는 물건들의 품질은 논외라는 점은 알아 두셔야 하겠지만요.


포셔는 마녀 왕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포션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셔가 제작하는 물건들에는 엄청난 부작용이 동반됐기에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각박한 경쟁 위주의 사회인 마녀 왕국에서 이 포션들을 정적을 제압하는데 쓰면 된다는 괴상한 논리가 정착한 이후로는 포셔가 떼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포셔가 식당 프랜차이즈에 손을 대면서 재산을 계속 날리고 있는 게 문제지만요.



5위: 마요


엘리아스 최고의 수집가인 마요는, 여태까지 수집한 희귀품 만으로만 따지면 더 높은 순위에 오를 수도 있지만 엘리아스에서 희귀품이라는 것이 시세 변동이 워낙 심하기에 5위에 그쳤습니다.


마요는 본인의 가치관이 평범한 사람과는 많이 달라서 이상하고 괴상한 것도 많이 모으는데,


하찮은 뒷산의 짱돌부터 요정 왕국 수도를 그대로 본 따 만든 신비한 황금 레플리카 모형까지, 마요의 수집 목록은 다양합니다. 이 수집품들이 각각 최고 시세일 때 팔면 재산 순위가 몇 계단은 확 오르겠지만, 마요는 수집품들을 절대 누군가에게 팔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4위: 다야

다야는 다이아몬드에서 태어난 용족입니다. 이것 이상으로 설명이 필요할까요? 다야는 자신처럼 세상에서 가장 투명하고 영롱한 다이아몬드를 집착스레 모으는데, 특히 다야 자신의 머리에 달린 뿔은 본인이 끊임없이 갈고 닦아서 그 가치가 어마어마합니다. 물론 다야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뿔을 팔아넘길 리는 없지만요.


다야가 모으는 다이아몬드들은, 가공하지 않더라도 최고의 단단함을 자랑하기에 모두가 탐내는 광물이기도 해서 엘리아스 최고의 부자가 아닐까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야 본인이 다이아몬드와 유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점이 있어, 다야의 보물창고에는 ‘꽝’이 많습니다. 다야는 그래서 아쉽게도 4위에 그쳤습니다.



3위: 엘레나

화폐 위조는 범죄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엘레나는 가끔 하기도 합니다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엘리아스 엘프들의 유일 지도자라 잡아갈 사람이 없거든요.


엘프들의 도시, 모나티엄에선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한 상태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디지털 화폐가 쓰이기 때문에 손수레로 돈을 옮기는 일은 없거든요. 게다가 5년에 한번 씩, 엘프 시민들의 편의성을 위해 비대해진 화폐 단위를 축소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엘레나가 자신의 부를 위해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엘레나는 오직 위대한 발명과 고향 귀환만을 생각하는 열정적인 엘프입니다.



2위: 시스트

시스트에게 금전 재산은 전무합니다. 이미 무언가를 사서 쟁여 놓은 뒤거든요. 이 영악한 용족 밀수꾼은 엘리아스 전체를 쉴새없이 돌아다니며 절대적인 현물 가치를 계산하는 데에 여념이 없습니다.


다른 동족들이 보석이나 자기 관리 같은 것에 신경 쓰는 동안, 시스트는 뭔가 다른 걸 추구했습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그것을 자신의 손에 넣고 싶어했던 시스트는, 자신의 꿈이 실현되려면 첫 단계로 돈부터 얻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엘리아스의 모든 인력과 자원을 규합해 ‘거대한 불 뿜는 창’을 만들기 위해서 시스트는 오늘도 바쁘게 엘리아스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언젠간 하늘을 뚫고 떡상할거니까요.



1위: 멜루나

멜루나가 과거에 우연히 엘프 도시에 들렀을 때, 머릿 속에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보통 때라면 달고 맛있는 멜론을 팔기 위한 유통권을 따내는 것으로 그쳤겠지만, 엘프들의 전자기기들을 보면서 무형의 물건을 사고 팔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멜루나는 현재 대형 디지털 음원사의 대주주이자 사장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전설적인 엘프 가수의 명반 몇 개를 계속 재활용하고 리마스터하면서, 그것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라진 전설의 가수에게 합법적인 인세는 계속 지급하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몇 년을 주기로 리셋 되는 모나티엄의 화폐 단위 때문에 재산 가치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멜루나가 이 많은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몰라 그냥 썩혀두고 있기도 하고… 멜루나의 안목을 떠받드는 이사회가 문어발처럼 이런 저런 사업에 손을 대고 있기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