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 일어났다.


물론 내 인생은 정말 만화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전생은 심심했지만 과로사로 죽었더니 똑같은 집안에서 여자로 환생해 있었다.


"아... 그래도 개꿀이네."


이후에는 승승장구했다. 아쉽게도 코인은 존재조차 사라졌고 로또 당첨번호를 일일이 외우고 있지도 않았으니 치트키는 못썼지만, 그래도 어릴 적부터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떡상 예정인 주식을 사서 큰 돈을 만졌고, 그걸로 집도 사고 차도 샀다. 부모님께 효도는 덤이다.


"아이고 우리 딸내미 덕분에 호강하네."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런데 우리 딸... 혹시 아직 남자친구 소식은 없니?"


조금 구시대적인 마인드를 가진 두분께선 이제 대학 졸업한 딸에게 벌써 결혼을 요구하고 계셨다. 남친은 무슨, 아마 남친 구해오면 손주타령부터 하실 분들이다.


"전 아직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핑곗거리로 삼는건 언제나 일이었다. 좋은 대학에 나와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 솔직히 이제 은퇴하고 은행 이자만 받아먹어도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여윳돈이 생겼지만 진급하는 재미, 회사에서 인정받는 재미도 쏠쏠해서 아직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러면 언제쯤..."


"글쎄요. 그래도 30살 되기 전에는 하겠죠?"


대학교 새내기 때까지만 해도 남성으로서 자아가 강해서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학점과 스펙, 취업에 열중하느냐 연애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 누구라도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돈도 있고 얼굴도 되고. 그야말로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자만이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나... 훅."


촛불이 꺼진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는 긴걸로 세 개.


올해 내 나이 30. 그것도 만 나이 기준.


나는 여전히 솔로였다.




케이크와 함께 먹는 소주가 참 달다. 아니 케이크가 단건가? 어쨌든 술과 함께 목구녕으로 기어올라오는 감정을 넘겨보려 하지만, 억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왜 멀쩡한 사람이 없냐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전생의 정체성보다 여성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해지는 요즘, 자연스럽게 내가 찾는 연애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씩 하자가, 그것도 아주 큰 하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헤헤 안녕하세요 틋순님!"


난쟁이 씹덕.


"아 소나타를 몰고 다니시네요? 흐음. 애매한 차를 타고 다니신다. 차라리 그 돈이면 조금 더 얹어서-"


차박이.


"아 아직 연애 안해보셨어요? 잘됐네요."


처녀충 금태양.


"나이가 어떻게... 아, 30살이요? 흠... 여자가 나이 30이면 뭐..."


그리고 초면에 나이로 긁는 개새끼까지. 씨발 아주 그냥 정상이 하나도 없었다.


"하아..."


엄마 아빠도 이제 슬슬 포기한 눈치셨다. 그래도 꼬박꼬박 용돈 챙겨주셔서 독촉은 안 하시는데 얼마전 두 분 생신때 연락 드리니까 하는 말이 참 가관이셨지.


"우리 딸은 건강하게 자라줘서 너무 기뻐."


"내가 무슨 초등학생이냐고!!!"


슬슬 취기가 올라오지만 화가 나니까 알코올이 끝도 없이 들어갔다. 미리 꼬불쳐둔 양주는 없어졌고 보드카도 비었다. 남는건 소주인데, 솔직히 요리용으로 쓰지 저걸 깡으로 입에 넣기는 싫었다.


"편의점에나, 가야즤..."


나는 꼬부라진 발음으로 비척비척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이다.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다. 다행히 병실은 아니었고 사이코 살인마의 지하 작업실 인테리어도 아니었다. 적당히 누리끼리하게 빛바란 벽지를 제외하면 평범한 원룸의 천장이었다. 그리고


"으음..."


옆에는 낯선 남자가 누워 있었다.


전라로.



...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하겠다.


전라로.


"씹?!"


순간 욕이 나올 뻔했지만 평정심을 가졌다. 그래, 내 이번 생은 만화같은 삶이었다. 그러니 분명 이 남자가 알몸인 것도 내가 뭐 실수로 구토를 해서 그럴 확률이 99퍼센트-


"으악!"


-라는 현실도피를 하긴 했지만 이럴때만 현실적이게도 몸을 일으키자 허리가 미친듯이 아파왔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지만 쓰라린 사타구니와 부러질 것 같은 허리 통증, 그리고 결정적으로


[안녕 난 피야! 네 처녀막에서 나왔어!]


이불에 선명하게 묻어있는 내... 순결의 증거를 보면서 모든 정황이 맞춰졌다.


"씨발... 내 유일한 훈장."


남자 동정은 가치가 없어도 여자 처녀는 나름 가치가 있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선 여러 논란이 있겠으나 여친이 처녀막 달려있고 연애 안해본 모쏠이면 싫어할 사람은 아마 극히 적을테니까. 근데 딜도로 뚫기도 겁나서 소중하게 간직해뒀던 내 순결의 상징이 여기서 이렇게, 맥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차라리 기억이라도 나던가..."


뭐 솔직히 말하면 이게 제일 억울했다. 섹스를 했으면 뭐 기억에 남아야지 추억이라도 할 수 있지 아프기만 하면 자다가 작업당해서 내장 털린 피해자랑 뭐가 다르냐고.


"......저기요."


옆에 누운 청년을 흔들어 깨운다. 그러나 묵묵무답이다. 시체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꼴을 보고 있으니 그냥 만사가 귀찮아져서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다행히 콘돔은 끼고 했던 것 같고 일어난 일은 일어난거다. 내가 원한건지 이 남자가 끌고온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부주의하긴 했으니까. 굳이 나 기억이 없어요! 하면서 고소하겠다는 생각은 접어두기로 한다.


"...근데 얼굴만 한 번 볼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얼굴은 확인해 봐야겠다. 못생겼다고 신고하고 막 그러지는 않겠지만 기억에 없더라도 잘생긴 사람한테 처녀 따인게 차라리 정신적 충격은 덜하지 않을까. 막 던파 잘하게 생긴 롤티어 실버 원딜러같은 사람한테 처녀 따였으면 아무리 나라도 좀 억울하게 느껴질 거 같아서.


"두근두근. 이건 내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


마치 패를 뒤집는 아귀의 심정으로 나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선명하게 드러난 근육의 감촉에 심장박동이 빨라지지만 아직 얼굴을 보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리고


"으응."


잠투정을 부리며 슬쩍 내쪽으로 돌아누운 남자. 피로에 찌들어 살짝 헝클어진 머리를 가진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어매 씨발."


자고 일어났더니 옆에 차X우가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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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나? 일단 쓰면서 재미있었으니 오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