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4화 5화 6화(完)


협회 건물의 27층은 매우 특별한 장소다.

이는 어떤 게임인지 설정집인지 모를 괴담처럼 정체 불명의 괴물이 나타나거나, 둘이 들어가면 하나만 나올 수 있는 미스터리한 방의 개념은 아니었다.


세상의 어느 미스터리나 의혹이 그렇듯이 막상 까보면 별볼일 없다. 마법소녀 협회의 27층도 다르지 않다.


그냥 방이다. 정확히는 회의실이다.

의자가 가득하고,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는 스크린이 있고. 과자나 티백들이 몇개 구비되어 있는 평범한 회의실.


그럼에도 '매우 특별하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전에 '특별하다'의 의미는 보통과는 구별되어 다르다는 뜻으로 정의되어 있다.

즉, '특별한'이란 형용사에 장소가 더해지면, 보통 사람이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장소를 일컫는 표현이 된다.


그렇다. 마법소녀 협회 27층에 접근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의 인원에 불과하다.


몇 명이냐고? 묻는다면 이곳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락날락한 내가 단언할 수 있다. 


27층에 오는 사람은 나나, 《마스터》포함 13명밖에 없다.


반면 협회에 속한 직원은 10만명이 훌쩍 넘어가니, 이 얼마나 극소수의 인원만 허락된 장소인지 뼈저리게 알게 됐으리라.


그래서일까. 

사람은 자신이 닿을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망상하고 의혹을 부풀리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이 특성이 '협회 27층 괴담'을 동네방네 퍼뜨렸다.

협회 내부에서 27층에 대한 온갖 괴담을 지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왔나? 너무 늦었군. 자네답지 않게."

"1층에서 잡혀있었거든. 가드들 덕분에."


물론 협회를 지키는 가드라고 해서 27층에 진입할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27층에는 나와 《마스터》 오로지 둘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변신하지 않았군. 왜지? 변신하기만 했어도 순순히 통과시켜줬을 텐데."

"내가 굳이 본모습으로 온 이유를 보자마자 알았음에도 묻는 건, 성격이 너무 고약한데."

"그래도 자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거든."


참으로 뻔뻔하고 두꺼운 낯짝이다.


15년간 보아왔지만, 볼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는 말하지 않을 거야. 분명 네가 생각하는 이유가 맞거든."

"...《매지컬 브레이커》. 아니, 김애린. 성격이 꽤나 변했군?"


나는 어깨를 으쓱대며 답했다.


"어깨에 눌린 짐을 내려놓으니 편하더라고."

"'짐'이라... 확실히. 예전의 자네였다면 쓰지 않을법한 표현을 쓰는 군. 고작 세 달만에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하지만, 아직 공황을 다 치료하지 못했나? 손끝이 떨고 있군. 눈꺼풀도 미묘하게나마 요동치고 있고. 그렇다면, 허세인건가."


역시 간단하게 숨겨지진 않나.


《마스터》의 말이 맞았다.

나는 다시 찾아온 공황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강하게 나가고 있었다.


세 달만에 사람이 바뀌는 건 쉽지 않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고작 세 달간의 자유를 누렸다고 사람의 근본이 달라지겠는가.


게다가 여기는 내 영역이 아닌 《마스터》의 영역이다. 정확히는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가 계속 공황에 시달리고 불안과 강박, 우울증에 시달린 건물이다.


내 기억속 뿌리깊게 내린 기억과 경험이 나를 억죈다.


나는 최대한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손떨림과 불안한 시선은 이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저항인 셈이다.


"허세든 말든 맘대로 생각해. 공황이 완치가 됐든 안 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지금 네겐 내가 필요하다는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잖아?"

"...그렇군. 그래. 지금은 그런 시답잖은 게 중요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자네 말대로 일 이야기를 바로 하지."


《마스터》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매지컬 맨해튼 프로젝트]가 실패했네."

"이름 하나 거창하더니만."


"고작 설계 결함이나, 숙련도 부족의 문제 따위가 아니야. 그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지."

"그래. 도대체 뭐길래 내가 필요할 정도지?"


《마스터》는 평소답지 않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시간 뜸을 들였다.


"우린 열어버렸어."

"...뭐를?"


"마물을 죽이기 위해 탄생한 마법이, 마물을 탄생하기 위한 마법이 되어버렸어. 우린 되돌이킬 수 없는 문을 열어버렸다네."

"뭐? 내가 지금 잘 이해한 게 맞나 《마스터》? 마법이 마물을 낳는다고?"


끄덕. 긍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맥없는 고갯짓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기에 그의 말을 자세히 기울이기로 했다.


"지금 상황은 1급 경보, 아니 0급 경보라고 해야 할까. 그정도로 위급하다네."

"무슨 소리. 마법이 마물을 낳아도 그걸 마법으로 해치우면 되잖아. 나같은 애물단지 말고, 실력 좋은 마법소녀는 협회에 많을 텐데?"


"전부 실패했네."

"뭐라고?"


그건 마법으로 쓰러트릴 수 없는 마물.


만마의 제왕이자 마왕의 화신.


먼 옛날부터 예언으로 내려져온, 온갖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의미의 멸망 그 자체.


《마스터》는 뜬구름 잡는 헛소리를 연거푸 이어나갔다.


"마법소녀의 마법이... 통하지 않아. 그 누구의 마법도. F급부터 S급까지, 심지어 《라운즈》의 마법조차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네. 그건, 기존에 알던 마물의 범주를 뛰어넘은 무언가야."


헛소리는 그쯤 하지, 라는 말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가까스로 삼키는데 성공했다.

다행히도 《마스터》는 이런 내 사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가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자네 뉴스 안 봤다고 했나? 그렇다면 보는 편이 빠르겠군."


삑. 회의실 한켠에 붙어있던 티비가 틀어지고, 뒤이어 한 아나운서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보도를 읊기 시작한다.


-협회의 라운즈가 전원 당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설립자인 《마스터》와 정직 처분을 받은 《매지컬 브레이커》를 제외한 전원이 서울 도심에 자리한 마물에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원 생명이 위험한 상태이며 앞으로의 전투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S급 마법소녀 41명, A급 마법소녀 283명, B급 마법소녀 1503명... 피해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갈 예정입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분명 어제까지 난 평화롭게 회식을 즐겼고,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별 문제 없었다.


방금 지나간 협회 로비가 분주하긴 했어도, 0급 경보가 울렸다고 믿기지 않을 수준의 침착함과 질서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 거짓말이다.


《마스터》가 나를 아예 진창으로 빠트려버리기 위해 지어낸 짓궃은 장난이다.


그런 괴물이 있었다면 세상은 진작 혼란에 빠졌어야만 했다. 그러나 어제까지 세상은 평화로웠고, 모든 사람들이 별일 없다는 듯이 시간을 살아갔다.


내가 정직 처분을 당한지 세달이 넘었다. 

그리고 [매지컬 맨해튼 프로젝트]인가 뭔가 하는 일은 적어도 1년 전부터 착수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협회의 사활을 건 대형 프로젝트였으니 분명 3년 그 이상 전부터 계획되어 왔겠지. 지금과 같은 부작용은 알아차리고도 남을 시간이다.


애초에 《마스터》가 이렇게 허술할리가 없다. 마법에 대한 지식도 출중하고, 일처리도 칼같은 녀석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리가 없다.


그러므로 질나쁜 농담이다.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고, 누군가를 꾀어내기 위한 속임수다.


멀쩡하던 세상이 하루 아침에 망하는 경우가 도대체 여태껏 있었던...가......




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었다.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진 나날을 기억한다. 잊을리가 없다. 내 기억 속 또렷히 자리잡고 있다.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의 죄가 시작된 날. 그리고 애써 마법소녀를 때려치운다 말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선 결코 때려치우지 못하는 이유.


마법소녀와 마물이 세상에 나타난 대격변의 날. 그 날도 지금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뒤바뀌었더랬다.


그래. 지금처럼 아무런 전조 없이 내 일상을 송두리채 뒤집어 엎어버렸다.


...젠장. 손 떨림이 멈추지 않아.


"방금 엠바고가 풀렸네. 이건 협회의 직원들도 다 모르고 있던 사실이야. 오늘 아침 뉴스는 그것의 존재를 어렴풋이 흘렸을 뿐, 규모나 성질 따위를 구구절절 알리진 않았고 마법소녀의 피해조차 보도자료로 넘기지 않았지. 애초에 저들의 피해사실조차 내가 그대에게 통화를 걸기 1분 전에 보고 받은 내용이라네. 그러니까, 위기지. 협회든, 국가든, 세상이든 벗어날 수 없는 재앙을 맞이했다네. 나도 설마 라운즈를 비롯한 최정예 마법소녀들이 허무하게 당할 줄, 알았겠는가. 하하..."


티비가 앵무새처럼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고, 《마스터》가 허망하다는 듯이 말을 내뱉고, 창문에 비친 하늘에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는 맑음이다. 절대로 갑자기 소나기가 찾아올 확률은 0에 가까운 날씨다.


그러니까 지금, 하늘을 가린 건 구름이 아니다.


그 때처럼, 


역시나 마물이다.


"드디어 이쪽에 행차하셨군. 적어도 하루는 붙잡아둘 줄 알았는데, 반나절도 안 돼서 빠져나오다니. 정말 예상 밖의 일 투성이야. 하하하!"


그건 생물이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괴상망측하고 해괴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5살 아이가 스케치북에 막 그려낸 낙서. 그게 온전히 세상 밖으로 실체화한 모습이다.


"세상이 정말로 망하려는가. 마법소녀가 힘들게 기워놓은 세상이 결국, 망하려는가."


절망이 가득 찬 이 협회 건물에서 《마스터》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더욱 막강한 화력. 압축된 힘. 세상을 뒤집을 마법."


"그건 오롯이 개인에게 주어지기엔, 너무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이지 않나?"


그래.


그러니 그건,


분명 한낱 마법소녀가, 인간에게 주어지기엔 너무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힘이자 마법.


따라서 마법소녀가 갖기엔 너무나도 불온하기에


세상으로부터 수거하기 위해 청소부가 내려왔다.


마물을 부수기 위해 개발된 미숙한 애물에서부터 태어나,


마침내 세상을 무너트리고자 하니.


멸망 앞에 선 마법소녀 하나는


"《마스터》! 《매지컬포》 지금 지하에 있냐?!"

"그래. 나만은 포기해도 《매지컬 브레이커》, 자네는 포기하지 않는가? 맞다네. 자네 고유무기는 지하에 곤히 모셔두었지."


"이런 씨이팔!!!"


너무나도 어리석게도...


"후웁! 하아! 이 미친 《마스터》 새끼가 하필이면 지하에다가 《매지컬포》를 짱박아둬? 미친 싸이코 또라이새끼 아니야!"


자신의 전력을 다해


"27층부터 지하 1층까지는 너무 먼데. ...그래. 변신이다.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 이곳에 세상을 부수기 위해 등장합니다!"


그에 대항하고자, 떨리는 손발을 다잡고 달린다.


"미친미친미친미친. 왜 이 중요할 때 발작이 도지는 거야. 제발 버텨라. 제발!"


온갖 과오와, 실수와, 후회가 나를 짓누를지라도 결코 주저앉지는 않으니


"어... 당신은 《매지컬 브레이커》? 왜 여기에..."

"비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렇기에 난 그 온갖 수모와 놀림과 조롱을 받으며 15년을 버티며


"《매지컬포》... 여기있었구나. 그래. 이것만 있으면 돼. 내겐 다른 것보다 이것만 있으면 돼. 이것만 있으면..."


마법소녀를 해왔던 것이다.


너무나도 그리운 감촉을 조그마한 손으로 느끼며 나는 어제 술김에 했던 다짐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평범한 20대 청춘의 김애린으로 살고픈 마음은 적어도 지금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지금 내가 마음 속에 담아둔 건...


그래.


15년 베테랑 마법소녀이자 협회의 애물단지.


하지만 마물 하나는 기가 막히게 분쇄했던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


지금의 나는 언제나 돌파구를 마련했던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였다.


그리고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응애


글 너무 어려워


응애애애애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