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정정하겠다. 나는 이 게임, ‘이카리안 테일’을 좋아한다. 


낡은 게임이고, 그래픽은 뒤떨어졌으며, 시스템도 구식인데다, 스토리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그 세계에서 살아갈 뿐인, 그런 밋밋한 게임이다. 그렇다고 내가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이 약해빠진 몸뚱아리로는 얼마 플레이하지도 못 하고 게임을 종료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나에게 왜 이 게임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리 답할 것이다.


발이 닿는 대로, 마음껏 여행할 수 있으니까.


그것은 어떤 다큐멘터리나 여행기를 읽는 것과도 달랐다. 영상이든 책이든 그것은 타인이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볼 뿐이지만, ‘이카리안 테일’ 속의 나는 비록 가짜일지라도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 이 한 칸의 병실이 세상의 전부인 나에게는, 게임을 킨 그 잠깐의 시간이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그것도 예전 이야기지만.


하루하루 손발의 감각이 사라져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졌다. 게임을 하기는 커녕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힘겨웠다. 오늘도 졸음이 찾아왔다. 내일 깨어나면 어떤 것을 잃어버릴까. 아니지, 일어날 수는 있을까? 


나는 쓰잘데기 없는 의문을 가지며 잠에 들었다. 


*****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이래?


나는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요리봐도 조리봐도 물의 거울에 비치는 건 창백한 시체같던 내 얼굴이 아니라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는 귀여운 소녀의 모습 뿐이었다. 


그리고 저건 또 무엇인가? 나는 물에 비친 모습 한 구석에 자그마한 손을 가져다 대었다. 


퍼져나가는 물결과 함께 “▼”모양으로 깜빡이던 표시가 펼쳐지듯 주르륵 열렸다. 


[이름: 큐리아]

[종족: 페어리]

[특성: …]

[기술: …]


“…이카리안 스텟창?”


아무래도 나는, 이카리안 테일의 세계에 떨어진 모양이다.


그것도 자그마한 요정으로. 


“악.”


바람에 흔들린 거대한 꽃봉오리가 내 머리를 폭 때렸다. 


아야.


꿈이 아닌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