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는 우주빈민이다.


  그는 과거 통일대한민국의 전쟁영웅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영광일 뿐이지만⋯.


  제2차 한국전쟁에서 그는 작전에 참여한 그여느 병사들이 그러하였듯이 뜨거운 방사능을 뒤집어 썼다.


  전쟁은 승리하였지만 그의 삶은 시궁창이 되었다. 

  세걸음 마다 치밀어 오르는 구토에 똑바로 걷기조차할 수 없는 몸이었다.


  대한민국의 언론이 아주 오랜만에 재기능을 한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축복이라고, 당시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짙은 피폭의 늪에서 병사들을 구제해 낼 방법따위, 당시의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함께 작전에 참여한 미국의 병사들 또한 대한민국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방사능 피폭의 고통을 겪는 중이었던 점.

  당시의 연우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게 한 두번째 건수였다.


  미국은 자신의 병사들이 콜드슬립에 들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몇은 남았지만 대다수는 동면에 들어갔다.

  

  이때, 대한민국의 병사들도 자국 여론에 등떠밀린 정부의 활약으로 함께 동면에 들 수 있었다.

  연우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미련하게도.



  연우가 깨어난 것은 500년이 지난 후였다.


상이군인으로써, 전쟁 영웅으로써, 남부럽지 않은 보상금, 포상금을 받았지만 딱히 투자 같은 것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동면에 드는 입장임에도 금융에 있어서 참 안일했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그의 잔고는 500년간의 인플레이션에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그는 빈민으로 대우주시대에 던져졌다.


  홀몸으로, 심지어 어째서인지 여성형 의체를 뒤집어 쓴체로.


✦ ✦ ✦ 


  연우는 물도 없이 식사를 씹으며 몸을 뉘였다.


  연우는 트럭커였다.

  태양계를 누비는 우주의 트럭커.


  그녀가 탄 소형화물선의 콕핏은 동면 전 지구의 대형트럭 운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종석—주로 자동 항해이기는 하지만— 하나와 뒤편의 작은 생활공간.


  생활공간은 반지름 1미터, 깊이 1미터 정도의 원통형 공간이다.

  원통의 안쪽에 식료품 저장고, 옷장을 비롯한 조금의 수납, 전자레인지와 같은 소가전, 싱글사이즈 침대만한 수면캡슐이 자리 잡고 있다.


  가구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나면 비좁디 비좁은 선내이지만, 연우의 몸 또한 이제 작고 아담하다.

  덕분에 근래의 생활을 꽤나 만족하고 있는 연우였다.

  

  그야 이전의 사이버펑크한 콜로니에서의 빈민 생활을 추억하면 누구라도 동의 할 것이었다.


  연우는 궁상 맞은 생활에 아주 익숙해져있다.


  지금만해도 그녀는 갈증과 맞서고 있다.

  조금 더 느긋한 마음가짐을 가졌더라면 느낄 필요 없었을 갈증이다.


  노후한 선박답게 회수자원재생기가 고장난 연우의 배는, 철저하게 보급을 통해서만 수자원을 충당해야 했다.

  우주에서 가장 비싼 자원 중 하나인 물은 심지어 무겁기까지해서 많은 양을 축적해 두고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보급의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애써 보급 기회를 만들어 가며 수자원을 충당해 왔다.


  사실 곧장 재생기를 고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연우는 제 목숨 아깝게 여기지 않는 년 취급을 받을 터였다.

  하지만 연우는 여전히 우주시대의 상식이 부족했다.


  결국 연우는 또다시 여정을 시작한 것이었다.

  재생기는 여전히 고장난 채로

  14일간의 항해가 예정되었으나 10일치의 물 밖에 싣지 못했다.


  연우는 물이 동나기 전에 이미 몇군데고 콜로니를 경유할 수 있었다.

  다만, 어디든지 경유가 있다면 일정은 늦춰질 것이었고 이번 여정에는 공교롭게도 인센티브가 예정되어 있어서.

  인센티브는 15일 이내에 화물이 전달 될 경우 지급 되기로 되어있었다.

  연우는 생각했다. 

  '할만하지 않나?' 하고.


  그 결과가 이 꼴이다.


  재생기가 퍼진 시점에서 이미 그녀는 물 소비량을 크게 한번 줄였더랬으니까.

  거기서 물을 더 줄였으니, 탈수에 가까워지고야 말았다.


  항해 13일차인 오늘, 연우는 싸구려 우주 식량을 물도 없이 씹고 있었다.

  음식이라기 보다는 사포에 가까운 식감이라고 연우는 생각했다.


  '반드시 회수자원재생기를 고쳐야지'


  연우의 결심은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것이었다.


✦ ✦ ✦ 


  다시한번 말하지만 연우의 결의는 늦은 것이었다.


  어째서 그러한가, 어째서 다들 재생기가 고장난 배는 띄우는 법이 없는가, 왜 빚을 내서까지 고치려고들 하는가?

  물론 위 사실들중 단 한가지도 연우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뻔한 우주의 상식이었다.


  연우의 트럭은 하이브리드 추친기관을 갖추었다.

  연비를 위한 솔라세일과 이온 쓰러스터를 순발력을 위한 화학 로켓과 겸용했다.

  여정의 초반, 굼뱅이 같은 우주선에 속도를 붙이거나 중력권을 탈출 시키는 데에 화학 로켓이 제역할을 다 하고 나면 다이슨 스피어의 거울 위성들이 쏘아주는 태양 빛과 이온 쓰러스터가 여정 내내 우주선을 가속시킨다.


  당연히, 궤도의 계산은 솔라세일링과 이온 추진이 만드는 가속을 모두 상정하고 이루어진다.

  돌연 항해 중 추진 하나가 사라진다면, 궤도는 엉망이 되고만다.

  

  마치 지금의 연우처럼.


  연우는 지나가다 재앙을 만났다고 볼 수 있었다.

  다이슨 스피어는 돈 많은 누군가의 시급하고 중대한 요청에 응해, 잠시 돈이 적은 누군가의 일상적이고 미천한 요청을 후순위로 재쳐 두자고 판단했을 뿐이다.

  

  지극히도 합리적이어라.


  태양계를 항해 하다보면 예고도 없이, 하지만 드물지만은 않게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주의 또다른 격언으로 '낼 수있는 엔진 추력에 3할은 여유를 둬라'가 있었다.

  만약 솔라세일의 빈 자리를 이온 쓰러스터가 보충해 줄 수 있었다면 예정한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테니까.

  물론, 연우의 이온 쓰러스터는 13일째 풀 악셀이었다.


  수정된 궤도는 오직 하루의 지연만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연우의 경우엔 이온 쓰러스터의 연료가 부족했으므로 나흘.

  나흘 후에는 확실이 죽어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몽롱한 정신에 오만가지 후회가 스친다.


  살아 남더라도, 

  응급 의료 서비스가 호출 된다면 그 비용은? 

  사전에 신고한 궤도를 이탈한 과태료는? 

  긴급 궤도 수정 허가 신청의 비용은?

  

  아니어째서? 

  나는 다이슨 측이 자신들의 사정으로 피해를 본 셈인데도. 

  아, 요금제.

  가장 저렴한 것에는 별도 보험 번들을 유료로 추가해야만 보상이 이루어졌다. 

  아 이래서 요금제의 별명이 언듯 듣기로 자살요금제⋯.


  연우는 위가 쩍쩍 갈라지는 고통 속에서 구조신호를 연타했다.

  인신매매선이 찾아 오더라도.

  될대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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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우는 또, 또 몰랐지만.

  요즘 생산되는 우주선에는 구조신호 같은 것이 없다.


  정확하게는 '무차별 구조신호'가 없다.

  마구잡이로 전방위에 메이데이를 살포하는 그것말이다.

  이유라면 연우도 걱정했듯이 인신매매를 업 삼는 우주해적들이었다.


  우주선들은 차주가 별도로 구독한 구조 서비스에만—주로 우주선 메이커에서 자사 상품이외에는 기능을 개방하지 않지만— 오직 암호화된 신호만을 전송하게 되었고, 

  그렇게 된지도 꽤 오랜시간이 지났다.

  

  다만 연우의 배는 그것보다도 훨씬 구형의 기체였으므로⋯.



  인신매매선을 만나지는 않았다.


  다만 커다란 프리깃 한 척이 연우에게 접근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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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백합


더 쓸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