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


동의어로는 선생, 박사, 인류 최후의 마스터, 제독, 함장, 트레이너 등이 있는 단어.


어떤 대원과도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어떤 궁지에서도 뛰어난 작전을 생각해 빠져나오고.


어떤 강적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기적처럼 승리를 손에 넣고 마는.


그런 '초인'을, 우리는 '지휘관'이라고 부른다.



"커허엌… 쿨럭, 커흨?!"



그렇다면 나는.



"여기까진가? 실망이군."

"지휘관!!"

"잘 가라. 범부."




'지휘관'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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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즈 오브 아르카디아'.



'아르카디아'라는 가상의 대륙을 배경으로 하는 캐릭터 수집형 모바일 게임.


대부분의 캐릭터 수집형 모바일 게임이 그렇듯, 플레이어는 아르카디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아스트라'라는 조직의 '지휘관'이 되어 아르카디아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지휘관은 주인공인 만큼 모든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해피엔딩으로 이끌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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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새하얀 천장.


난 죽음의 직전에서 돌아온 듯한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몸을 황급히 일으켰고, 주변을 둘러보자 다행히 이곳은 눈에 익은 곳이었다.



'…의무실?'



다친 대원들이 회복을 위해 들리는 의무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지휘관이기에 대원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만 주로 들렀던 곳.


그런 곳에 직접 누워있다는 게 어색했던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어…?'



꽈당──!!



분명 발이 바닥에 닿았을 텐데.


애꿎은 허공만 딛은 발 때문에 나는 성대하게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으윽…?! 뭐, 뭐야아."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발 뿐만이 아니라, 침대를 잡기 위해 뻗은 손도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고.


어쩐지 시야도 확 낮아져 있었다.


거기다, 아까부터 들리는 이 얇고 높은 목소리까지.


그 이상한 일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의무실의 문이 드르륵하고 열렸다.



"하아, 지휘관. 언제나 일어나실──"



그 문을 연 것은 언제나 의무실에서 환자를 돌봐주던 의료부장, 캐서린.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에 연분홍색 간호사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난장판이 된 침대 위를 보고 눈이 커지더니, 점점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캐서린의 시선이 나에게 닿은 순간.



"지휘관?"



그녀의 눈동자는 믿을 수 없는 걸 봤다는 듯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캐… 캐서린? 나, 어떻게 된 거야?"

"진짜, 진짜 지휘관이십니까?"

"당연하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이럴 시간이 아니야. 베노미아는 어떻게 됐어?! 대원들은?!"

"…잠깐,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지휘관."



생각할 시간이라니.


내가 의식을 잃고 나서, 그 사악한 자식들이 뭔 짓을 했을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 더 중요한 게 어딨단 말인가.


잘못했다간 대륙의 절반 이상이 그 녀석들의 독으로 뒤덮일 수도 있는 상황에 말이다.



"비켜줘, 캐서린. 상황실에 가 봐야겠어."

"…지휘관."



밖으로 나가려는 내 앞을 막아선 캐서린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한쪽에 놓여있던 손거울을 들어 내게 내밀었다.



"지금 거울 같은 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닌… 데?"



거울 속에는 '내'가.


'내'가 있어야 했는데.


저 '여자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지휘관, 충격받지 말고 들으세요."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은발.


빛 바랜 사파이어 같은 흐릿한 눈동자.


거기에, 손만 대도 툭하고 부서질 거 같이 여린 몸.



"베노미아의 마지막 공격에 의해… 지휘관은 여성. 그것도 아이가 된 모양입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모든 게 사실이라고 말하는 캐서린의 진단까지.



"…지휘관? 지휘관?! 정신 차리세요!!"



나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줄을 놔 버렸고, 황급히 달려오는 캐서린의 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