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판타지 소설에는 '판타지' 성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모험이라든가, 가지각색의 다양한 판타지풍 종족이라든가 화려한 마법. 그런 기본적인 골자를 지키고는 있지만, 내가 바랬던 건 이런게 아니었단 말이다.


웅장한 자연의 풍경, 험난한 모험, 조금씩 밝혀지는 세계의 진실이라던가.


요즘 유행하는 먼치킨이나 사이다 느낌의 소설보다도 나는 그런 정통판타지라 불리는 것을 원했다.


음... 단지 원했을 뿐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판타지 세계일줄은 몰랐다...!


나이가 어려지고, 몸이 바뀌었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을 때가 왔구나!


***


"아버지! 바라는게 있습니다!"


"그래, 말해보거라 딸아!"


"모험가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조그마한 영지의 한 귀퉁이, 농민인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났다.


농노니 뭐니 하는 신분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하나 다행인 것이라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민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영주에게 소작료를 내고 농사를 하는 입장에서 뭐가 다른가 싶기는 하지만.


15살이 되는 생일날, 이쯤되면 아이가 충분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되어 성인이라고 칭하게 되는 시기.


하나뿐인 자식인 나를 애지중지 감싸고 도시며 외출도 잘 못하게한 아버지도 지금만큼은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려하셨다.


그렇기에 도박수를 던진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목청껏 내가 원하는 바를 말했다.


내 말에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던 아버지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뭐라? 모험가?"


"네! 좋지 아니한가요!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새로운 동료와의 조우! 그리고ㅡ 끼얏!"


콩!


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주먹이 쏜살같이 날아와 내 정수리에 꽂혔다.


시간이 날때마다 몰래몰래 뒷산으로 나가 단련했거늘, 반응조차 하지 못할 줄이야.


"아이리스, 아이리스! 모험가라는 직업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게냐!"


"여행하고... 동료 모으고... 그런거 아닌가요...?"


최대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아버지에게 슬쩍 던지자, 아버지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런, 정답이 아니었나보네...


"모험가라는 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게 아니다! 마법이나 힘, 아니면 우수한 머리. 그렇게 타고난 사람들 중에서 용기있는 사람들만이 도전하는 것이 모험가라는 직업이다!"


"오..."


"그리고, 그 용기는 대부분 무식함이라 불리지. 대체 어떤 정상인이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경비병에 지원하지 않겠냐?"


"..."


그렇게 말하니까 대답할 말이 없긴하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똑똑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과학자가 되어 세상을 발전시키려하기보다는 사짜 붙은 직업을 가지려고 하긴 했으니까.


다만,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우리 아버지, 낭만이 없으시네.


"아버지ㅡ"


"아이리스."


내 낭만에 대한 이론을 아버지께 설파하려 하자, 아버지가 단호한 목소리로 끼어드셨다.


"또 낭만이니 뭐니 하는 말을 지껄일꺼면 몰래 뒷산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시킬 줄 알아라."


"...넵."


아버지의 단언에 난 조용히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보다도, 몰래 나가던거 들켰었구나. 나름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유약하던 아이가 갑자기 활기차졌을 땐 기뻤다만, 이런 아이가 될 줄이야..."


음...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게 없는 것 같다.


이불 아래에 날 대신할 짚인형도 놓아두고, 소리도 안 나게 조심스레 나갔는데...


아무래도, 그 뺀질뺀질한 루이 그 자식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친 것이 분명했다.


비밀로 부치겠다 해놓고선, 배신자 자식...


한 대 때려주러 가야겠다.


"아무튼, 아이리스. 성인이 되었다고는 해도, 넌 여자아이다. 모험가같이 험한 일을 하게 된다면ㅡ 아이리스??"


"아빠! 잠깐 갔다올게!"


"아이리스!!"


문을 열고 빠른 발걸음으로 뛰쳐나가자, 아버지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돌아올 테니까!"


***


루이의 집에 찾아가보았지만 루이는 그곳에 없었다.


그 자식이 있을 만한 곳은 어차피 자기 집이나 뒷산 밖에 없을 테니 난 천천히 뒷산을 타고 올라갔다.


빽빽이 숲을 메운 나무들과 코를 스치는 숲내음이 상쾌했다.


나무들 곳곳에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발판이나 어렸을 때부터 키를 재었던 홈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대로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야! 루이!"


내 목소리가 넓은 숲에 천천히 울려퍼졌다. 


뒷산에 들어온 이후 한시간쯤 지났을까. 숲의 꽤나 깊숙히까지 들어왔음에도 루이는 보이지 않았다.


산이어서 그런지 해도 금새 져버리고 슬슬 공기도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어련히 알아서 집으로 들어갔겠거니 하고 발걸음을 돌리자, 깎아지른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몇번이고 봐왔던 절벽이기는 하지만, 요근래 찾아오지 않았던 장소여서 그런건지 살짝 괴리감이 들었다.


뭔가, 약간이지만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본디 자연물이라는 것은 불변한다 그러지만, 마법이 있고 괴수가 있는 세상이 아닌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시 집으로 향하려하자, 시야에 금색의 무언가가 잡혔다.


푸른색과 갈색의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보니, 금색. 그것도 쨍하다 할 정도의 금발은 눈에 잘 띌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리 많지 않은 머리 색이기도 하고.


나는 절벽 방향을 보고 있는 루이한테 조용히 다가가서...


"와악!"


"으아악!!"


루이의 상체를 뒤에서 양팔로 감싸 안으며 크게 소리쳤다.


답지 않은 비명을 지르며 소스라치게 놀란 루이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한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살짝 짜증이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내 뺨을 밀어냈다.


"넌 뭐 여자애가 그렇게 조심성도 없이 남자한ㅡ"


빠악.


"아악!"


"뭐래, 나보다 약한게."


손바닥으로 강하게 루이의 뒤통수를 가격하니, 속을 메우고 있던 체증이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고생하게 한 대가! 뭐, 그런 느낌이다.


그나저나, 때려야하는 높이가 꽤나 높아졌다.


이 자식이... 내가 키가 멈춘 사이에 먼저 커버리다니. 용서할 수가 없구나.


한 대 더 후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인자한 내가 참아 주기로 했다.


원해서 커진 키는 아닐테니까.


"그래서, 뭘 보고 있었어?"


"아아... 저기 절벽을 한 번 봐봐. 뭔가 바위가 어색하게 놓여있지 않아?"


루이가 절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절벽의 색과는 약간 다른 색의 바위가 절벽의 앞에 세워져있었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뭔가 있는게 아닐까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고ㅡ 아니 잠깐, 듣고는 있어?"


"..."


"아이리스? 야! 하아..."


절벽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한 숨을 쉬는 루이 같은 건 내버려두고, 그곳으로 다가가자 보인 것은 바위.


그리고, 바위에 깊숙히 박혀있는 기다란 금속이었다.


"루이! 이것봐봐!"


"음...? 저거... 혹시 레버 아니야?"


"흥."


"뭔데 그 콧바람은."


이래서 범인은 안된다 이거다.


바위에 길게 난 선 모양의 홈.


그리고 그 홈을 따라 당길 수 있는 것 같을 기다란 금속.


혹자는 저 바위를 움직일 수 있는 레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바위에 깊게 박혀있는 금속? 누가보아도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엑스칼리버가 아닌가!


"저건, 성검이야...!!"


그래, 이세계에 환생까지 했는데도 특별한 재능도 기연도 없을 리가 없지!


저것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기연이 분명해!


"아니, 아무리 봐도 그냥 레버ㅡ"


"성검."


"아니, 저건ㅡ"


"성검인데?"


"아니, 쓰읍... 하아..."


내가 계속해서 사실을 밀어붙이자, 이제서야 말도 안되는 의견을 내는 것은 포기했는지 루이는 한 숨을 내쉬었다.


"이 검을 뽑는자..."


나는 그 바위로 다가가 그 금속을 붙잡고, 그대로 힘껏 당겼다.


"왕... 이... 되리니...!"


음...


근데, 이 검.


꽤나 저항이 강하다.


나름 완력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검이 뽑히기는 커녕 바위만 살짝씩 들썩거릴 뿐이었다.


조금씩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 레버라고 생각할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뽑을 수 있으리라...! 그야, 난 특별하니까...!


"끄으으읏...!!"


전신에 힘을 주며 잡아당기자, 천천히 뽑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으드득.


"아이리스, 그러다가 다친다?"


"조금만... 더...!!"


으드드득!


"됐ㅡ 으앗!"


콰당.


바위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금속이 그대로 뽑혀져나왔다.


갑작스러워 전신에 힘을 빼지 못했기에, 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바닥에 부딪힌 엉덩이가 얼얼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뽑아낸 성검의 자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특이하게도, 내가 뽑아낸 성검에는 크로스가드, 폼멜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잡는 부분의 가죽 말고는 전체적으로 올곧은 모습에, 성창이 아닌가 생각할 무렵.


끝부분에 양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존재했다.


"이건..."


결코 성검은 아니었으며, 성창 또한 아니었다.


제일 비슷한 걸 떠올려 부르자면...


"홀리ㅡ워해머!"


"...누가봐도 레버를 꼽아두려고 만든 부분이잖아..."


***


이런식으로 낭만을 좇아 모험하는 TS돈키호테튼녀가 보고 싶구나


2화는 업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