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연인도, 심지어 부모마저도.


단순히 여자로 변한 날 알아보지 못하는게 아니었다.


남자였던 나.

그냥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옛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을 어필하는 나를 모두가 미친년 취급했다.


단 한 사람.

후배 시아를 제외하고선.


불임이라 자식 한 번 가져보지 못했다며 날 매몰차게 내쫓은 부모님의 집 앞에 주저앉아있던 내게 다가온 한 여자.


같은 동아리 후배인 시아라는 걸 알아채긴 했지만 부모조차 날 기억하지 못하는 판국에 면식이 있을 뿐이었던 후배가 날 기억할 리가 없었기에 그저 모른 체 하려고 했다.


괜히 알아주길 기대했다간 상처만 받을테니까.


하지만 그대로 뒤돌아 떠나려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작은 혼잣말은, 그런 나의 생각을 단번에 뒤집어 놓았다.


“흠, 지훈 선배가 연락을 안 받으시네. 동어리 회의있다고 전해드려야 하는데.”


지훈.

김지훈.


흔하디 흔한 이름이지만,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소중한 내 이름.


이제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세 글자를 굳이 내 집이었던 이 곳에서 찾는다는 건.


‘날, 기억하고 있는 건가? 정말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있는 힘껏 달려 시아를 붙잡고 물었다.


김지훈을 아느냐고. 기억하고 있냐고.


“예? 아, 그, 알고 있죠. 저희 사진 동아리 선배인데...근데 선배 아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수 일간의 기억이 떠오르며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아니, 김지훈이 누군데요? 저 그런 애 모른다니까요!’


‘내 남자친구 김지훈 아니라고! 당신 누군데 대낮부터 이 지랄이야? 미친년인가 진짜.’


‘이 여자가 진짜! 우리 부부 유산만 두 번하고 불임되서 아이를 낳아보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 자기가 아들이라고 하는 말을 생면부지의 여자한테 들으면, 우리보고 어쩌라는거야! 흑, 흐흑...’


모두가 자신을 잊은 채, 아니 애초에 알지도 못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매몰차게 자신을 쳐내던 기억들.


그 짧으면서도 길었던 지옥 속에서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을 찾은 것이다.


“흑,흐흑, 시아야, 나야, 나 김지훈이야. 사람들이, 엄마가, 날 기억 못 해. 아무도 날 몰라. 근데 너가, 날 안다고, 날 찾으러 왔다고, 그래서 나, 어허어어엉-”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이 새어나오는 울음.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 다짜고짜 자신을 붙잡고 울어제끼면 당황스럽고 불편할 만도 한데, 시아는 그런 나를 밀어내기는커녕 따스히 안아주며 날 달래주었다.


“저, 저기.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울음부터 그쳐 봐요, 네? 옳지, 다 괜찮을거에요. 그러니까 그만 울어요.”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한 태도에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시아의 품이 주는 따스함이 너무나 기분 좋았기에.


드디어 희망을 얻었다는 안도감과 며칠간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쌓인 피로까지 겹쳐진 탓에 나는 울다 지친 채로 시아의 품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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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많이 힘드셨죠 선배?”


한때 선배가 살고 있던 집 앞에서 선배를 품에 안은 채 그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니.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을 꿈같은 상황에 시아는 아무런 자극이 없었음에도 팬티가 축축하게 젖어감을 느꼈다.


“선배, 선배, 사랑하는 우리 선배. 이제 걱정 마세요. 제가 뭐든지 다 해드릴테니까.”


언제나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대학 오티 첫 날.


처음 마신 술에 엄한 놈에게 끌려가 험한 꼴을 당할 뻔했던 자신을 구해준 선배.


그 모습에 첫 눈에 반해 열심히 수소문한 끝에 사진동아리 소속이란 걸 알아내 가입했다.


‘아, 그 때 그 애구나? 무사해서 참 다행이네. 우리 동아리 들어오려고? 언제든지 환영이지!’


놀랍게도 선배 역시 시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따스하게 맞이해주시다니. 이건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적어도 날 싫어하진 않으시는 거 맞지? 히히. 이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다 보면 선배랑 친구가 되고, 그걸 넘어서 연인으로-’


“꺄아-!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하지만 마음 속 외침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에 따라 선배를 향한 시아의 마음 역시 커져갔다.


하지만 어느 날 듣게 된 소문은 , 그런 시아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았다.


‘야, 그거 들었어? 우리 동아리 회장 누나랑 지훈이랑 사귄대.’


안그래도 회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자꾸만 선배에게 꼬리를 치는 꼬라지가 영 거슬리던 3학년 선배.


듣자하니 학기마다 남자를 갈아치우는 걸레년이란 소문이 파다한 탓에 경계대상 1호에 올라있던 버러지가, 기어코 소중한 선배에게 손을 대고 만 것이다.


그 날부로 시아의 세계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꽁냥대며 선배의 몸을 만지작거리는 꽃뱀년를 볼 때마다 속이 뒤집어졌고, 같은 타이밍에 들어온 두 사람이 어제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걸 봤을 때는 당장 달려들어 걸레년의 모가지를 찔러버리고 싶었다.


물론 선배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은 없었다.


“선배가 얼마나 착하고 상냥한데. 저 더러운 년이 선배를 속이고 있는게 분명해. 천박한 몸뚱아리로 넘어뜨린 다음 협박했겠지. 응. 그럴 거야. 아니먼 선배가 저런 년이랑 붙어다닐 이유가 없잖아.”


내가 있는데.


아마 착한 선배니까 자신에게 도와달라 말 한마디도 못한 것이리라.


그렇게 하루하루 걸레년을 향한 증오를 쌓으며 처리계획을 짜던 중.


시아의 스마트폰에 이상한 어플이 깔렸다.


“세계, 개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어플.


악성 광고인가 싶었지만 시아는 어째서인지 홀린 듯 어플을 실행시켰고, 그 능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플의 이름대로 정말 세계를 개변시켜버리는 말도 안 되는 능력.


그 가능성을 깨달은 순간, 시아의 머릿 속에 떠오른 건 오직 하나였다.


“선배...이거라면 선배를 나만의 것으로...”


만약 선배가 모든 것을 잃고 외톨이가 되었을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자신을 본다면.


선배는 자신을 의존할 수밖에 없을테니까.


선배가 자신에게 매달리며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상상한 시아는 평소 선배를 반찬으로 하던 자위보다 수십 배는 큰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었다.


“아힛, 아히힛! 서, 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선배...”


그 상상으로 잠시간의 해피타임까지 가진 시아는 한층 맑아진 머리로 즉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우선 누구도 선배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고, 선배가 혼란에 빠지면 그 때 내가 나서서...히히힛.”


그렇게 가족부터 친구들, 그리고 버러지년의 기억을 차례로 손보던 중. 한가지 기능이 눈에 띄었다.


“성별, 변경?”


만약 선배가 여자가 되어버리면, 당연히 앞으로 있을 지도 모를 꼬리치는 년들도 예방할 수 있고, 선배가 남자를 좋아할 리도 없으니까...


이거다.

이것만큼 완벽한 여우예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어플의 기능을 실행시킨 결과는, 예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그 누구도 선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미친년 취급하며 밀어내기에 바빴으니까.


다만 그 정도가 심해 선배를 상처입힌 일부, 특히 밀어 넘어뜨려서 선배의 몸에 상처를 낸 그 불여시걸레년은 추후 처리하기로 하고.


자연스럽게 선배의 앞에 나타난 듯 위장한 시아는 현재, 인생 최고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선배도 참. 이런 데서 잠들면 감기 걸리는데.”


우선 한참이나 가벼워진 선배의 몸을 그대로 들어올린 시아는 그간 준비해둔 선배와 자신 둘 만의 보금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평생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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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얀데레 시아에게 키워지는 틋녀가 보고싶구나.

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