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29nLa5WqJ4







카앙-!!


모래 바람 안에서 날카로운 무언가들이 부딪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고는 뒤이어 둔탁한 소음도 들린다.


" 윽... 이 년이...!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뒷감당을 할 자신은... "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성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힐난하고 물어뜯는다.
가령 궁지에 몰린 사람의 처절한 발악으로 보인다.


일대에 일어났던 모래바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마치 누군가의 의지를 따르듯이.


가라앉으며 어떤 소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무언가를 밟아 부수는 소리도 함께.


" 그만. 그래서, 더 지껄여보시겠어요?
학생회장의 지위를 당신에게 내놓으라고? 나 같은 고생을 모르는 계집에게 아까운 자리라고? 흐 - "


사내의 말을 끊은 신랄한 독설이 들리며 동시에 모래바람이 가라앉자 안의 상황이 드러난다.
쓰러진 사내에게 중앙에 보석이 박힌 백색의 창의 날을 겨눈 올 화이트 제복을 입은 소녀가 제 밑의 사내를 냉랭히 바라보는 상황.


숨이 차지도 않다는 듯이 잔잔하고도 고운 미성으로 천천히 독설을 내뱉기 시작한다.


" 그런 당신은 고생도 모르는 계집인 나에게 진 병신 머저리인 게 분명 하겠네요.
선수를 양보했는데도. 상성 적 우위인 무기를 들었어도. 체격에서 이점을 얻었음에도. 
더럽고 치졸한 약을 쓰려고 했음에도. 그리 많은 수를 동원했음에도. 저의 옷깃 한 올 조차 스치지 못했으면서. "


입가에 서서히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긍정적인 웃음은 아니다. 


비웃음.

조소(嘲笑).


" 학생회장의 직위를 운운하는 입만 살아 있는 작태를 보니 웃음이 안 날리가 있을까요.
장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런 존재인 주제에 감히. "


조소를 머금은 소녀의 말에 울그락 불그락 상대의 얼굴에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말을 잇던 소녀가 아 하고 잠시 생각하더니 나름의 칭찬이라는 듯 뒷말을 덧붙였다.


" 아. 이렇게 하면 조금 심한 것 같을지도 모르니 사과하도록 할게요.
당신이 망망대해에 조난당하면 입이 먼저 떠올라서 알아보기는 쉬울 수 있으니 그건 나름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네요.
궁금하시다면 이대로 머리를 따서 직접 태평양에 띄워드리면 될 거 같은데... "


모두가 멍하니 경기장의 상황을 지켜본다. 
과격해진 상황을 중재해야 할 심판 마저도 그 상황에 섣불리 끼어들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저 소녀가 서 있는 경기장은 온전한 소녀의 영역.
영역 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모두 꿰뚫어 버리는 것이 가능한 창술사. 그 경지는 이 장소에선 저 소녀가 유일할 것이다.


겨눴던 창의 날을 더 들이대며 말없이 심판을 쳐다본다.
무심한 회색의 눈동자로 심판을 바라보는 저 비범한 소녀의 외관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순백(純白)


저 소녀를 요약할 간단한 단어다.
길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디 긴 머리카락은 하얗다. 
피부도 마치 귀족영애가 매일 관리라도 받는양, 마치 귀하게 자라난 것 같은 느낌의 뽀얀 하얀색의 피부.
밝은 회색, 하얀색에 가까운 신비한 느낌의 눈동자. 


걸치고 있는 옷조차도 하얀색이다.
학교의 규격 제복인 올 화이트의 제복을 착용했음에도 숨겨지지 않는 폭력적인 몸.
그 규격 외의 상체를 떠 받드는 하체도 범상치 않다.
폭력적인 상체를 지탱하는 늘씬한 허벅지. 그 전체를 드러내는 미니팬츠와 하얀색 구두.


구두임에도 전혀 발걸음이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무기를 겨눈 자세는 익숙하다는듯 매우 안정적이다.


창을 쥔 손에 착용한 장갑마저도 학교의 제식으로 보이지만 다르다.
학교에서 특별히 장인을 초빙해 만들어 낸 장갑. 소재는 예전에 토벌당한 드래곤형 마수의 가죽. 
토벌당한지 오래되어 능력은 휘발되어 사라졌지만 그 아름다움과 보호력만큼은 굳건하기에. 

역대 학생회장이 물려 받는 물건이 아닌 그녀만의 물건이다. 


주 무장은 백색의 거창.

하얀색의 금속으로 되어있는 창의 날.

그 중앙에 자리한 하얀색의 보석은 그저 소녀의 잠재력을 조금만 이끌어낼 뿐인 그런 기능이다.


창이라기 보단 소드스피어에 가까운 생김새이지만 그것으로 구사하는 창술은 진짜다.

장거리에서 펼쳐지는 매서운 찌르기와 조금 가까워지기만 해도 불가해(不可解)의 각도로 들어오는 베기.


저 무거운 창. 아니 거극의 날에 실린 순백의 오러는 강하다.

강철보다 수백배는 단단한 마수 베히모스의 소재로 만든 훈련용 골렘의 팔을 가볍게 썰어버릴 정도로.



출신지도 불명. 과거사도 모두 불명.

쓰는 이름과 성도 모두 들어본 사람이 없는 새로운 것.


그러나 실력만은,

 저 순백의 거창에 깃든 높디 높은 깨달음 만큼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이 헌터육성 학교인 신흥무관특수고교의.

통칭 신무고의 일원들에겐 증명 그 자체다. 


멍하니 소녀를 바라보던 심판이 정신을 차리고서.


" 순위 경합 종료! 승자 엘레나 실베스타! "


그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진다.
판정이 나자 그제야 겨눴던 창을 거두며 아까의 살벌한 눈빛마저도 가라앉는다.
쓰러져 있는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듯 가볍게 인사하곤 돌아서서 경기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벤치에 걸어두었던 금수실이 잔뜩 장식된 검은색의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묵묵히 퇴장할 뿐이였다.

소감도 그 무엇도 없이 익숙하다는 듯이.



" ..시간 낭비해버렸네. 그나저나 주인공은 언제 편입하는 거야..? " 


한숨을 푹 쉬고서 우려에 섞인 느낌의 말을 내뱉는다. 
아까 경기장의 냉혈한 창술사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로.


어떤 인물이 감히 이 소녀를 기다리게 할까. 

무엇 하나도 확실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겁이 없는 인물임은 분명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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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밌게 글 써본건데 좋네요 

마지막에 언급된건 저 어마어마한 틋녀를 감당할 주인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