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피와 황의 냄새로 가득했다.

말리크는 녹슨 장갑차 잔해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

거대한 몸집이 마치 튀어나올 듯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사방에서 전투의 소음이 들려왔다.

간헐적인 총성, SSS급 몬스터의 괴성, 그리고 죽어가는 자들의 비명.


그는 무기를 더욱 꽉 쥐었다.

상처 투성이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그의 세계였다.

혼돈, 폭력,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원초적인 투쟁.

그의 깊은 내면, 브롱스의 거친 거리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단련된 본성이 이 상황을 갈망했다.


그는 근처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죄수들을 힐끗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절망이 새겨져 있었다.

사회의 찌꺼기들, 잊혀지고 저주받은 자들, 바로 그 자신과 같았다.

누명을 쓰고 부당한 판결을 받아, 이제 막을 수 없는 적에 맞서는 자살 임무에 투입된 것이다.


그러나 말리크는 그들의 처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를 이곳으로 몰아넣은 부당함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싸움이었고, 피부 아래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분출할 기회였다.


갑자기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 꿈틀거리는 촉수와 크게 벌어진 아가리가 잔뜩인 거대한 괴물이 종이처럼 뚫고 들어오며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괴물의 장갑 같은 가죽 앞에 무기력하게 흩어졌다.


말리크의 입에 미소가 더욱 넓게 걸렸다.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동료 죄수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었다.

피에 젖은 대지를 무거운 부츠로 힘차게 밟으며 괴물을 향해 돌진했다.


괴물이 그의 기척을 감지했다.

괴물은 무수한 눈이 사악한 지능을 담고 반짝이며 말리크를 향해 돌아섰다.

거대한 촉수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채 휘둘러졌다.


하지만 말리크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끄러지듯 움직여 촉수가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게 했다.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의 무기가 화려하게 들어올려졌다.

거대한 피스톤 구동식 파일벙커였다.


'파괴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괴물은 살덩어리로 구현된 악몽이었다.

전장을 압도하는 그로테스크한 외형은 꿈틀거리는 촉수, 고동치는 살덩이, 그리고 이빨이 빼곡히 들어찬 아가리가 뒤섞여 있었다.

괴물의 피부는 구역질 날 정도로 회색이었고, 주변의 빛까지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점액질의 분비물로 반짝이고 있었다.


말리크는 그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파괴자는 전설 속의 존재이며,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든 SSS급 몬스터였다.

끝없이 파괴를 갈구하는 사악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괴물을 향해 달려가면서 등 뒤에서 동료 죄수들의 고함이 들렸다.


"말리크, 도대체 무슨 짓이야?" 

공포에 떠는 높은 목소리로 한 죄수가 악을 썼다.


"돌아와, 이 미친 새끼야!" 

다른 죄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우릴 다 죽게 만들 셈이야!"


그러나 말리크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의 귀에는 피가 쿵쿵 울렸고, 온몸의 혈관을 타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이것이 바로 그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싸움의 전율, 죽음과 마주하며 그 눈에 침을 뱉는 스릴.


그는 또 다른 촉수를 피하고, 서 있던 자리의 땅을 갈라놓으며 옆으로 굴렀다.

몸을 일으키며 손에 쥔 파일벙커가 고폭탄을 쏟아내며 포효했다.


포탄이 파괴자의 가죽에 박혀 불꽃과 찢긴 살점을 튀겼다.

하지만 괴물은 거의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번갯불 같은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촉수를 다시 내질렀다.


촉수의 가시 하나가 종이처럼 살을 찢으며 말리크의 팔을 스쳤고,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팔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피를 무시했다.


"이게 전부야?" 

괴성 같은 도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고작 이러려고 왔어, 못생긴 개자식아! 진짜 괴물이 어떤 건지 보여줄게!"


파괴자의 눈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사악한 지능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폭력에 대한 욕망이라는 동족을 알아본 듯 잠시 그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대지를 울리는 포효와 함께 괴물이 앞으로 돌진했다.

거대한 몸집이 지나가는 길의 모든 것을 짓밟았다.

말리크는 버티고 섰다.

야성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운명과 정면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등 뒤에서는 다른 죄수들의 필사적인 울부짖음이 들렸다.

그들은 후퇴를 간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리크는 돌아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순간이었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기회였다.


괴수가 맹렬하게 덮쳐오자, 말리크는 갑자기 어지러움과 함께 방향 감각을 잃었다.

전장이 녹아내리는 듯했고, 그 자리에 헌터 아카데미의 차갑고 냉혹한 복도가 나타났다.

그는 이제 강인한 범죄자 출신 병사가 아니라, 소외되고 외로운, 겁에 질린 화난 소년이었다.


학교 아이들의 조롱이 귀에 맴돌았다.

그들의 잔인한 웃음소리가 앞에 있는 괴물의 포효와 뒤섞였다.

"못생겼어," "멍청이," "쓸모없는 놈," 

그들은 그렇게 불렀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처럼 그의 살을 파고들어 결코 온전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자신의 능력이 발현되었던 날,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던 그날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환영 대신, 그는 더욱 심한 거절만을 마주했다.

부유하고 특권을 가진 다른 학생들은 그를 경멸에 찬 눈으로 보았다.

마치 그의 존재 자체가 그들의 엘리트 지위에 대한 모욕인 것처럼.


괴수의 촉수가 채찍질하며 말리크를 현실로 되돌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피했다.

그의 의식은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었다.

오랜 세월 외로운 시간을 함께했던 유일한 동반자, 분노가 다시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리크는 분노를 집중시켰다.

괴물을 향해 맹렬하게 공격하며 그 분노를 타격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한 방 한 방이 학우들의 조롱에 대한 반격이자, 그들이 그에게 강요하려 했던 운명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싸우면서도 절망이 서서히 기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복도에서 그를 괴롭혔던 것과 똑같은 절망이었다.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여전히 버림받은 자였고, 여전히 혐오와 불신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이 전장에서도, 남의 게임 속에서 버려지는 도구에 불과했다.


괴수는 그의 망설임과 약점을 감지했다.

괴물은 순식간에 맹렬한 속도로 촉수를 휘둘러 우위를 점했다.

말리크는 가시 중 하나가 표적을 맞히자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그 충격에 무릎을 꿇었다.


피가 흥건하게 고이며 무릎을 꿇은 자세로, 그는 다시 그 목소리들을 들었다.

항상 그의 마음 한구석에 도사렸던 속삭임이었다.

"넌 항상 못생긴 놈, 버림받은 놈으로 남을거야."

그 목소리들은 말했다.


말리크는 이를 악물었다.

솟아나려는 눈물을 참느라 애썼다.

안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지금껏 살아왔던 그대로, 짓밟히고 부서지고 패배한 채 죽을 수 없다.


거부의 포효와 함께, 고통과 속삭임을 무시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괴수를 향해 돌진했다.


괴수의 가시돋힌 촉수가 말리크의 어깨를 꿰뚫어 그를 무릎 꿇게 하는 순간, 눈부신 섬광이 전장을 비추었다.

그 갑작스런 빛에 괴물은 몸을 움츠리며 수많은 눈을 지그시 찡그렸다.


"주님의 가호가 있기를, 제 시간에 도착했군요!" 

멜로디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말리크는 고통과 출혈로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고개를 돌렸다.

눈부신 빛을 배경으로 세 명의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가까이 오자, 그는 그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놀라운 금발 머리와 꿰뚫어보는 듯한 푸른 눈을 가진 세 명의 여성이었다.


막내인 알리스가 말리크 옆으로 달려와, 그녀의 연약한 손이 부드러운 치유의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진정되었다.

"당장 고쳐드릴게요."

말리크는 항의하고 싶었다.

그녀를 밀어내고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하고 사심 없는 연민이 그의 입을 막았다.


한편, 둘째인 이자벨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하며 앞으로 나섰다.

"정말 역겨운 생물이군." 

그녀는 흥미와 혐오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만들어진 거지?"

그녀의 손이 들리자 주변의 공기가 오묘한 에너지로 찌릿찌릿했다.

"상관없어," 

그녀의 입가에 냉혹한 미소가 번졌다.

"어차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테니... 우리가 저것을 조금 더 다루기 쉬운 크기로 줄이고 나면 말이지."


맏언니인 도미니크는 자신감 넘치고 단호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검을 들었는데, 그 칼날이 신성한 빛을 발산했다.

"분석은 나중에 하고, 이자벨." 

그녀는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지금은 할 일이 있어."


괴수를 마주하고 선 그녀의 두 눈은 정의의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그와 함께 그녀는 검을 높이 치켜들고 돌진했다.

괴수는 반항의 포효를 내지르며 촉수를 내뻗어 맞섰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움직임이 너무 빨라 눈에 띄지도 않았고 그녀의 검은 괴물의 살을 가르며 노래했다.


알리스의 치유 마법이 말리크를 감싸며 상처를 메우고 힘을 회복시켰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매들이 괴수와 싸우는 모습을 경외심에 휩싸여 지켜보았다.


이자벨의 마법이 불타올랐다.

오묘한 에너지의 덩어리가 괴수를 강타하여 그 껍질을 태우고 비틀거리게 했다.

도미니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번쩍이며 괴물의 촉수를 하나씩 베어냈다.


그 와중에 알리스의 부드러운 빛이 그들을 둘러싸고, 보호하며, 치유하며, 계속 싸울 힘을 주었다.


말리크는 세 명의 아름답고 용감한 여성들이 그를 도우러 온 것을 보면서, 가슴 속에서 낯선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오랜, 오랜 시간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희망이었다.


괴물은 죽음의 발악을 벌이며 마구 휘저었다.

거대한 촉수들이 미친 듯이 난무하는 와중에 말리크는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들어갔다.

너무 가까이 있었고, 너무나 자신의 전투의 광기에 집중한 나머지 그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었다.


가시투성이 촉수 중 하나가 그를 강타하여 가슴을 관통했다.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차가운 무감각함이 전신을 감쌌다.

생명력을 잃은 손가락에서 무기가 떨어졌고,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창상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주변에서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치열한 고전에 휘말린 데브뢰 자매는 그의 위태로운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다른 죄수들은 자신들을 향한 필사적인 생존투쟁에 너무 매달려 그에게 한 번의 시선도 아끼지 않았다.


말리크는 무릎을 꿇었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었다.

영광의 불꽃 속에서가 아니고, 최후의 저항 속에서가 아닌, 부주의와 자만심의 순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생명이 점점 사라지는 동안 기억들이 밀려왔다.

급우들의 조롱, 동료들의 거절, 그리고 자신을 언제나 인간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한 세상에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끝없는 외로운 투쟁.


그는 이 전투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와 살육의 이 전장에서 마침내 자신이 항상 갈구해 왔던 인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는 또 하나의 희생자였을 뿐이었다.

무관심한 우주 속의 또 하나의 잊혀진 영혼.


말리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피에 젖은 땅에 얼굴을 묻었다.

전투 소리는 멀어지고 흐려졌다.

마치 어두운 물속에 가라앉는 듯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그는 이름을 속삭였다.

기도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분노, 고통, 그리고 그를 몰아붙였던 자신에 대한 필사적인 증명 욕구는 모두 쓸쓸한 한숨 속에 모두 사라졌다.


전투는 끝났고, 괴물은 살해되었다.

그 거대한 시체가 파괴된 대지 위에 나뒹굴었다.

승리를 거둔 데브뢰 자매들이 생존한 죄수들을 모아 상처를 치료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말리크에게는 위로도 격려도 없었다.

그는 쓰러진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생명이 없는 눈으로 무자비한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고, 피는 흙과 재와 뒤섞였다.


살아있을 때는 괴물이었고, 악당이었으며, 잔인하고 무관심한 세상의 불길 속에서 벼려진 뒤틀린 영혼이었다.

하지만 죽음 속에서는 또 다른 시체일 뿐이었고, 폭력과 절망의 끝없이 반복되는 사이클의 또 다른 이름 없는 희생자였다.


세상은 흘러갔고, 전투는 잊혀졌으며, 죽은 자들은 쓰러진 그 자리에서 썩게 되었다.

영웅을 꿈꾼 못 생긴 흑인 소년, 피와 공포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자 했던 남자, 말리크는 애도도, 기억도, 사랑도 없는 채 망각 속으로 사라져 갔다.



*****



말리크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정교한 무늬와 호화로운 샹들리에가 장식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혼란이 그를 휘감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방은 넓고 사치스러웠다.

커다란 창문에는 무거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값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그가 익숙한 거친 브롱스의 거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말리크의 몸이 굳어버렸다. 

무언가 잘못됐다.

몸이 달랐다.

더 가볍고 여리여리해졌다.


손을 내려다보는 순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가 늘상 보던 커다랗고 거친 손 대신, 완벽하게 손질된 손톱을 가진 가냘픈 손가락이 보였다.

흉터 투성이의 새까만 피부는 어디에도 없고, 도자기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로 바뀌어 있었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공포를 삼키며, 말리크는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반대편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말문을 잃었다.

키 크고 근육질이었던 그의 몸 대신, 연약하고 가녀린 소녀의 몸이 그 자리에 있었다.

섬세한 이목구비에 창백한 푸른 눈이 공포에 휘둥그래져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등을 따라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말리크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만졌다.

낯선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이건 현실일 리가 없다.

악몽에 불과할 것이다.

자신의 고통받던 마음이 빚어낸 악몽이어야만 했다.

눈을 꼭 감고 다시 몸 속에서, 자신의 세상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