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아침 공기가 말리크의 창백한 피부를 얼얼하게 스쳤다.


우아한 고급 콘도에서 나온 그는 섬세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모직 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현관에서 잠시 멈춰 서서 조용한 거리를 훑어보았다.

잘 정돈된 브라운스톤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고, 절제된 부유함이 풍겨 나왔다.

 

이것이 그가 떠밀려 들어온 세계였다.

한때 그의 영역이었던 거칠고 무자비한 브롱스의 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곳.

말리크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경화된 전사였던 그가, 한때 부러움과 경멸을 동등하게 바라보았던 특권과 부의 삶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세련된 검은색 승용차가 연석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색이 들어간 차창에는 도시의 은은한 색조가 비쳤다.

말리크는 배우가 대본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채 연기를 하는 것처럼, 어색한 걸음으로 차를 향해 걸어갔다.

 

운전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뒤쪽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눈에는 경계의 기색이 엿보였다.

말리크는 고급스러운 실내로 몸을 밀어 넣었다.

가죽 냄새와 값비싼 향수 냄새가 그를 감쌌다.

 

차가 연석을 떠나자 말리크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지난밤 일들이 생각났다.

그 각성은 그가 경험했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타오르는 듯,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힘이 그를 속에서부터 찢어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결과로,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강대한 힘의 그릇이 된 것이다.

 

데브뢰 씨가 '시설'이라고 말했던 그곳이 불쑥 나타났다.

도시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든, 눈에 잘 띄지 않는 건물이었다.

바로 여기서 그가 새로 발견한 능력의 본질이 낱낱이 드러나고, 각성한 세계의 비밀을 아는 이들에게 면밀히 분석될 것이다.

 

차가 멈추어 섰고, 문이 열리자 말리크는 마음을 다잡았다.

 

무미건조한 건물이 말리크 앞에 우뚝 솟아 있었다.

실용적인 외관은 그 벽 안에서 벌어지는 활동의 실체를 감추고 있었다.

말리크는 안정감을 얻기 위해 어깨를 펴고 호흡을 들이마시며 소박한 입구로 향했다.

데브뢰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무게감 덕분에 아무런 제약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는 무균실 그 자체였다.

삭막한 흰 벽과 윤기 나는 바닥에는 불필요한 장식이 하나도 없었다.

안내 데스크 앉은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호기심이 담긴 눈빛이 말리크의 가냘픈 몸을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이중문을 가리켰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는 짧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저쪽으로 가세요."

 

말리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텅 빈 공간에 그의 발소리가 울려퍼지며 그가 지시받은 문으로 걸어갔다.

다가서자 문이 활짝 열리며 한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길고 어둑한 복도가 드러났다.

 

시설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말리크는 주변 공기조차 스며든 미묘한 윙윙거리는 소리를 예민하게 인식했다.

그것은 몸속 깊은 곳에서 공명하는 듯한 낮은 진동이었다.

혈관을 흐르는 힘의 분명한 증거.

 

복도는 드디어 거대한 방으로 열렸다.

벽에는 이해하기 힘든 장비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고, 눈이 아프도록 깜박이는 불빛은 첨단 기술의 자랑이었다.

방 가운데 한 사람이 서 있었고, 주변을 휘감은 그림자가 그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데브뢰 양."

그가 인사햇다.

차가운 방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호기심이 담긴 말투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리크는 그 경칭에 짜증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고쳐주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턱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곳, 이 몸에서는 나약하고 수줍은 실비의 역할을 해야 했다.

 

"검사 준비는 되셨나요?" 목소리의 주인이 그림자에서 나오며 말했다.

 

말리크는 마주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화강암을 깎은 듯한 인상, 불편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 말리크는 파고들었다.

주변의 공기가 정전기처럼 파직거렸고, 마치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힘의 아우라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남자의 날카로운 눈빛이 말리크의 영혼을 꿰뚫는 듯 했다.

관찰하는 듯한 눈은 그 소박한 외모 속에 숨겨진 힘을 암시하고 있었다.

말리크는 그 강렬한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며 몸을 움츠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연약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그의 눈은 도전적으로 남자의 시선을 맞받았다.

 

"준비됐습니다."

격동하는 감정을 숨긴 채, 말리크는 차분하고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데브뢰 가의 후계자에게는 이 정도를 당연히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의 손짓과 함께, 수수께끼 같은 기계들이 윙윙거리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과 숫자들이 어지럽게 깜박였다.

 

"기초 검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남자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표준 절차니 이해해주시죠."

 

말리크는 고개를 숙였다.

이전의 삶에서도 여러 차례 겪어본 일이었다.

온갖 조사, 온갖 실험, 그의 존재 자체를 수치화해서 분류하려는 끝없는 검사들.

 

하지만 첫 번째 에너지의 파장이 몸을 스쳐 지나갈 때,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분명 뭔가 달랐다.

기운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었고, 잠재된 위대한 힘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검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것 같은 자극의 맹공격이 그의 감각을 괴롭혔다.

말리크는 이를 악물고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존재 자체를 파헤치려는 무형의 힘에 저항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몸을 긴장시켰다.

 

시간은 흐릿하게 지나갔다.

검사는 점점 더 깊게, 그의 힘의 원천을 향해 파고들었다.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도 말리크는 인내하며 버텼다.

 

마침내 폭풍우 같은 검사가 끝났고, 말리크는 숨을 헐떡였다.

그를 압도하고 있던 검사자의 시선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놀랍군요.”

남자는 경탄과 두려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말리크는 고개를 들었다.

이전의 허세 넘치는 모습을 흉내 내며 검사자의 마주했다.

“대체 뭔데요?”

 

검사자는 놀라운 발견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당신이 각성한 힘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힘은 정말 어마어마하군요.”

 

말리크의 입가에 음흉하고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졌다.

검사자의 말이 몸에 스며들었다.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자신의 각성은 우연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건 훨씬 더 큰 무언가였다.

 

"그래서요?"

그가 만족감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듯 잠시 망설였다.

 

검사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가면처럼 굳어진 표정으로, 그는 중대한 사실을 전할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각성이…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수준입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지닌 힘은… 정말로 엄청나요."

 

말리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무심한 척하는 얼굴에 호기심이 조금 섞여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각성의 강렬함은 그가 전에 경험한 것과도 달랐다.

그 원초적이고 압도적인 힘은 그의 존재를 완전히 붕괴시킬 위협으로까지 느껴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검사관이 다음에 한 말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힐러로서 당신의 능력은… 전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사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공중에 맴돌았다.

"최소한 S급… 그것도 보수적인 추정이죠."

 

말리크는 한동안 검사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힐러? 내가?

그것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생각이었고, 그가 알고 있는 자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농담이시죠."

마침내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난 전사지, 보모가 아니에요."

 

검사관의 이마가 찌푸려졌고, 당혹스러움과 경멸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제발, 데브뢰 양.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결과가 분명하거든요."

 

말리크는 고개를 저었다.

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검사 결과가 잘못된 거예요."

그는 다소 놀란 표정의 검사관을 향해 독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난 내 평생 누구도 치료한 적이 없습니다."

 

검사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눈빛으로 말리크를 관찰했다.

"하지만, 그 힘은 분명해요. 아무리 부정해도 진실은 바뀔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치유의 재능이 있다는 거죠."

 

말리크는 이를 악물고, 분노를 억누르느라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건 잘못된 거야.

전부 잘못된 거야.

그의 존재를 송두리째 바꾸려는, 잔혹한 운명이 가하는 비틀린 장난 같았다.

 

"필요 없어요."

말리크가 이를 갈며 내뱉었다.

야수의 울음 같은 소리였다.

"이런 건 필요 없어."

 

검사관의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게 그대의 본질입니다. 데브뢰 양."

 

말리크는 필사적으로 검사관의 말을 반박할 방법을, 지금까지의 자신을 지킬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힐러.

그 단어 자체가 조롱처럼 들렸다.

잔인함과 고통만으로 가득 찬 세상, 힘없는 자가 짓밟히는 세상에서 치유사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부수고 파괴하는 방법만 알았던 자신에게,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