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판타지에 마법이 있는 세계관이만 영국은 영국이다.


10시 즈음부터 하는 티타임은 그대로 이 세계속 영국에도 존재하고 있었으며, 내 생활속에 티타임이라는 세 글자가 스며드는것 조차도 당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왕자전하의 찻잔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왕자전하 미치셨습니까? 저는 남자입니다 남자! 사랑이라뇨!"


"그래도 나는 자네가 좋다."


내가 주전자를 책상에 내려놓자. 황자전하는 내 손을 겉으로 포개듯 잡으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손을 붙잡아야 숨을 쉬는것 같고. 그대가 눈 앞에 없으면 눈물이 날것 같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뭐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기미 겸. 내 몫으로 끓여놓은 차를 마셨다.


"그렇다고 하죠. 왕자전하께서 저를 좋아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저는요? 저는 싫은데요?"



"내가 싫어...?"


왕자전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치 순수한 어린애한테 산타가 없다고 한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말을 수습해버렸다. 평소같았으면 그냥 면전에다가 "싫은데요." 라고 말했을텐데.


"그런건 또 아니고요. 그러니까 싫다기보단, 사랑하지 않는다에 가깝죠...."


"그러면 된거 아니겠느냐. 우리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도 본디 결혼은 사랑없는 순간에서 시작해 서로 맞춰가는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도 그러면 되는것 아니겠느냐."



"저는 남자입니다. 남자! 그건 중매결혼하는 남녀간의 이야기고요!"


사실 몸은 여자라 딱히 틀린말은 아니지만, 정신은 남자다 정신적 동성애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좋은 방법이 없나?


'말을 좀 돌려볼까...'


"어쩌다가 저를 사랑하시게 되신겁니까?"


키가 내키의 반절정도 밖에 안되는 꼬맹이인데, 사랑이라고 해봤자 책에서처럼 동경이나 우정 같은걸 착각한게 틀림 없었다.


그렇다면 적당히 이야기를 통해 오해를 집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나는 6살때 정령과 계약을 맺었어."


"네? 6살때요?"


보통 10살때 처음으로 정령과 계약을 한다. 6살떄 했다는건 정말로 보기 드문일이다.


"정령과 계약할때 한가지 소원을 빌었지.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그렇게 빌었더니. 여인의 향기를 못버티더군. 냄새만 맡아도 코가 썩어들어갈 지경이었네.


남성은 조금 버틸만 했지만 그리 다를바는 없었지. 근데 자네를 만난거야.


상큼한 시트러스 향을 가진 자네를.


맨 처음에는 사랑이 아닌줄 알았지


근데, 그대가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슬퍼지고.


생일에 자네와 살짝 손끝이 닿았던것처럼-"


그러니까, 저주같은 소원의 도피처로 나를 원한다는거지?


사랑을 하는게 아니라?


이게 12살 꼬마애가 지닐 감성이 맞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랑이 아님을 알았다.


나와 왕자전하는 두 눈이 마주쳤고. 왕자전하는 목까지 복숭아빛으로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크흠. 어떤가."


 헛기침을 한 왕자전하는 나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예. 뭐 알겠네요.


근데, 저는 남자라 여인을 좋아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의 도피처로 쓰이는것도 싫고, 남색에 빠졌다는 소문이 나는것도 싫다.


"생각해보게. 귀족이 정부를 들이는거나 남색에 빠지는건 흔한일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어떻겠는가."


"사실. 그런거에 관심도 없습니다."



철벽을 쳐야한다. 아무리 정신은 남자라고 한들 친하게 지냈다가 몸은 여자인게 들킬수도 있다. 폴리모프의 마법이 달린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는 순간 여자의 몸이 들어나고 만다.


안그래도 남자치고 여리여리한 외모 때문에 변신하고도 이상한 놈들 많이 꼬이는데... 아 머리아파.


내가 골머리를 썩어하자. 왕자전하께서는 무언가 알았다는듯 이야기를 꺼내셨다.


"알겠네. 자네를 난처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그러면 친구부터 시작하는건 어떤가? 사실, 꼭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라네.


자네가 옆에 있는것 만으로도 나는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으니까.


내가 어느정도 양보를 하겠네."



친구? 왕자전하와의 친구라.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다음 왕의 후보도 아닌 다음 왕 1순위와 친구를 맺는다는것 자체는 그리 나쁠 일도 아니지?


문제는 이 꼬맹이가 제법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다고 착각하는건데


"그러면 계약 하나 하시죠. 친구계약."


나는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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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간에 합의없이 상해와 성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는 제 3자를 이용한 방법도 포함한다.


2. B는 황자전하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다. 단 이는 급한일이 아닐 경우 업무 시간 내에로 한정한다.


3. 서로간의 비밀을 존중하고 이를 죽을때까지 비밀로 한다.


4. 이는 5년간의 기한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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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여구를 제외하면, 대충 이런 느낌의 계약서였다.


1번은 혹시모를 일을 대비해 만들어둔 조항.


2번은 친구가 되더라도 서로의 선을 넘지 않겠다는 조항이었다.


3번은 혹시라도 내 비밀이나 왕자전하의 비밀을 알게될 경우를 대비한 조항이었고.


4번은 5년간의 기한을 설정해둔것이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나 말고 진실한 사랑을 시작했는데 나 때문에 골머리를 썩게될지 말이다. 어쩌면 내가 도망갈 도피처가 될수도 있고.


계약의 정령에게 공증을 요구했고. 계약의 정령의 이름으로 우리의 친구계약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