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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보고 내용은 끝입니다.”

연구원이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장관과 죽은 장관을 대신한 차관들에게 보고를 마쳤다.

「각하, 저는 무얼 하든 저 괴물들을 죽이는 데 찬성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시간이 걸린다는 유감스러운 말씀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방부장관이 매우 힘겹게 말을 꺼냈다. 실제로 전장에서 그의 부하들이 죽어 나갔지만 정작 가장 핵심이 되는 괴력난신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굴욕을 넘어 원망이 되기 직전이었다.

「자네들의 노고와 봉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네. 반드시 방법을 찾을 게야.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저놈은 당장 활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군.」

대통령은 그런 국방부장관을 위로한 뒤 보고 내용을 되짚었다.

“네, 하지만 비늘발고둥이 모티브라면 시간을 버는 건 저 녀석에게도 이득이 됩니다. 만약 저 비늘이 완성된다면···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각성자 기준으로.”

회의가 단숨에 침울해졌다. 제주도라는 특성상 한 번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에 제한이 생긴다. 그리고 바다에 있는 요괴는 물론이고 본토에 있는 요괴들까지. 특히 가장 큰 재앙인 강철이를 견제해야 한다.

“그럼 자네의 의견은 어떤지 듣고 싶군.”

순간 대통령이 나를 지목했고 회의에 참가한 전원이 뒤에 있던 나를 보았다. 확실히, 나를 지목할 줄은 알았기에 일단 간단히 설명할 준비를 마치긴 했다.

나는 부적을 촉매로 기를 다섯 가지 한자로 띄운 뒤 오각형의 배치로 띄웠다. 이른바 오행의 형상이었다.

“이스트 서버의 요괴는 기본적으로 이 오행을 따릅니다. 물리법칙조차 변해버린 한 달간, 이제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몇몇은 불만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보였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이 세계는 환상의 경계에 걸친 미친 세상이란 것을 빨리 인정하는 법 밖에 없다.

“고둥은 지금 ‘수’를 근본으로 한 요괴입니다. 아마 자신의 요기로 용암을 식히고 그 기를 흡수, 응용해 다시 용암 내부의 황화철··· 음 그게 황화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금속층을 형성했습니다. 적어도 고둥은 3개의 행을 다룬다는 말입니다.”

수, 화, 금.

물로 불을 제압하고 거기서 금을 제련한다.

3개의 행을 다루는 어처구니없는 응용력을 가졌지만 그만큼.

“한 가지를 깊게 파고들지 않았기에 빈틈이 있을 겁니다. 대게 하이브리드란 최고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애매한 법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직접 느낀 바로는··· 강철이보다는 확실히 아래. 어쩌면 산군보다 비슷하거나 이하, 정도입니다.”

「···애매하다라. 그럼 준비가 덜 된 지금은 훨씬 애매하겠군.」

“예, 게다가 놈은 화산에 기생해 성장하니 용암에서 떼어놓으면?”

「불이라는 에너지원을 잃고 금에 대한 제어력도 잃는다?」

국방부장관이 눈을 빛내며 답을 말했지만 너무 희망찬 답이었다.

“···적어도, 껍질의 재생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충분합니다. 각하, 지금 당장 싸울 수 있는 종결과 준종결 각성자가 최대 10명 넘게 대기하고 있습니다. 당장 제주도에도 종결 각성자 팀이 있습니다.」

“불속성을 제외하셔야 합니다. 여차하면 놈이 불의 기를 역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는, 미성년자는 둘째치고 괴력난신에 대한 전투 경험이 전무합니다.”

「불을 제외하면 8명. 그리고 제주도는 예비역으로 두겠습니다. 최종적으로 선별 후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군인이라 고집불통인 줄 알았지만 의외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하긴, 한 달간 밀리고 밀린 전장에서 굳이 멍청하게 굴고 싶지는 않고 역으로 우리와 적극적으로 협력, 영입해서 떨어진 위상을 다시 세우려는 행동일 수 있다.

「좋아, 대충 마무리가 되었군. 세부 사항은 서로 조율하고··· 다들 할 말이 있나?」

그때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손을 들었다.

「비늘의 샘플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난 뒤 비늘을 활용할 수 있을지 보고 싶습니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만, 얼마나 남을지는 장담을 못 드리겠습니다.”

그 이후 회의는 이왕 모인 김에 다른 주제로 의견이 오갔지만 아직까지는 모두 진행 중이거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평화롭네.’

사실 들리는 내용만 보면 전혀 평화롭지 않지않지만 전투없이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까아아아악!’

그때, 아주 미약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것은, 분명 도화의 목소리였다.

나는 옆에 있는 검을 불러들여 쥐고 자리를 일어섰다.

“송구하지만 급한 용무가 생겨 자리를 뜨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전력으로 뛰었다.

그리그리고 도현이 이탈한 회의는 잠깐동안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지만 대통령이 중재했다.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지만 유능한 친구니 괜찮겠지. 그리고 아직 저 친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 해두지만··· 목표를 이룰 때까지 우리와 함께 싸울 거야.」

그런 거래거든.

대통령은 뒷말을 삼켰다.


***


“···도화야.”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감각과 기를 확장했다. 증기는 서리가 되고 온천의 물을 빠르게 식으며 바닥은 빙판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 장소를 설원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러면 도화가 다친다.

나는 우선 상황을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도화는 온천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입까지 물에 담갔고 그 근처에는 김유성, 엘프가 주저앉아 있었다.

···상황이 이해되었다. 도화가 목욕을 하고 있는 와중에 김유성이 난입했다.

이제, 한 마디만 들으면 그녀 아니, 그의 처분을 결정지을 수 있다.

“···자, 일단 말 해봐.”

“그, 그게! 산을 내려가다가 노랫소리가 들렸고··· 정신을 차리니까 여기 있었어요!”

김유성은 나름 급했는지 말을 더듬고 빠르게 말했다.

그나저나.

“노래?”

“···응, 혼자 콧노래 불렀거든.”

도화가 긍정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선 한 가지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잠깐, 눈 좀 보여줄 수 있어? 무서워하진 말고.”

나는 다시 기를 억누르고 김유성의 눈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겁을 먹은 것인지 내게 협조하는지는 애매했지만 나는 원하는 바를 확인했다.

“홀렸네. 미안하게 됐구나. 괜한 오해를 했어.”

“네, 네? 홀려요?”

“응, 사람을 홀리는 능력은 가진 각성자는 이렇게 사람을 홀릴 수 있거든. 고의가 아닌 사고이기도 하고 네 잘못은 없어.”

“아, 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아아!”

김유성은 그렇게 허둥지둥 도망쳐버렸다. 검을 끝까지 뽑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나 싶기도 했고 우리 딸 목욕하는 장소에 냅다 들어온 게 괘씸해 저 추궁할까도 했지만 중요한 건 내 의사가 아니다.

“도화야, 괜찮아?”

“···응,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도화도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해프닝에 어느 정도 책임을 실감하고 있었는지 얌전했다.

역시 사람이 굳이 안 오는 외진 곳으로 안심할 뿐만 아니라 주위에 내 살기를 담은 얼음을 배치할 걸 그랬다.

나는 근처에 있는 마른 수건을 도화에게 건네주고 조금 떨어져 뒤를 돌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도화는 몸을 추스르고 나왔다.

역시 들어온 사람이 여자라서 충격이 덜 한 것일까? 음, 그래. 김유성이 사실 남자라는 사실은 무덤까지 들고 가자.


***


“그렇군요. 네,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달그락.

훤칠한 키에 안경과 로브가 잘 어울리는 차분한 인상의 남자가 전화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시대에 뒤처진 유선전화지만 무선통신이 불안정한 지금 선만 확실히 살아있다면 통화라는 부분만큼은 무선보다 안심이 되었다.

“보라야, 일이니?”

“네, 엄마. 제주도로 갈 거예요. 거기는 상황이 괜찮긴 한데, 지역 보스만 죽이면 팔도 중에서 안전한 땅이 될지도 모른대요.”

게다가 운이 좋아 제주도에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적어도 남자의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다.

“출발은 2시간 뒤에, 그리고 제주도는··· 일이니까 어디 말하지 말고.”

“그래, 몸조심하고. 그리고 여자도 조심하렴. 의외로 이것들이 잘생긴 남자만 보이면 따개비처럼 달라붙는 게···.”

“아, 엄마. 나 원래 여자인데 무슨 여자를 조심해?”

“네가 소심해서 그래. 약삭빠르고 조금 얼굴에 자신있다 싶으면 바로 들러붙는 게 여자야. 그리고 빌붙는 건···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 그냥 인간 욕심이 다 그래.”

보라, 원래 여자였지만 남자 캐릭터를 플레이하던 사제 유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그 정도인가?’

수수한 편이던 자신의 외모로는 가끔 양아치 같은 놈들이 먹버할 용도로 고백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자신에게마저 소문을 들을 정도로 행실이 안 좋았으니 거절한 경우.

아이돌이라면 모른다.

반 친구들은 늘상 아이돌 얘기가 있었고 가끔 아이돌을 보면 호들갑을 떨 정도로 시끄러웠으니까.

보라는 집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았다.

잘 생겼다.

차분한 얼굴은 마치 지적인 매력을 풍기는 아이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생겼고 몸 또한 기본적으로 탄탄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도 아,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아무튼, 사제가 위험한 일은 거의 없을 거야.”

“그래, 그럼 밥이나 먹고 가렴. 오늘은 일 가니까 삼계탕으로 먹자.”

보라의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냉동 삼계탕을 꺼냈다. 기존 인프라가 무너지지 않았지만 멀쩡하지도 않았기에 이런 냉동조차 고심하며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하면 그만한 보상이 따라오니, 보라는 이것을 투자라고 생각하며 감사히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