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에서 전해져내려오던 이야기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무고한 양민들을 핍박하며 포악질을 부리고 있었다 하오.


소와 개를 잡아먹고, 집을 부수고, 논을 갈아엎고. 매일같이 내려와 행패를 부리는 이무기였으나, 영물은 영물이니 어찌 대항할 수 있었겠소.




무림행을 나온 몇몇 협객들이 이무기를 무찌르기 위해 용감히 싸우러 가본 적도 있으나, 며칠만 지나면 이무기는 더 흉표해진 채로 마을로 내려와 사람을 해치기 일수였으니 그 일에 익숙해진 양민들은 결국 포기하고 체념했지.




소와 고기를 제물로 바치고, 이무기를 모시기 위한 건물을 지으며 이무기를 두려워했소. 그렇지 않으면 죽음뿐이었으니.




그러던 어느날.


이무기가 말했소.




"여자를 바쳐라."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이 괴물이 사람고기에 맛이 들렸다며 지금이라도 관이나 무림맹에 알려야한다고 떠들었지만, 시한이 너무 촉박했네.


중원 땅이 얼마나 넓소. 관이나 무림맹에 알리는 것도 한세월. 그들이 토벌군을 편성하는 것도 한세월. 토벌군이 내려오는 것도 한세월 걸릴테니.


그들이 오기도 전에 이무기가 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게 분명한데다가.




양민들이 마을을 버리고 어디로 갈 수 있겠소?


집도, 소도, 논도. 다 마을에 있는데.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마을 사람들 가운데.


촌장의 딸이 손을 들었소.




"제가 가겠습니다."




식겁한 촌장은 자신의 딸을 말렸지만, 딸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소.


아버지가 마을을 위해 헌신한 만큼, 자신도 헌신하겠다는 뜻이었지.




하루밤낮을 설득하던 촌장도 결국 포기하고,


촌장의 여식은 조용히 준비를 했소.




혹시 몸에 조금이라도 흠결이 있으면 이무기가 화를 낼까, 밝은 달빛 아래에 몸을 씻고.


정갈한 음식을 먹으며 몸을 비우고. 옷들 중에 가능한 고운 옷을 입으며 준비를 했소.




촌장은 정말로 슬퍼했으나, 어쩔 수 없었소.


그는 마을의 장이었으니.




그렇게 약속된 날 밤.


밤보다도 검은 어둠이, 나무를 부수며 기어오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이무기가 찾아왔소.


이무기의 희번뜩한 붉은 눈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 했고, 검은 비늘은 밤보다도 어두웠으며, 그 쉿쉿거리는 소리는 천리 밖에서도 사람을 소름돋게 만드는 끔찍한 괴물이 마을에 찾아든 것이오.




마을 사람들이 벌벌떨며 이무기에게 절을 하는 가운데, 소녀는 조용히 일어선채로 이무기에게 말했소.




"제가 제물입니다, 이무기님."




그 용기와 기개는 마물마저 감복시켰는지.




이무기는 그 사악한 입을 쩍 벌려 소녀를 집어삼키는 대신에, 따라오라고 말했소.




그렇게 소녀는 이무기를 따라갔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마을과, 자신을 보살펴줬던 부모와, 같이 살았던 이웃들을 버려두고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이무기를 따라갔소.




그 여린 소녀가 이무기의 뒤를 따라가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어린 소녀가 이무기의 뒤를 따라가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한 입에 집을 삼키는 그 괴물의 뒤를 따라간 소녀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열달 뒤.


마을을 지나가던 아미파의 고수가,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이무기의 목을 베었다 하오.




딸은 어찌되었냐며 구슬피 우는 촌장에게 고수는 면목없다며 고개를 숙였지.




그렇게, 또 하나의 이무기가 토벌되고 중원은 조금 더 평화로워졌으나.






그 고수는 어떤 소녀를 아미파로 데려왔다고 하오.


이마에 저주스러운 검은 뿔이 달린 소녀를.




아비도, 어미도 모르는 소녀를 그녀는 애지중지 키우며.




소녀의 금빛머리카락으로부터 이름을 따, 이렇게 불렀다 하오.




"김(金)아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