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흔히 보고되는 것처럼, 자신을 장느 라 퓌셀이라고 불렀던 그 여자는 거짓 예언자로서, 신의 섭리와 자신의 성별에 반하여 두 해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며 이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우리의 주적에게 가서 그의 당파에 속한 성직자, 귀족, 평민들과 함께 자신이 주님의 사명을 받았다고 여러 번 주장하고, 오만하게도 성 미카엘과 천국의 많은 천사와 성인들, 그리고 성 카타리나와 성 마가렛과 자주 개인적이고 명백한 교제를 했다고 자랑했다. 또한 마치 기사와 향사들처럼 갑옷을 입고, 전투 깃발을 세우고, 매우 큰 악의와 자만과 오만으로 가장 고귀하고 우수한 프랑스 왕의 문장기를 요구하고 얻어내 많은 전투와 포위전에서 그것을 직접 휘둘렀고... 그런 모습으로 그녀는 전장에 나가 군인들을 이끌고 큰 부대를 지휘하여 살상을 하고 광범위한 소요와 혼란을 일으켰으며, 그들을 위증과 반역과 거짓되고 미신적인 믿음으로 선동했고,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방해하고 죽음의 전쟁을 다시 일으켰으며, 많은 이들에게 성스러운 여성으로 숭배받고 존경받는 것을 즐겼고, 그밖에 너무 많아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저주받은 일들을 저질렀으며, 이는 많은 곳에서 거의 모든 기독교도들에게 큰 불쾌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1431년 6월 루앙 정부의 포고문




흐릿한 꿈의 세계에서 의식이 서서히 떠올랐다.

온몸에 낯선 느낌이 감돌자, 대붕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올렸다.

희미한 빛이 천막을 비추고 있었고, 흙과 눅눅한 천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붕은 몸을 일으켰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무겁고 답답했다.

평소의 잠옷 대신 거칠고 낯선 옷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손도 예전과 달라 보였다.

작고 연약해진 것 같았다.


대붕의 가슴을 불안이 짓누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천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햇살이 틈으로 새어 들어와 흙투성이의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대붕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늦은 밤까지 잔 다르크를 다룬 대체역사 소설을 쓰느라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까진 기억난다.

작업에 너무 빠져있어서 방 한쪽에서 이상한 빛이 나고, 그 빛 속에서 사람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장신의 여성이었고, 눈에 불이 들어올 것만 같은 기세였다.

갑옷을 걸치고 있었고, 허리에는 눈부신 검이 차 있었다.

대붕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잔 다르크..."

대붕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댔다.


여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감히 내 얘기를 쓰다니?”

그녀는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욕망을 안다고 생각하느냐?"


대붕의 입이 바짝 말랐다.

그는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미…미안해요."

그가 더듬거렸다.

"무례하게 굴려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하지만 잔 다르크는 그의 변명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검을 뽑더니 대붕의 간이침대 옆의 의자를 내리쳤다.

칼날이 마치 버터를 자르듯 나무를 가르며 사방으로 나무 조각을 날렸다.


대붕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분노와 실망이 뒤섞인 잔 다르크의 얼굴이었다.



*****



해는 이제 하늘 높이 떠 있었고, 주변 진영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군인들과 보급대원들은 보급품을 마차에 싣고 행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내려다본 손은 이전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피부는 창백하고 매끄러웠고, 손가락은 길고 가늘었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니, 볼의 부드러움과 섬세한 턱선이 느껴졌다.


대붕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느라 애쓰는 와중에, 키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는 단순하면서도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었고, 풍상에 시달린 얼굴에는 수많은 전투의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걱정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대붕을 내려다보았다.


"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

남자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텐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요."


대붕은 눈을 깜빡이며 남자가 자신에게(아니면, 정확히는 자신이 지금 들어와 있는 이 몸의 주인에게) 하고 있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목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아-아니요, 괜찮아요."

여성스럽고 높은 목소리에 대붕은 움찔했다.

"그냥 좀... 당황했을 뿐이에요."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고 목소리도 이상해요.

잠시 더 쉬시는 것이 어떠신가요?"


대붕은 힘겹게 일어나 텐트 기둥에 의지했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시야가 흐릿했다.

"아니, 괜찮아요."

그는 굳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신선한 공기 쐬면 나아질 거예요."


남자는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가주시길 바랍니다. 혼자서 캠프 주변을 돌아다니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대붕은 그 남자의 말을 간신히 이해하려 애썼다.

잔 다르크에게 충직한 추종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공부하면서 배운 바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였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 남자의 이름이 연구 도중에 언급된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죄송합니다만."

마침내 그는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데요.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남자는 잠시 놀라는 기색을 보이다가 허리를 굽혔다.

"실례했습니다, 아가씨.

제 이름은 장 돌롱입니다.

경호원이자 하인으로서, 오를레앙으로 가는 여정에서 아가씨를 수호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대붕은 그 이름이 기억나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장 돌롱이라고? 그렇지!

그는 잔 다르크의 일대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몇 안되는 역사적 인물 중 하나였다.

숙련된 전사이자 충실한 동료였던 돌롱은 잔 다르크의 모든 전투를 함께하며 그녀를 지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장 돌롱..."

대붕은 좀 더 당당하게 들리려고 노력하며 되뇌었다.

"네, 물론이죠. 그대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보호를 베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돌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꼬리에 미소가 떠올랐다.

"성녀님을 모시는 것은 제 영광입니다."


차가운 봄바람이 캔버스 천막을 펄럭였다.

이제 잔 다르크의 몸을 가진 대붕은 장 돌롱을 따라 북적거리는 군사 야영지를 지나갔다.

군인들의 훈련 소리, 말들의 울음소리, 대장장이의 쇠망치질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대붕은 낯선 광경, 냄새, 그리고 감촉에 정신이 아득했다.


돌롱은 대붕을 야영지 한복판에 있는 큰 천막으로 데리고 갔다.

천막 입구에는 엄숙한 표정의 병사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가자, 경비병들은 잽싸게 차렷자세를 취하고는 존경의 눈빛으로 대붕을 바라보았다.


"오를레앙의 처녀이시여..."

그들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낮게 중얼거렸다.


잔 다르크가 얼마나 숭배받는 인물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경건한 목소리에 대붕의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렇게 직접 존경의 대상이 되다니 정신이 아득했다.


돌롱이 경비원들에게 고개를 까딱인 후 대붕을 위해 텐트 덮개를 젖혔다.

안에는 커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남자들이 모여 있었고, 지도를 펼쳐놓고 속삭이듯 전술을 의논하고 있었다.

대붕이 들어서자 그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언자이시여."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말했다.

키가 크고 위압적이었으며, 깔끔한 수염과 날카로운 눈빛이 돋보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붕은 귀족이자 잔다르크의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한 명인 질 드 레를 단번에 알아봤다.

대붕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문득 깨닫고 침을 삼켰다.


"장군님들,"

대붕은 잔 다르크가 가졌을 법한 자신감과 위엄을 목소리에 담으려 애썼다.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탁자를 둘러싼 장군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 중에는 회의적인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붕은 그들의 의구심, 그리고 한낱 촌뜨기 소녀가 군사 전략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겠냐는 속삭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존중의 기색도 보였다.

잔 다르크가 지녔다는 신성한 권위를 인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성녀님."

질 드 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존경심이 묻어났다.

"우리는 잉글랜드군의 포위를 뚫고 오를레앙의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지 논의해왔습니다."


그는 오를레앙시가 잉글랜드 요새의 고리로 둘러싸인 지도를 가리켰다.

"잉글랜드군은 도시 주변에 일련의 요새들을 세웠고, 우리가 보급품이나 지원군을 들여오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방어선을 뚫고 포위를 풀어야만 합니다."


대붕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지도를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역사책에서 오를레앙 포위전에 대해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 펼쳐지자 지나치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잉글랜드군 포진을 나타낸 선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들의 장단점에 대해 배운 내용을 되짚어 보려 했다.

잉글랜드 쪽이 병력도 장비도 우세했지만, 몇 달째 포위전을 벌이다보니 전력이 분산되어 있었다.


"남쪽에서 치고 들어가면 어떨까요?"

대붕의 목소리는 자신의 귀에도 이상하게 높고 여성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루아르 강을 건너서 접근하면 영국군을 기습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탁자를 둘러싼 남자들이 서로 시선을 맞췄다.

그 제안에 깜짝 놀란 표정들도 보였다.

대붕은 그들이 여자한테서 군사 조언을 받는걸 내키지 않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장 돌롱이 단호하고 존중하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성녀님의 계획엔 타당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대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잉글랜드군은 그 방면에서의 공격은 예상치 못할 테고, 그러면 우린 보급과 지원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질 드 레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신중하게 그 생각을 검토했다.

"대담한 계획이군요."

그는 시인했다.

"하지만 위험도 따릅니다. 잉글랜드군은 강을 감시하는 파수병들을 배치해놨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다가가는 걸 알아차린다면, 쉽게 우리를 고립시킬 수 있을 겁니다."


대붕은 조금의 짜증을 느꼈다.

그는 잔 다르크가 그녀의 군사 경력 내내 자기 부하들로부터 계속 의심과 반대를 받았던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영적인 인도자로 존경했지만, 그녀의 군사적 판단엔 종종 회의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