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척 지대 인근의 대도시, 오스웬의 아침이 밝았다.


선술집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운 모험가들이 모험가 길드로 모여들어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수십 년에 걸쳐 증축되면서 주변 어느 건물보다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게 된 모험가 길드.


길드의 사무원들은 지난 밤 새로 들어온 의뢰 전단지들을 게시판에 붙이고, 미리 일거리를 찾아두지 않은 모험가들이 이에 몰려들어 적당한 의뢰를 물색한다.


고정 파티가 있는 모험가들도 있고, 새로운 파티원을 구하거나 자신이 들어갈 파티를 찾는 모험가들도 있다.


거친 삶을 사는 자들이 많은 탓에,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어 싸움판을 벌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모험가들의 요람이라고도 불리는 오스웬에선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이었다.


테오르는 아직 그런 풍경에 익숙치 못한 신출내기 모험가 소년이다.


모험가 길드 내부에서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걷던 테오르는 험상궂은 모험가와 어깨를 부딪혔다.


“ 앞 똑바로 보고 다녀 얼간아! ”


“ 우왓! 죄, 죄송합니다…. ”


소년은 커다란 덩치의 일갈에 맥아리없이 밀려나며 움츠러들었다.


신출내기에 더불어 이런 커다란 도시 자체가 처음인 시골 촌뜨기이기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막연히 모험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시골을 도망치듯이 떠날 때는 기분이 좋았다.


그게 벌써 반 년 전.

이 도시에 도착하는 것만 해도 적잖이 어려웠고, 테오르는 자신이 그동안 나름 역경을 겪고 성장했다고 생각했으나… 모험가들의 도시에선, 그런 경험따위 기초 중 기초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소년은 자신이 그나마 운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이 넓고 거친 도시에서,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 여기다, 꼬맹아. ”


“ 아저씨! 꼬맹이 아니라니까…. ”


테오르의 나이는 16세. 이르면 결혼은 물론이요 이미 갓난 아이까지 둔 녀석들도 있는 나이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모험가의 입장에선 코흘리개 애새끼나 다름없는지, 얼굴의 흉터가 인상적인 그는 테오르를 줄곧 꼬맹이라 불렀다.


경력 15년의 베테랑 B급 모험가, 자이드는 씨익 웃으며 테오르를 제 곁에 앉혔다.


그들이 자리잡은 곳은 넓은 길드 홀의 구석탱이 테이블이었다.


모험가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자리에서, 자이드가 입을 열었다.


“ 아직 적응이 어려운 모양이지? ”


“ 말도 마세요, 어휴. ”


테오르는 자이드에게 혀를 내두르며 한숨을 지었다.


도시에 도착한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 걱정 붙들어 매라고, 우리 꼬맹이는 이 형님만 믿고 따라오면 되니까. ”


자이드는 자신의 근육질 가슴팍을 퍽퍽 치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어딘가 미심쩍다 여겨지는 모습이었으나, 테오르가 보기엔 그저 믿음직한 연장자로 보일 뿐이었다.


실제로 자이드는 오스웬에 도착한 후 방황하던 테오르를 줄곧 돕고,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정보도 여럿 알려주었으니 그런 믿음이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이드의 본성을 아는 다른 모험가들도, 곧 바닥까지 벗겨먹힐 테오르를 딱히 도와주지는 않았다.


겨우 저 정도 위기를 간파하지 못해서야 모험가로선 실격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으므로.


그렇게 자이드가 한창 친절한 연장자를 가장하여 테오르와 대화하고 있을 즈음.


명백히 눈에 띄는 이가 모험가 길드의 정문을 열고 들어왔다.


“ …허억. ”


자이드는 말을 쏟아내다 말고 그 누군가를 발견하곤, 느닷없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자이드님? 왜 그러… 헉! ”


갑자기 자신을 감추는 그의 모습에 당황한 테오르는 정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헛숨을 들이켰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테오르가 평생 살면서 보아온 여성 중, 심지어 어린 시절 내내 쫓아다니던 예쁘장한 소꿉친구보다도 훨씬 더,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코는 조각상처럼 오똑하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눈매는 끝이 날카롭다.

오밀조밀한 입술은 방금 딴 싱싱한 앵두처럼 윤기가 흐른다.

흔치 않은 녹색의 단발은 뒤로 묶어 올렸고, 그 덕에 백옥같은 목덜미가 드러나 보는 이들의 욕구를 돋구웠다.

숲을 담은 듯 싱그럽게 반짝이는 녹색 홍채 또한 그녀를 돋보이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인간과 다른 형태의 뾰족한 귀는 그녀의 아름다움 외모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테오르는 저 귀가 엘프의 증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면, 그녀의 등장과 함께 모험가 길드 전체가 적막에 휩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 우, 와아아아…. ”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짧은 케이프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복장은, 파격적이기보다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속옷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푸른 잎파리를 엮어 만든 비키니.

장갑과 부츠를 제외하면, 그녀가 목 아래로 걸친 것은 그게 전부였다.


당당하게 드러난 젖가슴과 배꼽, 골반, 허벅지를 훑은 테오르가 코피를 흘렸다.

여성의 벗은 몸이라곤 생전 본 적 없는 소년에겐 그런 방면에서의 면역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키는 좀 작은 편이었으나 몸매는 확실히 성숙한 여인의 형태였다.


아름다운 외모와 정신나간 복장 시너지를 일으켜, 그 누구도 그녀에게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영원같은 몇 초가 흐른 후, 그녀가 입술을 떼었다.


“ 뭘 봐, 쓰레기들아. 하던 거나 해라. ”


고운 미성에 어울리지 않는 한 마디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그녀 하나에 집중되었던 수십 개의 시선이 조금 거두어졌다.


어색하게나마 그녀가 등장하기 전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다시 이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곁눈질 하거나, 입을 떡 벌리고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녀석은 여럿 있었다.


테오르는 그 중 전자에 해당했다.

걸을 때마다 살랑이는 엉덩이와 출렁이는 젖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자이드에게 질문했다.


“ 뭐, 뭐예요 저거…? ”


“ 하아… 그러니까 말이지. 저건… ”


여전히 후드티로 자신을 감춘 자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대략 세 달 전 도시에 도착한 엘프 모험가, 디아나.

그녀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저런 모습이었다.


당연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외설죄로 경비대에 끌려갔다.

그리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저 미친 복장을 영주에게 허락받았고, 그 후로 두문불출하며 모험가 노릇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테오르는 자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길드의 사무원과 대화하는 그녀의 케이프는 너무나 짧아, 훤히 드러난 뒷태를 전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빳빳해지는 건 아마 테오르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이드는 그런 소년의 기색을 느끼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 …야 임마, 발정하는 건 이해하는데 함부로 접근하진 마라. ”


“ 예, 예? ”


“ 존나 위험해. 저 꼴 보고 접근했다가 반죽음 당한 사내가 몇 명인지…. ”


여성 모험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모험가는 남성이 많다.

저런 변태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는 아름다운 엘프 여성에게 추근덕대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지금, 모험가 길드 내의 수많은 모험가들이 그저 시선만 보낼 뿐 접근하지 않는 것에는, 신참 모험가는 잘 모르는 뒷사정이 있었다.


“ 말도 조심해. 아니, 그냥 엮이려고 하지를 마. ”


“ 네, 네에…. ”


아쉽지만 소년은 연장자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여태껏 그의 말을 듣고 손해를 본 경우는 없었으므로.


그 후 소년이 곁눈질을 해대며 다시 자이드와 대화를 나눈 지, 대략 5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 쾅!


길드의 문이 부숴질듯 큰 소리를 내며 열리고, 누구누가 들어왔다.

이번엔 테오르도 아는 사람이었다.


‘ 강완의 칼레드…. ’


최근에 도시에 도착한, 다른 도시에서도 이름 높았다는 전도유망한 젊은 A급 모험가였다.

키가 2m에 달하는 거한이며, 강완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전신에 근육이 꽉 들어찬 전위 격투가.


그는 들어오자마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곧장 사무를 보는 창구로 다가갔다.

디아나가 사무원과 대화를 나누는 중인 쪽이었다.


그의 성격을 아는 자들은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직감했으나, 말릴 틈이 없었다.


지척에 이른 거리에서, 칼레드의 팔이 어깨 높이까지 올라가고….

가볍게, 휘둘러졌다.


- 짜아악!


“ 푸후웁! ”


후드 너머로 조심스레 그 광경을 보며 물을 마시던 자이드는, 그 순간 물을 뿜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길드 내부가 다시금 얼어붙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 여기는 창녀도 길드에 들락날락 하는 모양이지, 응? 변방이라 그런지 엉망이구만! ”


“ …. ”


칼레드는 다짜고짜 디아나의 엉덩이를 후려친 걸로 모자라, 그대로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그가 도시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디아나는 장기 의뢰를 맡고 막 돌아온 참이라 일어난 대참사였다.


주변 사람들이 경악하는 것도 모르고, 칼레드가 경박하게 말했다.


“ 키가 좀 아쉽지만 몸매는 괜찮네! 어때, 한 번 봐줄 테니까 지금 위로 올라가서…. ”


“ 손, 떼라. ”


여전히 미성이지만,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그러면 편하게 죽여주마. ”


“ 허어…? ”


고개를 살짝 틀어 올려다보는 엘프의 날카로운 시선이 거한과 마주했다.


그리고 경고를 들은 칼레드는 표정을 굳히고 디아나의 멱살을 잡았다.


“ 이 미친 년이. ”


“ 자, 잠시만…! ”


“ 창년이 주제도 모르고 바락바락… 안 되겠다. 버릇을 고쳐주지. ”


그리고 방금까지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던 오른 손이 주먹이 된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접수원이 말릴 틈도 없이, 칼레드는 건방진 창년에게 주제를 파악시킬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 근육이 들어찬 팔이 휘둘리기 직전.

옅은 미소를 띈 엘프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칼레드의 팔에 손을 얹고 작게 뇌까렸다.


“ 이건 정당방위야. ”


“ 디아나님! 안 됩니다!! ”


그 순간에는 칼레드도 위화감을 느꼈다.

길드의 사무원이, 자신이 아니라 눈 앞의 창녀를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순간은 너무나도 늦었다.


푸른 빛이 사내의 전신을 감싼다.


- 꽈지지직!!!


“ 끄아아아아!! ”


어떤 주문도 입에 담지 않았음에도, 예고 없이 발동된 고위 전격 마법이 칼레드에게 닥쳤다.


살을 녹이고 근육을 태우는 번개는, 기이하게도 디아나에겐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


조금 어두운 편이던 길드 내부가 푸른 빛으로 번쩍인다.


그 빛은 약 10초간 지속되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 푸쉬이이…


“ 커어어…. ”


전신이 새까맣게 타오른 사내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떡 벌어진 입에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는, 참담한 몰골이었다.


“ 디, 디아나님…. ”


“ 걱정 마, 안 죽였어. 모험가 노릇은 이제 못 하겠지만. ”


자신에게 묻은 검댕을 털어낸 엘프 여인은 황망하게 자신을 부르는 사무원에게 친절히 설명해준 후, 발걸음을 돌렸다.


“ 수리비는 나중에 청구해. 기분 잡쳤으니 오늘은 간다. ”


전격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물 벽에 달라붙은 모험가들을 뒤로 하고, 디아나는 길드를 나섰다.


그러려다가, 나가기 직전 멈추고 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이드와 테오르가 있는 쪽이었다.


“ 그런데 너. ”


“ 히익! ”


테오르는 혹시 자신에게 말하는 건가 싶었으나, 그 시선의 대상은 자이드였다.


거의 발작하듯 반응한 그는 이미 정체가 들켰음에도 더욱 더 후드로 자신을 가리려고 했다.


“ 분명 꺼지라고 했는데… 왜 또 여기 있는 거지? ”


“ 그, 그게…! ”


엘프 여인의 주위로 전기가 파직거린다.

자이드는 거의 죽을 상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모험가들이 눈치를 보며 슬슬 자이드에게서 거리를 두고, 엘프의 살벌한 시선이 그를 꿰뚫을 듯 응시한다.


자이드가 선택한 것은 결국 도망이었다.


“ 죄송합니다아아!! ”


외형으로 따지면 거의 딸뻘인 엘프에게 사죄하며, 그는 부리나케 후문으로 도망쳤다.


디아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되었다는 듯 길드를 나왔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는 군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생각했다.


‘ 씨발, 씨발, 씨발…!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


대략 1년 전, 처음 자신을 자각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이게 전부 빌어쳐먹을 변태 정령왕 때문이다.


바람 계열의 정령 마법을 써서 한달음에 군중 속에서 벗어나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계약 이후 지금까지 쭉. 이제 이런 일을 겪는 것도 수십번째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지. 오히려 당당해지는 편이 좀 더…. ]


“ 닥쳐!!! ”


디아나는 심상에서 말을 걸어오는 정령왕에게 일갈하며, 성벽을 넘어 마침내 도심을 빠져나왔다.


마물이 우글대는 숲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 아아…. ’


커다란 나무의 옆에 쪼그려 앉아, 상념에 잠겼다.


느닷없이 얻어맞은 엉덩이가 아직도 얼얼했다.


정말로.


정말로 싫다. 이런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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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로 살다가 전생을 깨우치고, 가장 강한 루트 타려고 정령왕이랑 계약했는데 큰 힘을 빌리는 대신 입을 수 있는 복장이 나뭇잎 비키니 뿐이게 된 엘프 틋녀야


만약 연재하게 된다면 15금으로 쓸까 생각 중


괜찮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