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사랑, 사랑 말이야! 어제 내 방 청소하러 온 시녀들 얘기를 들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우리 가문 기사랑 사랑을 한대! 그런데 엄청 행복해 보였어.”


‘하아, 아무래도 시녀들의 잡담 중 이상한 부분에 꽂혔나보네.’


내가 로판 속 악역영애의 언니로 환생한지 어언 7년 차.


분명 원작에 등장하지도 않는 존재지만, 그러니 악역영애고 뭐고 나몰라라 하고 내 살길이나 찾으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이 귀여운 여동생을 두고 각자도생을 꿈꿀만큼 매몰찬 사람이 못되었다.


어차피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나쁠 순 없는 법.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소한의 인성 교육에 신경써서 원작에서처럼 낄낄거리며 사람을 죽여대는 미친년만큼은 안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 이렇게 나이에 걸맞게 사랑이 뭐냐는 귀여운 질문도 할 줄 아는 아이인데. 내가 잘 신경쓰기만 하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샌가 버릇처럼 동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중, 심술이라도 난 듯 볼을 잔뜩 부풀린 동생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새어나왔다.


“치, 내가 물어봤는데 대답도 안 해주고. 다른 사람 말 무시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언니가 그랬으면서.”


“아이 참.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어. 사랑이 뭐냐고 물어봤지?”


“응!”


“사랑이란 게 엄청 대단한 건 아니야. 하지만 가장 맹목적인 감정이지.”


“맹, 목?”


“음, 말이 어려웠나? 간단히 말하자면 만약 누군가에 대해 생각했을 때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으면 손도 잡고 싶고, 손 잡고 있으면 껴안고 싶고, 껴안고 있으면 뽀뽀하고 싶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네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거야.”


“...정말?”


“그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사람이 생각나고 보고 싶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지.”


사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사랑이란걸 해 본적 없는 모쏠아다인 나지만 그래도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봐온 지식 정도만 있어도 어린 아이에게 설명하기엔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충분한 거 맞겠지?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한 다음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내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이번 생에서 사랑을 찾기엔 그른 상황.


새삼 씁쓸한 현실에 속으로 쓴웃음을 짓던 찰나, 여동생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쏟아졌다.


“언니! 나 그럼 사랑하는 사람 있어!”


“어머, 우리 동생이 사랑을 하는...뭐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응! 그것도 엄청 많이 사랑하는 사람!”


그렇게 말하며 뽀얀 뺨을 붉게 물들이는 동생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모양.


그로 인해 내 머릿 속은 한껏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디 사는 누구지? 설마 엊그제 다녀간 맥밀턴 백작가의 삼남 그놈인가? 어쩐지 우리 동생한테 자꾸 달라붙더라니...!’


원작의 서브남주 포지션이자 우리 동생의 약혼자로 등장하는 제리안 맥밀턴.


외모만 보고 모든걸 결정하는 극성 얼빠라서 내 동생과 약혼하지만 여주를 만나 진짜 사랑에 눈을 뜨고 악역영애인 내 동생을 처단하는데 힘을 보태는, 솔직히 줘도 안 받고 싶은 비호감 캐릭터였다.


‘아직 어린 나이라고 방심했어. 내가 착하게 잘 키워놓은 동생한테 접근해서 무슨 헛짓거리를 할 지도 모르는데. 앞으로는 철저하게 배제해야지. 굳이 엮는다면 그런 반푼이 얼빠놈보단 메인남주인 대공이...’


생각이 급속도로 돌아가면서 향후 동생과 얽힐지도 모를 원작 남주들을 정리하던 중.


내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는 말랑한 감각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언니, 괜찮아?”


“응? 어? 당연히 괜찮지.”


“표정이 엄청 무서웠는데...아무튼 내가 사랑하는 사람 말인데, 그거 바로 언니야!”


“에?”


“언니 말이야! 나 맨날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자기 전까지 언니 생각만 하는걸! 그럼 나 언니를 사랑하는 거지?”


방금까지의 고민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해답. 그러나 그 나이대에 맞는, 어린 아이다운 발상.


덕분에 혼자 머릿 속으로 불순한 상상을 하던게 부끄러워진 나는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는 동생이 너무나 귀여워서 꼭 끌어안아 주었다.


“으이그, 이 귀여운 동생같으니라고! 언니도 우리 동생 사랑해!”


“히힛, 그럼 나 언니랑 결혼하는거야?”


“그래, 그래. 우리 동생 많이 크면 이 언니랑 결혼해서 평생 같이 살자!”


“응! 약속이야!”


어차피 어린 날의 추억으로 사라질 가벼운 약속.


그저 지금을 만끽하자는 생각에, 나는 어떻게 이루어질 지 모를 약속을 나누었다.


내 평생의 족쇄가 될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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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매백합 마렵다


왜 아무도 안주니


나 화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