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발생한 게이트에 휘말려서 던전에 조난당했다.


비록 위험한 던전내에 갇히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침착함을 유지해 냈다.


헌터 협회의 적극적인 어필과 유명 헌터들의 광고로 일반인들도 던전용 서바이벌 키트같은 걸 구비할 수 있는 세상이었고, 우리를 진정시키는 헌터 일행이 있었으니까.


일반인이 보기에는 까마득한 B등급을 받은 헌터는 우리가 이주일은 던전내에서 안전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헌터를 포함한 조난자 14인은 금방 구조될 수 있다고 여겼다.


보통 조난자를 구조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3일이었고, 5일차를 넘어가면 협회 소속의 S급 헌터들을 총 동원하기에, 오래 걸려도 일주일을 넘긴적은 아직 없었으니까.


아직... 없었을 뿐이었으니까.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평생 안줏거리가 생겼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우리모두 밝게 웃었었다.


그는 우리가 조난 당한지 11일차에 낙석에 휘말려 죽었다.


곧 결혼하다고 소개했던 예비부부는 축하를 받으며 우리에게도 청첩장을 보내겠다고 했었다.


예비신랑이 13일차에 예비신부를 감싸다가 몬스터의 곤봉에 곤죽이 되어 죽었다... 신부는 다음날 신랑을 직접 따라갔다.


정의감 넘치던 헌터 한명이 17일차에, 떨어져가는 식량을 훔치려던 아저씨가 18일차에, 아저씨의 발악에 신입사원이 함께 18일차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더는 못있겠다고 도망간 일행 셋이 21일차에, 식량을 조달해보겠다던 여성헌터가 23일차에, 이성을 잃은 B급 헌터에게 능욕당한 여성이 24일차에, 몬스터에게서 도망치다가 넘어진 아주머니가 25일차에...


그리고 28일차에 겨우 가위바위보에 졌다고 내 눈앞에 있던 사람이 헌터에게 죽었다.


그 때 뭐라고 했더라...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 날은 헌터님이 좀 더 온화하고 기분이 좋았고... 배고프다고 성질을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어영부영 살아만 있던 나는 30일차에 몬스터들의 미끼가 되었다.


그 뒤의 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물처럼 생긴 몬스터를 마구잡이로 물어뜯어 먹고있는 중이었다.


인간이 가질리 없는 늑대의 것을 닮은 꼬리와 귀를 가진 여자아이가 된 채, 나라는 것을 증명하듯 넝마가 된 내 옷을 겨우 걸치고만 있는 모습으로.


얼마나 던전에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구조 될 당시에 뉴스에 따르면 82일만에 구조 되었다고 했던가. 그 던전의 유이한 생존자로 한동안 관심을 받았었다.


그 뒤로는 이 모습이 된 덕에 헌터로 이름을 좀 날리며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고...



***



"끄아아악!!!"

"시끄러워. 지금 말하고 있잖아."


지금 내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왜 말을 끊고 지랄인 걸까, 이건.


"어디까지 했더라? 까먹었다. 하여튼 딱. 한명만 말해."

"끄흐으읍...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살려준다니까?"


버둥거리는 이것의 발목을 느긋하게 힘들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돌렸다. 어차피 돌아갈테니까 돌아가는 방향이 맞겠지.


으득



"끄아아악!!!"

"얼른 말해? 팔다리 다돌려서 이젠 눈을 돌릴거야."



내 손이 점점 이것의 눈에 다가가자 공포에 질린 이것은 눈물을 흘리며 떨었다.


내 손가락이 이것의 눈동자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이 연약한 눈은 저항도 못하고 뚫리게 되겠지.


"헌터를 뺀 조난자 11인중 한명만, 따악 한명만 이름을 말하면 살려주겠다니까?"


나는 마지막 자비를 이것에게 내렸다. 딱 한명만 말할 수 있다면 그 즉시 이것에서 33일만에 구조된 첫번째 조난자 B급 헌터 박시준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짐승 미만의 무언가를 망가트리고 싶을 뿐이니까. 과거를 반성하는 박시준은 지금당장 이유모를 상처를 가지고 있는 포션으로 응급조치를 하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러니 얼른.


"한명만 말해봐. 안줏거리 이야기를 한 대학생은? 예비부부도 좋아. 아니면 분란을 만든 아저씨의 이름은 어때? 너도 그때 같이 화냈잖아. 막 입사했다던 사람이 죽어서말이야. 그 사람도 좋지. 일행을 빠져나간 3인방은 어때? 고등학생 두명에 선생님 한명이었잖아? 아~ 너가 몸을 섞은 사람은 어때? 그 긴박한 와중에도 좆질을 할만큼 사랑했겠지? 응? 응? 비명을 지르던 아줌마는? 가위바위보에서 가위를 냈던 막 전역했다던 친구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이것과 눈을 마주쳤다.


"그럼 나는?"

"S급 허,헌터..."

"나 아는구나?"

"네,넵 하하... 헌터 이..."


퍼석.


가볍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망가진 박시준이 되지 멋한 물건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오늘 저녁은 계란말이와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하기로 약속했으니 얼른 장을 보고 돌아가야 하니까.



***


보글거리며 익어가는 두루치기.


이쁘게 말아진 계란말이를 이쁘게 담아서 식탁으로 옮겼다.


점점 커지는 탁탁거리는 흰지팡이의 소리에 기분좋게 꼬리가 흔들렸다.


삑. 삐리리


손목에 차고 있을 도어락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에 기다리지 못라고 현관으로 튀쳐나갔다.


"다녀왔어요? 밥 다해놨어요!"

"우와 냄새 좋다."


그가 슬며시 들어올린 손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히히히."


익숙한 듯 쓰다듬는 손길에 몽실몽실해져가는 기분이 들어 실없는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거 나랑 결혼해서 아들 둘, 딸 둘 낳고 행복하게 살자는 신호지? 맞지?... 응 아니지... 그래도 기분은 좋으니까!


"이게 그렇게 좋아?"

"응! 최고로 조아!"


팔장을 낀채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은근슬쩍 가슴을 부딪혀 보지만 오늘도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다.


애초에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것이니까.


"음? 뭔가 냄새가 나네?"

"칼 갈아서 그런가봐요! 환기할테니까 밥부터 먹어요!"

"아니, 조금 타는 듯한..."

"히악! 두루치기가!!!"


이 맹인 헌터 앞에만 서면 웃음이 끝이 않는다.


"히히히!"


오늘도 실없이 웃으며 안내견을 자칭한다.


오늘 욕실 청소를 한번 더 해야겠다~




====



적고나니 생각보다 안 허접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