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 루프, 전쟁, 피폐 19금(고어, 윤간씬 다수 예정)



 “중얼중얼 존나게 시끄럽네.”

 신경질적이며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심코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나운 눈을 가진 여자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뭐. 꼽냐?”

 “...”

 나는 대답 대신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뭐라 욕지거리하는 게 들려왔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건 꿈인가?’


 분명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웬 수송트럭 안이었다. 그것도 전원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그 와중에 보이는 성별이 반반인 건 입대를 앞둔 내 은근한 불만을 나타낸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꿈이라면 고약한 꿈이었다.


 ‘어차피 꿈이니까 깊게 생각하지 말까.’


 수송트럭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했듯 나도 후줄근한 군복과 총 한 자루를 품에 안고 있었다.


 묵직함과 서늘한 철에서 흘러나오는 한기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더욱 소름 돋는 건 내가 여자라는 것이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긴 주황색 머리카락과 군복 위로도 확연히 보이는 볼륨감 있는 몸매.


 남자라면 절대로 보일 수 없는 특징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마나 군대에 가기 싫었으면 군대 꿈을 꾸는 와중에도 여자가 되어 있는 거냐고.


 “윽.”

 돌부리라도 밟았는지 덜컹거림이 아까보다 심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사방에서 욕지거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아까 전 시비를 걸어왔던 여자는 운전석이 있는 방향으로 ‘빨갱이보다 운전 못하는 새끼들’ 이라며 중얼거리는데 기세가 워낙 살벌해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지, 어차피 꿈이니까 상관없나?


 “저기요.”

 “...지금 나한테 말 건 거냐?”

 “네, 그쪽이요. 이름이 뭐예요?”

 “허!”

 기가 찬다는 듯 숨을 토해내는 여자였지만, 나는 당당했다.


 현실이었다면 말도 못 걸었을 테지만, 여기는 꿈이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 당당함이 먹혀들었는지 여자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깐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더니 꽤 당돌한 면도 있네. 좋아, 멜로라고 불러.”

 “어떻게 사람 이름이 멜로일 수가 있지...”

 “불만있냐?”

 “아뇨. 예쁘다고요.”

 아무리 내가 헛소리 좀 했다고 하지만 총구를 들이밀 필요는 없지 않아?


 턱을 찌르는 서늘한 감각에 황급히 대답하니 멜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는 넌 이름이 뭔데.”

 “제 이름이요? 전...”

 이름을 대려고 하는데, 멋대로 입이 움직였다.


 “세라. 세라 위더비츠에요.”

 “흥, 만만치 않게 촌스러운 이름이구만.”


 새침하게 고개를 홱 돌리는 모습이 조금 전 내가 한 말에 꽤 꽁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멜로의 기분을 다독여줄 여유가 없었다.


 ‘세라 위더비츠가 도대체 누군데?’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도 꿈이라 내가 어디서 본 이름을 떠올린 걸까.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는데 어디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쇄액-


 “포탄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너나할 거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황급히 모두를 따라 머리를 감싸며 숙이는 순간이었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천지가 흔들렸다. 그런 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 지축을 흔들어대는 포격에 수송트럭 내부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고 바깥과 가까이 앉아 있던 누군가 슬쩍 밖을 보더니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 트럭 말고는 전부 당했군.”


 전부 당했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나는 조금 전 유일하게 통성명을 나눴던 멜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멜로가 어처구니없다는 소리로 말했다.


 “벌써 대가리에 총 맞았냐?”

 “너무해요.”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머리에 총 맞았냐니.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물어보니 진절머리 난다는 듯 멜로가 말했다.


 “무슨 말이긴, 중대 하나가 완전히 괴멸됐다는 뜻이지.”

 “그렇군요...”

 물론 그게 무슨 말인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대충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어쩐지 멜로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괴상망측했다.


 왜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보는 거지… 멜로의 시선에 맹하니 볼을 긁적이고 있으니 한참 동안 움직이던 수송트럭이 멈췄다.


 “하차!”


 벽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밖으로 뛰어내렸다.


 나와 멜로 역시 사람들을 따라 빠르게 내렸는데, 보이는 풍경이 가관이었다.


 “...꼭 전쟁터 같네.”

 참호로 들어가는 입구 위로 얼핏 보이는 황량한 대지의 모습. 그리고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폭연과 희미하게 들려오는 총소리까지.


 영화에서나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전쟁터 같은 게 아니라 전쟁터 맞아 멍청아.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따라와.”

 “아, 네.”


 황급히 멜로를 따라 함께 온 사람들 사이에 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척 봐도 높은 계급장을 가진 군인이 나타나더니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햇병아리들을 보내줄 거면 많이 보내줄 것이지 고작 분대급인가. 제국도 이제 끝이군.”

 “원래는 중대급이었습니다. 대위님. 연방 놈들의 포격을 맞고 A분대만 남은 거죠.”

 “...쯧. 다음번에는 최대한 살려서 오도록 노력해보게.”


 “예, 노력해 보지요.”

 우리를 태우고 온 수송관은 피식 웃으며 경례를 마친 뒤 수송트럭을 몰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를 향해 대위 계급의 군인이 말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햇병아리 제군들. 마음 같아서는 느긋하게 커피라도 나눠 마시며 통성명을 나누고 싶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소대장들, 알아서 징발해 가도록.”

 그리 말한 대위는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지고 어느새 나타난 건장한 남자들, 소대장들이라 불린 이들이 하나둘 징발해갔다.


 나와 멜로는 3소대장, 칼 마이어 소위라는 남자에게 선택되어 참호 안을 이동했다.


 “윽, 냄새...”

 참호 안의 상태는 끔찍했다. 흙에 피가 말라붙어 있는 건 기본이요, 쥐와 파리가 먹을 것을 찾아 배회하고 있었다.


 냄새는 또 어떻고? 멜로조차 냄새에는 적응하지 못하겠는지 미간을 한껏 좁히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이어 소위가 비웃듯 말했다.


 “하루면 적응될 거다. 그동안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

 우리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채 마이어 소위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3소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다들 생기 없이 퀭한 눈을 가지고 있는 건 기본이요, 손가락이 하나 없는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아예 머리를 붕대로 꽁꽁 감싼 여자도 있을 지경이었다.


 시선을 그리 향하고 있으니 마이어 소위가 픽 웃으며 말했다.


 “옆에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귀가 완전히 가버렸어. 그래도 다행이지. 하마터면 귀가 아니라 몸이 완전히 조각날 뻔했으니까.”

 귀가 안 들려도 자기 이야기하는 걸 알고 있는지 붕대를 감고 있는 여자가 고개를 들더니 마이어 소위를 향해 주먹 감자를 날렸다.


 마이어 소위도 마찬가지로 주먹 감자를 날려준 뒤 우리를 향해 말했다.


 “적당히 쉬고들 있어. 얼마 안 있다가 또 빨갱이 놈들이 쳐들어올 테니까.”


 “예, 소대장님.”

 “예, 옙!”


 수송트럭에서 보여줬던 까칠한 모습과 다르게 마이어 소위를 향해 곧은 자세로 경례하는 멜로에 나도 황급히 따라 했다.


 마이어 소위는 픽 웃으며 경례를 받아준 뒤 팔자걸음과 함께 참호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마이어 소위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멜로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내게 말했다.


 “머저리 같은 년. 여기서도 어리바리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미, 미안해요...”

 “꼭 훈련 안 받은 년처럼 굴고 있어.”

 하지만 훈련받아 본 적 없는걸. 나는 어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보다 꿈인데 너무 가혹한 환경 아니야? 이왕이면 좀 편안했으면 좋을 텐데.


 아니, 전쟁이 배경인데 편안하길 바라는 것도 이상한가?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멜로와 함께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 들고 온 짐을 풀었다.


 그다음에는 무료한 시간이 이어졌다.


 선임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아무 말도 없었고, 멜로도 생각에 잠겨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 나도 조용히 있을 수밖에는.


 ‘빨리 꿈에서 깼으면 좋겠네.’


 꽤 길게 가는 꿈이구나 하고 생각하던 때였다.


 쇄액- 익숙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3소대 전원 누가 말하지 않고도 먼저 몸을 웅크렸다.


 콰앙-! 지축을 흔드는 폭발음이 지근거리에서 들려왔다. 파스스 떨어지는 흙먼지에 심장이 절로 쿵쾅거렸다.


 꿈이 너무 리얼해서 심장 터질 거 같네. 그렇게 연달아 포격이 떨어지고, 멀리서 함성이 들려왔다.


 “돌격! 조국 연방을 위하여! 제국의 멸망을 위하여!”

 “빨갱이들이 쳐들어온다!”


 땡땡땡- 요란스럽게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선임들이 총을 들고 함성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나와 멜로도 그들을 따라 참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해일처럼 밀려오는 인파에 입을 떡 벌렸다.


 “햇병아리들 뭐 하고 있어! 어리바리하고 있지 말고 방아쇠 당겨!”

 “예, 예!”

 멜로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노리쇠를 당기며 발포하길 반복했지만, 나는 여전히 넋을 놓고 있었다.


 ‘이게 꿈이라고?’


 아니, 절대로 꿈이 아니었다.


 저 수많은 사람이 보내오는 열기와 참호에서 풍겨오는 죽음. 그리고 내 몸을 감싸오는 멜로의 온기는 분명,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세라!”

 근데 왜 멜로가 날 안고 있는 거지? 난 왜 뒤로 넘어져 있는 거고? 왜 팔다리에는 아무런 힘이 안 들어가는 거지?


 “신참, 버려. 미간에 정확히 구멍이 나서 즉사했을걸.”

 “젠장...”

 아하. 나 총에 맞았구나. 생각보다 별로 안 아프네. 꿈이라 그런가?


 침음성을 삼키며 다시 총을 집어 드는 멜로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인사했다.


 너무 걱정하지마. 나는 죽는 게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는 것 뿐이니까… 아니, 꿈의 사람인 멜로에게는 죽은 거나 다름 없나? 뭐.


 기회가 있다면 다음 꿈에서도 보자고.


 .

 .

 .

 .

 .

 .


“중얼중얼 존나게 시끄럽네.”

 신경질적이며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심코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멜로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뭐. 꼽냐?”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너 나 알아?”

 별말 하지도 않았는데 씨근덕거리는 걸 보니 틀림 없는 멜로였다.


 “어째서?”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멜로는 꿈속의 인물이고, 나는 현실의 인물이니까.


 꿈에서 깨어났으니 멜로가 보여서는 안 된단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깜빡여도 멜로가 눈앞에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


 감당되는 소재인지 아닌지 몰라서 ts챈에만 올려보기로함


 연재란이 안파이고 소리소문없이 다음화가 안올라온다면 감당안되는걸 깨닫고 접었다는 뜻이겟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