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 한쌍의 남녀가 누워있었다. 이불에 반쯤 가려졌지만 남자는 단련된 몸 곳곳에 수많은 상흔들이 나있었다.


그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마물과의 성관계는 인간에겐 무척 힘든 일이니 그럴만도 했다.

 

 그런 남자의 옆에서 칠흑처럼 검은 머리칼의 여자가 눈을 뜬 채로 멍하니 여인숙의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언뜻 보기엔 아름다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을 잃어 탁했다. 그래도 그녀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다만, 오른팔에 검붉은 칼 한 자루가 융합되어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 검은 마검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본래 모습이기도 했다.




*****


 

"아빠 윗 층 2번 방 손님 말야. 식사를 두 개 가져가야 하나?"

 

이른 새벽부터 부엌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여인숙 손님들의 아침을 준비하던 고양이 수인 소녀가, 2번 방용 식사 쟁반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 손님 밥 많이 드시고 싶으시다냐?"

"아니 분명 들어올 땐 혼자였는데 어제 2번방에서 여자소리가 들리더라구."

  

딸이 이상하다는 투로 꼬리를 살랑거리며 중얼거리자,  여인숙의 주인이자 주방장은 야채를 볶으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냥 식사 한 개 가져가. 우리 여인숙은 들어왔을 때가 기준이야."

"넹."


고양이 소녀는 잽싼  손놀림으로 식사 쟁반 6개를 마치 묘기라도 부리는 것처럼 한꺼번에 들고 콧노래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

 


똑똑.

 

'내가 뭘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야?'

 

똑똑.


'나도 돌아버릴 거 같아.'

 

똑똑똑!

 

"제발 나를 가만히 두라고!"


다음 순간, 뭔가 깨져 나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여인의 의식을 악몽에서 현실로 되돌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고, 이내 오른팔에 달린 마검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상태로 문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뭐야."


문을 열자 앞에는 음식 쟁반들을 모조리 엎어 버린 하얀 고양이 수인이바닥에 엎드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자신을 악몽에서 깨운 쨍그랑 소리는 아마도 홀슈타우로스가 냈으리라. 

 

"죄...죄송합..."

"꺼져."

 

 차디찬 대꾸와 함께 문이 닫히고, 잠깐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던 소녀의 큰 눈망울에  조금씩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우으으... 으아아아앙!!!"

 

 딸의 울음을 터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인숙 주인이 양손에 밀대와 칼을 들고 2층으로 날 듯이 뛰어올라왔다. 

 

"메이! 왜 그러냐, 무슨 일이야?!"

 

겁에 질린 딸이 문을 가리키자,  주방장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저 농팽이가 너한테 몹쓸 짓 했냐?!"

"아니, 저기... ㅇ, 여자 손님이.."

채 대답을 듣기도 전, 여관 주인은 문을 부술 듯, 험악한 기세로 문짝을  밀대로 때려대기 시작했다.

 

"손님! 손님! 잠깐 나와보쇼! 어이!"  

"아니... 아침 댓바람부터 왜 이러십니까."

 

그런 심드렁한 말과 함께 방문이 열리고, 초례한 인상의 남자가 배를 벅벅 긁으며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곰과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건장한 남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대도, 그는 태연했다.

 

"당신,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엉?!"

"아니, 아침부터 왜 그러십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저리 비켜!"

 

 

 

주인은 힘으로 손님을 밀치고 방 안에 들어와 성난 눈동자를 굴리며 방을 샅샅히 뒤졌다. 하지만 그가 찾은 건 낡아 빠진 갑옷, 단촐한 가죽 가방, 그리고 기분 나쁘게 생긴 검 한자루가 전부였다.

 

"여자라니...  분명히 어제 저 혼자 예약했잖아요."

 

 방을 다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잠깐 당황하던 주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 딸이 이 방에서 어떤 여자를 봤소.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저렇게 떨고 있다고! "

"졸려서 헛 것을 봤던지... 뭐, 폐를 끼쳤다면 나가면 될 거 아닙니까."

 

구시렁거리며 순식간에 갑옷을 걸친 남자는 검과 배낭을 매고 방을 나섰다. 그러다아직도 겁에 질려있는 고양이 소녀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자신의 검을툭 치며 소녀에게 들릴 정도로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얘 내가 혼낼께."

 

 

 

그는 소녀 앞에서 자기 허리에 찬 검을 톡톡 건드려보이곤 여인숙 밖으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