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스포일러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300년 전, 마왕을 봉인하고 세상을 구한 용사와 동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에 대하여 처음 들었을 때,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기에 가능하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이 판타지 세상에 갑작스럽게 여자아이가 된 채로 성국의 북부 어딘가에 홀로 남겨졌을 때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마침 북부를 순찰하던 수녀님의 도움을 받아 무사할 수 있었지.


수도원에서 점차 여자로써의 삶에 익숙해져 갈 무렵, 내게 신의 가호를 받은 소녀들의 증거인 문장이 나타났다.


내가 세상을 구할 희망인 용사파티의 성녀로 선택받다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방인이자 원래는 남자인 내가 성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데로스씨. 괜찮으신가요?"

"예. 설마 용사님들의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신의 가호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네요."

"마차가 망가지셔서 큰일이시겠어요."


그런 걱정은 '용사'를 만나고 나서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지금도 습격을 당한 상인을 구한 뒤, 안부를 걱정해주는 착한 사람.


한국인이면서 신기하게도 밤색 머리카락을 가진 '용사'는 여리한 몸과 마치 여자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소심한 편인지, 조심성이 강한 것인지 처음 만났을 때에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지 못했지.


긴장하는 용사님에게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이세계에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밝혔다.


용사님도 나처럼 원래의 관계가 모두 사라지고 갑작스럽게 오게 된 이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자 같은 입장의 사람을 만난 것이 기쁜 것인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주기 시작했었다, 이름이라던가 살던 곳이라던가.


아쉽게도 이 곳에 오기전의 기억이 애매해서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하자, 안타까워하는 그 표정을 잊지못한다.


저 착한 용사님은 과거를 제대로 기억 못하는 불쌍한 소녀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이겠지.


"...소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용사님과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나서요. 상인분에게 하신 것 처럼 저에게도 이런 저런 질문을 해주셨죠."


나의 말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버리는 용사님.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비록 남자였던 나지만, 지금 저 귀여운 용사님에게 푹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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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또 의미심장하게 웃네. 하긴 성녀인 소피도 나처럼 이 게임을 해본 것이 분명한 사람이니까.


처음 만난 날에 매료의 마안을 사용해 볼까하는 순간, 갑자기 자신도 빙의된 사람이라고 밝히다니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지금도 내가 마안을 강화할 마정석을 공급받을 상인 데로스와 만나자 감시하듯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으니까.


내가 일선을 넘는 순간 바로 성국에 신고하여 베드엔딩으로 직행시키겠다는 암묵적인 협박이겠지.


나도 마안이 적당히 강화되기 전에는 히로인들에게 손을 댈 생각은 없었고, 아무리 게임 케릭터지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육변기처럼 능욕할 생각은 없었는데.


"후훗."


아직까지 야한 이벤트를 한 번도 못한 건 아니지 않나? 이왕 최면으로 히로인들을 마구 따먹는 떡타지에 빙의한 것인데, 딱봐도 글래머러스한 순산형 몸매의 나탈리아도 로리체형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을 라우라도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고.


 아니지 좆을 좆대로 굴리려고 하다가 저 성녀에게 목이 날아갈 판이니까 조심해야지.


성녀를 타락시키지 못하면, 나에게는 죽음이라는 베드엔딩만이 있으니까. 성녀는 마왕을 토벌하는 것이 확정된 두번째 용사를 기다리면 그만이니까.


내 목숨줄을 잡고 있는 저 성녀의 눈을 피해서 마정석을 모은다.


몰래 마안을 조금씩 강화하는 거야. 그리고 단숨에 세뇌를 완료하자.


성녀를 타락시키는 것이 내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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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와 수현이의 역할 변경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