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악!!!


항상 사무실 안에선 큰소리가 끊이질 않는다지만 이번에는 형용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장난쳐!!”

“1년이 지났는데도 일을 아직도 이렇게 처리해!! 지금이 몇 번째야 몇 번째!!“


“죄…죄…죄송합ㄴ”


“됐고. 또 이러면 너도나도 둘 다 피곤해지는 거 알아둬”


”…“


“뭐해? 자리로 돌아가”


오늘도 고개를 푹 숙이고 선임에게 혼나는 중이다.

일하고 혼나고 일하고 혼나고… 이런 반복의 나날들


나는 항상 과거부터 이래왔다.

남자였을 시절부터 쭈욱 말이다.

그때도 대충 2~3년 동안 뭐 혼나기만 했지, 뭐 잘난 게 하나도 없던 놈이었다. 아 그래도 칭찬받은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혼나는 날엔 사무실의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왜 자꾸 실수하는 거지


죽고싶다.

역시 나 같은 건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인 모양인가 보다.


“저기…은하 씨 너무 깊게 마음에 두지 마요”


“아…네”


바로 앞에 말 걸었던 사람은 같은 날 입사했던 동기인 시우 씨다.


이 사람은 나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업무능력이 좋았으며, 성격도 모난 데가 없어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낸다.

그런 사람에게 위로를 받아버렸다. 나 같은 건 그냥 내버려두면 좋았을 텐데, 너무나도 괴로워 그만해줘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못 버틸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울먹거리려던 그때 퇴근 종이 쳤다.


“자 퇴근들 잘하고 불금이니깐 잘 쉬었다가 다음 주에 봅시다”


울음을 삼키고 고개를 숙이며 소심하게 도망치듯이 퇴근했다.




-퇴근 후 집 안-


카톡!


"누구지? 카톡 올 데는 없을 텐데."


핸드폰을 켜 카톡을 확인하니 시우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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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갔어요?]

                                                                           [아…네]

[혹시 괜찮으면 다음 주 연차 쓰실래요?]

[제가 선임님께 잘 말씀드려 볼게요]

                                                                [괜…괜찮아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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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상냥하다.

누구든 가리지 않는 상냥함이 너무 버겁다.

때로는 이런 상냥함이 상대에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정신이 완전히 부서졌을 때는 말이지


불안해

숨 막혀

무서워

죽고 싶어


이 부정적인 것들을 잠재워두기 위해 책상 위 서랍장에서 약을 꺼내 든다.

그러고 나서 냉장고로 몸을 옮긴다.


“아…물이 없네…”


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신 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급한 대로 물 대신 술을 꺼내와 몇 차례에 걸쳐서 입안에 약들을 한 움큼씩 털어 넣었다.


입안으로 털어 넣은 약은 에스에스브론정 

옆 동네에선 토요코키즈들이 오버도즈로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약효가 돌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칼…내 칼 어디있더라”


서랍을 뒤적거려 떨리는 손으로 커터칼을 집는다.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다.

누가 봐도 귀여운 얼굴과는 반대로 양팔에는 수많은 자해흔들이 가득하다.


한번 긋는다.

잘 안 그어진다.

칼날이 무뎌졌나?


그렇게 무뎌진 칼날을 부러뜨리고 오래된 흔적 위로 깊게 긋는다.

따뜻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팔과 옷을 적신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계속 긋는다.

불안이 사라질 때까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해는 왜 하냐?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냐?

극소수 Yes라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 No다.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자해를 했던 사람이나 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 상황을 버티기 힘들어서 긋는다.

물론 ‘나 이렇게 힘들어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절대로 자해 상처를 보려고 하지 말아라. 그들은 보여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팔 위를 쳐다보면 군데군데 노란 것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쪽을 그어간다.


그때 마침 약효가 돌기 시작한다.


머리가 멍해진다.

온몸이 둥실둥실해진다.

세상도 함께 둥실둥실해진다.

웃음이 멋대로 나온다.

기분 좋아 이렇게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어.



전부터 이랬다. 나는 항상 고통으로부터 도망쳐왔다.

과거 몇 년 전에 남자로서 직장에 다녔을 때 선임한테 혼난 뒤에 인생 처음으로 손목을 그었다.

그때부터였나? 아니 그 이전이었을 것이다. 정신병이 돋아난 것은


그때 정신과에 갔었어야 했다.

솔직히 병원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만약 검사받았는데 정상으로 나오면 어떡하지? 사실 나는 쇼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온 머릿속을 헤집어놓아서 결국엔 못 갔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증세가 심해졌다.

보통이라면 아프면 휴식을 취하든 뭐든 간에 연차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연차를 쓰는 것이 두려웠다.


연차 쓴다고 말하면 그걸로 혼날 것이라는 망상, 나 주제에 뭔 연차를 쓰냐는 비관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연차를 쓰지 않고 다음 날 회사에 나와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을 하고 다녔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시우가 연차 쓰라고 권유해도 거절했던 것이다.


제삼자가 보면 정말 멍청한 행동이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바꾸려고 해도 바꾸기엔 내 마음이 먼저 꺾여버렸다.



대충 1시간 정도 지나면 약효가 끝난다.


브론을 정량 복용했을 때 주된 효과는 바로 감기 억제이다.


하지만 오버도즈하면 어떨까?

정답은 바로 술에 취한 것처럼 해롱해롱 거린다.


부작용을 극대화해 의도한 주 작용이 저것이다.


"으아으으..."


하지만 행복의 시간이 지난 후 진짜 부작용이 덮친다.

메스꺼움, 식욕감퇴 같은 부작용이 있지만, 특히 술과 함께 오버도즈하면 사람에 따라서 우울증이 찾아온다.


"아으으 사...살려져...주꼬시퍼"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기절하듯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