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무채색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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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이었던 나는, 어느 날 파란색과 주황색을 만나 색깔을 얻어 행복하게 살고있다


과거에 무채색이었던 동포들에게 마구 '사용'되며 '봉사'하는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나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1년... 2년...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날도 평소처럼 무채색들에게 채워진 마음을 듬뿍 담아 '봉사'를 하던 날이었다


그러던 중 주황색의 소집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무채색에게 하던 '봉사'를 최대한 빨리 끝마치고 주황색에게로 갔다


그곳에는 다른 파란색들도 모여있었다


그동안 떠나가 무채색으로 돌아간 파란색들도 있었고 새로 들어와 파란색이 된 무채색들도 있었다


가장 늦은 것은 나였다


하지만 이곳의 따뜻함은 그 정도의 일을 가지고 매몰차게 굴지는 않는다


아무튼, 내가 '특수한 의자'에 앉자 주황색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파란색들은 나를 포함해서 믿을 수 없는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주황색이 떠나간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마음에 슬픔이 빠르게 채워졌다


다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가장 최근에 파란색이 된 아이는 눈물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 울기 시작해 파란색들의 눈물로 하늘색의 바다가 되었다


그중에는 주황색의 눈물도 섞여있었다


바다가 가라앉고, 모두가 진정되기 시작할 때, 주황색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바로 다음 주황색이 누가 될 지에 관한 것이었다


주황색은 우선 파란색 중 가장 오래된, 내가 가장 처음 만난 파란색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파란색은 자신의 평평함이 좋다며 거절했다


그 다음으로 오래된 동물귀를 가진 파란색에게 묻자 자기는 느긋한 게 좋다며 거절했다


그 외, 내 선임들에게 차례가 돌았지만 모두 비슷한 이유로 거절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계속 생각했었다, 주황색의 저 커다란 가슴을 가진다면... 이라고


그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축하해주었다


나 자신도 나를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주황색이 자신의 가슴팍에 있던 딱지를 떼서 나에게 붙여주었다


그러자 내 키가 약간 커지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무서운 속도로 부풀기 시작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슴은 점점 커져갔고, 전 주황색의 크기를 순식간에 넘어 그에 몇 배는 커졌다


그렇게 변화가 끝나고 나자, 나는 어느덧 어엿한 주황색이 되어있었다


자신의 몸의 변화, 그리고 힘을 느끼고 있을 때 내 눈앞의 주황색이 말했다


"훌륭한 주황색이 되었구나"


그 말을 하며 주황색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의 주황색은 서서히 무채색이 되어 먼지가 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황색이 된 나와 파란색들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 주황색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결의에 찬 표정으로 배웅하였다


...그 후로 내 '사용'과 '봉사' 등의 일은 더욱 늘었지만 그만큼 더 '행복'하기에 매우 만족한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다같이 모여서 내 큼지막한 가슴을 '사용'해 '식사'를 한다


그렇게 파란색들에게 밥을 주고 있노라면, 떠나간 주황색에게서 밥을 얻어먹던 시절이 문득 생각나고 만다


나도 언젠간 그 주황색처럼, 그리고 떠나간 파란색들처럼 떠나가겠지


하지만 그 전엔 이 몸을 다해 '봉사'를 하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파란색들이 불행하지 않게 '행복'을 잔뜩 줄 것이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에필로그-


어느 날, 평소처럼 '봉사'를 하던 중에 주황색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무채색을 만났다


그 무채색은 나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였고,


나 또한 한껏 행복한 미소로 보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 무채색은 만족한 미소로 나를 '사용'하고 떠나갔다


언젠간 다시 만나길 바라며, 나도 그 무채색을 배웅해주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