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 쓸수록 어렵네요.

뭔가 난잡하기도 하고... 리셋병이 도질 거 같아!!

여하간 혹여 글을 읽고 거슬리는 점이 있으시다면 부디 바로! 기탄없이! 지적! 환영합니다!


---


코끝이 간질거린다.


집구석에 스며드는 습기의 냄새.
나뭇잎을 한없이 두드리는 빗방울의 소리.
아침 햇살을 대신 내려앉은 어슴푸레한 고요.


얇은 빗줄기가 세상을 도화지 삼아 수없이 선을 그려낸다.
열린 창문 너머의 풍경을 확인한 나는 괜스레 창틀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봄이다."


쏟아지는 봄비를 구경하던 내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맺혔다.
겨울의 끝이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란 언제나 특별한 계절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더욱 특별하다.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잡다한 물건들을 돌아본다.
딱 한 번 켜본 양초, 이국적인 형태의 단검, 기하학적 문양의 손수건 등등.
그간 호기심을 달래며 모아둔 물품들이지만 이 순간부터 내 안에서 그 가치는 급락했다. 그래도 모아둔 물품이니 배낭에 챙겨가기야 하겠지마는.


기세 좋게 방문을 열자, 부지런하신 부부가 아침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임다!"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허허, 참. 슈도 저렇게 활발하면 좋을 것을."


빠르게 인사를 끝마치고는 아직도 방에서 디비자고 있을 못난 친구의 방을 향해 돌격했다.
각자의 방문에 자물쇠를 달아두는 프라이버시 문화는 적어도 이 시골 깡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의 방문과 마찬가지로 슈의 방문 또한 기세 좋게 열렸고, 얌전한 자세로 잠자던 슈 또한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뭐, 뭐야? 뭔데?"
"기상! 기상할 시간이야!"


두 눈으로 슈가 일어난 걸 이미 확인했지만 구태여 다가가 이불을 홱 가로챘다.
아무리 충격적인 기상이라 할지라도 이불의 안온함을 두르고 있다간 다시금 잠에 빠져드는 것이 상식! 나는 내 현생 유일무이한 친구가 이런 기쁜 날 게으름 피우는 걸 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이불이 허공을 휘도며 달라붙어 있던 먼지가 비산하고...


"흠."


다시 곱게 이불을 슈의 몸 위로 덮어주었다.


여자로 살다보니 남성의 아침 생리현상을 깜빡했다.
물론 슈 또한 내가 남성이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성별을 차치하고 타인에게 곧추선 것을 보이는 건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경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빠르게 대처했다.
반룡의 뛰어난 반사신경은 이미 볼 걸 전부 다 봐 버린 뒤였지만, 그래도 일반인 기준으로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이불이 날았다가 떨어진 것처럼 보일 테니 괜찮지 않을까?


"...야."


안 괜찮았던 모양이다.
목 밑부터 이마 위까지 시뻘겋게 변한 슈에게 나즈막히 사과를 건냈다.


"어... 미안?"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뱉은 뒤, 슈는 이쪽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 와중에 괜스레 이불을 만지작거리는 터라 나 또한 무심코 이불이 구겨져 굴곡진 부분에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단코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슈의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제대로 심통이 난 표정으로 슈가 투덜거렸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밖에 비 와!"
"비 오는 게 뭐."


저 시큰둥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봄비야! 이제 모험을 떠날 수 있다니까?"


모험.
단 두 글자로 아로새겨진 꿈과 낭만의 결정체.

옛날부터 내 가슴 한켠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다. 두 번째 삶을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됐는데 얌전히 마을에 틀어박혀있는 게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않나. 그것도 벌써 십수 년을!
내게 소원이 있다면 모험이요, 슈와 함께하는 여행이요, 슈와 함께 이 세상을 탐험하는 것일지니!


슈에게도 진작에 동의를 받아놨다. 언젠가 함께 모험을 떠나기로.
내가 이렇게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이거야.


허나 우리 두 사람의 보호자 되시는 슈네 부모님께선 이를 강경히 반대하셨다.
마을 밖엔 마물이 돌아다녀 위험하다는 점이나 보편적으로 아인종의 처우가 좋지 않다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나 슈가 아직 미성년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따지고보면 나이가 거의 유일한 문제였다. 마물이야 내가 때려잡으면 되고, 사람과 접할 때는 슈가 나서면 되니까.


누구나 얽메일 수밖에 없는 나이라는 족쇄.
그것이 풀린 것은... 몇 달 전이다.


슈는 늦가을에 태어났고, 나는 마을에 받아들여진 초겨울을 생일로 삼았다.
그리하여 성인으로 인정받은 시기는 봄비 내리기 한참 전이었으나, 상식적으로 대체 누가 겨울이 오는데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월동 준비하기도 바쁜데.
하여 슈와 나의 모험은 겨울이 끝나기까지 몇 개월 미루어졌으나... 마침내 그 날이 온 거다!


봄! 한 해의 시작!
그리하여, 우리의 모험도 시작!


"별 일 아니었잖아...."


슈의 맥 빠지는 목소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나는 벌써부터 훤히 그려지는 화려한 모험담으로부터 눈을 떼고 슈를 쏘아붙였다.


"이게 어떻게 별 일이 아니야? 드디어 마을을 떠날 수 있다니까?"
"어차피 당장 떠날 것도 아니잖아. 짐도 싸야 하고, 이웃들이랑 인사도 해야하고... 사흘은 걸리겠구만."
"사흘?! 왜 그리 오래 걸려?"
"이틀 뒤에 행상인 마차가 오니까. 그때 필요한 물건들 더 사고 이것저것 하면 하루는 더 걸리겠지."
"아...."


우리의 모험, 사흘 뒤까지 압수당했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이 풍선 바람처럼 빠져나가자 남는 것은 흥분을 태우고 남은 재와 허무하기 그지없는 열기 뿐. 아침부터 기운을 빼서 그런가 온몸이 축축 늘어지는 듯했다.


"...응? 어어? 야, 뭐해!"


슈가 밀어내건 말건 반룡의 우월한 피지컬로 슈의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밤새 체온으로 뎁혀진 훈훈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싸고 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몸 곳곳에 닿는 슈의 체온 또한 안락함을 더해주었다.
꾸물꾸물 이불 속에서 자리를 잡은 뒤, 이불에 뿔이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사흘 뒤에 깨워줘."
"잘 거면 니 방 가서 자!"
"싫어. 내 침대는 차가울 거란 말야."


슈는 의미없는 반항을 멈추질 않았다.
침대 한 켠을 거의 차지한 나를 굳이굳이 밀어내려 하는 통에, 따듯한 침대를 누릴 권리를 위해서라도 나는 비장의 수단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비장의 수단이란 바로바로... 나의 두 손.
봄비 내리는 바깥 공기를 쐬느라 다소 차가워진 손을 슈의 상의 밑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흐익?!"


슈가 기겁하며 몸을 비틀었으나, 어림도 없지.
완강한 근력으로 슈의 상체에 손바닥을 찹찹 눌러가며 약간 시렸던 손을 데워나갔다. 등짝은 물론이고 옆구리나 배도 서슴없이 손을 가져다 댔다. 그뿐이랴? 쿡쿡 찌르기도 하고 꼬집기도 하고 간지럽히기도 했다.
사람의 살갗에 닿는 감촉이란 부위별로 다 다른 느낌이면서도 묘하게 중독적이다.

"아하하하핫!"

문득 피부 밑의 단단한 근육이 여실히 느껴지는 감촉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어째 내 몸은 말랑하기만 하던데 말야. 운동을 해볼까도 싶지만... 이미 가사노동까지 하는데 뭘 더 하긴 싫은걸.

"그만! 그만해!"
"왜에~ 나름 미소녀의 손길이라구? 남자라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징그러운 소리 집어 치우고 손 빼라고!"

낄낄거리며 손을 거둬들였다.
슈가 허겁지겁 침대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걸 확인하고는, 절찬리에 체열을 흡수해 따듯해진 손으로 당당히 승리의 브이를 그려보였다.

"이 침대는 이제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드립으로 뱉은 말이지만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툭하면 뿔에 걸려서 구멍 나고 찢긴 덕에 반쯤 거적떼기나 다름없는 내 침대보단 깔끔한 슈의 침대가 더 안락하긴 하다. 물론 양심상 진짜로 뺏을 생각은 없지만, 친구 사이에 한숨 자는 것 정도는 허락해줄 수 있잖아?
몹시 아니꼽다는 시선이 피부를 찔러댔지만... 훗 하고 비웃어줄 수 있었다.

'뭐 어쩔 건데?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물론 나는 양심적이고도 자비로운 반룡이라, 마냥 취하기만 할 생각은 없다.

"같이 쓸래?"

이불을 들춰올리며 따듯한 침상의 소유권을 나눌 것을 제안했다.
허나 이 자비로운 제안은 곧바로 기각되었다. 건방지게도 슈가 삐진 티를 팍팍 내며 눈을 돌린 까닭이다.
쪼잔하긴...이라고 하기엔, 나라도 안락한 침대를 뺏기면 좀 섭섭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막상 안락한 침대를 손에 쥐니 당장 놓기는 싫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탐욕스럽진 않았는데... 어디선가 듣기로 용은 탐욕스럽다 하니 이 또한 내가 반룡이 된 탓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나쁘진 않았다.
나는 개쩌는 반인반룡이니까 이래도 돼. 온몸에 이불을 둘둘 감고 웅크려 온기를 만끽했다.

"싫으면 말고. 난 잘 거니까 사흘 뒤에 깨워줘."
"다른 건 그렇다 치고, 그럼 난 그동안 어디서 자?"
"내 침대 쓸래?"
"개소리."

슈가 이불의 끝자락을 쥐고 강하게 휙 당겼다.
노동으로 단련된 슈의 근력도 약하진 않았고 무엇보다 기습이었기에 이불이 확 채여진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이불을 꽉 붙잡았으며,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여 '슈가 이불을 당기던 힘'은 그대로 '이불 쪽으로 슈를 끌어당기는 힘'으로 변모하였다.
그리하여 나타난 결과는...

달칵. 끼익.

"얘들아 할 말이... 엄머머, 미안하구나. 아줌마가 눈치가 없었네. 계속 하렴."

끼이익. 달칵.

나는 물끄러미 내 코앞까지 다가온 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넋을 잃고 아주머니가 꼬옥 닫고 나간 문을 바라보던 슈도 다시금 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슈의 고동색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깜빡. 깜빡.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런지 나도 잘 입이 돌아가지 않았다.
산만해진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이끌어나갈지 고민하는데, 다시금 닫혔던 방문이 살짝 열렸다.
한 뼘 정도 열린 문틈 너머, 흐뭇한 미소의 아주머니가 불끈 주먹을 쥐어보였다.

"안에 싸면 안 된다? 알지? 난 우리 아들 딸 믿어!"

끼이익.

음, 주워온 아이인 저를 딸 취급해 주셔서 감사하긴 한데요... 그걸 그렇게 말하면 더 하면 안 될 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쓰읍.
그보다 문 끝까지 안 닫혔잖아. 실날 같은 틈으로 엿보는 거 슈는 몰라도 나는 다 보인다고요.

생각해보니 슈네 부모님은 슈랑 내가 사귀는 줄 알고 계시지?
그동안 길러주신 은혜를 떠올리니 차마 두 분의 기대를 배반하기 어려웠다. 하여 눈짓으로 잘 알아먹으라고 눈치를 주며, 잘 움직이지 않은 입술을 애써 오물거리며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었다.

"어... 계속... 할래?"

슈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음, 이거 눈치 못 챈 반응이구만.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당혹스러워하는 슈의 표정 변화도 볼 만 했지만 얼마 구경하진 못했다. 나조차도 놀랄 속도로 베개를 움켜쥔 슈가 그대로 내 얼굴에 베개를 쳐박았기 때문. 꾹꾹 눌러오는 무게감에 약간 숨이 막혔지만 푹신하니 썩 나쁘진 않았다.
이불로 꽁꽁 싸매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나 은근히 답답한 걸 좋아하나?

"얘가! 여자애한테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슈의 베개 꾹꾹이 이벤트는 화들짝 놀란 아주머니의 난입으로 금세 끝을 맺었다.
벌겋게 상기된 슈와 나의 면면을 번갈아 본 뒤 무슨 오해를 하셨는지 '너희가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좋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하고 말을 흐리시는 게 신경쓰였으나 구태여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얼타는 슈를 대신해 해명할 뿐.

"오해입니다."
"...뭐가?"

얘 야겜 게이머 맞냐.
끝까지 눈치 없게 구는 슈를 한 차례 째려보고는 재차 선언했다.

"아무튼 오해입니다."

아주머니는 미심쩍다는 양 눈을 가늘게 뜨긴 했지만 무언가 더 말하진 않으셨다.
대신 여차저차 파탄난 분위기를 애써 풀어보겠다는 듯 짝 하고 손뼉을 치며 주의를 모으셨으니, 이어 나오는 본론은 다음과 같았다.

"사샤, 오늘 하루는 지하실에 있는 게 어떠니?"

음. 그런 건가.
소중한 아들내미와 아인종이 붙어먹는 게 사실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건가.... 라는 건 농담.
아무래도 나는 스스로에게 하는 농담에는 소질이 영 없는 듯하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기분이 약간 우울해지는 걸 보면 말이지.

당연하지만 나를 딸처럼 여기시는 두 분이시니 나를 지하실에 감금하려 들지는 않는다.
나를 감금하는 게 아니라 숨기는 게 목적이며, 그 이유도 익히 짚이는 바가 있었다.

"밖에서 누가 온데요?"
"그래, 이단심문관 분들이라는구나."

이미 언급했듯이, 아인종의 취급은 썩 좋지 않다.
중세의 집시나 아파르트헤이트 즈음의 흑인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 적어도 인간보다는 열등한 종족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슈에게 듣자하니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든 차별반대 운동가 NPC도 있다는 모양이고.
물론 아인종이라도 일정 수준의 명성을 갖추면 특별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으론 도저히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인간과 아인종 사이에 존재한다.

내가 마을 주민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거다.
이 마을 사람들은 상당히 개방적인 편이라 나를 주민으로 받아들여주긴 했다지만, 그럼에도 못마땅해하는 시선이 분명 존재한다. 하물며 차별이 디폴트인 마을 외부의 사람들임에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그나마 평범한 여행자라면 괜찮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인종을 '소유한' 마을의 주민들을 존중해 섣불리 아인종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의 눈에 띄는 게 좋은 상황은 아니니까 어지간하면 조심조심 피해다니곤 했고.

하지만 이른바 높으신 분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마을 주민들을 향한 암묵적 존중 따윈 개나 줘버릴 수 있는 권위를 갖춘 이들이라면 마을 내 '하찮은' 아인종 하나쯤은 멋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좆같은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는 개쩌는 반인반룡이니까 높으신 분들도 개박살 낼 순 있지만!
내가 높으신 분들을 개박살내면 마을도 똑같이 풍비박산날 가능성이 높으니까... 민폐를 끼치는 건 될수록 자제해야 하지 않겠나.

무얼 숨기랴. 내가 모험을 원하는 원인에는 이런 현실 또한 포함되어 있다.
유명한 모험가가 된다면 아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하지 못할 테니까.

"어쩔 수 없죠."
"...괜찮겠어?"

착잡한 눈빛을 던지는 슈에게 밝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니 침대만 지하실로 옮겨주면 괜찮을듯?"

다행히 이번 농담은 잘 먹힌 모양이다.
입술을 비틀어 공기 새는 웃음소리를 낸 슈가 마구잡이로 뭉친 이불을 떠안겨 주었으니.

한아름 이불을 껴안고 있다가, 문득 귓가에 긁히는 빗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창문 너머 봄비가 내리는 풍경.
겨울을 두들겨 내쫓는 빗줄기 속의 이름 모를 꽃나무.
살짝 벌어진 꽃봉오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비를 맞고 있으니.

꽃봉오리가 펼쳐졌을 때.
만개한 꽃이 맞이하는 것은 따사로운 햇볕일까 차가운 빗방울일까.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뭘 그렇게 봐?"

꽃봉오리를 훑던 눈동자가 다시금 슈에게로 향한다.
약간의 걱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품 속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흔들어 이유 모를 불쾌함을 털어냈다.

괜찮을 거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까.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