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4화 5화 6화(完)



"후우. 하아. 후우. 하아."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손이 떨린다.

 

식은땀이 줄줄 난다.


"흐읍. 후우. 하아. 흡. 파하."


귀가 먹먹하다.


현실감이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현실이다.


"해야만 해. 내가 해야만 해...! 나밖에 할 사람이 없어. 나밖에!"

 

단지 자아 도취에 빠져 내뱉은 헛소리가 아니다.


협회에서, 아니. 지구에서 가장 순간 화력이 강한 마법소녀는 바로 나다.


나. 바로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란 말이다.


꽈-앙! 


고막을 찢는 함께 흩날리는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한들 신경쓰지 않았다.

 
온갖 방해가 나를 괴롭혀도 내가 할 일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매지컬포》 충전 8퍼센트. 9퍼센트."


나의 할 일.


그건 바로, 《매지컬포》에 마력을 불어넣는 것.


"당신은... 《매지컬 브레이커》? 지금 여기서 뭐하시는 건가요?! 게다가 지하에서 나오다니. 건물로 어떻게 들어오셨죠? 그것도 근신 처분을 받은 당신이?"


협회 지하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바로 로비에서 나를 가로막았던 가드.

마법소녀 《서리달》이었다.


"지금 이 소란이 벌어졌는데도 당신은...!"
"꺼져. 방해된다."


아까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녀와 잡담할 여유는 없다.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이다.


《서리달》을 무시하고 가려던 나였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를 멈춰세웠다.


"설마 《매지컬 브레이커》 선배님. 이번에도 도망가시는 건가요?"

"...뭐라고?"
"후배들의 목숨을 고기방패 삼아 제 목숨을 부지하시려는 건가요? 대답해 보시죠 선배. 네?"


대답하지 않았다.


촌각을 다투는 시기에 너무나 어이없는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굳이 대답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침묵을 제멋대로 받아들이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말했다.


"다른 선배들 말이 맞았어.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는, 자기 빼고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파리보다 가볍게 여기는 미친 싸이코패스라고!"
"...하아."


나는 고유무기를 힐끗 보았다. 


충전량은 14퍼센트. 너무 더디다.


"지금 협회가 이 난리가 났는데도 혼자만 살 생각하다니. 진짜 선배도 독하시네요. 선배는 사람의 마음이 없으신가요? 그러고도 마법소녀에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나 했더니. 떨거지의 헛소리였군."
"뭐, 뭐라고요? 떨거지? 지금 나한테 한 말이에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내 말에 발끈한 《서리달》이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이 상황을 해쳐나갈 방법을 생각했다.


여기서 심력과 마나를 낭비하면 안 된다.

내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은 전대미문의 마물이다. 노장 《마스터》도 희망을 잃어버린 마물. 인간의 욕심으로 열어버린 특이점.


내 전력을 쏟아부어도 쓰러트릴지 장담하지 못하는 적.


그 괴물에 비하면 내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너무나 하찮았다.

본인의 줏대 없이 주변에서 주워들은 소리로 가득찬 떨거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마물의 난리로 협회 건물이 무너지고. 

마법소녀들이 혼란에 빠져 우왕자왕하며.

잔해에 깔린 방문객. 체념한 채 죽음을 받아들이는 직원. 맞서기는 커녕 도망가기 바쁜 우리 새파랗게 젊은 후배님들로 가득한 마법소녀 협회 건물.


아사리판이 이보다 더 들어맞을 상황이 있을까 싶은 풍경 앞에서도 오로지 나만 바라보며 증오를 불태우고 있는 《서리달》은 정신병자나 다름 없다. 

실제로 그랬다.


나를 보고 있음에도 내가 아닌 다른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동공. 

떨리는 눈꺼풀. 

갈라진 목소리. 

과하게 부풀린 몸짓 등. 


그녀가 나를 타겟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이유는, 갑작스레 망가진 세상을 받아들이기 힘든 나머지 발동한 자기 방어 기제일 터이다.


"모두 대피해!"

"대피만 하지 말고 맞설 준비해!"

"저런 괴물과 누가 싸웁니까?! 선배나 싸우시죠!!!"

"뭐?! 지금 말 다했어? 마법소녀면서 도망칠 생각이야?!"


대격변을 경험하지 못해, 마물을 야생 동물 사냥하듯이 편하게 살아온 후배님들은 충분히 패닉에 빠질만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내가 마주하는 건 히스테릭을 부리는 《서리달》 개인이 아니었다.


《서리달》로 대표되는, 후배 마법소녀들이 느끼는 공포 그 자체였다.


"...안 비켜?"

"죽어도 안 비켜요. 당신같이 비겁한 사람이 도망치는 꼴, 더는 볼 수 없으니까!"


충전량 25퍼센트.


"그렇게 내가 밉나? 너를 직접 괴롭힌 적은 없는데."

"나도 마법소녀에요. 신념이 있다고요. 그리고 그건, 동료를 배신하고 혼자서만 살아남는 파렴치한 마법소녀를 단죄하는 일."


27퍼센트.


"어차피 뭘 하든 살아남기 힘들어 보이는데. 당신을 막아선다면 그럭저럭 좋은 최후가 되겠죠. 적어도 당신 때문에 죽어나간 마법소녀의 혼을 위로해줄 좋은 진혼제가 될 테니까."


28퍼센트.


"그러니까 당신은 벌을 받아줘야겠어요.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히 협회 건물에서 죽어. 얼른."


틱.


30퍼센트를 알리는 알림이 울리고, 나는 《매지컬포》에 담긴 마력을 관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느린 충전속도는 둘째치고, 녀석을 쓰러트리기 위한 출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견적이 대충 잡히자 공황 대신 허무함이 찾아왔다.


'내가 정말 필요한 건가?'


'이 모든게 쓸모 없지 않나?'


'후배한테 내 과거가 모함당하고 욕보이면서까지 나설 필요가 있나.'


'그냥 나는 애물단지일 뿐이지 않았던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통받을 바에 그냥 죽는게 낫지 않을까...'


피가 빠르게 식고 현실을 자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무모한 행위인지 다시 떠오른다.


《마스터》와 내가 빠졌다고 해도 《라운즈》 전원이 녀석과 대항하다 죽었다.


28퍼센트.


S급도 다 죽었고, A급은 절반 이상 목숨을 잃었다.


마법소녀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했고, 그렇다면 마법소녀의 마력이 담긴 내 《매지컬포》가 쏘아낸 일격도 소용없을 것이다.


24퍼센트.


그렇다. 나조차도 공포를 마주한 끝에 패닉에 빠졌을 뿐이다.


다만, 도망치려는 후배들과 달리 애병을 들었다는 차이만 있지 본질적으론 그들과 똑같다.


19퍼센트.


공황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인간.


그게 《매지컬 브레이커》였고, 지금이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 않다.


7퍼센트.


그때였다.


"어?"


천장에서 떨어진 시멘트 덩어리가 내 고유무기를 툭 쳤다.


"이건..."


그리고 떨어진 건 별모양 키링.


《미름달》은 키링을 살피더니 내게 물었다.


"당신, 이게 뭐죠?"

"...."


그건 손잡이에 너무 오래 달아둔 나머지, 어느새 달려있단 사실조차 까먹은 물건.


"어째서 명예의 전당에 있는 마크가 당신한테 달려있는 거죠?"

"내놔."


"대답하세요. 도대체 이게 뭔데..."

"내놓으라고 했잖아!"


콰악.

나는 순식간에 《미름달》에게서 키링을 되찾아와 풀어지지 않게 《매지컬포》에 꽉 묶어두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미름달》에게 말한다.


"......결정했어."

"뭐, 뭐를요."


"난 가야만 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비켜."

"그렇게 쉽게 보내줄 것 같아요?"


"안 비키면, 진짜로 죽여서라도 갈 거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비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너도 죽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


두근.


심장이 다시 요동친다.


저 로고를 보니 잊고 있던 마음이 다시 솟아올랐다.


17퍼센트.


언제는 내가 미래를 알고 살았던가.


음해와 오해로 누명을 쓸 이후를 걱정해서 멈췄던가.


26퍼센트.


아니다. 나는 오롯이 현재만 살았다.


설령 후에 욕보이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던 나다.


그러므로 내 마법이 쓸모 없다고 해도. 덧없는 헛걸음질이라 해도.


34퍼센트.


그래도 나아가는 애물단지가 바로 나.


41퍼센트.


《매지컬 브레이커》다.


타다닥!


나는 《미름달》을 제치고 녀석을 저격할만한 높은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협회 건물의 절반은 남아있어 잘 오르기만 한다면 충분히 고층에 오를 수 있었다.


아까는 정신없이 내려왔던 건물을 이제는 악착같이 오른다.


중간중간 마법소녀들의 시체가 보였지만 멈춰서지 않았다.


더는 나를 붙잡는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정면을 향해 길을 뚫는게 내 방식이다.


"...89퍼센트. 거의 다 준비 되었어."


세상을 멸망시키는 괴물이 한눈에 보이는 반파된 건물 옥상. 

나는 그 위에 서서 적을 눈에 담는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그리고 너도. 나를 막는 건 다 꿰뚫어버리고 부셔버린다."


96퍼센트.


"《매지컬 브레이커》 레디. 《매지컬포》 충전 잔량 97퍼센트. 지금부터 발사 대기 페이즈를 이행합니다."


마나 집속 오케이.


총열 이상무.


스코프 시야 왜곡 없음.


바람. 온도. 습도. 모두 문제 없음.


노리쇠 전진.


조정간 단발.


발사 대기 페이즈 올 클리어.


격발 준비 완료.


"이곳에 세상을 부수기 위한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 소망과 마음을 담아 기적을 펼칩니다."


방아쇠에 검지손가락을 댕기고.


숨을 참고.


가늠좌로 상대의 급소라 생각될 부위를 조준하고.


그대로 천천히...


"격발."



대회 마감 기한이 얼마 안남아서 분량 많이 쳐냄

다음화가 마지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