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데이지는 번화가에서 제법 떨어진 주택가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카페다.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들 사이에 자리잡은 카페 데이지는 두터운 나무 문 뒤에 수줍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 자리한 두터운 흑갈색의 마호가니 목으로 만들어진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면, 자그마한 가게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느껴지는 가구들로 꾸며진 가게 안. 최근 생겨나는 모던한 느낌의 카페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특히, 자그마한 가게의 가장 안쪽. 나른한 음악을 연주하는 턴테이블이 그런 이질적인 느낌을 한껏 자아낸다.


 턴테이블이 올려진 선반 뒤쪽에 있는 레코드판이 빼곡히 꽂힌 수납장 역시 카페 데이지만의 풍경일 것이다.


 또 다른 점이라면, 카페지만 카운터 뒷편. 음료와 음식을 만드는 공간 뒤쪽에 자그마한 백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카페 데이지는 낮에는 술을 팔지 않지만, 해가 뉘엿뉘엿 쓰러질 무렵부터는 종종 간단한 안주와 주류도 제공하곤 한다.


 차가운 병맥주부터 손이 많이 가는 칵테일까지.


 이것은 4인용 테이블이 하나. 창가를 바라보는 테이블이 하나. 그리고 여섯개의 카운터 석 자리를 가진 카페 데이지의 언제나의 모습이다.


*


 진소라는 카페 데이지의 주인이다.


 카운터 뒷편의 주방에는 살짝 웨이브진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동여멘 그녀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한참 쌓인 설거지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접시 건조대에는 잔과 음료를 만들기 위한 도구 뿐 아닌, 다양한 식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종종 식사를 하기 위해 들리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간단한 음식을 파는 점심 시간이 지나면, 카페 데이지는 한가로운 오후 시간을 맞이하곤 한다.


 그 시간에 진소라는 주로 느긋하게 저녁 장사를 준비하곤 한다.


 간단한 청소를 하거나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를 하거나. 혹은, 떨어진 재료가 있는지 체크를 한다.


 보통은 할 일이 없어서 요즘 읽고 있는 소설책이나 신문을 들고 가게 구석에 자리한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오늘따라 개수대에 제법 쌓인 설거지거리를 어느샌가 해치운 진소라는 수세미를 행궈 내려놓았다.


 물에 푹 젖은 노란색 수세미가 마냥 처량해보인다.


 그 모습에 진소라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ㅡ딸랑


 때마침 문이 열린다.


 두터운 나무 문을 밀어 젖히며 들어온것은 제법 어려보이는 모습의 학생이였다.


 교복차림의 그녀는 등 뒤에는 자그마한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가게에 들어온 그녀는 익숙하게 가방을 벗어 빈 카운터 자리에 올려놓았다.


 속이 별로 차 있지 않은 빈 가방이 기우뚱거리며 쓰려지려하자, 그녀는 허둥지둥 가방을 잡아 테이블 위 대신 의자에 올려놓았다.


 등받이가 작은 네모난 나무 스툴 위에 가방이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진소라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하굣길이야?"


 진소라의 나긋한 목소리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뒤로 묶어놓은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린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소녀는 폴짝 뛰어올라 스툴 위에 자리잡았다.


 "소라 언니, 나 배고파."


 그러고는 곧장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진소라는 가게 안쪽의 시계를 살폈다.


 낡은 가구로 꾸며진 카페 데이지의 한쪽 벽에는 오래된 벽걸이 시계가 흘러간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초침 뒤로 시침은 다섯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진소라는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소녀에게 말했다.


 "파스타 괜찮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테이블 너머, 주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진소라의 갈색 앞치마가 어느덧 질끈 조여졌다.


 짙은 갈색의 앞치마를 동여맨 진소라는 아래에 자리한 냉장고에서 재료를 몇 꺼냈다.


 양파. 당근. 그리고 피망.


 물끄러미 반대편 도마를 바라보던 소녀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싫어하는것을 본 소녀의 표정을 빠르게 잡아낸 진소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피망 싫어?"


 물에 적당히 씻은 피망을 탁탁 털은 후, 피망의 꼭지부분을 지그시 누르며 진소라가 물었다.


 투둑 소리와 함께 피망의 꼭지 부분이 분리된다.


 피망 꼭지를 떼 내고 과육 안에 자리한 씨를 긁어내는 진소라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소녀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입을 삐죽거렸다.


 "피망 좋아하는 사람이 어딧어."
 "나는 좋아하는데?"
 "거짓말."
 "진짜야."


 피망을 얇게 채 썰며 진소라가 답한다.


 "정말 거짓말하지마. 엄마도 아니고."


 여전히 삐죽거리는 강하나의 모습에 진소라는 살짝 미소지을 뿐. 대꾸 없이 재료를 손질해나갔다.


 양파를 잘게 다지고 당근을 얇게 채 썰고, 소세지를 어슷어슷 썰어낸다.


 바글바글 끓기 시작한 깊은 냄비에 길쭉한 스파게티 면과 소금을 넣어준다.


 타이머를 세팅하고 진소라는 따분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강하나를 보았다.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 진소라는 흘러가는 타이머를 뒤로 길쭉한 잔에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듬뿍 담아낸다.


 제빙고 안에 고히 잠들어 있던 얼음을 채운다.

 치익 소리와 함께, 캔을 딴 진소라는 잔에 얇은 머들러를 꽂고 천천히 탄산수를 따라낸다.

 탄산수를 가득 채워낸 오렌지 에이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주황빛 에이드에 빨대를 꽂은 진소라는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 코스터와 함께 음료를 강하나에게 내어주었다.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주황빛 음료가 눈 앞에 나타나자 따분하게 핸드폰 화면만을 응시하던 강하나의 시선이 음료로 옮겨간다.

 "일단 마시고 있어."

 얼음이 서로 부딫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하나의 머들러 움직임에 맞춰 잔 아래에 짙게 깔린 오렌지 빛이 점차 위로 퍼져나간다.

 짙은 주황색이 점점 퍼져나가는 모습이 마치 석양과도 같았다.

 뚱한 표정으로 빨대를 입에 가져간 강하나의 표정이 금세 풀어진다.

 단맛은 묘한 마력이 있다.

 꿀꿀한 기분을 푸는 데에는 달콤한 음료만한 것이 없기 마련이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머가 요란하게 울려댄다.

 진소라는 팔팔 끓는 냄비 안에서 부드럽게 익은 스파게티 면을 꺼낸다.

 딱딱했던 면이 어느새 말랑하게 변했다.

 면을 살짝 집어 한가닥 맛을 본 진소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맞게 익은 면은 체반에 받쳐 옆으로 빼둔 그녀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세지와 손질해놓은 채소를 넣는다.

 살짝 열을 가해 채소의 숨을 죽인 후, 그것을 빼놓고 소스를 만든다.

 토마토 케챱과 우유. 우스터 소스만 들어간 간단한 소스.

 우유의 물기가 줄어들어 소스가 끈적해질때 소세지와 채소. 그리고 면을 넣어서 마무리.

 금세 완성한 나폴리탄 파스타를 접시에 포크와 함께 내어준다.

 반쯤 음료를 마신 강하나는 조심스럽게 포크를 들어 면을 돌돌 감아올린다.

 새빨간 소스를 흠뻑 머금은 면을 돌돌 말아올린 강하나는 포크의 끝자락에 어슷 썰린 소세지를 콕 찔러 꽂는다.

 "피망도 재대로 먹어."
 "나중에."

 진소라의 말을 무시한 채, 강하나는 포크를 입으로 가져간다.

 오물오물.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강하나는 입안에 자리잡은 파스타를 먹었다.

 "어때? 괜찮지?"
 "흐음."

 첫 입에 넣은 파스타를 거의 다 먹어갈때쯤. 진소라가 말을 건넨다.

 강하나는 살짝 뜸을 들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맛있어. 그런데 조금 평범한거같아."
 "뭐, 결국은 케챱맛으로 먹는거니까."
 "그런데 싫지는 않아."

 다시 한번. 포크에 면을 돌돌 말은 강하나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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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븐련들아